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03
901화. 제왕법상 (2)
어풍주 위.
허평봉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허원상 역시 아버지를 따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술사의 시선 속, 굵거나 가느다란 기운이 흐르는 빛처럼 하늘을 가르고 높이 치켜든 황동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중생의 힘!
예로부터 제왕은 천명을 받아 창생을 지배해왔다.
* * *
“베라!”
허칠안은 계속해서 위엄 넘치는 중후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진국검을 휘둘렀는데 이 동작은 뒤에 있던 제왕법상과 일치했다.
세상에 이토록 찬란한 검광은 더는 없을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경물이 희미해지며 혜성같이 반짝였다가 모두 다 사라지고, 끝내는 이 검광만 남았다.
제일 먼저 금강법상의 머리가 무너졌다. 그 뒤 목, 가슴이 조금씩 와해되었다.
금강법상은 그렇게 가장 순수한 빛 부스러기가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세상에 방어로 이름난 금강법상이 모든 걸 깔보던 밑천을 잃은 것이다.
묵직한 토행의 힘 역시 진국검의 날카로움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은 진법이 무너져 와해되었다.
쿵!
철저히 붕괴한 법상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견융 산맥에 낙석이 굴러떨어졌고, 무수한 나무가 뿌리째 뽑혔다.
조청양 등은 허둥지둥 도망치거나 바닥에 엎드려 이 여파를 피했다.
저 멀리 군진 역시 파장을 피할 수 없었다. 온 사방에 지붕이 젖혀져 날아가고 건물이 덩어리째 무너졌다. 천재지변이나 다름없었다.
금강법상이 소멸하면서 도난 금강도 최후를 맞았다.
궁지에 몰린 그는 양손을 합장한 채로 이 생을 끝냈다.
영흥력(永興曆) 초, 불문의 도난 금강이 검주 견융산에서 몰락하였다.
대봉이든 불문이든 각자의 사서나 연대기에 또 하나의 결말이 쓰였다.
모든 게 잠잠해진 뒤, 쪽빛 하늘 흰 구름 아래에 우뚝 선 제왕법상의 형체 하나만이 남았다.
강적을 멸한 뒤, 제왕법상은 멈추지 않고 검을 짚고 가볍게 찔렀다.
슉!
십여 리 밖, 이미 슬그머니 도망 중이던 수라 금강은 그대로 땅에 박혔다.
몸 아래에서 어두운 금색 선혈이 번지기 시작했다.
“빈승은 달갑지 않소…….”
수라 금강 도범 눈 속의 빛이 역전할 수 없는 어둠으로 뒤덮였다.
영혼과 생기는 함께 끊어지며 저 어딘가로 날아 흩어졌다.
그때, 허평봉이 손을 내밀어 털 뭉치를 잡아 뽑듯 공허하게 두 번 쥐었다.
“가라!”
허평봉의 목소리는 꼭 섣달의 찬바람 같았다.
이내 그가 발을 들어 디디니 전송진이 퍼지면서 어풍주를 뒤덮었다.
어풍주는 그대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납란천록까지도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곧이어 머리 없는 노인의 몸이 천천히 일어나더니, 허리를 굽혀 제 머리를 잡았다. 머리를 목덜미에 누르자 혈육이 꿈틀거리며 머리가 이어졌다.
노인은 기운이 약간 쇠약해졌다는 것 말고는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 다시 가볍게 토납하자 기운은 금세 전봉까지 회복되었다.
곧 노인은 고개를 젖힌 후 아련한 눈빛으로 제왕법상을 바라보았다.
순간 기억의 상자가 열리며 이미 다 잊었던 지나간 세월을 불러왔다.
무림맹 노인네 아니, 구양주가 처음 그 자식을 만난 건 26로(路) 의용군이 집결했을 때였다.
당시 그 자식에게는 노약한 병사와 형편없는 장비밖에 없었다. 그래서 은자를 좀 빌리고자 그 모임에 참석한 것이었다.
그 자식은 낯가죽이 꽤 두꺼워 사람만 만나면 술을 권하며 형님이라 부르고 다녔다. 결국 구양주도 그에게 은자를 빌려줬었다.
확실히 그 자식은 아주 뻔뻔했었다. 본인이 검주를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대단한 정의의 사도라 민가를 약탈할 수 없었다며 텅 빈 주머니를 좀 채워주지 않겠냐고 너스레를 떨어댔었다.
그렇게 돈을 빌려달라는 그에게 구양주가 딱 한 마디 내뱉었던가.
“그래? 그럼 이 몸 앞에 납작 기어보든가.”
그러자 그 자식이 기다렸다는 듯이 외쳤다.
“아버지!”
그 한 마디로 구양주는 그 자식에게 200냥을 헌납했었다.
나중에야 구양주는 그 자식이 200냥으로 곱고 여윈 말 열여덟 마리를 사서 의용군 우두머리에게 바쳤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우두머리에게 더 많은 은자와 정예 보병 200명을 빌린 것이다.
이 일은 구양주가 직접 그에게 들은 얘기였다. 그게 몇 년이 좀 지나서였는데, 그는 그때 볼품없는 소두목에서 휘하에 정예 부대 20만을 거느린 대역적이 돼 있었다.
곁에는 시종일관 손을 놓지 않는 준수한 소년도 한 명 늘었다.
그 소년이 바로 초대 감정이었다.
이제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 600년이 훌쩍 지났다. 이야기를 뿌리던 고인은 이미 흙 한 줌이 되었고, 원신도 천지간 한 줄기 전혼으로 흩어진 후였다.
* * *
‘고조 황제의 영혼이 아직 가지 않은 것 같은데…….’
허칠안은 이 순간 피투성이가 돼 있었다. 피부 아래 모세혈관이 다 터져서 진짜 삶은 새우보다 더 빨갛게 보였다.
그는 지금 과부하 걸린 기계처럼 고장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전원을 끄는 버튼이 빠져서 멈출 수도 없었다.
‘고조 황제를 어떻게 내보내지?!’
그는 눈살만 찌푸렸다. 지금껏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 경험조차 없었다.
바로 그때, 제왕법상이 잔을 드는 동작을 취했다. 마치 손에 술잔이 쥐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허칠안도 잔을 드는 행동을 따라 하며 보이지 않는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렇게 ‘술’ 한잔 꿀꺽 넘기자 제왕법상이 천천히 사라졌다.
‘끝났다…….’
허칠안은 한숨을 내뱉고 냉정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납란천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허칠안은 심지어 그가 언제 철수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지금껏 전력을 다해 금강법상에 대항하느라 그를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는 고조 황제의 영혼을 소환할 때 이미 빠져나갔을 수도 있고, 허평봉이 나타난 뒤에 허튼수작을 방지하려고 바로 후퇴했을 수도 있었다.
‘아깝네…….’
허칠안은 어풍주가 사라진 것도 보았다. 허평봉은 아주 빠르게 달아났고, 고조 황제의 영혼은 자신만의 생각이 있는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허칠안도 추격할 수 없었다.
남쪽 봉우리 절벽 끝에 무림맹 무사의 형체가 잇따라 나타났다. 다들 겁에 질린 새처럼 상황을 관찰 중이었다.
허칠안은 그들을 훑어보았지만, 이영소와 묘재방은 찾지 못했다.
이에 그는 지치고 허약한 몸을 억지로 이끌고 부도보탑을 몰아 수라 금강의 시체를 향해 날아갔다.
이 기회에 그는 금강신공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 * *
허칠안은 허공을 부리며 잠시 비행하다가 산간 평지에서 수라 금강의 시체를 찾았다.
그는 어두운 금색 피바다에 쓰러져 있었다. 두 눈은 폐허가 된 듯 공허하기 그지없었다.
허칠안은 시간 낭비 없이 가볍게 착지해 수라 금강 시체 옆으로 달려갔다.
그 후 즉시 진국검으로 수라 금강의 경동맥을 갈라 입을 벌려 흡수했다.
꾸륵- 꾸륵-
목젖이 구르며 금강 신혈이 작은 물줄기로 변해 그의 입으로 흘러들었다. 온도는 꼭 타는 듯이 뜨거워 마치 용암처럼 허칠안의 위를 달구었다.
수라 금강의 시체는 빠르게 말라갔다.
흡수한 금강 신혈이 많아질수록 허칠안의 눈동자는 뜨거운 금색으로 변했고, 뺨에는 금색 혈관이 도드라졌으며 피부도 금색으로 물들었다.
그는 곧 짙은 금빛에 뒤덮였다. 금빛은 호흡하는 듯 꾸준히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이 과정은 반 각 동안 지속되었다.
이윽고 서서히 금빛이 사라졌다.
* * *
지금 허칠안의 피부는 어두운 금빛을 띠고 있었다. 그 다부진 근육에 무늬가 생기더니 갑자기 웬 소리가 났다.
슉!
돌연 머리 뒤에 불의 고리가 타오르면서 주변 온도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제 허칠안에게는 사내다운 기운이 가득 찼고, 깊이와 위엄이 생겼다.
꼭 불문의 호법금강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기기는 변하지 않았어. 하지만 육신의 힘이 치솟아 지금은 진국검이 없다고 해도 도난이나 도범 금강을 혼자 힘으로 이길 수 있겠어……. 지금의 나는 3품 무사와 3품 금강의 결합체와 다름없는 거야.’
자신의 변화를 느낀 허칠안은 흐뭇하게 현 상황을 감지했다.
금강신공이 드디어 보조를 맞춰 3품 금강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이제 그는 3품 금강의 신체와 영혼, 3품 무사의 자가 치유 능력을 갖췄다.
3품이란 영역에서 허칠안은 절대적으로 걸출한 인물이 되었다. 만약 봉마정을 풀어 수련 경지를 회복할 수 있다면 이 경지에서 무적이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무림맹의 두 용기를 수집했고, 금강의 지위를 얻었으니 크게 벌었군……. 조위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 품계를 건너뛰어 영혼을 소환하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했지.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위 공께서 애당초 유가 성인의 영혼을 소환한 게 바로 죽음을 불사한 의지를 품으신 거야.
난 3품의 몸으로 고조 황제의 영혼을 소환했는데 부담이 극도로 큰 것만 빼면 배반을 받지 않는 것 같은데. 설마 내가 국운을 몸에 짊어져서일까?’
답을 얻지 못한 허칠안은 이 의혹을 뒤로 내팽개친 채 수라 금강 손목의 팔찌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 팔찌엔 천고의 기운이 있었다.
보통 팔찌가 아닌 ‘두전성이’ 능력을 보유한 고급 법기였다.
고치실로 짠 팔찌에는 짐승 이빨, 구리 조각, 알록달록한 색채의 옥석 등이 걸려 있었다.
천고족의 법기는 지위가 아주 높았다. 이는 확실히 남강 동업자 천고 노인이 남긴 법기임이 틀림없었다.
‘앞으로 내가 남강에 한번 다녀올 게 분명하니까 이 법기는 우선 남겨두자. 그때 가서 첫 대면 선물로 그 천고 할머니에게 줘야겠어. 죽은 남편의 유물이니 할머니도 크게 신경 쓸 거야.’
허칠안은 지서 파편을 꺼내 몸속의 용기를 빨아들이고 팔찌와 수라 금강의 시체를 그 속으로 거두었다. 금강의 육신 역시 제련 법기 혹은 단약의 최상 재료라서 이는 손현기에게 보답으로 선물할 생각이었다.
‘도난과 도범이 검주에서 몰락했으니 불문에는 3품이 철저하게 사라졌어. 아란타 쪽에서 무슨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네. 보살을 일제히 내보내서 손잡고 날 죽이는 건 아니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허칠안은 이를 드러냈다. 도정 나한이 사천감에 봉해지고 도범, 도난 두 금강이 몰락한 이 모든 게 그 때문이었다.
‘내가 원래 불문과 갈등이 있던 건 맞지만, 이번에는 죽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으니 어쩔 수 없이 구미천호에게 철저히 빌붙을 수밖에. 에휴, 도난, 도범의 목숨은 투항장인 셈 치자고.’
* * *
허칠안이 허공을 몰아 떠난 후, 조청양을 비롯한 무림맹 사람들은 그제야 현실감을 되찾고 자아도 되찾았다.
“끝난 겁니까? 더 이상 적은 없는 거지요?”
“불문에서 또 보살이 강림할까요? 무신교에 오지 않은 1품 고수가 더 있지는 않겠죠?”
“허 은라는 어디로 갔습니까? 설마 상대할 강적이 더 있는 걸까요?”
인파 속, 누군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양측에 꺼내지 않은 비장의 패가 더 있는지 의심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불문 4품 승려의 급습 후, 4품 간의 난투극.
그리고 두봉인 8명과 조 맹주의 교전.
뒤이어 하늘에서 떨어진 금강, 감정 이제자가 금강을 ‘문전박대’하고 무신교 우사가 나서서 세찬 천둥을 불러내기까지.
또 때마침 허 은라가 등장해 그 무신교 우사에게 중상을 입히고, 옛 선조가 관문을 부수고 나왔던 그때.
12개 양팔의 금신과 백의의 출현과 막을 내리듯 고조 황제의 법상을 불러들인 허 은라…….
정말 수많은 일이 폭풍우처럼 들이닥친 상황이었다. 무림맹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타격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엄청난 수준의 타격이었다.
신선의 싸움으로 별안간 평범한 사람들이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었다.
타닥……!
그때, 남쪽 봉우리 꼭대기에 노인이 강림했다. 사람들을 쭉 훑어보던 그는 끝으로 조청양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뒤처리하게.”
조청양 등은 그제야 전투가 끝났음을 확신했다.
모든 사람이 비로소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네, 조상님!”
조청양은 노인을 몇 번 슬쩍 훑어보곤 모든 부하를 이끌고 떠났다.
소월노는 가지 않고 사뿐하게 예를 갖췄다.
“조상님, 허 은라는 어디로 갔습니까?”
사람들도 하나둘 옛 선조를 쳐다보았다.
“그는 걱정할 필요 없네.”
노인의 손사래에, 무림맹 사람들도 마침내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