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07
905화. 안정감
이내 초원진이 다시 화제를 끌고 왔다.
“이 일을 말합니까, 말하지 않습니까?”
항원과 이묘진은 답하지 않았다. 한 명은 마음대로 하라는 의미였고, 한 명은 일호의 질문을 상대하기 귀찮은 기색이었다.
반면, 이영소는 일호와 잘 알지 못하여 의견을 내지 않았다.
그리하여 초원진이 손가락으로 붓을 대신해 적었다.
[사: 진국검은 허칠안 손에 있네. 그가 막 고조 황제의 법상을 소환하여 불문 보살 법상과 한바탕 싸웠네. 무신교, 불문 그리고 잠룡성 고수를 순조롭게 격퇴하여 견융산과 용기를 지켰네.]소식을 전한 뒤 초 장원은 포로를 휙 둘러보았다.
“심고사와 호요(虎妖) 생기가 곧 끊기니 최대한 빨리 원신을 꺼내자고.”
이 자들은 명색이 4품 고수로서 잠룡성에서도 주요 인물이라 알고 있는 정보가 적지 않을 것이었다.
이영소는 고개를 끄덕인 후 혼천신경과 소통해 걸환단향과 백호의 원신을 방출했다. 그렇게 그들의 원신을 봉해 법기로 거두어들였다.
이후 잠시 망설이던 이영소가 동방완청을 돌아보았다.
“청 누님, 가세요.”
동방완청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랑, 나와 함께 동해용궁으로 돌아가자.”
이를 지켜보는 초원진 등은 이영소의 답변을 예상했다.
‘우린 갈 길이 다르니 더는 서로 만나지 맙시다.’
아마도 이런 류의 말을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영소는 고개를 저으며 예측과 다른 답을 했다.
“내 속세에서의 단련이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누님을 따라 동해용궁으로 돌아간다면 내 사존께서 반드시 찾을 것이고, 그는 나를 잡아 천종으로 돌아가려 할 거예요. 그리되면 난 평생 천종을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는 동방완청에게 자신과 이묘진에 대한 천종의 태도를 알렸다.
동방완청은 그의 말을 믿지 않기에 고개를 돌려 이묘진을 쳐다보았다.
이묘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동방완청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 도도한 얼굴이 잠시 망설임을 보였다.
“그럼 내가 이랑과 함께할래.”
‘아, 이건…….’
이영소는 눈빛을 반짝이더니 기지를 발휘해 금세 핑계를 찾았다.
“나도 청 누님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다만 그 허 도적은 악랄하기 짝이 없고, 마음이 좁아 만약 그가 누님을 본다면 분명히 지독한 수법으로 짓밟으려 할 거예요. 하지만 나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해요.”
이번엔 항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약간 불쾌한 마음에 이묘진과 초원진에게 전음까지 했다.
“이영소 도사님은 허 대인에게 깊은 편견이 있는 듯합니다만.”
초원진은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깊지 않을 수 있겠어? 그리 처참하게 속았는데. 하지만 이건 그저 사적인 푸념일 뿐이고, 처리해야 하는 일은 그래도 적극적으로 처리하니까…….’
이묘진도 무표정하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편견이 깊은 게 아니라 여색에 미친놈들끼리 서로 적대시하는 거지. 지식인들이 서로 경멸하는 것처럼.’
이내 이묘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동방 낭자께서는 안심하시지요. 허씨는 낭자를 상대하기 귀찮아할 겁니다. 낭자께서 양심 없는 짓을 하실 게 아니면, 그와 큰 원한이 있는 게 아니면 얼마든 견융산에 가세요.”
이영소가 홱 고개를 틀었다.
‘이묘진……! 이 천종의 수치! 결국 날 말려 죽이겠다는 거지…….’
서로를 보는 사매와 사형 사이에 무형의 불꽃이 튀었다.
이때, 초원진이 비검을 밟아 천종 두 인재의 은밀한 대결을 깨뜨렸다.
“이제 견융산으로 돌아가자고.”
* * *
정방 안.
회경은 손안의 지서 파편을 주시하며 약간 멍해졌다.
‘진국검이 허칠안 손에 있다. 그가 막 불문, 무신교, 잠룡성의 역적과 붙어 용기와 견융산을 지켰다……. 고조 황제의 법상을 소환했다는 게 무슨 말이지? 불문 보살의 법상이 세상에 나타났다고? 대체 견융산에서 무슨 일이 발생한 거지?’
회경의 마음속 의문은 끊이질 않았다. 언제나 평온하고 차분하기만 한 장공주는 요원한 견융산에서의 전투에 궁금증이 가득했다. 눈앞에 하나뿐인 서적을 절박하게 뒤져 보고 싶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회경은 곧 빠르게 평정을 되찾고, 별 표정 없이 정방을 떠나 편전으로 돌아갔다.
* * *
어서방 내 황족들의 회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공주, 군주들도 다과와 담소를 즐기며 회의가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뒤, 회경은 차를 한 모금 홀짝이더니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잠시 굳은 표정의 임안을 쳐다보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영진산하 사당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발생한 이유를 알았다.”
임안은 눈을 반짝이더니 문득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알았다고?”
회경은 고개를 돌리고 다른 곳을 바라보며 소리를 죽였다.
“진국검은 허칠안 손에 있대. 그가 불문, 무신교, 잠룡성의 잔당과 한바탕 싸웠다는구나.”
‘진국검이 개자식한테 있다니…….’
임안은 호흡이 살짝 가빠졌고, 거의 내뱉듯이 말했다.
“결과는 어떻대? 다쳤나?”
회경은 담담하게 반문했다.
“그가 언제 진 적이 있니?”
그 한 마디에 막 초조해지려던 임안의 마음이 안정적으로 가라앉았다. 모든 걱정과 고민이 순간 다 사라지고 엄청난 안정감이 찾아왔다.
심지어 그녀는 구체적인 상황도 모르고 배후의 중대한 의의도 모르지만 허칠안이 이 일을 하고 있고, 그가 버티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사실 하나로 임안의 마음은 전에 없이 평온하고 안정되었다.
임안은 천천히 숨을 내쉬어 가슴 속 어두운 그림자를 모조리 토해냈다.
다시 임안의 눈초리가 날렵하게 되살아났다.
“오라버니께 알리러 가야겠어.”
회경은 그녀를 잠시간 분명하게 주시했다.
“너한테 특수한 방법이 있는 거다. 허칠안과 연락한 방식은 나와 무관해.”
“안심해.”
임안은 아주 의리 넘치게 회경의 어깨를 툭툭 쳤다.
회경은 숨을 내뱉었다. 다른 동생이라면 이 일을 절대 털어놓지 않았을 테지만, 그녀가 임안에게 솔직했던 이유가 있었다.
첫째론 대국적인 면을 고려했을 때 지금의 대봉은 민간이든 조정이든 안정이 최우선이었다.
다음으론 궁중에 이렇게 많은 이가 이 일을 알고 있으니 숨기기도 어려웠고, 제공들이 기부를 반대하는 구실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일국의 군주인 영흥제는 기껏해야 명망에 금이 가는 정도겠지만, 허신년은 그야말로 끝장이 날 가능성이 있었다.
* * *
임안은 즉각 어서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문 앞을 지키는 환관이 바로 막아서며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
“마마,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폐하께서는 왕야들과 공무를 논의하고 계십니다. 노비를 곤란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임안은 어서방 대문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속히 가서 통보하거라.”
지금 그녀는 많이 성숙해졌고, 훨씬 신중해졌다. 예전이었다면 환관의 기분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을 터였다.
환관은 잠시 망설이다가 엉덩이를 흔들며 어서방으로 달려갔다.
임안의 시선은 그를 좇았다.
황제 곁에 있는 태감 조현진은 머리를 내밀어 임안을 몇 번 쳐다보더니 비위를 맞추려는 웃음과 함께 고개를 움츠렸다.
그 후, 조현진이 직접 달려와 고개를 끄덕이며 예를 표했다.
“마마, 폐하께서 들라 하십니다.”
임안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오라버니가 분명 자신을 들여보낼 것을 알았다. 영홍제는 거의 그녀의 요구를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 * *
임안은 조현진을 따라 어서방 문턱을 넘었다.
선홍색 양탄자 양쪽에 황족들이 서 있었다. 다들 미간을 찌푸린 채 들어오는 임안을 보고 있었는데 그다지 반갑지 않은 표정이었다.
먼저 역왕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어른들이 공무를 논의하는데 뭐하러 들어오느냐? 예의가 없구나.”
그가 임안을 나무라는 건, 동생을 들인 영흥제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영흥제는 숨을 들이쉬더니 인내심을 갖고 말했다.
“임안, 짐이 숙공, 숙부들과 공무를 논의하고 있으니 네 일은 후에 다시 얘기하자꾸나.”
친왕이 손사래를 치며 조현진에게 분부하였다.
“공주마마를 모셔다드리거라.”
조현진은 황궁 안을 한번 쳐다보았다. 임안은 두 황조가 거듭될 동안,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공주였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여지가 없었다.
임안은 사람들의 반응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폐하, 영진산하 사당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있던 연유를 아십니까?”
영흥제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역왕과 사람들을 훑고선 차갑게 말했다.
“짐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백관의 불만을 사서 선조들께서 죄를 물으신 것이지. 짐은 이미 여러 숙공들께 약조했다. 즉시 죄기소를 쓰고 조묘에서 사흘간 잘못을 반성하여 선조의 분노를 가라앉히겠다고!”
“그게 오라버니랑 무슨 상관이라고요!”
임안이 고운 눈썹을 치켜세우고 양쪽의 친왕과 군왕을 노려보았다.
‘황제와 무관하다니?’
역왕 등은 임안에게 무엇이 군자의 책임인지 설명할 가치도 없다 여겼다.
영흥제 역시 동생이 자신을 위해 불평을 늘어놓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도저히 그녀의 소란을 묵과할 수 없기에 정색한 채 말했다.
“임안, 무례하게 굴면 안 된다. 짐은 숙부들과 공무를 논해야 하니 이제 그만하고 물러가거라.”
한 친왕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나섰다.
“선황께선 도를 닦는 데 깊이 빠져 몇몇 공주의 혼사를 소홀히 하셨지요. 폐하, 지금 임안의 혼사를 고려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이제 나이도 적지 않지요. 출가할 때가 됐습니다. 더는 이렇게 경솔하고 무례하지 않도록 말이지요. 정말 조금도 발전하지 않았군요.”
이 시대의 혼례는 성별을 막론하고 한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촉매제처럼 여겨졌다.
임안도 정색한 채 숙부들을 쳐다보았다. 그 눈길이 곱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온후하게 예를 갖춘 후 말했다.
“오라버니, 제가 영진산하 사당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발생한 까닭을 알았습니다. 선조께서 진노하신 게 아닙니다.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영흥제가 깜짝 놀랐다.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깜짝 놀란 그는 아예 탁자를 밀치고 일어나 캐물었다.
“선조가 진노하신 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니? 임안, 제대로 말해보거라,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친왕들도 경악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진국검은 지금 허칠안의 손에 있습니다. 그는 검주 견융산에서 불문, 무신교, 운주의 그 혈통과 한바탕 싸웠고 용기와 견융산을 지켰다고 합니다. 영진산하 사당의 이상한 움직임은 이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임안은 회경이 알려준 소식을 있는 그대로 고했다.
그녀는 견융산 전투의 의의를 제대로 설명했다거나 영진산하 사당의 이상한 움직임과 그 전투의 밀접한 관계를 설명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걸로 충분했다. 지금 이 황족들에게는 이 정도 정보만으로도 진상을 규합하고 분석하기에 충분했다.
‘진국검이 허칠안의 손에 있고, 그가 견융산에서 여러 세력과 맞붙어 용기를 지켰다…….’
영흥제의 눈이 커지고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복잡해졌다.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뒤, 마음에 솟구치는 건 뜻밖에도 강한 안정감이었다.
그 허칠안은 사서에 나오는 한 시대의 훌륭한 장수처럼 변방을 지켰고, 군주인 그가 여태껏 아무 걱정 없이 발 뻗고 잘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자였다니…….’
어서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친왕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