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05
903화. 추수 후 결판을 내겠다 (1)
이에 몇몇 공주, 군주들은 협조라도 하듯 걱정스러운 기색을 비쳤다.
하지만 이중 누군가는 이를 남 일처럼 여기고, 누군가는 자신의 아버지뻘 형제가 이익을 얻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으며, 또 누군가는 자신의 호화스러운 생활에 영향이 있진 않을지 겁을 내고 있었다.
여기서 진정으로 황제를 걱정하는 건 친동생 임안 하나뿐이었다.
물론 회경도 이 일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지만, 그건 영흥제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는 더 높은 차원에서 걱정하고 있었다.
“이 일이 퍼지면 제공들이 폐하께 죄기소를 쓰라 강요하진 않을까요?”
“또 누군가는 이 기회를 틈타 폐하께서 기부를 호소하여 조상들의 분노를 샀다고 책망하겠지요. 폐하께 불만을 가진 문무 관원들에게 폐하를 공격할 이유가 생긴 겁니다.”
“폐하께서 막 제위에 오르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폐하의 위엄과 명망에 아주 큰 타격이 생겼습니다.”
황족 여인들의 갖가지 의견이 이어졌다.
회경은 임안의 얼굴이 빠르게 무너지며 깊은 시름에 잠기는 걸 보았다.
영흥제가 자리에 앉은 이래, 임안은 정사에 점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큰일, 작은 일 모두 가리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갑자기 성취욕이 생겨 권력을 탐하려는 건 아니었다.
원경제 재위 시절, 그녀는 그저 아무 걱정 없는 존귀한 금지옥엽으로만 있을 수 있었다. 정사에 대해 개입할 필요도, 자격도 없었다.
하지만 영흥제가 황위에 오른 지금, 범람하는 천재와 인재가 점점 늙어가는 이 황조를 괴롭히고 있었다.
하물며 원경제도 처음 황위에 올랐을 때는 나라를 다스릴 열정이 있었다. 그러나 사기가 고갈된 지금, 새로운 제왕은 이미 다 지쳐버린 모습을 보였다.
더욱이 왕 재상이 병으로 드러누워 더는 예전처럼 밤새도록 머리를 파묻고 공무를 처리할 수 없게 되자 황제의 압박감은 더더욱 커져만 갔다.
이런 상황에 친동생인 임안이 당연히 전처럼 생각 없이 해맑은 공주로 살 순 없었다. 솔직히 영흥제는 그녀에게 아무런 안정감도 주지 못해서, 요즘 임안은 늘 친오라버니를 걱정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원경제 때도 황조의 상황이 좋다고 볼 순 없었고 국력도 나날이 떨어졌지만, 원경제는 확실히 군신들을 억누를 수 있는 제왕이었다.
이때, 환관이 장공주에게 따뜻한 차를 한 잔 올렸다.
회경은 아무렇게나 받아 한 모금 홀짝이다가, 환관의 눈에 스친 의혹을 예리하게 감지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무표정하게 찻잔을 내려놓고 담담히 말했다.
“뜨겁군.”
환관이 고개를 숙였다.
“노비,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회경도 처벌할 마음이 없기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랫배 위에 손을 깍지껴 쥐고선 영진산하 사당 문제에 정신을 집중했다.
똑- 똑-
그녀가 찻상을 두드리는 소리에, 황족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즉시 멈췄다.
“지진 아닐까?”
회경의 물음에, 임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금군의 보고에 따르면 다들 지진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해. 궁에서도 지진은 발생하지 않았고. 상백만이야.”
상백은 황궁에서 가깝고, 금군 진영과도 가까웠다. 만약 지진이었다면 양쪽 모두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기란 불가능했다.
이후, 약간 주저하던 임안이 회경에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조현진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고조 황제의 조각상이 갈라졌대. 진국검도 사라졌고.”
회경의 눈동자가 다소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진지한 눈빛으로 임안을 보았다. 임안 역시 아주 엄숙한 표정으로 힘껏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 일은 아마 감정과 관련 있을 것이다. 감정 외에 세상에서 마음대로 진국검을 지배할 수 있는 자는 없다……. 감정이 진국검을 가져간 뒤 영진산하 사당의 선조들 위패가 전부 떨어졌고, 고조 황제의 조각상에 균열이 생겼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감정이 진국검을 써야 했을까? 아니, 그 자신이 쓰려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 감정의 지위라면 진국검이 필요하지 않을 텐데.
……허칠안인가?!’
회경의 머릿속에 순간 그 방탕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시며 머릿속에 들어찬 그 얼굴을 내쫓아버렸다.
* * *
회경은 변소에 가겠다는 핑계로 노란 비단발이 드리워진 널찍하고 조용한 정방(淨房)으로 왔다.
이내 허리춤의 향낭을 떼어낸 그녀가 안에서 지서 파편을 꺼냈다.
[일: 진국검이 사라졌네. 여러분들은 자세한 사정을 아는가?]잠시 기다렸으나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회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다시 전서하였다.
[일: 이 일은 중대하네.]여전히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이는 상식에 부합하지 않았다.
드디어 누군가 대답하였는데, 애석하게도 리나였다.
[오: 진국검이 사라졌다고? 그럼 빨리 찾아야지! 일호, 황궁에 무슨 큰일이 발생한 건가? 대봉 진국검은 상백에 봉인돼 있지 않은가? 잃어버렸다고 하면 잃어버린 건가? 그곳은 상백이잖아. 진국검도 잃어버릴 수 있다니! 그럼 너희 대봉 황제도 조심해야겠군. 도둑이 진국검을 훔쳐 갈 수 있다면, 그의 머리도 훔쳐 갈 수 있을 거야.]한 무더기 쏟아지는 글씨를 보며 회경은 고개를 내저었다.
‘오호와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수 없어. 말을 할 수가 없군…….’
[일: 이 일은 후에 다시 얘기하지.]회경은 어쩔 수 없이 지서 파편을 거두었다.
* * *
어서방 안.
이곳에 황족 구성원 모두가 모였다. 영흥제의 숙공(叔公) 역왕(曆王), 숙부 예왕과 그의 형제들까지 조손 3대가 다 모인 자리였다.
대당 내 분위기는 엄숙했다. 평상복을 입은 왕야들의 미간엔 잔뜩 찌푸린 주름이 잡혀 있었다.
“사천감에서 회신을 주었습니까?”
“감정이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친왕들은 다소 실망하고, 분노했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원경제 재위 시절에도 감정은 그와 황족을 아랑곳하지 않았었다.
“진국검은?”
“진국검은 이미 보름 전에 감정이 가져갔습니다. 이 일은 그가 짐에게 통지하였습니다.”
문답이 잠시 이어지다가 친왕, 군왕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잠시 후, 다른 친왕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지진이 아니라면 또 무슨 이유로 선조를 분노하게 한 겁니까? 진작 기부를 호소할 필요가 없으며 인심을 잃을 것이라 말씀드렸는데 폐하께서는 본왕의 충고를 듣지 않으시다가 지금 선조께서 진노하셨으니. 에휴…….”
순간 모든 친왕, 군왕이 말없이 영흥제를 쳐다보았다.
현재 선조의 위패가 전부 부서졌다. 이는 매우 불길한 사건이었다.
만약 일부 명문 대가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가주는 아마 그 자리에서 당장 물러나라고 강요당할 것이었다.
하지만 한 나라의 제왕이란 그리 쉽게 바꿀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군주에게 가지는 인상과 생각까지 고정적인 건 아니었다.
지금 영흥제를 보는 모든 황족의 시선엔 비난과 원망이 가득했다. 다들 그를 명군이 아니라 여기는 건 확실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머리가 희끗희끗한 예왕이 말했다.
“이 일이 운주의 그 혈통과 관련 있을까요?”
친왕들은 깜짝 놀라 소름이 끼쳤다.
허칠안이 선제를 참수한 파동 이후, 허평봉이 등장하였다. 그와 관련 있는 모든 게 이미 공개적으로 노출된 상황이었다.
조정 중요 인물이자 황조 권력의 핵심인 내각 대학사들이나 친왕 무리 같은 일부는 500년 전 그 혈통이 운주에 칩거하며 반역을 꾀했음을 알고 있었다.
“예왕의 뜻은 이 일이 국운 다툼과 연관됐다는 겁니까?”
“허평봉이 감정의 대제자니 술사와 국운은 밀접한 관계가 있겠군요…….”
“500년 전 그 혈통 역시 희씨 자손이니까…….”
영흥제는 들을수록 안색이 나빠졌다.
그때, 사황자가 눈빛을 반짝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숙부 여러분, 이 일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그의 지금 봉호는 염친왕(炎親王)이었다. 대봉 종실의 왕작(王爵)은 보통 친왕과 군왕 두 봉호만 있었다. 군왕은 세자 외 친왕 적자의 봉호였다.
친왕이 잠시 침음하다 말했다.
“우선, 이 일은 반드시 감춰야 합니다. 퍼뜨리는 자는 용서 없이 죽일 거라고 명하십시오. 기부를 호소한 일로 조정과 민간 위아래로 원성이 자자하니 제공에게 폐하를 공격할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 일은 폐하의 위엄과 명망에도 큰 타격입니다.”
똑똑똑…….
바닥에 지팡이를 빠르게 두드리는 소리가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친왕, 군왕들은 저도 모르게 영흥제 좌측 단향목 의자에 앉은 노인을 쳐다보았다.
드문드문 흰 머리에, 주름살과 검버섯이 가득한 얼굴, 평상복 차림의 팔순 노인은 선제 원경의 숙부로, 현재 황족 황렬에서 가장 높은 역왕이었다.
당시 진북왕 사건에서 원경제에게 협조해 연극한 친왕이 이 역왕이었다.
“이건 결코 폐하의 명성과 인망에 관련된 일도 아니고, 나라의 녹을 먹는 문인 무리의 일도 아니네.”
역왕의 목소리는 쉬었지만, 유달리 우렁차게 메아리쳤다.
노인은 곧 비틀거리며 일어나 한 바퀴 둘러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500년 전 그 혈통이 운주에 칩거하면서 세력을 비축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네. 이 결정적인 순간에 선조의 위패가 쓰러지고, 고조 황제의 법신이 갈라졌다니……. 폐하, 이건 선조께서 폐하를 못마땅하게 여기시는 것이고, 고조 황제께서도 폐하를 못마땅하게 여기시는 겁니다.”
영흥제의 안색이 확 변했다.
“숙공, 숙…….”
역왕의 말을 다른 장소, 다른 때로 옮긴다면 대역무도한 죄였다. 하지만 이런 장소, 이런 사건에 던져진 말은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 황족 친왕들 모두가 그의 말이 옳다고 여기고 있었다.
역왕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 일은 우리 황가의 일이니 숨겨야 합니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죄기소를 쓰고 백관에게 기부금을 거두는 걸 멈춰야 합니다. 또한, 폐하께서는 조묘(朝廟)에서 사흘간 잘못을 반성하면서 선조께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영흥제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숙공, 짐이 제위에 막 올랐는데 어찌 죄기소를 쓸 수 있단 말입니까.”
영흥제가 제위에 오른 이래, 한재가 중원을 휩쓸어 백성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무수한 이가 동사하고 아사했으며 유랑민이 도처에 깔렸다.
이에 황제는 기부금으로 이재민을 구휼한다며 어렵사리 명성을 만회했다.
지금 죄기소를 쓴다면 새 군주의 체면이 깎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거의 나는 황제가 될 자격이 없다고 공표하는 수준과 다름없었다.
이걸 그더러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
“신하로서 본왕은 폐하께 아니라 말씀드리면 안 되지요. 하지만 본왕, 숙공으로서, 희씨 자손으로 말씀드리면 안 됩니까? 여기 선황이 계셨다고 해도 본왕은 선황께 선조들께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라고 했을 겁니다.”
그리고 역왕은 지팡이를 힘껏 내리쳤다.
“영흥, 네가 이 자리에 앉았으니 마땅히 감당해야 할 네 책임이다!”
영흥제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노인네가 거만하게 굴기는! 그럼 아바마마께서 도를 닦으실 때 어째서 간언할 엄두를 내지 못했지? 내 기반이 안정적이지 않다고 무시하는 거 아닌가! 나더러 선조를 분노하게 한 죄명을 감당하라고 강요하는 거 아닌가!’
그때, 한 친왕이 대열에서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폐하, 선조의 태도는 국운에 영향을 미치니 절대로 경시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운주 그 혈통이 이득을 보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낙담한 영흥제는 자세를 바로해 앉았다.
“알겠습니다. 선조들께서 만족하실 수 있다면 짐이 죄기소를 쓴들 어떠하며 사흘 동안 잘못을 반성하든 어떠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