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06
904화. 추수 후 결판을 내겠다 (2)
밀림 안.
정심이 주위를 한 바퀴 훑었다. 시선은 이묘진, 초원진, 항원 세 사람을 스쳐 다시 이영소 앞에 머물렀다.
“손에 있는 거울이 이상하군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광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백호는 바람을 타고 이영소를 스쳐 지나갔다. 속도가 빨라 자리에 있던 4품 무사조차도 반응하지 못할 정도였다.
“불득살생(不得殺生)!”
정심은 양손을 합장하고 계율을 시전했다.
불득살생이 강제로 제한하는 건 이영소의 살의였다. 반격할 생각을 꺾고, 백호가 일격에 목숨을 끊도록 하여, 가장 큰 위협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내 아름다운 이영소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순간 단전 안에서 금빛이 피어나더니 계율의 힘을 무형으로 소멸시켰다.
금단 한 알로 만법을 깰 수 있었다.
이와 동시에 이묘진은 팔을 내밀어 백호를 겨냥했다. 곧 그녀의 눈동자는 감정을 머금지 않은 투명하고 공허한 색으로 변했다.
순식간에 백호가 입고 있던 옷이 꽉 조여들었다. 허리띠가 그를 졸라 죽이려 하고, 신발이 저절로 벗겨지더니 날아올라 그의 뺨을 때렸으며, 머리카락이 한 가닥씩 그의 목을 휘감고 그의 눈을 가렸다.
몸속의 기기가 역류하여 제대로 통제할 수가 없었다.
이로써 이영소에 대한 기습은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다.
사매의 도움으로 이영소는 비검을 몰아 후퇴했고, 동시에 미간에서 휴대용 쓰레기 사내가 뛰쳐나와 작은 손으로 백호의 미간을 쳤다.
쿵! 쿵! 쿵…….
류홍면은 나뭇가지 위를 빠르게 디디며 무사의 순발력에 기대 이영소의 육신을 쫓았다.
그녀가 높이 날아오르자 허리춤의 연검이 날카로운 빛으로 변했다.
위위구조(圍魏救趙), 적을 포위 공격해 스스로 물러가게 하는 전술이었다.
슉!
기울어진 땅에서 검광이 발사되었다.
류홍면은 4품 무사의 육신을 등에 업고 검기에 맞서 이영소의 육신을 벨 생각이었다. 그녀의 눈엔 조금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땅!
철검은 역시나 류홍면의 육신을 부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두 눈이 갑자기 멍해졌고, 몸은 마치 통제 불능의 마차처럼 툭 쓰러졌다. 손에 쥔 연검도 제대로 휘두를 수 없었다.
인종 심검이 벤 건 원신이었다.
“일어나시죠!”
정심이 큰 종소리처럼 낮게 외친 소리에 류홍면은 막 꿈에서 깨어났다.
그는 재빠르게 7품 법사의 세뇌 능력을 운용하여 류홍면이 실신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도왔다.
지금 류홍면과 이영소 육신의 거리는 1장(丈)이 채 되지 않았다. 연검이 검기를 내뿜으면 그를 손쉽게 죽일 수 있는 거리였다.
류홍면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연검을 휘둘렀다.
땅!
바로 이때, 금빛 찬란한 큰 손이 검기를 잘게 부쉈다.
“아미타불, 시주님, 싸움을 벌이지 마십시오. 평화를 귀하게 여기시지요.”
항원은 자비로운 얼굴로 손바닥을 뒤집어 류홍면을 내리쳤다. 그는 이미 금강신공을 수련해 정식으로 4품 영역의 전투력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때, 이영소의 원영도 작은 손으로 백호의 미간을 순조롭게 쳤다.
소리 소문 없이, 기기 파동도 없이 백호의 뒤통수에 갑자기 허황된 형체가 나타났다. 그건 그의 원신이었다.
이 원신의 상체는 육신을 떠났고, 하체는 고집스레 몸속에 남아 있었다.
무사의 원신은 강하고 굳건하여 도문 원영이라고 해도 원신을 몸에서 쉽게 내보낼 수 없었다.
이윽고 혼천신경이 빛을 반짝이더니, 백호의 원신이 육신으로 되돌아가기 전 거울 속으로 흡수하였다.
쿵!
백호의 우람한 몸뚱이가 떨어진 후, 의식을 잃고 더는 깨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마침 도우러 왔던 정연이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동방완청이었다.
맹우와 사랑하는 사내 앞에,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사랑을 택했다.
순식간에 4품 고수 둘이 파리 목숨이 되었다.
이게 바로 법보의 강점으로, 다소 불완전하지만 ‘보통 사람’이 저항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초범경 이하가 법보를 마주하면 근본적으로 반격할 힘이 없었다.
류홍면과 정심, 정연은 혼천신경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백호와 걸환단향이 불가사의하게 의식을 잃고, 눈앞엔 4품 고수들과 배신한 동방완청이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얘기였다.
류홍면은 십자형 검기를 교차하여 공격하는 척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힘찬 표범처럼 미친 듯이 내달렸다.
그녀는 아주 똑똑하게 도피를 택했다. 어공(*御空: 하늘을 부림)하지 않았다.
저속한 무사는 착실히 땅을 밟아야만 가장 빠른 속도를 발휘할 수 있었다. 경공이나 어공을 쓴다는 건, 그야말로 검을 다루는 도문 고수 앞에서 화를 자초하는 격이었다.
정심과 정연 역시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법기는 하나뿐이라 따로따로 도망쳐야만 살 확률이 있었다.
이를 본 초원진은 즉시 소리 높여 명령을 내렸다.
“이영소, 자네는 정연을 쫓아가게. 묘진은 정심을 쫓아가고, 항원과 나는 류홍면을 추격하겠네.”
그는 지금 이 무리와 처음으로 왕래하는 것이지만, 이미 사적으로 이영소에게 류홍면 등의 정보를 입수한 바 있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초원진의 안배엔 매우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우선 세 사람 중, 무승 정연은 금강신공을 보유하고 있어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므로 이영소가 법보를 쥐고 추격하는 게 옳았다. 그리고 그가 가면 동방완청이 반드시 따라갈 것이었다.
동방완청은 무사로서 무승을 견제할 수 있었다.
이묘진 쪽은 약간 안정적이진 않지만, 강한 공격 수단이 부족한 선사 역시 그녀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류홍면은 무사로서 그와 항원이 상대한다면 별 어려움도 없었다.
* * *
항원이 몸을 훌쩍 솟구쳐 초원진 뒤로 뛰어올랐고, 두 사람은 바람처럼 검을 부리며 이동했다.
휙! 휙!
류홍면은 산을 넘고 골짜기를 넘었다. 비단 치마는 벌써 나뭇가지, 관목에 긁혀 찢어졌지만 그녀는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그저 도망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방금 그들은 자신들이 4품이라 쉬이 등한시되는 ‘졸개’임을 다행으로 여겼고, 심지어 걸환단향과 백호는 암암리에 복수할 것이라 칼을 갈았었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허 은라가 그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을 놓아줬다는 의미는 아니었음을…….
4품 무리를 상대하는 그 서슬 퍼런 칼날은 이미 칼집을 나온 뒤였다.
슉……!
머리 위에서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전해졌다. 류홍면은 깜짝 놀랐다. 도문 고수가 금세 발끝까지 추격해온 것이었다.
‘산에는 높고 낮은 비탈이 있고, 나무가 가로막고 있으니 검을 부려 비행하는 도사에게서 도망치긴 어렵다…….’
류홍면은 더 미친 듯이 질주하며 손을 뻗어 나뭇가지 하나를 잡았다.
순간 높이 뛰어오른 그녀가 공중에서 몸을 반전시켜 후방 공중의 적을 향해 나뭇가지를 투척했다.
슉!
휙- 휙-
나뭇가지가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강하고 세찬 기기를 품은 나뭇가지는 활보다 몇 배는 더 빨랐다.
그때, 초원진이 손을 뻗어 나뭇가지를 단숨에 쥐었다.
류홍면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맨손으로 내 전력의 일격을 받았다고? 저 자는 도사가 아닌가?’
생각이 번뜩이는 사이, 그녀의 귓가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 후, 주변의 녹색 잎과 나뭇가지가 잇따라 날아올랐고, 그것들은 검기를 부여받아 광대한 검진을 형성했다.
초원진은 검처럼 손가락을 합치고 전체가 하행하도록 움직였다.
슉! 슉! 슉…….
하늘을 메운 마른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검우(劍雨)로 변했다.
땅에는 구덩이가 하나씩 패였다.
철컥!
숲속의 나무들도 끊임없이 검우(劍雨)에 공격받아 쓰러지고 있었다.
류홍면은 억수 같이 쏟아지는 검우(劍雨) 속을 내달렸다. 위기에 대한 무사의 직감만이 의지할 길이었으나 도저히 피할 수도 없는 상황에 몸소 맞섰다.
그런데 검우를 지나치던 그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전방에, 온몸이 금빛인 중년 승려가 양손을 합장하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뒤에 검을 우뚝 세운 소탈한 검객의 모습도 보였다.
* * *
일각 뒤, 세 측은 분리된 장소에서 모였다.
이영소는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않는 정연을 어깨에 둘러메고, 검을 부려 동방완청과 함께 돌아왔다.
항원도 어깨에 류홍면을 메고, 초원진과 비검을 밟아 돌아왔다.
그러나 이묘진만은 어두운 낯빛을 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를 본 이영소가 득의양양하게 허리춤에 손을 얹고 시원하게 웃었다. 이 틈에 또 사형 티를 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하하! 내가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사매, 이렇게 우리 천종의 명성과 천종 성녀의 이름을 깎아 먹는 건가? 고작 정심을 도망치게 뒀다고?”
이묘진은 냉소를 지었다.
“괜찮아. 네 곁에 있는 여인들로 머릿수만 채우면 되거든.”
“…….”
이영소는 빠르게 말머리를 돌렸다.
“정심도 약하지 않지. 4품 전봉의 고수는 확실히 좀 무리였어. 사매님,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이묘진은 콧방귀를 뀌었다.
도문 금단은 계율을 억제할 수 있으며, 이묘진의 영혼 흡수와 다른 원신 영역의 공격은 선사한테도 영향을 미쳤다. 천종의 천인합일 비법으로 선사의 계율과 선공에 맞설 수 있었다.
게다가 이묘진의 근접 공격 능력은 여전히 정심과 같은 차원으로 강했다. 그게 아니면 4품 전봉인 정심은 진즉 되돌아와 천종 성녀를 쫓았을 터였다.
초원진도 충분히 예상했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물을 빠져나간 물고기는 신경 쓸 필요 없소. 우린 이미 적잖이 수확하였으니, 이 도우님은 번거롭겠지만 류홍면의 원신을 흡수해주시오.”
류홍면의 원신은 인종 심검의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육신은 항원 금강신공이 강압적으로 복종시켰기에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일 뿐 곧 깨어날 것이었다.
이영소가 류홍면의 영혼을 뽑아내 가자 초원진이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는 주변에 외부인이 있는지 확인한 뒤에 지서 파편을 꺼냈다.
항원, 이묘진, 이영소도 따라서 지서 파편을 꺼냈다.
방금 교전할 때, 그들은 끊임없이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누군가 지서 파편으로 전서했음을 알았으나 그럴 틈이 없어 꺼내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제일 먼저 전서를 다 읽은 이영소가 어리둥절해했다.
“아, 일호가 진국검을 잃어버렸다고……. 일호는 어떤 인물입니까?”
이묘진은 그를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일호는 대봉 장공주 회경이야. 아주 밉살스러운 여인이지.”
이제는 지서 파편 소지자의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었다. 여태 감감무소식인 팔호 외에는 다들 현실에서 만나 좋은 벗이 되었다.
‘뭐?! 일호가 장공주 회경???’
이영소의 머릿속에 우아한 긴 치마 차림에 청아하고 수려한, 그 존귀한 미인이 떠올랐다. 그 순간, 그는 상심한 마음에 온몸이 다 떨렸다.
‘허칠안 이 개자식이 주변인이랑 연애하네!’
항원이 바로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이 도우님 다치셨습니까? 왜 몸을 떠시나요?”
이영소는 가련한 기색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세상은 늘 나쁜 사람이 천년만년 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정의의 사도는 여러 번 박해를 당하지요. 천지의 법칙이 공평하질 않습니다.”
이묘진이 잠시 그를 위아래로 훑어내렸다.
“상대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본인이 지난 1년간 지서 파편을 잃어버려 허씨가 먼저 목적을 달성하게 돼 버린 게 후회된다는 말입니다.”
비로소 깨달음을 얻은 항원이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허 대인이 아니었대도 회경공주마마께선 이 도우를 마음에 들어 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
이영소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대사님, 폐구선(*閉口禪: 묵언 수행. 불교 용어)을 아십니까?”
항원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빈승은 무승이라 선(禪)은 수행하지 않습니다.”
이영소는 공수로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