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04
902화. 드디어 내 실력을 뽐낼 차례가 왔는가!
무림맹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황폐한 산, 이곳에 동방완용이 떨어졌다.
정확히는 이 산골짜기 옆으로 떨어졌다.
“윽…….”
그녀는 가슴을 움켜쥔 채 끙끙 앓다가 털썩 주저앉아 급하게 물었다.
“스승님, 왜 도망쳐야 하나요? 방금 그 백의 술사는 스승님께서 말하던 감정 대제자 아닌가요?”
납란천록이 답했다.
“그래, 그가 바로 산해관전역을 꾸민 배후의 원흉 중 하나지.”
‘정말 그였군…….’
동방완용은 숨을 들이쉰 후 곤혹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럼 더더욱 도망칠 필요 없잖아요. 스승님께선 그를 신임해서는 안 되지만, 임시 맹우는 된다고 하셨지 않나요?”
납란천록은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답을 이었다.
“내가 그 자식 몸에서 혈단의 기운을 감지했다.”
“누구요?”
동방완용이 알아듣지 못해도 납란천록은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
“희현의 몸에 혈단의 기운이 있다는 말이다. 내가 추측하기론 허평봉이 용기의 힘을 빌려 희현이 3품으로 승직하는 걸 돕고 싶어 하는 것 같구나.
예로부터 무사가 3품으로 승직하려면 두 길이 있다. 첫째는 본인 소양에 기대 육신을 온양하고 보통 사람의 육체를 탈피해 초범의 문을 여는 것이지.
둘째는 생명의 정수를 수집해 혈단으로 만들고 이 방대한 생기를 연화하여 3품으로 승직하는 것이다. 이 길은 아주 위험해서 성공할 수 있는 자가 거의 없다. 하지만 천지 법칙에 부합하면 한 가닥 희망이 있다. 기운이 몸에 더해진 자는 하늘의 비호를 받아 혈단을 삼키면 한 가닥 희망이 생기는 법.”
동방완용이 눈살을 찌푸렸다.
“천지 법칙에 부합한다고요?”
“꽃, 새, 물고기, 벌레, 인간, 짐승, 요괴, 세상의 만물은 모두 주위에서 약탈할 수 있는 모든 걸 약탈하고 있다. 생명은 약탈에 기인하지. 어쩌면 이렇게 약탈하는 형식은 변할지 몰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백성을 학살하고 혈단을 정련해 초범으로 승직하는 건 전혀 막다른 길이 아니지.”
동방완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허칠안이 떠올랐다. 그는 경찰이 있던 해에 부상하여 계속 승직해 왔고, 고작 1년 만에 동년배를 제치고 초범으로 승직했었다. 그도 이 길을 걸었을 것이 분명했다.
납란천록이 계속해서 말했다.
“사람마다 전부 운명이 있다. 나 같은 2품 우사는 심지어 무신교의 전체 전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당연히 기운이 있는 사람이지. 그 두 금강도 마찬가지다. 초범경의 강자는 전부 대기운을 지닌 자다. 기운이 많고 적음에 그 차이가 있을 뿐.”
동방완용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스승님의 뜻은 감정의 그 대제자가 스승님을 죽이고 스승님의 기운을 약탈하려 한다는 말씀인가요?”
납란천록이 웃으며 말했다.
“그가 나타날 때 내가 점을 쳐봤지. 점괘가 대길이라 나오더구나. 하지만 초범경의 술사는 천기를 차단하고 점술을 억제할 수 있다. 남을 경계할 줄 알아야 하는 법. 만약 허칠안이 죽지 않으면 우리는 위험해진다. 우리 상태로 그곳에 남으면 어느 쪽이 승리하든 위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찍이 후퇴하는 것이 제일 아니더냐. 결과야 추후 알아보면 그만인 것을.”
‘스승님은 역시 믿음직해…….’
동방완용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높은 하늘, 어풍주는 구름바다 위를 비행하고 있었다.
광풍이 진법 밖에 가로막힌 배 위는 밤처럼 고요했다. 허평봉과 희현은 말이 없었고, 허원상과 허원괴 역시 감히 입을 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 졌다. 아버지처럼 천하의 일을 전부 계산하는 분이 허칠안에게 여러 차례 패했어. 아버지가 저토록 제 상태가 아닌 건 처음 보는데…….’
허원상이 입술을 오므렸다.
오늘 그녀는 다시 한번 친오라버니의 무시무시한 힘을 느꼈다.
그녀가 보는 아버지는 지혜와 계략이 뛰어나 감히 하늘과 대련해도 반쯤은 이길 수 있는 인물이었다. 세상에 아버지가 계산할 수 없는 일은 없었다. 그 유일한 적은 감정으로, 그는 구주 대륙 가장 최정상에 있는 극소수였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인물이 급부상했다. 그건 아버지가 그저 도구로, 바둑돌로 삼았던 친오라버니 허칠안이었다.
그는 엄청난 성장 끝에, 구주 대륙에서 아버지와 대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 그야말로 구주 대륙 최고의 인물이 된 것이었다.
허원상은 남몰래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아버지께서는 허칠안을 버린 걸 후회할까…….’
그 시각, 허원괴는 때로는 깊이 생각하다 때로는 희현을 쳐다보았다.
‘일곱째 형님이 분노하고 질투하는 것 같은데…….’
그도 희현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명색이 희씨 자손으로, 코앞에서 외부인이 진국검을 쓰고 선조의 영혼을 불러 제 계획을 좌절시키는 걸 보았는데, 어찌 멀쩡할 수 있겠는가.
무릇 혈통에 소속감과 자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 때문에 분노하고 부러워하며 질투에 괴로워하곤 했다.
이때, 허평봉이 담담하게 말했다.
“용기를 가두는 진법은 7일간 유지될 수 있다. 7일 안에 운주로 돌아간다. 어풍주를 청동 정(鼎)에 거두는 걸 기억하거라. 이렇게 해야 감정에게 발각되는 걸 피할 수 있다. 걱정할 필요 없다. 감정이 운주 밖에서 막고 있어도 목표는 나다. 그도 너희 같은 피라미가 드나드는 건 개의치 않을 거고, 돌볼 겨를도 없을 거다.”
“두 금강의 기운으로 충분할까요?”
희현이 떠보았다.
“충분하지 않지!”
고개를 젓던 허평봉은 갑자기 또 가볍게 웃었다.
“내게 다 방법이 있다. 이번 강호행이 헛수고는 아니야.”
희현이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국사는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사람을 안심시켜주었다.
“저는 백호 그들을 먼저 불러들이고 싶습니다만.”
희현이 말했다.
그의 미래 구성원인 백호 등은 방금 결투에서 도망쳐 어풍주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허평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기궁 밀정에게 넘겨 연락을 책임지도록 하지.”
* * *
광풍이 산을 휩쓸자 몸길이 1장(丈)이 넘는 백호가 류홍면 등을 태우고 낙하했다. 이내 백호는 등 위의 사람들을 털어 떨어뜨린 후 인간의 형태로 변했다. 그가 가파르게 뛰는 가슴을 안고 말했다.
“이곳은 견융산에서 백여 리 떨어져 있으니 안전하겠지.”
그는 즉시 손바닥으로 옆에 있는 큰 나무 한 그루를 절단하더니 하늘을 우러러 포효했다. 호랑이의 포효가 숲속 수많은 날짐승을 놀라게 했다.
뒤이어 백호가 잔뜩 화를 냈다.
“그가 무슨 근거로 고조 황제를 소환하는가! 대체 그에게 비장의 패가 얼마나 더 있는 건가! 이렇게 까다로운 적 때문에 먹지도 자지도 못하겠군. 장차 주인이 그를 사로잡으면 내가 그의 피를 마시고, 그의 살을 먹고 그의 여인까지 데려와 팔을 자른 원수를 갚을 것이다.”
허평봉 휘하의 이십팔성숙 중, 백호신숙(白虎新宿)의 우두머리인 그는 허칠안을 매우 적대시했다.
옹주성 밖 전투에서 허칠안은 그의 오른팔을 베었고, 이로써 백호는 허칠안을 점점 더 증오하게 되었다.
본래 검주행에서 원수를 갚을 수 있을 줄 알았건만, 허칠안이 고조 황제의 영혼을 불러들일 줄 어찌 예측했겠는가?
이건 그들도 너무 갑작스러워 미처 막아낼 수 없던 비장의 패였다.
백호는 심지어 결과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사람들을 싣고 황급히 도망까지 쳤다. 이제야 점점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내 걸환단향이 입을 뗐다.
“이건 그래도 처리하기 쉽습니다. 저희는 그의 적수가 아닙니다. 그의 곁에 있는 자들을 상대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는 아니고요. 하지만 허씨는 방탕이 습관이 되어 경성에 애인이 한 무더기입니다. 나중에 천기궁에 가서 상세한 정보를 달라고 하면 됩니다.”
지금 동방완청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큰 돌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백호와 걸환단향의 한탄을 무표정하게 듣고 있었다.
그러다 방청하는 흥미마저 잃고 말았다. 사내란 본디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들이었다. 이런 순간에도 그저 남의 선조 역대 여인의 안부를 물으며 줄곧 상스러운 말을 해대는데, 귀를 지키려면 관심을 끄는 게 좋을 듯했다.
곧이어 류홍면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없이 가부좌를 틀고 있는 젊은 승려 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두 분께서는 도난 금강에게 연락할 방법이 있습니까?”
정연은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고, 정심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나중에 다시 연락할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지금도 돌아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류홍면이 자조하며 말했다.
“약해도 약한 대로 장점이 있지요. 저희가 여러 번 도망칠 수 있었던 건 그자가 우리를 안중에 두지 않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백호는 냉소를 지었다.
“그는 그 오만함에 대가를 치를 것이다!”
류홍면이 짧게 한숨을 뱉으며 백호에게 말했다.
“초엽 도사가 옹주성에서 죽은 것을 제외하면 우리 일행은 괜찮지. 모두 무탈하니까.”
4품의 고수란 어떤 세력에서도 역경에 굴하지 않는 튼튼한 기둥이었다.
걸환단향은 잎을 따서 입에 넣고 씹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초엽 도사가 죽었으니 희현 소주께서 허칠안을 원수로 대하는 거지요. 그가 앞으로 궐기한다면 처음으로 죽이는 자가 바로 허칠안일 겁니다.”
그때, 갑자기 그의 눈에 초점이 사라지더니 꼿꼿이 쓰러졌다.
류홍면 등은 아연실색하여 튕기듯 일어나 다 함께 동쪽을 바라보았다.
휙! 휙!
바람 소리와 함께 그림처럼 아름다운 젊은이가 비검을 밟고 숲속의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불완전한 청동거울을 쥔 채 빙그레 웃고 있었다.
‘이영소? 그가 어떻게 쫓아온 거지?’
백호 등은 전투 태세에 돌입했다.
“이랑……!”
동방완용은 복잡한 눈으로 외쳤다.
이영소가 웃으며 말했다.
“청 누님, 잠시 물러나세요. 내가 이 자식들을 처리할 겁니다.”
“네가?”
사람들이 백치를 보듯 그를 쳐다보았다.
곧이어 백호가 입술을 핥더니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칠안은 우리가 상대할 수 없으나 너같이 무가치한 도사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지. 이 몸이 먼저 너로 제사를 지내야겠구나.”
순간, 동방완청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번 해보시지.”
백호 등은 즉시 그녀를 쳐다보았다. 날카로운 눈빛은 이미 적을 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영소는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또 빙그레 웃었다.
“너희만 조력자가 있는가? 본 성자 수하에도 졸개들 몇몇은 있다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전해졌다.
어디선가 두 검광이 날아왔는데, 늠름하고 씩씩한 자태의 묘령의 여인과 이마 앞에 백발 한 가닥을 내린 차분한 분위기의 검객이었다.
검객 뒤엔 옷에 풀을 먹여 하얘진 납의를 입은 건장한 체격의 중년 승려가 있었다. 양손을 합장한 그의 미간엔 깊은 천(川)자가 새겨져 있었다. 고생이 심하고 원한이 깊은 모습이었다.
묘령의 여인은 인간쓰레기 사형이 손에 쥔 거울을 한참 주시하더니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낡은 거울은 정말 쓸모 있군. 백 리를 추적할 수 있다니.”
비연의 협객 이묘진, 그리고 장원랑, 초원진이 함께였다.
* * *
경성, 덕향원.
수수한 차림의 회경은 궁녀 둘과 함께 빠르게 어서방에 이르렀다.
그녀는 문 앞을 지키는 환관의 안내를 받아 편전으로 향했다. 어서방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 * *
편전 안.
이곳에는 이미 황족 여인들이 앉아 있었다. 임안을 포함한 공주 셋, 군주들이 모여 있었다.
회경이 들어오자, 재잘재잘 의논하던 소리가 갑자기 멎었다.
“회경 언니, 영진산하 사당의 선조 위패가 다 부서졌다고 하네요…….”
삼공주가 제일 먼저 정적을 깼고, 다른 이들도 잇따라 고개를 돌렸다.
회경은 담담하게 말했다.
“본 공주도 이제 막 들었다. 넌 이미 출가하였으니 다시 이 일을 물으러 오긴 어려울 것이다. 폐하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말거라.”
삼공주는 약간 난처한 얼굴을 했다.
얼마 전, 영진산하 사당이 진동하면서 황족 역대 조상의 위패가 전부 부서지는 거대한 소동이 있었다.
영흥제는 가장 먼저 소식을 차단해 궁 밖으로 퍼지지 않도록 조치했지만 황족과 종실은 각자 궁 안의 경로를 통해 이 일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 영흥제는 어서방에서 숙부, 백부, 형제들과 상의 중이었다.
삼공주는 오늘 마침 궁에 들었다가 이 일을 듣고, 자매들과 함께 왔다.
아직 출가하지 않은 공주, 군주가 집안일에, 그것도 이처럼 큰일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했지만, 출가한 공주는 반은 남이나 다름없었다.
“오라버니께서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겠어요!”
이 어리광 가득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굳이 확인힐 필요가 없었다.
임안은 고운 눈썹을 찌푸린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황숙(皇叔)들께서 이 일은 반드시 제대로 조사해서 똑똑히 밝혀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러지 않으면 다들 폐하께서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조상의 분노를 샀다고 말할 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