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13
911화. 엉망진창 이영소 (4)
“허평봉의 거사에 무슨 상세한 계략이 있나?”
허칠안이 물었다.
류홍면 등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셋 다 그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할 따름이었다.
“국사의 생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허칠안이 또 물었다.
“잠룡성 외, 중원 나아가 조정까지 첩자가 얼마나 더 있지?”
백호가 말했다.
“그건 천기궁 밀정이 맡은 일이라 우리는 모릅니다.”
이때, 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명색이 주인인 허칠안은 즉각 목소리를 크게 키웠다.
“들어오시오!”
뜰 문이 열리고, 알록달록한 옷자락을 팔랑이는 두 미인이 문턱을 넘었다. 젊고 재기발랄한 용용 낭자와 아리땁고 성숙한 그 부인이었다.
안으로 들어온 용용은 문득 말을 하려다 멈췄다. 지금 저 소녀의 마음에 살랑이는 사랑의 바람은 누구라도 다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곧 들고 있던 약재 한 포를 내밀었다.
“허 은라께서 저희 무림맹 때문에 연거푸 고전하며 위험한 상황에 처하셨지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용용, 상처를 치료하는 약재를 가져왔으니 이것으로 조금이나마 성의를 표합니다.”
허칠안은 좌우에서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는 걸 느꼈지만,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웃으며 일어나 약재를 받았다.
“용용 낭자, 고맙소. 경성에서 헤어진 뒤로 품위가 훨씬 깊어졌군요.”
용용은 크게 기뻐하다가 천종 성녀와 평범한 부인이 자신을 차갑게 쳐다보고 있는 걸 눈치챘다. 결국 그녀는 입술 끝까지 올라온 말을 다시 삼켰다.
이후, 시선을 돌리던 용용은 그제야 류홍면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류홍면! 너구나!”
적의가 있으면서도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류홍면은 사제 둘을 쳐다보더니 무신경하게 고개를 돌렸다.
“아는 사이오?”
허칠안이 세 여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름다운 부인은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류홍면은 전임 루주의 제자이자 소 루주의 사매입니다. 그녀는 소 루주와 루주 자리를 놓고 경쟁하다가 실패한 뒤 만화루를 떠났습니다.”
그녀는 만화루를 배반한 일은 언급하지 않았다. 어쨌건 집안 망신 아닌가.
허칠안은 비로소 모든 걸 깨달았다. 어쩐지 전에 옹주 병영에서 류홍면을 만났을 때, 그녀의 태도와 분위기가 좀 낯이 익다고 느꼈었다. 오늘에야 그 해답을 찾은 것이다. 류홍면은 바로 검주 만화루의 제자였다.
그때, 용용은 이영소의 아름다운 미모에 이끌려 그를 가만히 살펴보다가 갑자기 소리를 냈다.
“어? 당신이 이영소?”
“그, 그대는…….”
이영소는 아예 몸 절반을 사매 이묘진 뒤에 숨긴 뒤 우물쭈물 말했다.
“저를 잊으셨나요? 2년 전, 만화루에 손님으로 오신 적이 있지요. 저희 함께 술까지 마셨었는데. 당시 사부님도 계셨잖아요, 맞지요?”
용용이 해죽 웃으며 사부에게 동의를 구했다.
“전에 당신이 검을 부려 하늘로 날아올라 허 은라를 도울 때, 꽤 낯이 익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당신인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영소도 그제야 깨달았다.
“……아아, 알고 보니 당신이군요. 용용 낭자, 몇 년 동안 뵙지 못했는데 무탈하신지요?”
그는 아름다운 부인과는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부인은 이영소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시선을 거두고 부드럽게 말했다.
“허 은라께서 처리해야 할 일이 더 있는 듯하니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떠나기 아쉬워하는 용용을 이끌고 작별을 고했다.
두 사람이 떠난 후, 허칠안은 희씨 집안 구성원이나 잠룡성의 무력 조직 등등 잠룡성의 상세한 정보에 대해 또 질문을 이었다.
그리고 끝으로 그는 약간 망설이다가 말했다.
“허평봉의 아내를 잘 아는가?”
류홍면과 걸환단향은 고개를 저으며 백호를 쳐다보았다.
그런 후, 류홍면이 대답했다.
“그는 백호성숙의 우두머리로, 국사의 직속 세력입니다.”
허칠안은 바로 백호를 쳐다보았다.
즉각 백호의 답이 이어졌다.
“부인은 딱 두 번 본 적 있을 뿐입니다. 부인은 잠룡 성주의 동생으로 집에 틀어박혀 좀처럼 외출하지 않아 지금껏 거처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연금된 것이지요, 허락 없이는 잠룡성을 떠날 수 없습니다.
잠룡성 그 혈통의 희씨 족인이 부인을 매우 증오합니다. 부인은 가족의 죄인이라고 말하지요. 가족이 부인에게 부귀영화를 선사했음에도 부인은 전혀 헌신할 줄 모르고 버, 버린 자식을 위해 가족을 등졌다고요.”
초원진 등은 그 내막을 알기에 순간 침묵했다.
여기선 이영소만이 허칠안의 진짜 신분을 모르고 있었다.
‘20년 동안 연금하여 자유를 잃었구나…….’
허칠안 역시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허칠안의 침묵이 길어지자, 걸환단향이 재촉에 나섰다.
“우리는 이미 아는 전부를 당신에게 다 말했습니다. 그러니 허 은라께서도 약조를 이행해주시지요.”
허칠안은 바로 그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지금 바로 네게 자유를 주지.”
탁!
허칠안이 손바닥으로 걸환단향의 머리 위를 쳤다. 이에 심고사는 두 눈을 희번덕댔고, 원신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이었다.
“너……!”
백호의 안색이 급변했다. 하지만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허칠안의 손바닥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다음 순간, 그 역시 천령감(天靈感)이 부서지며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내 약조는 적에게 주지 않는다.”
허칠안은 손가락을 굽혀 자고 2개를 튕겨냈다. 검은색 유충 같은 자고는 두 시체의 비강을 파고들었고 잠시 후엔 걸환단향과 백호가 다시 일어났다.
걸환단향과 백호는 공허한 두 눈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허칠안은 순식간에 4품 산송장 꼭두각시 두 구를 수확했다. 칠절고의 현재 성숙도로 볼 때, 4품 수사의 수련 경지를 9할 가까이 유지할 수 있었다.
“이게 시고?”
이묘진과 초원진의 얼굴엔 부러움이 가득했다. 이건 단숨에 4품 사사(死士)가 둘이나 생긴 셈이었다.
반면, 항원 대사에게는 그러한 세속적인 욕망이 전혀 없었다.
“너희 둘 차례다.”
허칠안이 창백한 얼굴의 류홍면과 무표정한 정연을 쳐다보았다.
이들은 동방완청이 아니었다. 이영소와 관계가 얽혀 갈등의 경계에 놓여있다거나 깊은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걸환단향 등은 그저 희현 쪽 일원으로 잠룡성 사람인 동시에, 허칠안의 철천지원수였다. 정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껏 허칠안은 죽여야 할 적이 있다면 단 한 번도 우유부단했던 적이 없었다. 가슴을 동하게 하는 미인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었다.
쿵! 쿵!
갑자기 누군가 뜰 문을 두드렸다.
밖에서는 성숙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 은라! 소월노, 뵙기를 청합니다.”
목소리만으로도 초원진과 이영소의 눈이 약간 반짝였다.
“예, 소 루주. 들어오시지요.”
허칠안이 답했다.
소월노는 노란 치마에 요즘 유행하는 머리를 하고 있었다. 또 그녀는 가벼운 비단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반쯤 드러난 좁고 긴 눈이 너무도 아름다워 좀처럼 눈을 뗄 수 없었다.
평소 초원진은 여인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녀를 보는 순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왕비처럼 자신이 뛰어나다고 여기는 여인조차 약간 경악했을 정도였다. 검주 강호에 저토록 빛나는 보배가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뒤, 그녀와 이묘진은 점차 마음이 무거워졌다.
“소 루주, 무탈하신지요.”
허칠안이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소월노는 주변을 한번 훑었다. 끝으론 류홍면 앞에 잠시 시선을 멈추었다가 다시 허칠안을 향해 부드럽게 예를 올렸다.
“매(梅) 아주머니 얘기를 들으니 만화루의 반역자 류홍면이 이곳에서 허 은라의 포로가 되었다지요. 직접 보러 왔습니다.”
“그저 보러 왔다고요?”
허칠안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소월노는 천천히 앞으로 나와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월노, 허 은라께 감히 묻겠습니다. 류홍면을 어찌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죽여야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허칠안이 거리낌 없이 말했다.
소월노는 입을 오므리더니 다시 예를 올리고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허 은라께 부디 류홍면의 목숨을 살려주길 청하옵니다. 만화루에서 처리하도록 넘겨주십시오.”
허칠안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어떻게 처리할 생각입니까?”
“문파의 반역자는 통상 루주와 장로들이 심문하여 사건의 경중에 따라 처벌 방식을 판결합니다. 하지만 류홍면은 본부 습격 사건에 개입하였으니 이 일은 본부와 만화루가 함께 상의해야 합니다.”
소월노는 발음이 분명하고 검주 억양도 없었다. 이 시대에 표준어를 이렇게 또렷이 구사할 수 있다는 건 지식인 중에서도 공부벌레이거나 공들여 열심히 연습했음을 의미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칠안이 바로 핵심을 찔렀다.
“류홍면의 목숨을 살려주고 싶은 것이로군요.”
순간 류홍면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눈빛에는 조롱이 가득 차 있었다.
“소월노, 허세 좀 적당히 부리지. 10년이 넘어도 네 위선과 가식은 하나도 변하질 않았구나. 전에는 사부님에게 보여주려고 그러더니 지금은 외부인과 제자들에게 가식을 떨고 있군. 오직 나만이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허칠안, 죽이려거든 죽여라. 난 죽어도 저 여인 은혜는 받고 싶지 않다.”
‘사연이 있군…….’
본디 여인에 미쳐버린 허칠안은 여인들의 다툼에 금세 흥미가 동했다.
“소 루주의 선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이영소 역시 여인에 미쳐있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웠기에 웃으며 거들었다.
“개미도 목숨을 부지하고 싶은 법 아니오? 류 낭자, 심사숙고하시오.”
그는 여인들 사이에 끼어들고 싶어 의례적인 말을 택했다.
류홍면은 바로 냉소를 지었다.
“저 여인은 내가 자기를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하필 지금 내 목숨을 구하겠다며 좋은 사람인 척 굴고 있다. 그런데도 너희가 저 여인의 의중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저 여인은 날 규탄하는 것이다!”
이에 소월노가 고개를 살짝 젓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류홍면,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되지. 만약 네가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내가 사부님을 대신해 네가 다시 만화루에 돌아오도록 해줄 수도 있다.”
류홍면은 순간 엄청난 우스갯소리를 들었다는 듯 웃었다.
“하하하! 만화루로 다시 돌아가? 좋다, 네가 나한테 루주 자리를 돌려준다면 나도 다시 만화루로 돌아가 너와 앙금을 풀도록 하지.”
소월노는 말없이 잠자코 있었다.
이후로 장장 십여 초간 류홍면이 소월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다 류홍면이 먼저 정적을 깨고 비아냥대며 말했다.
“봐라, 이게 바로 네 위선과 가식이다! 그해 내가 루주 자리를 위해 바깥 사내와 결탁한 걸 보고 넌 내가 염치를 모르고 사내와 간통했다고 말했었지. 사부님께서도 그게 진짜인 줄 알고 내 루주 후보 자격을 박탈하셨고. 나는 결국 화가 나서 만화루를 등지게 된 것이다.
소월노 너는 이토록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도 않는 악인이면서 내게 무슨 시늉을 하고 싶은 것이냐! 다른 사람은 네 진면모를 몰라도 내가 너를 모를까 봐? 이게 누구를 속이려고!”
이내 눈길을 돌리던 류홍면이 허칠안을 보고 문득 시선을 멈췄다.
“아, 알겠다. 나를 이용해 이루려는 목적이 허 은라의 호감을 사려는 것이로구나. 네가 만화루를 관장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지만 아직 혼인하지 않았지. 네 눈이 얼마나 높은지 확실히 알겠구나.
허 은라 정도는 되어야 네 눈에 들어오는 것이겠지. 쯧쯧, 그래. 이렇게 대단한 사내를 낚아 벼락출세할 날이 머지않았구나. 작은 검주는 너 같은 보살을 담을 수가 없겠지.”
‘아, 그건……. 더 이상 말하지 마, 좀 기대되잖아…….’
허칠안은 속으로 자기 자신을 향한 조소를 흘렸다.
뒤이어 모남치와 이묘진이 소월노를 가볍게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