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84
882화. 산 공격 (1)
견융산 남쪽 산봉우리.
‘이성환두’로 기운이 감춰진 이영소가 거대한 소나무 위에서 산기슭 패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림맹 예속 문파들이 거의 다 도착했군. 군진도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고. 적을 맞이할 준비가 다 되었어.”
한동안 침음하던 성자가 말했다.
“하지만 난 무림맹의 이 직계 군대가 전혀 쓸모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묘재방이 그의 옆에서 함께 굽어보며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이영소가 말했다.
“용 누이에게 최상 법기가 하나 있는데 어풍주라고 하네. 내가 만약 그 희현이라면, 어풍주를 타고 와 바로 뒷산에 독거 수행하는 곳으로 가서 우두머리를 잡을 거야. 무림맹 노인네를 해결한다면 그들은 큰 성공을 거둔 거지.
그럼 군대도 그렇고 무림맹의 무사도 그렇고, 전부 마음대로 유린할 수 있는 새끼 양이 되는 것 아니겠나? 이게 가장 유리한 전술인데 그 대선배는 지금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보여.”
그는 말하는 동시에 멀지 않은 곳의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그에게 확인을 구하려는 것이었다.
얼마 전, 허칠안은 이들에게 아주 갑작스레 검주의 일을 알렸다. 큰 전쟁이 날 거라며 이영소와 묘재방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비록 현장은 한순간 많은 변화가 생긴다고 하지만, 빨라도 너무 빨랐다.
더욱이 묘재방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침상 위 낭자들과 헤어짐이 아쉬울 정도로 칼춤을 춰댔건만, 갑자기 이영소가 난입해 아무도 죽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전투가 끝났다는 것이었다.
그때 묘재방은 잠시 아무 말도 잇지 못하고 반쯤은 얼이 나가 있었다.
이영소의 눈빛을 느끼고도 허칠안은 계속 눈을 감은 채 아무것도 모르는 척 굴고 있었다.
그러다 한참 뒤, 허칠안이 갑자기 눈을 뜨고 먼 하늘을 보며 말했다.
“왔다!”
* * *
어풍주.
세 세력이 모두 뱃머리에 모여 있었다.
그래도 법기 주인인 동방완용이 정중앙에 있고, 불문 금강 둘은 좌측, 희현 대오와 창룡칠숙이 우측에 서 있었다.
이들의 아래쪽엔 수백 리에 걸쳐 우뚝 솟은 산맥이 있었다.
견융산, ‘대봉지리지’에 따르면, 검주에 산이 있고, 그 산에 한 짐승이 있다고 했다. 이름은 ‘견융’으로, 짐승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꼬리는 6개, 달을 삼킬 수 있는 짐승이라고 했다.
먼저 희현이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허칠안이 이미 견융에 있는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안전하고 확실히 하려면 저희가 먼저 탐색하지요. 기이한 짐승인 견융은 신마의 후예로 혈통이 희박하나 평범한 4품 등의 상대는 아닙니다. 누가 시도해보시겠습니까?”
무승 정연이 바로 앞으로 나와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는 금강 불패 신공이 있어 방어력이 동일 품계의 무사를 훨씬 뛰어넘었다.
사부 도난과 수라 금강 도범도 거절 의사를 표하지 않는 걸 보고 정연은 곧 손가락을 들어 미간을 두드렸다.
땅!
종을 치는 듯한 쟁쟁한 울림 사이로, 미간에서부터 반짝이던 금칠이 물 흐르듯 정연의 온몸을 뒤덮었다.
이윽고 정연은 몸을 훌쩍 날려 나는 듯 배에서 뛰어내렸다.
* * *
맹주부.
조청양은 방주, 문주를 이끌고 대당을 뛰쳐나왔다. 고개를 들자, 저 멀리 상공을 가르고 뒷산으로 떨어지는 금색 유광이 보였다.
다들 놀라면서도 분개했다. 적이 이처럼 빨리 와서 반응할 기회조차 주지 않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탓이었다.
조금 전까지 모두가 대당 안에서 상의 중이었건만, 바로 다음 순간 상대가 문 앞까지 쳐들어왔다.
“개자식! 감히 옛 맹주의 독거 수행을 방해하다니.”
부정문은 거칠고 급한 성미의 소유자였다.
천기문의 문주 한갈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동안 자세히 분별하다가 표정이 약간 변했다.
“공중에 비행 법기가 있습니다.”
조청양을 비롯한 고위층 인물들도 고개를 들어 눈여겨보았다.
과연 쪽빛 하늘에 응고된 검은 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시력이라도 가까스로 배 형태의 법기밖에 볼 수 없었다.
‘비행 법기라…….’
조청양은 마음이 무거워졌으나 당황하진 않았다.
그는 견융산과 주변 도로에 초소와 척후병을 세우고, 산 위에는 상노를 많이 설치해두었다.
또 군진의 기병은 진격하면 급습하고 후퇴하면 산으로 들어가 강적을 막아 낼 수 있게 전투태세를 갖췄다. 이 병사들에 무림맹 내부 고수까지 더해지면 굉장한 전투력이 발휘될 터였다.
“징을 울려라!”
조청양이 부맹주 온승필에게 명한 뒤, 사람들을 두루 둘러보았다.
“아홉 분은 저를 따라 뒷산으로 가 적을 막읍시다. 나머지는 제자를 소집해 경계하고, 기회를 틈타 다른 적이 소란 피우지 않게 방비하시오.”
말을 마친 그는 용마루에 뛰어올라 저택 밖의 광장 위, 술렁이기 시작한 각 패거리의 제자들을 보았다.
만약 적의 숫자가 많지 않고, 하찮은 개미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는 최강의 고수라면 저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저 방관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무림맹이 이기든 지든 이런 밑바닥 제자들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하지만 비주(飛舟) 위에 있는 자가 적의 선봉대고, 그 뒤로 적이 대규모로 기습한다면 광장 밖과 무림맹의 직계 자손들은 생사가 뒤흔들리는 큰 화를 입게 될 것이었다.
* * *
9대 예속 패거리 방주들은 조청양을 따라 뒷산으로 향했다.
그중 몸놀림이 가장 민첩한 자는 신행종의 종주였다.
신행종 종주는 마른 몸 덕분에 나뭇가지 끝을 밟으며 빠르게 나아갔다. 발끝이 나뭇가지 끝에 닿을 때마다 몸이 날카로운 화살처럼 발사돼 관성의 힘을 늦췄다. 그렇게 나뭇가지 끝을 가볍게 밟고 밟아 같은 속도로 비행하는 4품 무사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냈다.
* * *
드디어 뒷산에 도착했다.
모두의 귓가에 울부짖는 짐승의 소리가 끊임없이 맴돌고, 기기가 폭발하는 소리가 겹겹이 울렸다.
조청양 등은 몸을 치켜세워 하늘로 솟구쳐 올라 뒷산을 내려다보았다.
절벽 돌문 앞에 치열한 전투 현장이 보였다. 약 4장(丈) 정도의 몸길이에 개와 같은 형태의 괴물이 금색 사람의 형체와 격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괴물은 인간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온몸은 검은색 짧은 털로 뒤덮여 있었으며 두 눈은 마치 붉은 등롱처럼 새빨갰다.
달을 삼킬 수 있다던 짐승, 바로 견융이었다.
으르렁!
견융이 금색 형체를 향해 달려들어 그를 갈기갈기 찢으려 했다.
하지만 그 금색 형체도 대단히 민첩하여 달려들어 물고 때리는 견융을 잽싸게 피했다.
쿵! 쿵! 쿵…….
단단한 암석은 견융의 공격에 계속해서 갈라졌다. 금색 형체는 기회를 잡아 미끄러지듯 견융의 복부로 돌진해 순식간에 견융 뒤로 이르렀다.
철컥!
금색 형체가 땅을 딛고 금빛 유광이 되어 돌문을 부술 듯이 돌진했다.
땅!
가슴을 울리는 충격파가 퍼졌다. 금색 형체가 거꾸로 날아갔다. 그를 날려버린 건 견융 뒤에 달린 굵고 단단한 꼬리 6개였다.
거대한 나무들에 부딪힌 금빛 형체는 자세를 바로 하고, 너덜너덜해진 납의를 손 가는 대로 찢어냈다.
이윽고 황금으로 주조한 듯한 정연의 건강미 넘치는 몸이 드러났다.
견융은 적을 물리친 뒤, 고개 들어 포효하며 분노를 터뜨렸다. 그 음파는 견융 산맥 전체로 울려 퍼졌다.
툭……!
곧이어 조청양이 사람들을 이끌고 착지했다. 조청양은 바로 견융 곁으로 가 그 거대한 짐승을 달래면서 말했다.
“금강신공, 역시 불문 사람이군. 허, 4품 무승인가? 정주(正主)가 아직 오지 않았는데 여러분 중에 누가 그를 만나러 갈 것이오?”
신행종주가 일어나더니 장고 끝에 말했다.
“제 몸놀림으로 그를 억제할 수 있으니 제가 하겠습니…….”
그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 철의문주가 언짢은 기색으로 말을 가로챘다.
“그 사람 주위만 빙빙 돌 겁니까? 그쪽 신행종은 도망치는 기술은 뛰어나도 싸움은 서툴지 않습니까. 상대가 가만히 서서 때려보라고 해도 그 상대는 남아있는 머리도 없어서 머리카락 한 올 다치게 하지 못할 겁니다.”
‘승려는 본래 머리카락이 없는데…….’
신행종주는 속으로 한 마디 중얼거렸지만,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진 않았다. 철무쌍(*鐵無雙: 중국 무협 소설 인물)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우석(尤石), 조심하시게.”
조청양이 한마디 한 뒤 다시 고개를 들고 하늘에 뜬 어풍주를 경계했다.
아주 난감한 상황이었다. 물론 4품 무사라면 짧은 시간 동안 하늘을 다뤄 비행할 수 있지만, 고도와 속도에는 제한이 있었다.
아무래도 어풍주는 이미 4품 무사가 접촉할 수 있는 범위 제한을 넘어선 게 분명했다.
“맹주, 안심하십시오. 저는 일찍이 불문 금강신공이 대단한지 아니면 저희 철의문의 호체신공이 더 강한지 가르침을 받고 싶었습니다.”
작고 건장한 우석은 눈을 번뜩이며 머나먼 곳 밀림 속의 금색 형체를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
지금 정연은 부러진 나무줄기 옆에서 무표정하게 무림맹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모두 다 안중에도 없다는 듯 눈빛이 차갑고 거만했다.
‘미친 스님…….’
소월노 등은 일제히 눈살을 찌푸렸다.
쿵! 쿵! 쿵!
우석은 미친 듯 질주해 나아가다 도중에 허공으로 훌쩍 솟구쳤다.
언뜻 보면 마치 운석이 정연을 향해 내리치는 듯했다.
땅!
우석이 주먹으로 정연의 볼을 내리치자, 정연은 그대로 뒤로 밀렸다.
그런데 정연이 막 땅에 쓰러지려던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정연이 오뚝이처럼 튀어 오르더니 과장된 각도로 몸을 젖혀 재빠르게 우석을 끌어당겼다.
땅!
또 한 번의 굉음이 울려 퍼지고, 우석은 이마에 통증을 느꼈다. 삽시간에 밀려든 현기증과 함께 그는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박치기로 상대를 날려버린 정연은 그저 대충 이마를 문지르더니, 그다지 표준적이지 않은 중원 표준어로 담담하게 말했다.
“좀 부족하군요.”
양최설 등 4품 무사는 표정이 굳어졌다. 방금 이 찰나의 교전만으로도 우석의 심신 모두 이 불문 무승보다 한 수 아래라는 게 확연히 드러났다.
물론, 우석이 전력투구한 것이 아니기에 아직 남겨놓을 여지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저 무승이 전력을 다한 결과라고도 확신할 수 없었다.
‘선두에 선 무승일 뿐인데도 이런 수련 경지를 지니고 있다니…….’
조청양은 이내 머리 위를 바라보며 우렁차게 외쳤다.
“배 위의 친구여, 기왕 왔는데 머리만 숨기고 꼬리만 남길 필요 있는가!”
이 메아리치는 울림에 응답이라도 하듯, 어풍주에서 뭔가가 뛰어내렸다.
총 다섯 사람이었다.
각각 더 자세히 소개하자면, 첫째로 납의를 입은 젊은 승려는 온화한 표정에 이목구비가 짙어 뚜렷한 서역 인종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팔이 잘린 우람한 체구의 사내는 호랑이 눈에 네모난 얼굴로 위엄이 넘쳤고, 몸 주변에는 소용돌이 같은 미풍이 감돌고 있었다.
또 알록달록한 색의 긴 옷을 입은 중년은 남강 사람이었다. 머리칼은 약간 곱슬곱슬했고 푸른 눈에 피부는 갈색빛이었다.
이 세 사내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여인이었다.
아름다우면서 도도한 묘령의 여인은 굽은 칼을 든 채 나뭇가지 끝에 서서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고, 붉은색 긴 치마에 고운 용모의 여인도 있었다.
“류홍면?”
소월노의 어조가 살짝 변했다.
이내 류홍면이 느릿느릿 다가와 웃음을 터뜨렸다.
“사저, 무탈하시죠?”
소월노는 다시 담담하게 말했다.
“넌 이미 만화루를 배신했으니 본 루주, 사저란 말은 감당할 수 없구나.”
류홍면의 눈에 원망의 빛이 스치다, 입가에 냉소가 번졌다.
“만약 당신처럼 좋은 사저가 중간에서 방해하지만 않았다면, 사매인 제가 어찌 만화루를 배신했겠어요? 그해 그 빚을 돌려받을 때가 됐군요. 백호, 내가 소월노가 절세의 미인이라 말한 적 있지. 속이지 않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