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12
910화. 엉망진창 이영소 (3)
이 시각, 시행은 동방완청을 자세히 살피고 있었고 동방완청 역시도 시행을 이리저리 훑어보고 있었다.
그러다 두 여인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이랑, 저 여인은 누구지?”
“이랑, 저 여인은 누구죠?”
‘……!!!’
시행과 동방완청의 눈빛이 마주치며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이랑……. 물어볼 필요도 없겠군. 호칭이 모든 걸 다 말하고 있는데.’
순간 이묘진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해 급히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하이고, 이영소야, 이영소야. 드디어 이날이 오고야 말았구나.’
이윽고 원망 섞인 동방완청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랑? 이건 또 어디서 꼬신 작품이지? 나랑 언니로도 모자라 뇌주상회의 그 인간을 꾀어놓고도 여전히 분수를 모르고 만족을 모르는구나! 도대체 바깥에 애인을 어디까지 만들어놓은 거야!”
‘엄청 많지. 성자의 애인은 중원에 쫙 깔려 있는데? 어쩌면 무림맹에도 있을지 몰라…….’
이제 허칠안과 이묘진은 서로 생각이 통하는 엄청난 경지에 이르렀다.
“하! 누가 정부인지는 아직 모르는 거지! 나와 이랑이 변치 않는 사랑을 약조했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너 같은 애송이는 아직 젖도 떼지 않았을걸.”
시행이 미간을 치켜올리고 냉소를 지었다.
이에 냉담하고 강직한 성격의 동방완청은 앞으로 한 발짝 성큼 나왔다.
“이 잡것! 본 궁주가 당장 널 찢어버리겠다!”
시행은 처량한 웃음을 지었다.
“난 이미 포로가 된 몸, 살 수 있는 날이 며칠 되지도 않는다.”
이영소는 가슴이 아파 저도 모르게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행아, 별일 없을 것이오. 허 형이 행아에게 살 길을 열어 줄 것이라 약조했소.”
허칠안은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 시행을 쳐다보았다.
‘대단하다, 순식간에 열세를 우세로 바꾸네. 어떻게 이영소의 연민을 얻는지 잘 알고 있어. 그래도 고작 이 수준이면 우리 동생보단 좀 부족하지.’
어느덧 시행의 눈에선 소리 없이 눈물이 떨어져내렸다.
“난 일찍이 이랑이 방탕하고 무정한 사내임을 알았음에도 이랑과 헤어지기 아쉬웠어요. 한순간도 이랑을 잊을 수 없었지요. 상주에 있을 때, 한평생 나 한 사람만을 사랑하겠다고 맹세했었지요?”
이영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행아, 내가 했던 모든 말은 전부 다 진심이…….”
“이영소! 똑같은 말을 대체 얼마나 많은 여인에게 하고 다닌 것이야!”
하지만 이영소의 말은 금세 동방완청의 호통에 끊겨버렸다.
세 사람의 말다툼은 몹시 격렬했다. 그러나 허칠안, 이묘진, 항원, 초원진, 모남치는 일렬로 나란히 앉아 구경만 하고 있었다. 중재도, 훈수도 두지 않았다. 그저 성자가 이 난장판을 어떻게 수습할지 결과만 궁금할 뿐이었다.
특히 허칠안이 제일 유심히 집중한 모습이었다.
‘몇 수 배워야 해. 앞으로 우리 물고기를 달래려면…….’
이때, 이묘진이 전음으로 말했다.
“우리 사형이 능력은 없는데 여인에게 집적거리는 수법은 아주 뛰어나지. 애초에 사형이 동방 자매를 농락하다 버려서 1,000리를 쫓겼다가 반년 동안 연금된 거거든요.”
초원진이 전음으로 답했다.
“방탕한 자는 반드시 애정으로 망할 것이오. 하지만 칠안이 그날 사천감에서 겪은 난처한 상황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다툼일 뿐이지.”
‘???’
허칠안이 멍하게 초원진을 돌아보았다.
‘구경할 거면 그냥 구경이나 하지, 왜 갑자기 나를 끌어들여……?’
본래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허칠안은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버렸다.
이후 이묘진은 모남치를 힐끗 보곤 일부러 혀를 찼다.
“쯧쯧, 우리 사형과 허씨 꼬락서니가 똑같네요. 둘 다 여색을 좋아하는 놈들이잖아요. 왕비, 그렇지요?”
그 말에, 초원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역시 왕비가……!’
곧 모남치가 미간을 찌푸렸다.
“나랑 무슨 상관이지? 난 그저 허칠안과 짝이 되어 강호를 누비는 것뿐이야. 그가 여색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나랑 무슨 관계라고? 네가 이렇게 나를 떠보는 건 너 역시 그의 정인이라서인가?”
약간 안색이 변한 이묘진은 얼른 대답을 이었다.
“허! 제가 허칠안과 알고 지내는 건 그저 도우라서입니다. 왕비께서는 그렇게 생각나는 대로 함부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결국 허칠안이 서둘러 이 다툼을 끊어냈다.
“묘진, 초 형, 항원 대사. 여러분은 시행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나요? 이 일은 말하자면 긴데 제가 자세하게 얘기해드리겠…….”
“흥미 없네!”
“궁금하지 않아.”
“허 대인, 빈승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
한편, 이영소는 어렵사리 시행과 동방완청을 잘 달랜 뒤, 이제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했다.
사실 그에게는 홍안지기들의 갈등을 중재할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옆에서 얄미운 천지회 개자식들이 구경 중이라 차마 그 방법은 쓸 수가 없었다. 저들 앞에서 면을 깎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를 보고 이묘진이 전음으로 개탄했다.
“우리 사형은 여인을 달래는 수법이 아주 뛰어나지요. 모든 여인이 그를 원망하지만, 또 죽었다 살아날 정도로 그를 사랑합니다.”
허칠안은 남몰래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영소의 여인들은 전투력이 너무 약한 거 아닌가. 이렇게 휴전한다고? 음, 내가 옆에 있어서 다들 경솔하게 굴 엄두가 나지 않는 걸지도…….’
이렇게 볼거리가 끝나자 허칠안도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저는 일이 있으니 두 분께서는 우선 탑에 들어가 잠시 피하시지요.”
부도보탑을 꺼낸 그가 시행과 동방완청을 1층에 거두었다.
이윽고 초원진이 지서 파편을 꺼내 거울 면을 쏟았다. 안에선 사람 형체 몇몇이 굴러떨어졌는데, 바로 류홍면 등의 그 일행이었다.
허칠안이 그들을 한번 훑은 뒤 물었다.
“정심은?”
이묘진은 볼을 살짝 부풀렸다.
“도망치게 놔뒀네. 따로 붙잡지 않았어.”
“아, 그래. 작은 배역일 뿐이오, 상관없소.”
이묘진은 허칠안의 태도에 아주 만족했다. 그녀는 또 내친김에 향낭을 떼어내며 물었다.
“그들 영혼은 내가 자루 안에 봉인했네. 어떻게 처리할 건가?”
이영소도 이 틈에 혼천신경을 허칠안에게 돌려주었다.
허칠안은 혼천신경을 받아 지서 파편에 쑤셔 넣었다. 동시에 귓가에는 혼천신경의 신음이 울렸다.
“아주 상쾌해, 아주 상쾌해. 용기가 더 짙어졌어……. 이렇게 나를 유혹하지 말라고, 나는 주인 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목소리는 점차 희미하게 사라져갔다.
무림맹의 두 용기를 거두니 지서 파편 안 금룡이 점점 더 단단해졌다.
다음으로 허칠안은 향낭을 받아 열었다. 그러자 원신 4개가 나긋나긋 나와 각자의 육신으로 돌아갔고, 걸환단향, 백호, 류홍면, 정연이 잇따라 소생해 눈을 떴다. 그들은 반사적으로 공격 태세를 취했다.
쿵!
허칠안이 발을 들어 밟자 기기가 잔잔한 물결처럼 퍼졌다.
이에 네 사람은 벼락을 맞은 듯, 어떠한 압박을 받은 듯 일순 무의식적으로 취했던 과격한 행동이 중도에 무산되고 말았다.
“여러분, 얘기 좀 하시지요.”
허칠안이 빙그레 웃으며 접이식 의자를 옮겨와 그들 앞에 앉았다.
네 사람 모두 제각기 다른 모습이었다. 과격한 성격의 걸환단향은 오만한 얼굴로 모든 걸 하찮게 여기는 듯했고, 백호와 정연은 굳은 표정이었으며 류홍면은 애처롭고 가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물론 너희가 협조하지 않아도 된다. 기껏해야 내가 좀 번거롭겠지. 너희를 죽인 뒤 영혼을 불러내 물을 거니까.”
이 허칠안의 말이 네 사람의 가슴을 칼로 찌른 것처럼 강한 충격을 안겼다. 죽을지언정 굽히지 않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단숨에 꺾은 말이었다.
먼저, 류홍면이 연약한 소리로 응답했다.
“저는 반드시 알고 있는 걸 모조리 밝힐 것이니 허 은라께서 부디 소녀의 목숨을 살려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이때 이영소가 옆에서 갑자기 화를 돋웠다.
“네가 만약 우리 허 은라의 첩실이 되는 데 동의한다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굳이 서로 상처 줘야 할 필요 있니…….’
허칠안은 이영소의 말을 머릿속 깊이 새겼다. 지금은 아무 말 안 하더라도 나중에 기회를 봐서 성자에게 꼭 복수할 생각이었다.
“정말이요?”
류홍면이 눈을 반짝였다.
“죽이게.”
모남치는 바로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나도 자네를 도와 저 여인을 해결해주지.”
비연 여협객도 타인을 돕는 걸 기쁘게 생각하며 의리를 다졌다.
허칠안은 조용히 눈빛으로 그녀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 뒤, 돌아서 정연 등의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
“나한테 잠룡성의 배치, 위치, 군대 등의 정보를 고하거라. 사실대로 말하면 너희 목숨은 살려주겠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백호가 먼저 침묵을 깼다.
“진짜입니까?”
허칠안이 웃었다.
“약조란 천금같이 무거운 것 아니겠는가.”
백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물으시지요.”
자고로 상황을 잘 파악해 행동하는 이이야말로 뛰어난 자라 할 수 있었다. 본디 4품까지 수행하기란 쉽지 않았고, 목숨을 부지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일단 목숨이 붙어 있기만 하면, 허칠안에게 복수할 여지가 있었다. 그건 오직 살아 있어야만 가질 수 있는 기회였다.
걸환단향 역시 똑똑한 사람으로서 생각이 번뜩였지만, 여전히 오만불손한 표정으로 긍정의 뜻을 표했다. 우선은 협조하면서 진짜 속내는 가슴 깊이 묻어야 했다. 지금은 아쉬운 대로 견디며 유연하게 구는 게 유일한 방책이었다.
이들은 허칠안으로 인해 번번이 좌절했지만, 국사와 허씨의 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럼 이들도 언젠가는 반드시 원수를 갚고 원한을 풀 수도 있었다. 그날이 오면, 허씨의 친한 벗을 모조리 죽일 작정이었다.
“잠룡성은 운주 남부 깊은 산에 있습니다. 성지를 중심으로 72개 산채가 뻗어 있지요. 이 산채들은 군사들이 훈련하고 주둔하는 곳으로, 백성과 상대를 약탈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인원은 정확히 모르지만 한 산채에 적게는 100명, 많게는 1,000명이 있으니 합하면 5만은 되지 않을까요.”
백호가 말을 마치자 걸환단향이 덧붙였다.
“잠룡성 인구는 20만, 무장병은 2만으로 전부 운주 각지에서 약탈해온 백성으로 인구를 채웠습니다. 그중엔 강호 각지에서 운주로 도망쳐 온 인사도 많이 있습니다.”
이묘진은 문득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산적을 보살피는 게 무신교가 아니라 너희 잠룡성이라고?”
허칠안이 고개를 저었다.
“틀렸소. 무신교도 산적을 보살피면서 암암리에 병력을 비축했지. 이게 아마 허평봉이 애초에 나를 도운 이유일 것이오. 무신교의 확장이 그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오.”
그렇다면 왜 전에는 무신교의 행위를 보고도 못 본 척했느냐의 의문이 남았다. 이에 대해 허칠안은 허평봉이 세상의 이목을 가리며 옹졸하게 성장하는 무신교를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고 있었다.
초원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저것 다 따져도 병력이 10만이 넘지 않는군. 반역을 꾀하고 싶어도 좀 어렵겠는데.”
10만에 가까운 정예 대군은 규모만 따지자면 상당히 무시무시했다. 본래 위연이 그 비슷한 수의 군대를 이끌고 정산성까지 진격한 바 있었다.
하지만 대봉은 인구가 많고 세력이 뒤얽혀 있어 무신교보다 그 구조가 훨씬 복잡했다. 초원진이 보기엔 7~8만으론 반란을 일으키긴 역부족이었다.
백호가 말했다.
“이건 잠룡성 직계 군대입니다. 운주 전체에 6만 가까이 되는 군대가 더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운주 도지휘사 양천남이 저희 사람이거든요.”
이묘진이 이 말을 듣고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녀가 운주에서 유격군을 조직해 비적군을 토벌할 때, 도지휘사 양천남은 아주 큰 편의와 도움을 제공해주었다. 그렇게 둘은 좋은 우정을 쌓았었다.
하지만 경성 사건 이후, 허칠안이 정보를 공개한 뒤에야 그녀는 비로소 운주 사건에 연루된 내막을 알게 되었다. 양천남은 온전히 무신교가 육성한 산적을 뿌리뽑기 위해 자신을 이용했었다는 걸…….
양천남은 본인을 드러내지 않고 이묘진이 적진 깊숙이 들어가 표적이 되도록 만들었다. 늘 사람을 진심으로 대했던 이묘진을, 양천남을 좋은 벗이라 여긴 비연 협객의 마음을 완벽히 배반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