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82
880화. 전쟁 준비 (2)
먹물을 다 간 뒤, 손현기는 붓을 들고 글을 썼다.
「무림맹에 용기 두 개가 있네. 구룡 중 하나야. 조청양의 자식들 몸에 기숙하고 있네.」
‘역시, 검주의 용기가 무림맹에 있었어.’
허칠안도 이 방면으로 추측한 적이 있어 전혀 뜻밖이라 생각되진 않았다. 그냥 추측이 검증됐음을 확인했을 뿐, 그다지 의아한 느낌은 아니었다.
「천기궁의 첩자가 이미 정보를 전했네.」
‘천기궁 첩자는 정말 중원에 쫙 깔려있구나. 야경꾼의 첩자는 아마 더 강하겠지. 하지만 위 공이 그들을 누구한테 계승했는지 몰라……. 손 사형의 정보망도 아주 대단하구나…….’
허칠안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희 지금 용기를 뽑아내러 무림맹에 가시지요. 천기궁 사람이 오기 전에요.”
하지만 손현기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썼다.
「용기를 가진 다음에는? 불문은 이미 천기궁과 동맹을 맺었네. 그들이 조만간 무림맹에 올 거야. 지금 옛 맹주 상태가 엉망이라 무림맹이 천기궁과 불문에 대항하긴 불가능하네. 거기다 무신교까지 있지. 그들이 용기를 빼앗겼다는 걸 알게 되면, 이 기회를 틈타 화풀이로 무림맹을 없애지 않을 거라 단정할 수는 없어. 감정 스승님께서 자네한테 진국검을 가져다주라고 하셨네.」
“응? 무림맹이 역시나 감정의 바둑돌?”
허칠안이 손현기를 물끄러미 보며 상대를 떠보았다.
손현기는 짤막한 답을 남겼다.
「나는 모르네.」
허칠안은 적극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가 생각하는 감정은 배후의 검은손이었다. 많은 일의 전개가 감정의 배후에서 아주 은밀하게 추진되고 있었다.
어떤 때에는 감정이 선동한 것임을 눈치챌 수도 없어서, 시시때때로 복기하며 일정 추측을 뒷받침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천명사의 무서움이자 천명사의 한계이기도 했다.
평소 감정은 이렇게 직접 선물하는 행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이게 뭘 의미하는가?
이번 무림맹과 관련된 풍파는 극도로 위험할 수 있고, 허칠안에겐 상대할만한 비장의 패가 없으니 감정이 부득이하게 직접 승부수를 준 것이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검증해보겠습니다.”
허칠안은 지서 파편과 국사가 선물한 부적을 꺼냈다. 그리고 의념을 그 안에 잠기도록 한 뒤, 아주 먼 거리에서 소환을 시도했다.
“국사, 저 허칠안입니다. 긴급한 일이 있어요.”
묵묵부답,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저요, 저! 당신의 귀염둥이 허칠안이라고요……. 말 좀 하세요……. 그래, 국사는 아마 혼자 정진하고 있겠지. 짧으면 3달, 길게는 반년이면 도겁할 거야. 지금은 마지막으로 속도를 내는 단계겠지.’
이내 부적을 거둔 허칠안은 머릿속으로 조력자를 한번 훑었다.
‘원장 조위는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대상이고, 지서를 통해 회경더러 말을 전해달라고 할 수도 있다. 구미천호는 막 관계를 맺었으니 직접 경호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큰 효과가 없어. 우선 되는지 안 되는지는 둘째 치고, 여우가 해외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도와줄 수 없는 게 분명하지.
천종의 두 양신은 행적이 묘연해. 지난번은 뜻밖의 기쁨이었지. 이 인연을 다시 만들 수는 없어. 무엇보다 일단 그들은 나를 벨 가능성이 더 클걸.’
총정리 끝에, 그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이 순간 맹우는 손현기와 조위였다.
‘무림맹 노인네의 상태가 어떤지는 말하기 어려워. 구색 연뿌리는 여물었지만, 그가 연뿌리를 갖는 건 불가능하지. 초고속으로 업그레이드한다고 해도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있어.
조위는 몇십 년간 청운산을 떠나지 않았어. 지난번 나 때문에 한번 전례를 깼지만 그건 생사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이번은 달라. 그래서 오길 원하는지, 원치 않는지 단정 짓기 어려워.
최악의 시나리오는 나한테 맹우가 손현기밖에 없다는 건데……. 하지만 마주한 건 전부 누구지? 금강 둘, 창룡칠숙, 납란천록……. 어쩐지, 감정이 손현기한테 진국검을 갖다주라고 했다고 했다. 근데 설령 이렇다고 해도 그렇게 안전하고 확실하진 않은 느낌인데.’
생각을 마친 허칠안이 손현기를 쳐다보았다.
“용기 둘 모두 무림맹에 있습니까? 왜 그렇게 됐을까요?”
손현기가 적었다.
「용기가 무림맹을 더 좋게 본 거지. 반란 가능성이 있다고 말이야.」
허칠안이 갑자기 눈을 가늘게 떴다.
“반란 가능성이 있다니! 그래도 무림맹을 구해야 합니다. 감정과 노인네 사이에 분명히 무슨 약조가 있겠지요. 아, 이렇다면 허평봉도 틀림없이 나 몰라라 하진 않을 겁니다. 그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제거할 수 있는 내재된 화는 전부 제거하려 들 겁니다.”
손현기가 적었다.
「자네 아주 똑똑하군. 진국검을 가져올 때도 그렇게 생각했네.」
‘아이 씨X, 내 백의 술사의 PTSD! 태산과 같은 부성애 트라우마가 또 도지려고 해…….’
속으로 짧게 욕을 뱉은 허칠안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렇지만 아주 재미있네요!”
말하자면 꼭 그런 느낌이었다. 눈앞에 바둑판 하나가 나타났는데 그 바둑판 맞은편에 있는 자가 허평봉인 것 같은…….
예전의 허칠안은 바둑돌로, 기수가 마음대로 바둑판에 배치하는 존재였다.
물론 지금의 허칠안도 여전히 바둑돌이지만, 예전과는 달랐다.
이 바둑돌은 이미 기수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어느 길을 걸을지 택할 수 있었다. 이제 그는 바둑판에 있어도 기수와 대련할 수 있었다.
‘그와 한 판 더 해야겠어. 음, 허평봉을 가볍게 보면 안 돼. 여러모로 생각해봐야지. 몇 글자 빠트리기도 하고…….’
* * *
견융산.
소혼수 용용은 빠른 말을 타고 종문 대오를 따랐다.
대오는 곧 산기슭 밑, 거대한 그 패방에 이르렀다.
무림맹 본부에 도착한 뒤엔, 아리따운 여인들로 구성된 이 대오도 엄숙한 공기를 벗고 분위기가 많이 풀렸다.
용용은 앞에 있는 루주를 한번 보고, 곁의 사부를 향해 목소리를 낮췄다.
“사부님, 이번 적기령(赤旗令)은 또 무슨 일 때문인가요?”
무림맹은 예속된 패거리의 소집을 세 단계로 나누었다. 밑에서부터 차례대로 청목령(靑木令), 흑목령(黑木令), 적기령이었다.
청목령은 보통 각 패거리에 달아난 죄인이나 악명 높은 해적을 지명 수배할 때 쓰였다.
다음 흑목령은 패거리와 패거리 간의 다툼과 연관돼 그 성질이 남달랐다.
끝으로 적기령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맹주가 공통으로 적을 막기 위해 각 패거리를 소집할 때만 사용되기 때문이었다. 통상적으로 말하자면 적기령이 곧 통솔권으로, 군사를 요청할 때 쓰였다.
지난번 적기령을 썼던 것이 바로 연화를 빼앗을 때였다.
아름다운 부인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어쨌거나 큰일이 난 게지.”
이내 그녀는 말채찍을 한 번 내리치더니 앞에 있는 소월노를 따라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루주, 근래 이재민이 계속 검주로 몰려들어 관아의 부담이 상당해요. 구제받지 못한 이재민은 떠돌이 도적 떼가 되어 검주 각지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맹주께서 우리를 소집한 게 이재민 일 처리를 상의하기 위함인가요?”
어느 강호 세력이라 해도 이런 자각은 하지 못할 터였다. 하지만 검주의 강호 패거리는 질서를 유지하는 전통을 보존하고 있었다.
소월노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그녀의 얼굴 반은 면사에 가려져 있지만, 드러난 얼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오똑한 코, 수려한 윤곽, 그리고 눈은 가을 호수처럼 영롱했고, 피부는 하얀 비단과 견주어도 차이가 없을 만큼 티 없이 맑았다.
곧이어 소월노의 입가로 부드럽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재민 일이 아니에요. 방금 군진을 지나칠 때, 진 밖의 수비력이 3할은 증가했고, 밖에 파견한 척후병 역시 늘었더군요. 이재민은 본부가 이렇게 반응하도록 하지 않을 거예요. 아마 주위에서 몰래 살피는 외적이겠지요.”
‘외적이라…….’
아름다운 부인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건, 이미 무림맹이 검주에 수백 년간 우뚝 솟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여러 해가 지나도 이 거대한 조직을 감히 도발하는 이가 없었고, 중원을 통틀어도 무림맹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오직 조정뿐이었다.
‘설마 새로운 군주가 제위에 오른 뒤 무림맹을 압박하여 위엄을 세우려는 건가? 하지만 왜? 무림맹은 그 젊은 천자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데. 위엄을 세우려고 해도 무램맹을 칠 수는 없어…….’
아름다운 부인은 다시 소월노를 쳐다보았다. 그 맑고 투명한 눈에는 조금의 혼란도 보이지 않았다. 부인도 비로소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부인은 줄곧 루주의 성장을 지켜본 사람이었다. 소월노는 어려서부터 지혜롭고 총기가 넘쳤고, 주관도 뚜렷했었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장난감 인형을 가지고 놀며 탕후루를 먹을 때, 소월노는 이미 자신과 종문의 미래를 생각하며 남다른 총명함을 드러냈었다.
다만 너무도 아름다운 그녀의 외모가 종종 그 총기를 깎아내리곤 했다.
부인은 그래도 그 사내들이 천박하다 탓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루주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그 얼굴 때문에 1년 내내 비단이나 면사로 얼굴을 가리는 게 일상이었다.
소월노는 그 어린 11살 때부터 너무도 아름다워서, 당시 무림맹의 부맹주가 한눈에 반해 소월노를 첩실 부인으로 맞으려 온갖 궁리를 다 했었다.
그때 부맹주는 이미 쉰이 다 넘은 나이였다.
결국 다행스럽게도 전임 맹주가 나서주었기에 만화루도 무사히 소월노를 지킬 수 있었다.
이내 소월노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문중의 젊은 제자들에게 준비하라고 하세요. 만약 무림맹이 정말 대적을 맞닥뜨린다면, 그들더러 종문으로 돌아가라 하시고요.”
“네!”
아름다운 부인은 소월노가 종문의 후손을 지키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젊은 제자는 전투력에 한계가 있어 만약 적이 지나치게 강대하면 남아서 방패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불씨를 간직하는 게 나았다.
이윽고 만화루 여인들이 견융산에 올랐다. 그들은 계단을 따라 성주부(城主府) 바깥 광장에 이르렀다.
이미 그곳에는 천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모여 있었다.
* * *
수천 장(丈) 높이 상공.
회현이 뱃머리에 우뚝 선 채 망망한 대지를 굽어보고 있었다.
지금 주변엔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지만, 회현이 받쳐 든 공기 벽에 가로막혀 3장(丈) 밖까지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원상 동생, 뭐가 기운인지 알고 있어?”
허원상도 공기 벽 안에 안전하게 있었다. 그렇게 아래를 보던 소녀가 시선을 돌려 사촌 오라버니를 쳐다보았다. 소녀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이걸 물어보려고 나오라고 한 거예요?”
공기 벽은 두 사람의 대화도 주변 3장(丈)으로 좁혀주었다.
희현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전과 다름없는 온화한 웃음을 보였다.
“그다지 안심되지 않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은 거야.”
허원상이 아름다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오라버니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아 잠시 헤아린 후에 말했다.
“세상 만물은 전부 운명을 지니고 있고, 그 운명은 각기 다릅니다. 인간, 짐승, 풀, 나무, 존귀, 비천, 이러한 요소가 운명의 다소(*多少: 많고 적음)를 결정하지요. 황조도 운명이 있습니다. 술사는 이를 기운이라 표현하고요.”
희현은 웃음을 거두고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렇게 한참을 있던 그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오라비가 묻고 싶은 건 기운과 운명이 같은 건지다.”
허원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질은 같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운명과 국운을 비교하자면 창해일속(*滄海一粟: 넓고 큰 바닷속의 좁쌀 한 알. 하찮고 보잘것없음을 비유)과 같지요.”
희현은 더는 말하지 않고 다시 먼 곳을 바라보며 웃었다.
“견융산에 도착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