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94
892화. 목숨을 걸다
허영을 소환해낸 뒤, ‘동방완용’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구름층에서 번개가 내리쳤다. 이내 그녀의 손바닥에 번개 창이 들렸다.
‘동방완용’이 허칠안을 굽어보며 천천히 운을 뗐다.
“허칠안, 위연이 먼저 내 육신을 베고 그 뒤에 내 외아들을 죽였다. 그가 정산성에서 죽은 건 인과의 순환이다. 하지만 내 원수는 아직 갚지 않았지. 너는 그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후배니 나는 오늘 너를 베어야겠다!”
그녀가 번개 창을 들고 자잘한 전호(電弧)를 무수히 동반해 급강하했다.
동시에 도난과 도범 금강 역시 금빛 잔영으로 변해 좌우로 협공하였다.
“이 몸이 조만간 정산성을 철저히 평정하고 무신을 베어 너희 주술사의 전승을 끊을 것이다……! 진압!”
허칠안이 크게 소리쳤다.
그 순간 부도보탑이 진동하더니 눈부신 금빛을 뿜어냈다. 크고 강하며 위엄 넘치는 기운은 그대로 강림해 동방완용의 몸에 덧씌워졌다. 그 바람에 기세등등하게 급강하하던 그녀가 가로막혔다.
땅! 땅! 땅!
이 틈에 허칠안은 검을 휘둘러 금강 둘과 육탄전을 벌였다.
화경 이상 무사의 괴이함으로 그는 가뿐히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다. 금강 둘의 공격을 막기엔 문제가 없었다.
거기에 불멸의 몸의 인내력과 생명력으로, 머리를 베이는 것만 피한다면 금강의 묵직한 주먹을 맞아도 순식간에 회복할 수 있었다. 항속 능력도 불문 금강보다 몇 배는 더 강해졌다.
반대로 금강 둘의 몸엔 아주 빠르게 빽빽한 검 자국이 새겨졌다. 꼭 일반인이 작은 칼에 피부를 베인 듯한 상처였지만, 피가 뚝뚝 흘렀다.
이는 진국검이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금강의 육신 방어는 같은 경지의 3품 무사보다 더 강했다.
그때, 동방완용 뒤에 있는 그 허영 미간의 세로 눈이 연신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별안간 검은 빛이 발사돼 부도보탑을 쳤다.
그 즉시 위엄 가득한 기운이 정지했다. 뒤이어 ‘동방완용’은 손을 뻗어 부도보탑에 주살술을 시전했다.
땅!
부도보탑 내부에 큰 진동이 일어나 종을 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주살술 역시 기령에 시전할 수 있었다.
주살술이 효과를 보자, 납란천록은 이 법보에게 죽기 살기로 덤비지 않고 벼락 창을 휘둘러 탑을 세차게 후려쳤다.
땅!
일순간 굉음과 함께 금빛이 뿔뿔이 흩어져 빛 찌꺼기가 되었다.
부도보탑은 휙 날아갔고 먼 곳에 있는 산봉우리에 부딪혀 무너졌다. 수백만 톤의 돌과 흙이 드높은 기세로 무너져 내렸다.
이것이 바로 초범 전투였다.
* * *
“산이 무너졌다……!”
남쪽 봉우리 사람들은 아예 넋을 잃어버렸다.
무너져내리는 산을 보며, 모두가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절감하고 있었다.
* * *
‘부도보탑은 견제만 할 수 있지, 2품과 맞서 싸울 수는 없구나…….’
허칠안은 가슴이 철렁했다. 물론 지금껏 납란천록이라는 우사를 얕본 적은 없지만, 상대방이 드러낸 전투력은 두려움을 안겼다.
그는 진정으로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강자였다.
납란천록은 2품 전봉의 우사였다.
비록 육신을 잃은 뒤엔 수련 경지가 약간 떨어졌지만, 주술사의 주력은 원신에서 비롯되기에 그리 많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허칠안은 그가 무사 혹은 낙옥형 같은 검수가 아니라 주술사인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무사나 검수는 살벌한 힘으로 유명한 데 반해, 주술사는 기이함과 통솔력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전장이야말로 그들의 진정한 무대라 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격투 기술은 약간 약한 축이었다.
지글지글…….
번개 창이 허칠안의 머리를 가격했다. 그의 몸은 번개에 재빠르게 ‘용화’ 돼 수십 장(丈)밖 나무 그림자에 떠올랐다.
그리고 허칠안이 막 땅에 떨어지자, 납란천록 머리 위의 허영이 돌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이마의 세로 눈에서 즉각 검은빛이 발사되었다.
납란천록이 허칠안의 착지점을 정확히 예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결국 검은빛은 정확히 허칠안에게 명중했다. 순식간에 허칠안의 가슴팍을 녹이고, 온몸을 굳게 만들어버렸다.
“네 그림자 도약은 괘술 앞에 이미 내게 통제되고 있다.”
납란천록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때, 도난 금강이 손바닥을 펼쳤다. 그곳에 피가 한 방울 있었다.
허칠안의 피였다.
방금 교전 중, 도난 금강이 힘들게 수집한 것이었다.
납란천록은 손끝을 가볍게 문질러 피를 묻힌 뒤 손바닥을 펴 허칠안을 겨누었다. 이번엔 피를 매개로 한 주살술로, 2품 우사가 시전한 주살술이었다.
2품 우사가 혈육을 매개로 3품 무사에게 주살술을 시전하면 일격필살은 둘째 치고 적어도 그 자리에서 상대에게 중상을 입힐 수 있었다.
가장 핵심은 매개로 삼을 피가 있다는 거였다. 여기에 우사의 지위를 더하면 ‘몸에 기운이 더해진’ 허칠안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10할의 명중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쿵쿵쿵…….
가벼운 지진이 일었다. 금강 둘이 당연히 이렇게 좋은 기회를 포기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동시에 미친 듯 질주해 한 사람은 주먹을 쥐고 검은빛에 먹힌 허칠안의 가슴을 쳤고, 한 사람은 칼처럼 손바닥을 합쳐 그의 목을 끊으려 했다.
초범경 강자 셋이 다시 한번 손을 잡고 살국(殺局)을 조성했다.
그리고 이번에 이영소는 적기에 나타나지 못했다.
슉!
종이가 소리소문없이 타올랐다.
“무효!”
허칠안 발밑에서 청광 한 줄기가 솟구쳤다. 그의 몸엔 호연정기가 더해졌다. 백사불침(*百邪不侵: 사악함이 침범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조위가 선물한 종이에는 3품 전봉 강자의 법력이 기록돼 있었다.
주살술이 효과를 내지 못해 허칠안의 ‘용화’된 몸이 먼 곳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그렇게 또 한 번 반드시 죽어야 했을 국면을 벗어났다.
3품 초기의 수련 경지로, 지금까지 우사 하나, 금강 둘을 상대한 것이다.
지켜보는 남쪽 봉우리의 관전자들도 그로 인해 식은땀이 솟구쳤다.
도난 금강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그 가슴 속에도 극심한 분노가 타올랐다.
무려 세 사람의 힘을 합쳤음에도 허칠안은 몇 번이고 계속해서 곤경을 벗어나고 있었다. 시간만 질질 끌며 도무지 손에 사로잡히질 않았다.
이토록 까다롭다니!
“아미타불!”
수라 금강은 양손을 합장해 불호를 외며 초조함과 분을 가라앉혔다.
‘5분 남았어. 유가 법술은 2분 지속할 수 있으니 그 시간 동안은 납란천록의 주살술을 걱정할 필요 없겠어. 적당하게 육탄전을 벌이면 돼…….’
허칠안은 황동검과 태평도를 들고 자발적으로 세 사람을 맞이했다.
전투에 서로 왕래란 없었다. 마음껏 싸우고 죽이는 게 본 성질이었다.
지금 이 자리엔 납란천록이라는 2품 우사의 존재가 있기에 그에게 붙잡혀 통제당한다면 허칠안은 그 자리에서 바로 즉사였다.
낭떠러지 위에서 줄타기하듯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상황, 이것이 바로 단 한 사람의 힘으로 초범 셋에 대항하는 대가였다.
하지만 현재 허칠안에겐 몸을 보호하는 유가의 호연정기가 생겼다. 그가 허영의 검은빛, 주살술을 차단할 수 있으니 현재 납란천록의 힘은 3품 무사와 비슷했다.
그러니 허칠안이 마주한 건 그저 3품 무사 셋에 지나지 않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무사는 저급하지 않던가. 그도 전혀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이로써 네 사람의 난투극이 벌어졌다.
허칠안은 태평도와 진국검의 칼끝을 빌려 홀로 적 셋을 상대했다.
비록 더할 나위 없이 처절하게 맞았지만, 적 셋도 출혈의 대가를 치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연도 무참하게 여파를 맞고 있었다. 이들의 전투로 인해 산사태가 나 벌써 주봉 절반이 훼손되었다.
허칠안이 시시때때로 하늘에 올라 전장을 공중으로 옮긴 탓이었다.
어느덧 빠르게 2분이 지나고, 허칠안 몸에서 감돌던 청광이 사라졌다.
이를 보자마자 납란천록이 과감하게 전장에서 물러나 손바닥에 수집한 허칠안의 피를 바르고 그에게 주살술을 시전했다.
슉!
종이가 타오르자 흩어진 청광이 다시 솟구쳐 주살술이 효력을 잃었다.
허칠안은 종이 뭉치를 꺼내 입에 물고선 씩, 웃음을 그렸다.
“계속하자고.”
금강 둘은 벌컥 화를 냈다.
“나를 너무 얕잡아보는군.”
뒤이어 납란천록이 담담하게 말했다.
“너는 우사가 비바람만 부린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라고?”
허칠안이 반문하였다. 그는 마침 대화로 시간을 끌길 바라고 있었다.
“그건 네가 우사의 본질을 모르는 것이지. 우사의 다음 품계는 대주술사로 대주술사는 천지의 법칙을 이용해 자신을 천지에 녹이고, 본인을 위해 천지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이 천지 안의 힘을 전부 뽑아내 비옥한 1,000리 땅을 황량하게 만들 수도 있지. 우사가 비를 내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천지의 힘을 일차적으로 지배한 것이다. 하……. 나는 육신을 잃어 본래 이 천지의 힘을 억지로 조달하여 쓸 생각이 없었다. 이로 인해 내가 부작용을 당할 테니.”
이윽고 납란천록은 양팔을 벌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바람이여, 오라!”
견융산 주변 100리, 폭풍이 휘몰아치며 모래가 날리고 돌이 굴러다녔다.
“비여, 오라!”
견융산 구역 내, 구름층이 하늘에 지붕을 씌우고 번개와 천둥이 내려치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이 무시무시한 폭풍우 속, 허칠안은 나무가 빠르게 시들고 비옥한 토양이 사막화되고 썩는 걸 보았다.
박탈당한 오행의 힘이 순수한 힘으로 바뀌어 납란천록의 몸으로 유입됐다. 그는 꼭 이 세계의 지배자 같았다.
당시 대주술사가 위연을 상대할 때도 같은 수법을 시전한 적이 있었다.
‘신선과 같은 수법이군…….’
* * *
조청양 등은 폭풍우 속에서 몸을 벌벌 떨었다.
털썩…….
누군가는 버티지 못하고 비바람 속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마치 참회하는 것 같기도, 용서를 구하는 것 같기도 했다.
품계가 비교적 낮은 무사는 하나같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는 그들이 원해서 꿇고 싶은 게 아니라 하늘의 위엄 앞에 더는 무릎을 펼 수가 없었다.
조청양 등의 4품 무사는 무릎은 꿇지 않았어도, 온몸이 계속해서 떨려왔다. 전부 다 간신히 사력을 다해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이기긴 불가능하다…….’
모두의 마음속에 같은 생각이 스쳤다.
허 은라의 불패 신화도 이런 힘 앞에선 어떠한 위신도 내세울 수 없으리라!
* * *
절망……! 허칠안의 마음속에 절망의 소용돌이가 솟구쳤다. 머리 위로 퍼붓는 폭우가 끊이지 않는 냉수처럼 그의 투지를 꺾었다. 거친 바람은 자꾸만 도망쳐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위기에 대한 무사의 예감도 고개를 들었다. 지금 허칠안의 모든 세포가 하나같이 얼른 도망치라며 미친 듯이 포효하고 있었다.
지금 허칠안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천지 그 자체를 상대하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는 다시 옥양관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성벽 위에 한가하게 앉아 있던 그때 그 밤과 또 한번 재회한 듯했다.
성 아래엔 8만 적군이, 뒤에는 정덕제가 기다리는…….
미래를 볼 수도, 출로를 볼 수도 없고 궁지에 몰린 자에게는 물러나려야 물러날 틈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 순간, 그는 옥쇄(*玉碎: 명예를 위해 깨끗이 죽음)를 깨달았다.
웅!
갑자기 진국검이 격렬하게 진동하였다.
태평도는 저절로 주인의 손에서 벗어나 옆에 조용히 떠 있었다.
이내 그가 소리를 낮춰 말했다.
“호연정기!”
슉……!
모든 종이가 타올라 호연정기가 되어 겹겹이 보호를 시작했다.
비바람이 한꺼번에 닥친 탓에 날은 한순간 어두워졌다.
그리고 허칠안은 허공에 서서 신령 같은 우사를 굽어보고 있었다.
“납란천록, 네가 감히 나와 목숨을 거는 것이냐!”
웅장한 포효 소리가 세찬 천둥처럼 천지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