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81
879화. 전쟁 준비 (1)
곧 손현기는 고개를 끄덕이고 떠나려 했다.
그때 막 송경이 급하게 그를 불러세웠다.
“잠시만요. 얼마 전, 감정 스승님께서 어디론가 가시기 전에 저한테 물건을 하나 주셨습니다. 사형께 전하라고 하셨어요.”
이내 송경이 단실 안의 다른 연금술사를 향해 외쳤다.
“진국검은? 진국검을 어디에 뒀지?”
백의 술사들은 전혀 보지 못했다는 듯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한편, 손현기는 한 백의 술사가 쥐고 있는 황동검을 힐끗 보고선 단로(丹爐) 안의 숯불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진국검을 보지 못했습니다.”
송경이 벌컥 화를 냈다.
“서복(徐福), 자네 손에 든 거 아닌가? 버젓한 진국신검을 부지깽이로 쓴다고?!”
그 백의 술사가 고개를 숙여 보더니 깜짝 놀랐다.
“아! 그걸 여기 너무 오래 둬서 저조차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송 사형, 송 사형께서도 감정 스승님의 천기반을 책상다리 받침대로 삼으시지 않았습니까? 뻔뻔하게 저한테 뭐라고 하시다니요.”
손현기가 고개를 숙이자 과연 감정의 천기반이 책상다리에 깔려 있었다.
천기반은 법보지만, 자아의식이 없어 지금껏 영지가 탄생한 적이 없었다.
언젠가 감정 스승은 천기를 추단하고 정탐하는 물건은 영지가 생길 수 없다고 말했었다. 그러니 변소에 내버린다 해도 천기반은 딱히 반대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진국검은 기령이 있는 물건으로, 개국 황제의 버젓한 패검이었다.
손현기는 국운을 무려 600년이나 억눌렀건만, 진국검의 성격이 언제 이렇게 온화하게 변한 건지 궁금해졌다.
“아, 감정 스승님께서 그걸 봉인하셨어요. 나중에 풀어주는 거 잊지 마세요. 사천감에서는 말고요.”
손현기는 진국검을 받으며 송경의 말뜻을 바로 이해했다.
이윽고 진국검의 미약한 의식이 전해졌다.
“궤…… 멸…… 해…… 라…….”
* * *
정원 안.
조청양은 뒷짐을 지고 검을 휘두르는 조순을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7살짜리 아이는 목검을 날래고 힘차게 다뤘다. 몸짓이 아주 민첩했다.
지금 이 아이를 보는 누구라도 아이가 사실 어제야 이 검법을 연마하기 시작했단 걸 아무도 믿지 못할 터였다.
‘역시 용기는 진귀한 보물이다. 만약 계속해서 순아 몸속에 남아 있을 수 있다면, 순아의 성취가 나보다 더 높을 수밖에…….’
조청양은 얼른 고개를 흔들어 이 생각을 떨쳤다. 아버지라면 당연히 아들이 두각을 나타내기보단 아이의 무사 평안을 더 바랄 수밖에 없었다.
‘사천감 사람이 높지 않은 걸 취할 리가 없다. 허칠안이 밀서를 받은 뒤에 무림맹으로 달려올 수 있길 바라야지.’
그 순간, 조청양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그곳에 백의의 형체가 자리해 있었다.
‘술사? 사천감 사람, 적의가 없군…….’
조청양이 돌연 눈빛을 반짝이더니 아들을 돌아보았다.
“순아, 방으로 돌아가거라.”
동작을 멈춘 조순이 잠시 아버지를 의아하게 보았다.
“네.”
조순은 백의의 사람을 보지 못한 듯 바로 자리를 떴다.
이내 조청양이 공수하며 말했다.
“귀하께서는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백의 술사가 그를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손…….”
‘성이 손? 성만 얘기하고 이름은 말하지 않는다니. 사천감 술사는 역시 눈이 꼭대기에 달렸군…….’
반각(*半刻: 10분 이내)이 지났고, 조청양은 뒷말을 기다리지 못했다.
조청양이 바로 공수하며 말했다.
“손 선생님, 제가 이미 용기 일을 알았습니다. 감히 손 선생님께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또 한참을 기다린 끝에 술사의 답이 돌아왔다.
“현…… 기…….”
식견이 넓은 조청양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스쳤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나지막이 물었다.
“용기를 꺼내면 저희 아들 생명에 지장이 있습니까?”
“아니요.”
“허 은라와 함께 오셨습니까?”
“아니요.”
‘정말 냉담하고 거만한 술사군…….’
조청양이 이 눈앞에 있는 술사를 보고 대강 받은 느낌은 그가 매우 냉담하고 거만하며 말할 때 오직 한 단어만 말한다는 사실이었다.
“손 선생님, 용기의 일에 관해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리고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경성으로 가 허 은라를 뵙고 싶습니다.”
조청양이 말했다.
그 후로 덧붙이진 않았지만, 그는 속으로 반드시 허칠안이 현장에 있어야 이로움과 폐단을 분명히 밝힐 거라고 생각했다.
조청양은 낯선 이 술사를 믿지 않았다.
* * *
반 시진 후, 서재 안.
조청양은 종이 위에 거침없이 노니는 연호(*軟毫: 붓의 일종)의 필치를 보며 강렬한 만족감과 행복감이 솟구쳤다.
이윽고 손현기는 붓을 내려놓고 종이를 털어 조청양에게 건넸다.
조청양은 정신을 집중해 내용을 읽었다. 그런데 읽어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용기의 내력에 관한 간단한 설명이 종이 한쪽을 가득 채웠다. 조청양도 이제는 용기가 왜 자식들에게 빙의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원경제가 죽은 뒤 용맥의 령이 붕괴하여 구주 각지에 뿔뿔이 흩어졌다.
그 흩어진 령은 각기 다른 숙주에 붙었다.
손현기라고 하는 이 술사는 직접 용기를 뽑아낼 수 없고, 허칠안만이 할 수 있다는 의사를 확실하게 표했다.
조청양은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용기를 뽑아내는 자가 허칠안이라면, 훨씬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이어진 내용이 조청양의 표정을 완전히 굳게 만들었다.
지금 용기를 수집하고 있는 세력은 무신교, 천기궁, 불문으로 이 세력들이 중원을 넘보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현재 이미 창끝이 무림맹을 가리키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했다.
‘선조의 상태가 엉망이라 깊이 잠들어 깨어나지 못하는데 어떻게 적을 막는단 말인가…….’
조청양은 마음이 무거웠다.
“조 맹주께서는 적을 맞이할 준비를 하십시오.”
손현기는 이 말을 남긴 뒤, 일어나서 읍하였다. 그리곤 발밑에 빛나는 청광과 함께 사라졌다.
그는 허칠안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
* * *
“검주는 확실히 부유하군요. 이 성은 크지 않은데 청루가 이렇게 시끌벅적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끝도 없는 인파가 오가는 거리에, 말을 탄 묘재방이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의 좌측엔 3층 높이의 청루가 있었다.
그 2층에는 아름답게 차려입은 고운 여인들이 길가에 붙어서서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나리, 나리 놀러 오세요.”
“공자님, 소녀가 청루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오셔요.”
“공자님, 노비에게 공자님을 시중들 기회를 주셔요…….”
계속 이어지는 기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허칠안은 낮게 탄식했다.
여인들이 한겨울에도 저렇게 가벼운 옷차림으로 손님을 불러들이려 애쓰는 것만 보아도 그 실적이 얼마나 참담한지 예상할 수 있었다.
연이어 이영소가 애석한 목소리를 냈다.
“전부 가련한 이들입니다. 세상살이가 이렇게 어렵다니. 청루에 올만 한 사람들의 숫자가 줄었거나 더는 오지 않게 된 거군요. 청루가 은자를 벌지 못하니 당연히 청루의 낭자들을 착취하려는 거지요. 한겨울에 풍한에 걸리면 안 될 텐데. 은자를 써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돈이 없다면…….”
이영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명색이 정이 많은 사람으로서 여인이 고생하는 걸 차마 볼 수 없었다.
무거운 낯으로 잠시 생각하던 묘재방이 말했다.
“청루가 더 이상 영업하지 못하면 문을 닫고 영업을 쉬게 됩니까?”
이영소는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때 가면 이 낭자들을 아마 노비로 팔아버릴 거야. 심지어는 소나 말처럼 부릴지도.”
결국 묘재방은 상스러운 말을 한마디 내뱉었다.
“이 거지 같은 세상! 누구 하나 편하게 사는 사람이 없어! 에휴, 본 나리 주머니 사정도 딱히 좋지 않은데. 이 몸에 용기가 없어지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무장봉기를 일으켰을 텐데.”
‘뭐, 「여자를 구제할 돈이 없는 나는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이딴 장르의 소설 스타일인가…….’
허칠안이 속으로만 조용히 비아냥거렸다.
이내 이영소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봉기는 무슨 봉기? 누군가 한 말을 보고 나한테 하지 말라고.”
* * *
일행은 잠시 머물 객잔을 찾았다.
말에게 먹이를 먹이고 다 함께 식사를 마친 뒤엔, 묘재방이 우물쭈물하며 허칠안에게 돈을 빌리러 왔다.
그렇게 은자 10냥을 빌린 묘재방은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실적이 참담한 낭자들을 구제하러 떠났다.
이영소는 방으로 돌아와 토납하며 좌선했다.
그는 평소 눈이 매우 높은 사람이었다. 평범한 아름다움으론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도 못했고, 그런 사람의 눈에 청루 여인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물론, 한 분야에서 명성을 날리는 명기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허칠안은 이영소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의 오만한 안목도 영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저 미모 앞에선 사실 누구를 갖다 대도 누가 더 아까운지 쉽게 저울질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허칠안도 과거 경성에 있을 때 가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교방사에선 허 은라, 허신년, 허 숙부와 밤을 보내는 걸 일종의 영광으로 삼는다고.
‘허씨 집안 세 사내와 다 잤다고!’
이 말을 꺼내면 아주 체면이 선다고들 했다.
음, 뭐. 숙부는 그냥 덤이지만.
* * *
한편, 허칠안이 묘재방에게 돈을 빌려준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묘재방의 방문을 조용히 열고 문을 닫았다.
아주 고요한 환경 속에, 허칠안이 침상 밑을 뚫고 들어갔다.
칠절고의 부작용은 상당히 성가셨다. 허칠안은 매일 시간을 내어 고충의 욕구를 만족시켜야 했다. 매일 꾸준히 독극물을 흡수하고, 매일 침상 아래 일정 시간 있어야 했다.
또 매일 백희와 상호작용하고, 암말과도 상호작용했다. 매일 정기적으로 먹는 식사량도 엄청났다.
더불어 길에서 동사한 백골을 보면, 시고로 그들을 조종해 스스로 무덤을 파 자신을 묻게 할 수도 있었다.
다만, 허칠안은 단 하나 정고만 잠시 억제하며 그와 쌍수할 도려 이모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보름이 지났네. 국사의 분노도 아마 가라앉았겠지…….’
허칠안은 이모가 부디 도량이 넓은 사람이기를 기도했다. 사회적 매장이라는 건 처음에는 낯설어도 곧 익숙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계속된 정적 속, 허칠안은 이제 반쯤 잠든 상태가 됐다. 그는 마음이 너무 평온하고 기뻐 살짝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기도 했다. 머릿속엔 그저 밖은 고해(苦海)고 이 침상 밑은 극락정토(極樂淨土)란 생각만 들었다.
그때, 허칠안은 곁눈으로 침상 옆에 흰 신발 한 켤레가 늘어난 걸 보았다.
‘누구지?’
허칠안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순간적으로 그림자 속에 숨어들었다. 암고는 이제 많이 발전했다.
잠시 후, 허칠안은 탁자 밑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와 상황을 관찰했다. 조금 더 눈여겨보니 신발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손현기였다.
그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후……. 손 사형, 어째 미리 알리지 않으시고요?”
사실 허칠안도 손현기임을 짐작했었다. 하지만 허평봉이 그에게 남긴 트라우마가 너무 심했다. 거기다 감정으로 인해 허칠안의 잠재의식엔 백의 술사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
그래서 평소에는 그도 상태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편안하고 긴장이 풀린 상태에선 가슴 속 깊은 진실한 속마음이 튀어나오곤 했다.
손현기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책상 옆으로 가 물을 붓고 먹을 갈았다.
‘입을 열 시도를 하지 않는다고?’
허칠안은 엄숙한 낯빛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