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897
895화. 관문 돌파
무림맹의 정세는 최저로 추락할 때 갑자기 전환점이 생겼고, 그 후엔 하늘가로 돌파해 계속 상승일로를 달리고 있었다.
너무도 급격한 변화에 지켜보는 이들도 계속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서야 이 남쪽 봉우리에도 비명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안엔 기쁨에 겨워 흐느끼는 여인의 소리도 뒤섞여 흘렀다.
류 공자는 깊이 숨을 들이쉰 뒤 사방을 둘러보았다. 대부분 표정에 공포와 슬픔이 남아 있지만, 다들 환호하거나 무의미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바로 전에는 모두가 허 은라의 죽음을 예상했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전세가 역전됐다. 신령 같은 그 여인은 갑자기 중상을 입고 일어나지 못했고 허 은라는 이 순간 공중에 휘감겨 있었다.
그의 머리 위, 불탑이 금빛을 뿌려 그를 보호하는 중이었다.
“허 은라가 이기다니.”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너무 강해. 역시 우리 중원 젊은 세대에서 가장 걸출한 천재야.”
“그가 방금 부린 게 무슨 수법인가? 왜 그 우사가 갑자기 중상을 입었지?”
감정을 다 털어놓은 뒤,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의논을 시작했다.
‘뜻밖이다. 그가 2품 우사와 필사적으로 싸워 이겼다니…….’
류 공자는 이미 조 맹주 등을 통해 그 여인의 신분을 알게 되었다.
무신교의 2품 우사! 그에게 2품은 거의 신선 같은 존재였다.
그때, 류 공자는 용용의 비명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루주 말씀이 맞았어! 허 은라는 지금껏 패한 적이 없어, 패한 적이……!”
용용은 사부의 손을 잡고 연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 얼굴에도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류 공자는 시선을 옮겨 그 신선처럼 완벽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만화루 무인들을 등진 채 벼랑에 서 있었는데 내내 허 은라에게서 눈을 떼질 못하고 있었다.
이내 류 공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불문 금강 둘이 더 있지 않은가? 허 은라는 더 이상 싸울 수 없을 것 같은데…….”
갑자기 이 말이 세찬 비가 되어 모두의 기쁨과 흥분을 꺼버렸다.
순식간에 적막이 찾아왔다. 모든 눈이 전부 그 하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 * *
“빈승 이해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그건 쓰지 마십시오.”
수라 금강이 도난을 보며, 조급해하지 말라는 뜻을 전했다.
도난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나수 보살은 이들에게 정혈 한 방울을 하사한 적이 있었다. 금강법상의 힘을 머금은 그 정혈은 마지막 보루로 쓰일 것이었다.
소위 정혈은 일반적인 피가 아니었다. 금강의 힘을 혈액 속에 연화한 것으로, 허칠안이 조청양에게 준 것 역시 비슷한 정혈이었다.
또 금강법상의 힘은 지나치게 포악해서 3품 금강이라고 해도 아주 잘 부릴 수는 없었다. 경솔하게 사용하면 금강법상의 힘에 육신이 터지거나 근절하기 어려운 내부 손상이 남을지도 몰랐다.
보살 정혈을 사용하지 않고 불자와 무림맹을 제압할 수 있다면 더 좋았다. 정혈은 그들이 직접 쓰면서 천천히 소화해내는 게, 그 속의 금강법상을 깨달을 수 있는 길이었다.
가나수 보살 역시 한번 준 정혈을 다시 돌려달라고 할 리도 없었다.
“우사, 마음 놓고 상처를 치료하십시오. 저자는 빈승에게 맡기시고요.”
수라 금강은 이내 허칠안을 향해 걸어갔다.
* * *
벼랑 끝으로 간 수라 금강은 마치 평지를 밟듯 공중에 발을 들여놓았다.
“허칠안, 불문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다. 너는 몇 번이고 불문과 적이 되었지. 낙옥형과 손을 잡고 도정 나한을 포로로 잡았고. 빈승이 호교 금강인 이상, 불문을 위해 죽는 것이 마땅하다.”
그는 느리게 걷는 것 같지만 실제론 힘을 비축한 채 출발을 기다리며 허칠안을 죽일 듯이 노리고 있었다.
그를 죽이든, 귀의시키든 불문의 목표 역시 허칠안이었다.
잠룡성 사람들이 일념으로 무림맹을 없애려는 반면, 납란천록과 금강 둘 모두 마음속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었다.
허칠안, 용기, 무림맹.
허칠안이 오지 않으면 그들은 용기를 거두고 무림맹을 멸할 것이다.
일단 허칠안이 무림맹을 지원하면 그는 양쪽의 최대 목표가 될 터였다.
지금 이 순간, 허칠안은 상처가 이미 일차로 안정되었다. 검게 타버린 피부 아래에선 야들야들한 근육과 피부가 새로 자라나고 몸속의 생기도 천천히 회복되고 있었다.
이내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살기가 짙어지는 수라 금강을 차분하게 바라보았다. 곧 허칠안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이미 일각(一刻)이 지났다.”
‘뭐라고?’
수라 금강은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눈살을 찌푸렸다.
쿵!
갑자기 굴러떨어진 돌에 돌문이 아무 조짐도 없이 터지더니 수많은 돌덩이가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돌문 안에선 스산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눈부신 도광이 스쳐 나왔다. 빛은 수라 금강을 향하고 있었다.
‘무림맹 노인네?’
수라 금강은 위기 경보를 이용하여 기세 왕성한 도광을 날렵하게 피했다.
도광은 곧 공중에 떨어진 뒤 빠르게 허공으로 들어갔다.
수라 금강은 또 별안간 몸을 옆으로 돌렸고, 다음 순간 머리 위 허공에서 도광이 한 줄기 나와 그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 뒤 빛은 또다시 허공으로 들어갔다.
적을 명중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수라 금강은 짙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좌측에선 위기가 감지됐지만 그는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찬란한 금빛을 뿜어내는 주먹을 세차게 내리쳤다.
다음 순간, 좌측에서 습격해온 그 도광과 주먹이 부딪쳤다.
묵직한 천둥 같은 폭발음 사이로 수라 금강이 데굴데굴 구르며 거꾸로 날아갔다. 그가 경악해 고개를 숙인 순간, 뭉개진 오른 주먹이 보였다.
* * *
저 도의가 금강의 몸을 망가뜨렸다고?!
일순간 거의 모든 이가 동굴을 쳐다보았다.
그 어두컴컴한 석굴 안에선 한 인영이 걸어 나왔다.
가장 눈을 끄는 건 백발이었다. 흡사 담요 같은 백발이 몸 뒤로 떨어져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거기다 양 눈썹은 뺨 두 쪽에 드리워져 있고, 수염도 가슴까지 늘어져 있었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 없는 맨몸이었다. 1년 내내 햇빛을 보지 않은 까닭에 몸은 말 그대로 백옥 같았고, 우람한 체구에 다부진 근육이 잡혀 있었다.
외모로 보면 쉰 정도로 보였다. 얼굴에 주름이 좀 있긴 한데,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목구비는 조각처럼 빼어나서 젊은 시절 아주 영민하고 용맹스러운 사내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선조?!”
조청양이 중얼거렸다.
뒤에 있던 무림맹 무사들 역시 망연한 얼굴에 기쁘고 놀란 빛이 가득했지만, 동시에 걱정스러운 기색도 있었다.
“저 사람이 바로 우리 무림맹의 옛 선조라고?”
“맞네. 바로 옛 선조야. 초상화와 좀 비슷하군.”
다들 잠시 정신이 아득했으나 수백 년 동안 자신을 억제한 저 노인을 조금씩 알아보았다. 그는 선조당에 걸린 초상과 꼭 들어맞는 외모였다.
“옛 선조께서 왜 이 시기에 관문을 부순 거지? 상, 상태가 아주 엉망이라고 하지 않았나?”
순간 말을 하던 부정문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허 은라가 어려움에 처한 걸 보고 억지로 관문을 부순 건 아니겠지?”
그는 더 이상은 말을 잇지 않았다.
사람들의 안색도 따라서 크게 변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옛 선조가 무리하게 관문을 부순 대가는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전투 후에 하늘을 떠받치는 무림맹의 기둥이 무너진다면 이는 무림맹이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이었다.
“이, 이건…….”
누군가는 떨면서 말도 제대로 맺지 못했다.
여기서 구색 연뿌리에 대한 일은 오직 맹주 조청양 한 사람만 알고 있었다. 이에 그가 막 설명하려는데, 갑자기 허칠안이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허칠안이 시원하게 웃으며 외쳤다.
“선배님! 드디어 나오셨군요. 계속해서 관문을 부수지 않으셨다면 저는 바로 돌아서 갔을 겁니다!”
아니, 부도보탑에 숨어 들어갔을 것이었다.
노인도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내가 관문을 부수도록 도와준 허 은라의 구색 연뿌리에 감사하네! 이 몸은 이미 2품으로 승직했다네. 고생 끝이 낙이 온 게지!”
노인의 목소리는 쾌청하고 힘이 넘쳤다.
* * *
두 사람의 대화가 천지간에 메아리치며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수라 금강은 제일 먼저 물러나 도난 금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정신을 집중해 적을 맞이했다.
동시에 무사의 도의가 어찌하여 금강 신체와 정신을 부술 수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이는 2품 무사 합도경의 도의기 때문이었다.
합도는 도(道) 가운데에서도 가장 으뜸,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납란천록도 즉각 좌선하며 상처 치료하던 걸 멈추고 과감하게 물러났다. 2품 무사의 눈에 띄지 않게 아예 전장에서 벗어나 버렸다.
* * *
‘무림맹의 노인네가 승직했다고?’
먼 산에서 류홍면 등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던 중, 류홍면이 먼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일단 어풍주로 돌아가시지요. 그러면 언제든 물러날 수 있습니다.”
결환단향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풍주로 돌아가면 저희는 표적이 됩니다.”
이내 정심도 고개를 살짝 가로젓더니 양손을 합장했다.
“여러분, 괜찮습니다. 금강 둘에게 적을 막을 후수가 있습니다.”
류홍면 등이 하나둘 고개를 돌렸다.
모든 준비를 마친 정심은 침착한 표정이었다.
* * *
‘옛 선조가 2품으로 승직했다고?! 허 은라가 선물한 구색 연뿌리 덕에?’
엄청난 행복감이 무림맹 사람들을 거의 까무러치게 만들었다.
2품 무사가 어떤 개념이던가! 이 넓은 구주에 2품이 몇이나 있던가?
인종 도사 낙옥형도 고작 2품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2품 무사를 보유한 무림맹은 초특급 파벌이 될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허 은라가 가져다준 공이었다.
“옛 선조께서 2품으로 승직하셨다니. 하하, 하하하……!”
“허 은라는 정말 우리 무림맹의 구세주야!”
“애당초 연밥을 빼앗을 때 조 맹주께서 그와 옥신각신하지 않았지. 정말 영명하셔. 영명하고 위풍당당해!”
“맞네. 조 맹주께서는 아주 영명하고 위풍당당하시지!”
부정문, 양최설 등의 무사들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기뻐했다. 손만 뻗어도 무림맹이 가장 눈부신 절정에 오를 그날이 바로 잡힐 것만 같았다.
주변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허 은라를 향한 칭찬에, 류 공자는 저도 모르게 소월노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가엔 웃음기가 고여 있었다. 그 기쁨이 옛 선조가 관문을 부쉈기 때문인지, 허 은라가 위기에서 벗어났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소월노도 허 은라를 사모하는 건가……. 만화루 여인들은 걸출한 청년을 좋아하니 허 은라처럼 타고난 기재에게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없겠지. 천하에 허 은라와 어울릴 수 있는 사람도 소 주루같이 뛰어난 사람뿐일 거고.’
순간 류 공자는 마음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 * *
어풍주 위.
희현은 천천히 시선을 거두고 개탄하며 말했다.
“이해했다. 그는 줄곧 시간을 끌고 있었던 거야. 노인네가 2품으로 승직하길 기다린 거지. 에휴, 납란천록과 불문 금강이 우리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면 곧장 노인네가 홀로 정진하는 곳을 때려 부쉈을 텐데. 그럼 이번 싸움은 우리가 이기는 것인데.”
이내 허원상이 담담히 입을 뗐다. 지금 그녀의 얼굴엔 슬픈 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아까 눈물을 흘린 건 마치 다른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그들 눈에 무림맹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노인네가 살든 죽든 이 역시 중요하지 않지요. 스스로 수백 년을 봉인한 초범 무사가 뭐 대단하다고요.
아버지의 지혜와 계략으로 허칠안에게 구색 연뿌리가 있는 걸 계산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그에게 왜 구색 연뿌리가 있는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분명히 아실 거예요. 이 전제로 보면, 분명히 오라버니한테 후수가 있을 거예요. 아니면 오라버니와 아버지께 다른 계획이 있든가.”
희현이 웃으며 말했다.
“원상 동생은 아주 총명하니 짐작해봐도 무방하지.”
허원상은 눈살을 찌푸린 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