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10
908화. 엉망진창 이영소 (1)
온승필은 무림맹이 직면한 고충을 얘기한 후 상대의 의사를 떠보았다.
“만약 군진을 본부의 핵심으로 삼으면 확실히 인력과 물자를 많이 아낄 수 있습니다. 조 맹주께서는 망설이며 결정하지 못하다가 옛 선조의 의견을 구하러 오라고 제게 명령하셨습니다.”
‘핵심 문제는 경비가 부족하다는 건데…….’
허칠안이 총정리를 했다.
설비가 발달하지 않은 시절, 대규모 토목공사는 물자와 인력을 많이 소비하는 일이었다. 허칠안이 잘 아는 역사에서도 대규모 토목공사로 나라가 망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수나라, 진나라가 바로 그 예였다.
물론 황조가 딱 하나의 이유로 멸망하는 건 아니었다. 분명 다른 요소도 더 있겠지만, 후대에는 그 이유 하나로 덮어 씌워질 수 있었다.
이 사실은 기본 건설 공정이 얼마나 백성을 혹사시키고 물자를 낭비하는지 설명하기에 충분한 사례였다.
잠시 침음하던 노인이 운을 뗐다.
“은자 일은 괜찮네. 산 아래 묻힌 그 은냥들은 이 몸이 책임지고 찾아낼 것이야. 본부는 여전히 산 위에 세워야 하네. 이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허칠안도 그의 뜻을 이해했다. 대란이 곧 닥칠 터였다. 무림맹 본부는 요새처럼 물러나도 지킬 수 있고, 들어가도 공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세가 평탄한 군진은, 적의 기병이 오는 순간 바로 참패할 것이었다.
온승필이 나지막이 말했다.
“하지만 그리되면 무림맹에서 여러 해 저축한 은자가……. 평소라면 괜찮을 겁니다. 형제들이 절약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지금 재해 상황이 곳곳에 속출해 이재민을 구휼할 은자가 없어지면 검주 정세도 혼란에 빠질 겁니다.”
노인이 즉시 말했다.
“그럼 무림맹 형제들과 병사들에게 함께 하라고 하지.”
온승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손이 여전히 부족합니다.”
노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하다가 허칠안을 돌아보았다.
“자네는 어떻게 보는가?”
허칠안이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
“얼마나 간단한 일입니까. 공사를 벌여 이재민을 구제하면 되지요. 이재민을 소집해 본부를 짓는데 은자는 주지 않고 먹을 밥만 주는 겁니다. 이재민을 배부르게 할 수도 있으면서 은자를 아낄 수도 있지요.”
그 순간, 온승필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놀라면서도 몹시 기뻐했다.
“허 은라, 고견이십니다! 역시 허 은라십니다! 이런 묘책을 떠올리시다니!”
‘이게 무슨 묘책이야, 그냥 전통이지…….’
허칠안은 그냥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규칙에 맞지 않네!”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시대에는 공사를 벌여 이재민을 구제한 선례가 없었다. 보통 이재민들은 조정이나 대부호가 베푼 죽을 마음 놓고 먹으며 재해 상황이 끝나고 대지가 따뜻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간간이 작은 규모로 공사를 벌여 이재민을 구제하는 일이 있기는 해도 주류가 되기는 어려웠다.
이내 온승필이 황급히 말했다.
“조상님, 이 계책은 아주 훌륭합니다. 비상시기에는 당연히 비정상적으로 일을 행해야 합니다. 조상님께서도 허락해주시길 바랍니다.”
노인은 이런 사소한 일은 따지기도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가게.”
온승필이 떠난 후, 허칠안이 다시 노인을 쳐다보았다.
“선배님, 지금 저는 이미 3품이고 다음은 합도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합도의 참뜻을 모릅니다.”
노인은 알고 있는 전부를 얘기해주었다.
“합도는 바로 ‘의(意)’의 탈바꿈이네. 난 그걸 자신의 무도를 보완하는 것이라 칭하지. 모든 4품 무사는 한 가지 ‘의’만 깨달을 수 있고, 그게 바로 자신이 선택한 무도야. 의는 도(道)의 초기 형태네. 자신이 걷는 도(道)를 완벽하게 하는 것이 2품 합도의 참뜻일세. 말하면 쉽지만 막상 하고자 하면 어렵지.
난 평생 도법을 꾸준히 갈고닦아 각 도법의 장점을 모아 한데 녹였네. 하지만 여전히 3품 전봉에 걸려 있었잖나. 하마터면 합도 실패로 죽을 뻔했고.”
허칠안이 다급히 캐물었다.
“선배님께서는 어떻게 합도하신 겁니까?”
“수많은 도도(刀道), 참뜻을 체득해야 합도할 수 있네. 하지만 참뜻으로 통하는 길은 여러 갈래네. 내가 홀로 정진하는 동안 몸뚱이는 살덩이가 되었지. 살이 한 점만 없어도 다른 도도를 의미하네. 그건 자신만의 생각이 있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지.”
“구색 연뿌리가 합도하는 걸 도울 수 있습니까?”
“구색 연밥이 만물을 점화할 수 있으니 당연히 연뿌리도 가능하고 심지어 더 강하다네. 그 속에서의 역할은 수렁에 빠진 수천수만의 ‘나’를 점화하여 주도적인 위치의 ‘나’를 확실히 하는 것이지. 연밥은 효능이 충분치 않아 이 효과를 낼 수 없지만, 구색 연뿌리는 가능해. 이 역시 애초 청양이 나 대신 구색 연뿌리를 빼앗은 이유기도 하고.”
허칠안은 노인의 말을 대략적으로 이해했다.
‘구색 연뿌리는 안정제에 해당하네. 촉매 작용과 안정시키는 작용을 해……. 나한테 아직 구색 연뿌리 한 마디가 있어. 음, 남치한테 계속 연뿌리를 재배하라고 해야겠어. 이러면 내가 2품에 발을 들여놓을 때 남치의 영혼을 빼앗을 필요가 없을지도 몰라.’
허칠안은 구색 연뿌리를 건네기 전, 한 마디를 잘라 남겨뒀었다. 당시 그 구색 연뿌리처럼.
이러한 천재지보는 반드시 지속 발전시키는 게 옳았다.
* * *
노인과 작별 후 군진으로 돌아온 허칠안은 뜰을 찾아가 모남치, 시행을 불러냈다. 시행은 오랫동안 부도보탑 안에 갇혀 지내다 보니 기가 허해지고 몸이 약해져 한동안 내보내 보살필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아직 쓸모가 있었다. 시가 선조가 지키는 큰 무덤으로 허평봉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그건 무덤 주인이 절대로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곧 매화색 솜옷 상의에 주름진 하얀 치마를 입은 모남치가 나왔다. 수수한 차림이었지만 그녀에게선 지성과 기품이 흘러넘쳤고, 강렬한 자색도 그녀만의 독특한 정취를 감추지는 못했다.
이때, 허칠안이 가버린 틈을 타 흰 여우가 얼른 이야기했다.
“이모, 저 오줌 마려워요.”
여우는 그대로 모남치 품을 나와 기뻐 날뛰며 뛰어갔다.
* * *
흰 여우는 본명의 신통력을 시전해 흰 형체로 변했다.
군진에서 몇 번 번쩍이던 그 하얀 형체는 금세 건축물 군락에서 멀어져 단숨에 푸르른 초목이 우거진 견융 산맥으로 뛰어들었다.
그로부터 십여 분쯤 지났을 무렵, 깊은 숲으로 잠입한 백희는 견융산 주봉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백희는 잠시 멈춰서 사방을 훑다가 높은 바위를 골라 뛰어올랐다.
아무래도 마마께서 강림하시려면 면이 좀 서야 하지 않겠는가.
* * *
백희는 바위에 웅크려 깊이 잠든 자세를 취했다.
몇 초 후, 그녀의 몸에서 무시무시하고 오만한 의지가 되살아났다.
이 순간 숲속 길짐승과 날짐승이 동시에 입을 다물고 땅에 엎드리거나 날개를 펼쳐 제 머리를 감쌌다. 고등 생물의 위압으로, 근처의 생명 모두가 마치 종말을 만난 것처럼 덜덜 떨고 있었다.
* * *
반쯤 무너진 견융산 주봉.
노인 아니, 구양주는 뭔가를 감지한 듯 미간을 찌푸리고 먼 곳을 보았다.
‘아주 강한 요기다. 허칠안 곁에 있는 그 흰 여우…….’
그는 정신을 집중해 한동안 자세히 살펴보더니 서서히 시선을 거두고 더는 그곳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 * *
포악한 의지가 강림한 뒤, 백희는 두 눈을 떴다. 흰 여우의 한쪽 눈에서는 청광이 흘러나왔고, 한쪽 눈에는 맑고 순진한 새까만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마마!”
백희가 귀염성 있게 외쳤다.
뒤이어 백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엔 그 깜찍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성숙한 자성이 흐르는 목소리였다.
“허씨는 없구나. 무슨 보고할 일이 있니?”
백희의 음성은 자연스럽게 앳된 그 목소리로 되돌아갔다.
“마마, 저 지금 검주 무림맹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막 용기 쟁탈전이 벌어졌는데 불문, 무신교 우사, 운주의 술사가 개입했어요.”
잠시 침묵하던 구미천호가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아주 격한 싸움이었겠구나. 그렇지 않았다면 네가 자발적으로 나를 찾아오진 않았겠지.”
백희는 힘껏 고개를 끄덕이더니 살갑게 이야기했다.
“허 은라가 이겼어요. 이번에 불문은 손해가 막심합니다.”
“결말은 어떻니?”
구미천호의 목소리에 약간 무게가 더해졌다.
“도범과 도난 두 금강이 몰락했습니다.”
백희가 말을 마친 후에도 구미천호는 한참을 침묵했다.
결국 백희가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마마?”
구미천호도 그제야 목소리를 냈다.
“사건의 경과를 상세하게 알려주렴.”
백희는 허칠안에게 들은 정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전했다. 내용은 비교적 간략했는데, 애초에 허칠안이 전한 말이 아주 간략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저 전투의 대략적인 경위만 알려주었었다.
“그 전투가 얼마나 손에 땀을 쥐게 했는지 상상이 되는구나. 도난, 도범의 죽음으로 지금 불문의 고품 전력에는 가나수, 광현과 유리 보살 셋과 도액 나한만 남았구나. 고작 한 달여 만에 불문이 잃은 초범 고수가 지난 500년보다 더 많다니. 역시 국운의 절반을 몸에 짊어진 자다워.”
백희는 마마의 목소리에 기쁨이 배어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에 그녀는 발을 들어 돌을 툭툭 치더니 애교 넘치게 이야기했다.
“십만대산(十萬大山)을 반격해 우리 만요국 영토를 되찾을 때가 됐어요!”
구미천호가 피식 웃었다.
“발정기가 되지도 않았는데 말하는 기세가 이렇게 세다니. 갓 태어난 새끼 여우는 부처도 두렵지 않은가 보구나. 하지만 네 말이 맞다. 십만대산을 탈환할 기회가 멀지 않았지.”
이후 잠시 멈칫하던 그녀는 이 화제를 끊고 개탄했다.
“감정이 그를 위해 천도의 배반을 감내하길 자처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구나. 나는 감정의 목적이 약간 의심스럽다.”
구미천호는 백희의 말에서 허칠안이 배반당했다는 기색은 읽지 못했다.
백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천도의 배반?”
“무신교의 ‘축제’ 신통력으로 선조의 영혼 그리고 자신과 인과가 얽힌 영혼을 소환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같은 경지의 영혼만 소환할 수 있고, 더 높다면 반드시 외부 힘에 의존해야 하지.
위연이 정산성을 공격한 전역에서 그는 유가 성인의 조각칼과 아성유관을 빌려 유가 성인의 영혼을 소환해냈다. 이 때문에 그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했지. 여기서 대가는 운반체로서의 그 사람뿐만이 아니야. 육신이 높은 지위의 힘에 의해 파괴되는 데다 천도의 배반까지 있단다. 이런 방법은 규칙을 위반했기 때문이지. 위연이 무신을 봉인하는 데 성공했는지 아닌지에 관계없이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죽을 예정이었단다.”
백희는 문득 깨달음을 얻고 깜짝 놀랐다.
“그럼 허 은라는……!”
구미천호가 웃으며 말했다.
“고조 황제는 유가 성인이 아니니 반작용이 그리 크지 않아. 명색이 1품 술사인 감정은 짊어질 수 있지. 만약 3품인 허칠안이라면…….”
설령 그의 기운에 힘이 있어 목숨을 지킬 수 있다고 해도 견디기 어려운 무거운 대가를 치를 것이었다.
“그럼 금강법상을 지탱한 도난도 천도의 배반을 받나요?”
백희는 마찬가지로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한 도난금강을 떠올렸다.
“이건 영혼을 소환하는 것에 속하지 않으니 천도의 배반을 받지 않을 거다. 그저 3품 금강으로서 1품 법상의 영향력을 감내하여 사후에 상상하기 어려운 대가를 치르겠지. 수많은 적을 무찌르고 스스로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것뿐이야. 그리고 그가 가나수 보살의 정혈을 감당할 수 있는 건 그 역시 금강이기 때문이란다. 나한이었다면 금강법상으로 구현될 가능성이 없어.”
백희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적인 일에 관한 얘기를 마치고, 백희가 다시 애교 섞인 말투로 물었다.
“마마께서는 해외에서 동족을 찾으셨나요?”
구미천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해외는 넓디넓고, 바다도 한없이 넓어 동족을 찾으려 해도 바다에 빠진 바늘 찾기와 같았다. 그렇지만 난 신마의 후예를 한 명 만났고, 그에게 재밌는 일을 하나 듣게 됐다.”
백희는 매우 흥미를 느꼈다.
“신마의 후예요?”
“운주 백제성에 나타난 적 있는 그자다. 그는 내게 신마 시대의 알려지지 않은 비밀을 얘기해줬고, 신마 후예가 애당초 구주 대륙에서 도망친 진짜 이유를 은밀하게 암시했어.”
그리고 백희가 더 캐묻기 전, 구미천호는 빙그레 웃으며 정리에 나섰다.
“천기를 누설하면 안 되지. 지금 네 수련 경지로는 답을 알게 되는 대가를 치르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좋아, 이제 그를 만나러 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