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95
893화. 옥쇄 (1)
‘의가 바로 무도(武道)다!’
스스로 ‘옥쇄’를 깨달은 순간, 허칠안의 무도는 이미 정해졌다.
당대 최고로 포악한 ‘의’를 평하자면 위연의 ‘파진’이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세상에 어느 무도가 가장 순수하고 극단적인지 논하자면 허칠안의 옥쇄가 절대적인 우위를 점했다.
다른 무사가 깨달은 ‘의’는 전투력을 위한 것이고, 적을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허칠안의 ‘의’는 구차하게 삶을 꾀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옥새를 위해 함께 죽으러 달려가는 것, 하나뿐인 목숨을 거는 것이었다.
얼핏 보면, 허칠안은 위연이 전사한 후 정세에 밀려 극단적인 ‘의’를 깨달은 것이라 오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먼저 ‘천지일도참’으로 초석을 깔지 않았다면? 단칼에 너는 죽고 나는 산다는 극단적인 절학으로 기초를 다지지 않았다면? 과연 그가 당일 옥양관에서 궁지에 빠졌을 때 정말 ‘옥쇄’를 깨달을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건대 그가 애당초 ‘천지일도참’이란 극단적인 절학을 선택했을 때부터 이미 그의 무도의 길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돌아보면 허칠안이 ‘의’를 빠르게 깨닫고 4품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것 역시 그가 줄곧 이 ‘의’를 수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8품 연기경부터 ‘옥쇄’의 초기 형태를 수련하고 있었다.
허칠안이 목숨을 걸겠다고 외친 건, 그저 감정적인 겉치레가 아니었다.
정덕을 참살하고 강호에 들어온 이래, 그의 처지는 시종일관 살얼음을 걷는 것 같았다. 허평봉의 계략을 대비하면서도 불문의 추격을 방비해야 했다.
이런 역경 속에 몸부림치며 그는 ‘옥쇄’에 대한 깨달음이 점점 더 깊어졌다. 그리고 이 견융산 전투에 이르러 초범경 강자 셋을 상대하게 되면서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야 마침내 옥쇄가 돌파한 것이었다.
* * *
‘목숨을 건다고?!’
포효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견융산 아래, 군진 안에 있는 병사와 기병조차 또렷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견융산에서 발생한 전투는 움직임이 너무 커서 군진 쪽도 똑똑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다들 무림맹이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닥뜨렸다는 걸 통감하고 있었다.
허칠안과 초범경 강자 셋의 전투는 산부터 하늘까지 드넓게 펼쳐져 군진 쪽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납란천록은 오늘, 폭풍우 수법을 소환했다.
“목숨을 건다고? 허 은라가 목숨을 걸 정도로 압박당한 건가…….”
폭우 속, 무사 한 명이 얼굴을 문지르고 입술을 바들바들 떨었다.
“모두 허 은라가 심계가 매우 깊다고 말하지. 전에 들어만 봤을 뿐, 본 적은 없었는데 오늘에야 소문이 허구가 아님을 알았어. 그는 우리를 위해 출전하여 생사도 돌보지 않기로 한 걸세.”
열정이 넘치는 하층 병사 한 명이 패도를 꽉 쥐었다. 그는 전투를 돕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한스러운 듯했다.
* * *
“허, 허 은라가 궁지에 몰렸어…….”
한 만화루 여인이 얼굴을 감싼 채 눈물을 머금었다.
사람들 모두 분하고 슬픈 얼굴로 걱정에 휩싸여 있었다. 저토록 강한 적, 신령과도 같은 힘을 마주한 허 은라는 최후의 승부를 걸며 상대와 필사적으로 싸우려 하고 있었다.
그의 외침은 궁지에 몰린 자가 내지른 비명에 가까웠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용용은 주먹만 꽉 움켜쥐었다. 가슴은 이미 저 아래로 추락해 다시는 힘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 류 공자는 사부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부는 검을 쥔 손을 약간 떨고 있었다.
사제 간 쌓아온 세월만으로도 류 공자는 사부의 뜻을 충분히 이해했다.
‘무림맹을 위해 이 정도로까지 필사적일 필요가 있는지, 굳이 견융산을 꼭 사수해야만 하는 거냐고 생각하고 있겠지…….’
이윽고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조청양이 고개를 돌렸다가, 중년 검객을 향해 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선조를 위함이네. 선조께서 안에서 홀로 정진하고 계시네.”
사람들의 곤혹스러운 눈빛 속에, 조청양이 계속해서 설명을 이었다.
“경성 그 전투 때 선조께서 그를 도왔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는 무림맹을 지키기 위해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야.”
‘선조께서도 경성 그 전투에 나섰다고? 허 은라가 오늘 무림맹을 위해 목숨도 불사하는 이유가 그날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이라니…….’
사람들은 침묵에 빠졌다.
그 순간, 소월노가 앞으로 몇 걸음 나와 깊은 한숨과 함께 운을 뗐다.
“소년의 의협심이 오도웅(五都雄)과 만났네. 간담이 서늘해지고 털이 곧추서네. 서서 얘기 나누며 생사를 같이하네. 천금과도 같은 약조 꼭 지키세.”
이내 그녀는 폭우 속에 서 있는 젊은이를 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천금과도 같은 약조, 꼭 지키십시오.”
모두가 저 한편에 잠들어 있던 기억을 깨웠다. 이는 허 은라의 걸작 중 하나로 운주에서 홀로 반란군 2만을 막을 때 지었다고 전해졌다. 후에는 경성에서 널리 불리며 이야기꾼에 의해 중원으로 널리 퍼져갔었다.
‘허 은라, 천금과도 같은 약조 꼭 지키십시오…….’
* * *
어풍주.
허원괴는 폭우에 젖은 채 복잡한 눈으로 아래쪽을 굽어보고 있었다.
“목숨을 걸겠다, 라……. 그가 드디어 궁지에 몰렸군.”
허원상은 눈살을 찌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희현은 아예 뱃전 옆으로 옮겨가 아래를 살짝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금 더 명확하게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납란 우사가 이 천지의 힘을 동원하였다. 위력이 1품에 도달했는지 아닌지는 감히 말할 수 없지만, 확실한 건 2품 전봉 차원이야.”
곧이어 희현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이건 허칠안보다 훨씬 높은 경지야. 만약 그가 같은 경지의 조력자나 비장의 패가 없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죽겠지.”
* * *
“목숨을 건다고?”
‘동방완용’의 눈동자에 다섯 가지 빛깔이 돌았다. 이는 몸에 오행의 힘이 충만하다는 징조였다.
그리고 그녀는 차분한 아니, 그보단 하찮다는 어조로 반문을 이었다.
“일개 3품 무사도 나와 목숨을 걸 자격이 있나?”
그 사이, 그녀는 오른손을 높이 치켜들고 손바닥을 하늘에 겨누었다.
쾅!!!
연신 세찬 천둥이 내려치며 그녀의 손바닥에 천천히 긴 창을 만들었다.
긴 창은 순수한 천둥과 번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활활 타오르는 청백색 표면에서는 전기로 형성된 뱀이 꿈틀대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칙칙~
‘동방완용’이 무형의 힘을 흡수해 뇌전 창에 모으자 활활 타오르는 청백색에서 갑자기 다섯 가지 빛깔이 감돌았다.
그녀조차 그 힘을 통제할 수 없는 듯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이 번개 창을 가볍게 내던지기만 해도 너는 의심할 여지 없이 죽을 것이다. 그런데도 목숨을 건다고? 허씨, 네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가?”
아주 비아냥거리는 어조였지만, ‘동방완용’의 표정에선 비웃음이란 건 찾아볼 수도 없었다. 마치 올바른 진리를 말하고 있는 듯 너무도 차분했다.
도난, 수라 금강은 묵묵히 물러나 먼 곳에서 양손을 합장했다.
오행이 회전하는 이 번개 창은 무엇과 비교할 수도 없는 강력한 위협이었다. 자부심 넘치는 금강의 신체와 정신으로도 감히 교만을 떨 수 없었다.
납란천록이 쥔 저 번개 창은 이쪽 천지와 뇌전의 힘을 응집하여 그 어떠한 3품 무사라도 단번에 죽일 수 있었다.
‘위험하다, 위험하다, 위험해…….’
이 순간, 허칠안도 몸에서 미친 듯이 울리는 경고를 들었다. 생존 본능이 어서 도망치라며 절규에 가깝게 소리치고 있었다.
허칠안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저 번개 창이 응집한 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 *
“허칠안, 이번에 죽지 않는다면 반드시 천하에 이름을 떨칠 것이다. 양 형이 또 가슴을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부러워하고 너에게 빙의하지 못하는 걸 한스러울 정도로 질투하겠지…….”
이영소는 지금 비검을 밟고, 아주 먼 곳에서 구경 중이었다.
본래 그를 추격해서 죽이려던 백호, 정심 등도 현재는 이미 손을 떼고 먼 곳의 전투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젠 승부를 결정짓는 순간이 왔음을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 * *
남쪽 봉우리 꼭대기의 조청양 무리도 창백한 얼굴로 숨을 죽인 채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전부 다 하나같이 조각상으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
* * *
“위연…….”
납란천록이 낮게 중얼거리다 한발 앞으로 나가 벼락 창을 힘껏 던졌다.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선 그 청의와 폭우 속 그 젊은이가 점점 융합되고 있었다.
납란천록은 무림맹의 존재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순전히 용기를 위해 온 것도 아니었다.
그가 잠룡성, 불문과의 협력을 택한 건, 조만간 허칠안과 마주치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납란천록은 무림맹도, 노인네도, 허칠안도 안중에 없었다.
그가 지금 이 창으로 찔러 꿰뚫은 건 대청의와의 갈등과 원한, 20년이나 쌓인 마음의 응어리였다.
우르르, 쾅! 쾅……!
번개 창이 무시무시한 충격파 사이를 꿰뚫었다.
그건 꼭 비의 장막을 걷고 나온 눈부신 유광 같아서, 참 묘하게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있는 모두의 눈동자에도 알록달록 화려한 빛이 새겨지고 있었다.
허칠안은 모든 감정을 가라앉히고 모든 기기를 무너뜨린 후, 본인의 몸속 힘을 삼켰다.
유광을 마주한 그는 냉정하게 진국검을 들고, ‘천지일도참’을 시전하였다.
황동검은 반짝반짝 빛나는 광채를 뿜어냈다.
허칠안이 검을 휘두르자 활활 타오르며 용솟음치는 광채가 걷혔다. 검이 금색의 가느다란 선으로 굳어져 활모양을 띠었다.
활은 비의 장막을 스치고 허공을 지나 다섯 가지 빛깔의 유광을 베었다.
허칠안의 모든 힘이 응집된 이 검광은 곧 실처럼 끊겨 뿔뿔이 흩어졌다. 그런 후에야 폭발음이 들렸다.
쿵!!!
모두가 폭발음을 들었을 때 번개 창은 이미 파죽지세로 허칠안을 찌르려 하고 있었다. 천지일도참은 그저 번개 창의 힘만 약화시켰을 뿐, 그 걸음까지 막지는 못했다.
폭우는 굳어진 듯하고, 시간은 아예 흐름을 멈춘 듯했다.
그 많은 시선이 하나같이 곧 역경에 빠질 허칠안에게 쏠려있었다.
그를 지켜보는 얼굴에서는 슬픔, 낙담, 미친 듯한 기쁨, 걱정의 기색이 ‘더디게’ 떠올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번개 창의 속도가 그들 표정보다 더 빨랐기 때문이었다.
슉!
슉!
슉!
호연정기가 한 층씩 흩어졌다.
“부도보탑…….”
허칠안은 양팔을 벌려 번개 창을 맞이했다.
치직……!
번개 창이 허칠안에게 적중하는 순간, 창은 평범한 무기처럼 관통하지 않고 바로 허칠안의 몸속에 ‘녹아’들었다.
다음 순간, 그의 몸 표면에 눈부신 불꽃이 튀었다. 그의 모든 모공에서도 눈부신 오행의 힘이 뿜어져 나왔다.
번개 창의 힘이 그의 체내에서 폭발해 그의 생기를 손쉽게 섬멸하고 있었다. 무려 3품 무사의 그 왕성한 생기를 실시간으로 파괴하고 있었다.
신체를 관통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살상력이었다.
점차 허칠안의 눈에 빛이 꺼져갔다.
곧이어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진 눈동자와 함께, 까맣게 탄 그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강인한 무사가 꽃잎처럼 힘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 * *
“허 은라!”
남쪽 봉우리 위에선, 갑자기 처량한 비명이 폭발했다. 누가 울부짖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 * *
어풍주 위.
허원상은 몸을 휘청거렸다. 뺨에는 어느새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녀의 망기술이 저, 저 사내의 숨결이 꺼졌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를 기뻐해야 하는 걸까, 슬퍼해야 하는 걸까.
그녀 스스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죽었다고?”
희현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하늘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깜빡임도 잊은 눈 속에, 까맣게 탄 형체가 비의 장막을 뚫고 추락하고 있었다.
* * *
이영소는 굳은 낯으로 검을 몰고 나왔다. 이영소는 즉시 허칠안에게 날아가 그가 땅으로 추락하기 전에 그를 붙잡아주고 싶었다.
다른 쪽 밀림 속, 묘재방 또한 숲을 미친 듯이 내달리고 있었다. 추락하는 허칠안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저속한 강호 협객의 얼굴은 분노와 슬픔에 뒤범벅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