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83
881화. 적이 오다
소월노가 주위를 쓱 훑어보았다. 처음엔 신권방, 묵각 등 한창 혈기 왕성한 패거리가 보였고, 세력이 좀 떨어지는 패거리들도 보였다.
그들의 수는 많으면 십여 명, 적은 인원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다들 역시 명성을 따라온 자들이었다.
광장에 모인 강호 호걸들은 하나같이 반짝이는 눈으로 만화루 여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중에 단연코 소월노를 훑는 시선이 가장 많았다.
검주 제일의 미인으로 소문난 소월노는 어디를 가든 그 유명세에 부끄럽지 않은 관심을 받았다.
순전히 그 미모만이라면 야심을 품고 모독하려는 사내들만 들끓었겠지만 소월노는 4품 무사였다. 개인의 전투력으로 말하자면, 자리에 있는 방주, 문주들 중에 감히 그녀를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할 사람이 없을 터였다.
이처럼 강력한 수련 경지에 겉모습까지도 수려하기 그지없으니, 소월노는 과연 검주 호걸들이 밤낮없이 그리고 바라는 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들은 이곳에서 뭐 하러 기다리십니까?”
면사포 아래, 여기저기 시선을 옮기던 소월노가 부드럽게 운을 뗐다.
무림맹 호걸들은 바로 이러쿵저러쿵 말 주머니를 열어젖혔다.
“조 맹주께서 뒷산에 갔습니다.”
“맹주께서 저택에 계시지 않아요. 간 지 이미 반 시진이 넘었습니다.”
“소 루주께서는 오는 길에 이상이 있으셨는지요?”
한편, 묵각 진영에선 류 공자의 사부가 제자를 빤히 보고 있었다. 사부의 시선 끝엔, 소월노를 멍하니 보고 있는 못난 제자가 있었다.
사부는 결국 부아가 치밀었다.
“너는 좌우간 용용 낭자를 많이 좀 보거라! 내 구실을 만들어 만화루에 혼담을 꺼내러 가 볼 테니.”
하루라도 스승이었다면 평생 아버지와 다름없다고, 사부는 아버지로서 당연히 제자의 혼인 대사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이 못난 제자는 소월노에게 푹 빠져버렸다.
이 두꺼비가 감히 바랄 수 있는 여인인지 아닌지 분간도 못 하는 것인가!
곧이어 류 공자가 작은 목소리를 냈다.
“사부님께서도 혼인하지 않으셨잖아요, 얼른 저희 사모님을 찾아주세요.”
류 공자 사부가 답했다.
“나는 검객이다. 검만 있으면 충분하지! 일편단심으로 검을 대해야 비로소 검도 성의를 다해 진심으로 너를 대할 것이다. 끝없이 긴 여정에 유일한 동반자는 오직 검뿐이다, 알겠느냐?”
그는 말하는 동시에 허리춤에 건 패검을 애석하게 문질렀다. 이 패검은 사천감이 허 은라 대신 그들에게 배상해준 검이었다.
“사부님, 그 검은 제 거예요.”
류 공자가 조그만 목소리로 항의했다.
그러자 중년 검객이 바로 눈을 부릅떴다.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내가 죽고 나면 이 검을 네게 돌려주겠다. 반드시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알겠느냐.”
“저도 사부님처럼 검을 제 부인같이 대할 겁니다.”
류 공자는 입술을 핥았다.
말을 마친 사제는 문득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자신들이 들어도 대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됐는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돌리며 침묵에 잠겼다.
이때, 맹주부 안에서 한 중년 사내가 걸어 나왔다. 의젓하면서도 유순한 모습에선 지식인의 분위기도 조금 엿보였다.
사내는 금실, 은실을 수놓은 검은 옷에 금관을 쓰고 있었다. 아주 정교하게 치장한 차림이었다.
그가 바로 무림맹 부맹주, 온승필(溫承弼)이었다.
현재 무림맹 내부 제도는 옛 맹주의 군제를 그대로 쓰고 있지만, 직위의 명칭에는 약간 조정이 있었다.
대장군은 ‘맹주’로, 부장군, 참모는 ‘부맹주’로 바꾸어 쓰고 있었다.
지난날 역대 무림맹의 부맹주를 되돌아보면 모두가 지식인 위주로, 무력이 아닌 지혜와 계략을 중시했었다.
그러니 온승필에게 지식인의 느낌이 풍기는 것도 뜻밖의 일은 아니었다.
“조 맹주께선 이미 돌아오셨습니다. 여러분, 저를 따라 안으로 드시지요.”
온승필이 저택 입구에서 읍하며 말했다.
이에 약속이나 한 듯 문주, 방주가 대열을 나와 저택으로 향했고, 제자들은 밖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 * *
소월노는 패거리 우두머리들과 맹주부로 들어가 의회 대청에 이르렀다.
거대한 의자엔 옅은 청색 긴 옷을 입은 조청양이 앉아 있었다.
네모난 얼굴형에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는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모두가 자리에 앉고 나서야 나직이 운을 뗐다.
“여러분, 무림맹에 곧 위기가 닥칠 것이오.”
대청 안의 모든 방주가 소리 없이 눈빛을 교환했다. 다들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던 건지 소스라치게 놀란 기색은 없었다.
다만 중소형 패거리 우두머리들은 감히 말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침묵을 지켰다.
사실 이들에겐 침묵이 최선이었다. 이들은 그저 부정문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이윽고 9대 예속 패거리 우두머리 중, 짙은 청색의 간편한 복장을 한 부정문이 목소리를 높였다.
“어느 세상 물정 모르는 자가 저희 무림맹을 건드리려 한답니까? 치라면 치라지요! 조정 군대라고 해도 저희는 하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말문이 트이자, 먼저 소월노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조정이 아닐까 봐 두렵지요.”
부정문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 순간, 그와 비스듬히 마주한 뚱뚱한 중년이 피식 웃더니,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주먹질할 줄밖에 모르는 당신 머리로 생각해보시지요. 한재가 몰아치니 조정은 각 측 정세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달래기 바쁩니다. 어떻게 이 결정적인 시기에 저희를 괴롭힐 수 있답니까.”
이 뚱뚱한 중년은 검주상회의 회장 교옹(喬翁)이었다.
견융산 산기슭 아래 군진의 지출은 대부분 이 검주상회에서 제공했다.
간단히 말해, 뇌주상회는 견융산의 돈주머니였다.
부정문은 즉시 조청양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조청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한번 사람들을 둘러보며 혼잣말을 했다.
“이 일은 말하자면 길지…….”
그는 바로 용기의 일을 자리에 있는 모든 이에게 상세하게 알렸다.
용맥의 령이 무너지면서 용기가 되어 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는 것.
용기는 바로 국운과 중원의 안위와 관련 있다는 것.
현재 불문 금강, 무신교 고수, 그리고 듣도 보도 못한 천기궁까지 전부 다 용기를 노리고 있다는 것, 그 모든 얘기가 장내에 퍼졌다.
잠시 대청에 침묵이 감돌았다. 조청양의 말을 다 들은 방주들은 용기의 개념을 소화하려 애썼다. 어안이 벙벙한 이 소식을 소화하는 데 열중했다.
특히 곧 마주할 적인 금강이란 두 글자가 이 자리에 있는 오만한 무사들의 기세를 단번에 다 꺾어버렸다.
처음으로 묵각 각주 양최설이 탄식하며 말했다.
“용기가 뿔뿔이 흩어져 천재와 인재가 끊이지 않고 무수한 백성이 동사했습니다. 거기다 이민족이 호시탐탐 중원을 물들이려 하는군요. 어쩌다 우리 대봉이 이런 지경에 이른 겁니까?”
본래 각주의 선조는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과거에 계속 낙방하자 홧김에 문(文)을 버리고 무(武)를 좇아 검주에 종파를 세운 것이었다.
그래서 이 종파는 글자를 익히고 독서하는 풍속을 남겨 평소 옷차림 역시 지식인 차림에 가까웠다. 실제로 유생이 주로 쥐고 다니는 쥘부채가 3척(尺)짜리 청봉으로 바뀐 것뿐, 그들과 큰 차이도 없었다.
그런 종파에 몸담은 자로서 양최설은 순간 서생의 의기가 깨어났다. 세상의 모든 불합리에 분개하고, 이를 증오하는 서생의 기개가 터져버린 것이다.
당 내 분위기가 적막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때, 조청양이 운을 뗐다.
그는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말했다.
“이 일은 조정의 존폐와 관련 있소이다. 하지만 만약 짊어진다면 우선은 무림맹의 존폐를 걱정해야 하지. 본좌는 선조의 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걸 참을 수 없지만, 이민족이 중원을 물들이는 건 더더욱 용인할 수 없소. 그래서 여러분이 함께 대적을 막아주시길 특별히 청하는 바이오.”
상인 교옹이 먼저 이해득실을 따지고 나왔다.
“맹주! 저는 이게 저희가 짊어져도 되는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라 짊어질 수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거칠고 충동적인 부정문이 벌컥 화를 냈다.
“짊어질 수 없을 게 뭐가 있습니까! 조정이 무능하다고 우리 중원 사람이 무능하다는 건 아닙니다. 서역의 중놈과 무신교 잡놈이 용기를 빼앗아 중원을 물들이려 집 앞까지 괴롭히러 왔습니다. 정말 저희 중원 인족에 사람이 없는 줄 아는 겁니까? 개 같은 금강! 그가 달려오면 이 몸이 맞서겠소이다!”
이내 천기문의 문주 한갈(韓蝎)이 차갑게 말했다.
“부정문은 전과 다름없이 머리가 없군요. 그래도 저는 그 의견에 찬성합니다. 불문 세력이면 또 어떠합니까. 금강이 중원에서 아무 거리낌도 없이 우리 대봉의 용기를 빼앗을 수 있다고요?”
묵각 각주 양최설은 탁자를 가볍게 몇 번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사천감 쪽은 어떤 태도인가요?”
조청양이 말했다.
“사천감이 어느 정도 도움을 줄 테지. 감정 이제자 손현기가 지금 검주에 있으니. 그는 3품 천기사네.”
그는 손현기와의 고통스러운 언어 교환 과정 중에, 상대의 배경과 품계를 알아냈다.
“옛 맹주는요?”
이번엔 중년 도사가 물었다. 그는 무림맹 9대 예속 세력 중, 백학관 관주(觀主)였다.
조청양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조께서는 홀로 정진 중이시오. 방금 뒷산에서 한참을 기다렸으나 선조를 깨우지 못했소이다.”
‘이건…….’
당 내 모든 이의 가슴이 철렁했다.
옛 맹주는 무림맹 전체의 저력이었다. 태평성대에 그는 주로 위협 수단으로 쓰였다.
그런데 강적이 노리고 있는 지금, 옛 맹주가 관문에서 나오지 못한다니.
무림맹은 가장 큰 비장의 패를 잃은 것과 다름없었다.
이때, 줄곧 침묵하던 소월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허 은라는요?”
순간 모두가 희망을 담은 눈빛으로 일제히 조청양을 쳐다보았다.
조청양은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긍정적인 답을 주었다.
‘후…….’
거의 모든 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 은라가 도우러 온다는 소리에 안절부절못했던 일부 방주, 문주들까지도 훨씬 안도감을 느꼈다.
옛 맹주가 홀로 정진하며 나오지 않는 상황에 고작 3품 술사 하나만으론 그들의 마음을 안심시킬 수 없었다.
무엇보다 백의 술사는 낯선 사람이었다. 실력은 어떠한지, 인품은 어떤지, 상황이 좋지 않으면 꽁무니 빠지게 달아나진 않을지 단 하나 확신이 없었다. 이 모든 건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허 은라라면, 모두가 한시름 덜 수 있었다.
곧이어 부정문의 웃음소리가 시원하게 터져나왔다.
“하하하! 그날 허 은라와 손잡고 내막을 모르는 그 젊은이를 죽였는데 지금은 또 강적에 함께 맞설 기회가 생겼으니 인생이 즐겁구먼!”
허칠안을 도우러 나섰던 또 다른 이, 양최설도 한껏 기대를 드러냈다.
“그때 허 은라는 심지어 5품도 아니었고, 조 맹주께서 허 은라가 화경을 깨우치도록 도우셨지요. 하지만 혼군을 베어 죽일 때 그는 이미 초범 무사였습니다. 지금 수련 경지를 정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군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