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17
915화. 서막 (3)
이틀 밤낮을 달린 끝에, 희현은 어풍주를 몰아 운주에 먼저 도착했다.
이들은 운주 밖에서 감정과 마주치는 걸 피하고자 육로로 바꾸어 먼 길을 고생스럽게 왔다.
미친 듯 질주해 운주에 순조롭게 진입한 후, 다시 어풍주를 몰아 잠룡성으로 온 것이었다.
운해(雲海) 위, 희현은 뱃전 옆에 서서 산을 끼고 세워진 웅대한 성을 내려다보았다. 눈에는 약간 황홀한 빛이 고여있었다.
집을 떠난 지 고작 2달이었지만 마치 2년이 흐른 느낌이었다.
잠룡성을 떠날 때는 희현을 돕는 고수가 여섯이나 있었다. 그러나 류홍면 등은 행방불명이고, 초엽 도사는 옹주성에서 죽었다.
지금 그의 곁에 남은 건 허원상과 허원괴뿐이었다.
이번 강호행은 그들의 인생에 여러모로 지울 수 없는 강렬한 한 획을 남기고서야 끝이 났다.
* * *
“드디어 돌아왔구나.”
어풍주가 잠룡성 상공에 멈췄다.
허원괴는 누이를 업은 채 뛰어내렸다.
희현은 내친김에 하늘을 타고 올라가 작은 정(鼎)을 꺼내 자질구레한 용기와 어풍주를 청동 정으로 거두었다.
곧이어 세 사람은 자갈이 깔린 완만한 비탈을 따라 산꼭대기로 향했다.
가는 길에 마주친 백성과 병사들 모두가 멈춰서 희현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 열정적인 환대에, 희현도 온화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점점 위로 올라갈수록 백성들은 점점 적어지다가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셋은 이제 낮은 성벽을 지나쳐 황족이 생활하는 구역으로 진입했다.
여기서 희현은 남쪽 성주부 방향으로 향했고, 허씨 남매는 서쪽으로 향했다. 그곳은 천기루(天機樓) 방향이었다.
* * *
초소를 하나씩 지나, 희현은 성주부에 들어섰다.
이윽고 그는 서재에서 아버지와 재회했다.
화려한 자색 옷을 입은 중년의 사내는 거대한 탁자 앞에 손을 얹고, 중원 지도를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그의 이목구비는 단정했지만, 그를 둘러싼 분위기는 위엄이 넘쳤다.
그때, 중년 사내가 계속 지도만 쳐다보며 입을 뗐다.
“나와 국사 그리고 여러 장군이 상의하였다. 군을 지휘하여 북상하고 싶으면 반드시 청주를 쳐야 한다. 하지만 청주는 지금 철통과도 같지. 양공이 질서정연하게 다스리고 있다. 유가 지식인이 나라를 다스리고 군을 다스리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구나. 청주를 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최소한의 인명피해로, 가장 빠른 속도로 점령하기가 어렵지. 네 생각은 어떠냐?”
희현은 탁자 옆으로 걸어가 고개를 숙이고 지도를 훑어보았다.
“청주는 반드시 점령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면으로 강공할 필요는 없지요. 남강에서 길을 빌려 우주를 거쳐 청주 중심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니면 바닷길을 통해 무신교의 영토를 지나가는 방법도 있지요.”
중년 사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제야 아들을 쳐다보았다.
“이번 강주행은 어땠니?”
희현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부끄럽습니다. 허칠안은 정말 너무 무시무시하고 강대합니다. 지금까지도 자질구레한 용기들밖에 모으지 못했어요. 다만 용기가 뿔뿔이 흩어져 중원의 처지는 설상가상입니다. 저희한테는 가장 좋은 결과이지요. 용기의 경우, 수집할 수 있으면 가장 좋고, 수집하지 못한다고 해도 억지로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버지가 웃자, 희현도 약간 가벼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운주에 진입하는 난민을 적잖게 보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군사를 일으키실 생각이시지요?”
중년의 사내는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
“사흘 뒤, 난 운주에서 황위에 오를 것이니 너도 준비하거라…….”
희현은 손이 좀 떨렸으나 애써 흥분을 감추고 허리를 숙였다.
“네, 아바마마!”
* * *
서쪽, 천기루에 딸린 저택.
허원상과 허원괴는 미처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곧장 어머니가 머무는 작은 뜰로 향했다.
외지고 고요한 이곳은 시중드는 하인을 제외하곤 거의 찾는 이가 없었다.
단향목을 태우는 그윽한 방엔, 짙은 청색 상의에 흰 주름치마를 입은 여인이 앉아 있었다. 단정히 머리를 틀어 올린 여인은 부들방석에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명상 중이었다.
“어머니, 저희 돌아왔어요.”
허원상이 문을 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허원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내 단정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눈을 떴다. 그녀는 이제 무거운 짐을 벗어버렸다는 듯 웃으며 이야기했다.
“돌아왔으니 됐다. 너희 둘 많이 야위었구나. 눈빛도 좀 복잡해진 듯한데. 생각건대 적지 않은 일을 겪었을 것 같구나.”
그러다 그녀가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
“그 사람은 만났니?”
* * *
검주 관내의 위수(渭水) 운하. 상선, 갑판 위.
모남치는 외투를 걸치고 푹신한 깔개가 깔린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품에 백희를 안고 한 손으로는 대나무 장대로 낚시 중이었다.
그 좌측에는 탁자 하나, 의자 2개가 놓여 있었다.
탁자에는 숯불이 활활 타오르는 작은 화로에 냄비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는데, 허칠안과 묘재방이 그 냄비에 끓인 생선을 한창 먹고 있었다.
지금 백희는 모남치 품에서 고개만 내민 채 애타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요 며칠 생선 아니면 납육만 먹으니 똥도 안 나오네요.”
잘 먹기만 하던 묘재방이 돌연 욕설을 퍼부었다.
허칠안은 간단히 손바닥을 뒤집어 그를 의자 아래로 내려친 뒤, 백희를 향해 손짓했다.
백희는 곧장 왕비의 품을 벗어나 짧은 네 다리로 바쁘게 이동했다.
허칠안 발 옆에 멈춘 백희는 고개를 젖힌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허칠안은 백희를 안고, 연하고 부드러운 생선 뱃살만 집어 그릇 위에 올려주었다. 백희는 즉각 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조금씩 먹었다.
“진전이 아주 빠르군. 한 달만 더 단련하면 5품 화경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 듯해. 그때 가면 스스로 화를 자초해 최고 수준의 인물을 건드리지 않는 이상, 아무리 천지가 드넓다 해도 넌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다.”
허칠안이 탁주를 한 모금 넘기며 흐뭇한 얼굴을 했다.
이번에 이들은 남하하여 남강 십만대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규모는 사람 셋과 여우 한 마리, 매우 단출했다.
천지회 구성원이 함께하지 않는 이유는 제각기 다양했다.
먼저, 이묘진은 의협심이 강하고 정의로워 의로운 일을 행하길 좋아했다. 마침 재해가 들끓어 각지 백성의 생활이 불안한 상황인데 허칠안 곁에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그녀는 늘 뭔가 해야 한다는 정의감에 불타고 있었다.
또 자유로운 검객 초원진은 온 천하를 집으로 삼은 자라 정해진 거처도 없었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강호를 유랑하며 옛 친구와 만나 은혜를 갚고, 원수를 갚는 게 그의 가장 큰 낙이었다.
그렇게 벗과 술을 즐기고 일이 다 끝나면 또 어느 여정에 올라 그의 검도를 추구하지 않겠는가.
항원은 이묘진과 같은 마음이었다. 그는 언제나 출가인은 마음에 자비를 품고 세상 사람을 구제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영소의 행방은…….
그날, 다들 이른 아침에 일어났지만 성자는 이미 떠난 뒤였다.
천지회 구성원에게는 서신 한 통을 남겼는데, 최근 자신의 심경에 변화가 있어 홀로 길을 떠나 태상망정의 참뜻을 깨닫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천지회 구성원들은 그가 떠날 때부터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이들의 수련 경지가 얼마인데, 주변 몇 리의 움직임쯤은 똑똑히 감지할 수 있었다.
허칠안은 그냥 따뜻한 이불 속에서 성자에게 송별곡을 불러주었다…….
‘그날 밤 당신이 갈 거라는 걸 알았어요.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죠……. 당신이 행낭을 메고 그 영광을 내려놓았을 때 나는 가슴속에 웃음을 간직할 수밖에 없었어요…….’
성자가 떠난 후, 허칠안은 동방완청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시행은 여전히 부도보탑 안에 가둔 채 정기적으로 소환해 씻게 해주고, 먹을 것을 주었고, 묘재방도 정기적으로 꾸준히 변기통을 닦았다.
이때, 상선 책임자 주 집사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묘 대협, 전방이 바로 금수탄(金水灘)입니다. 물살이 잠잠해서 강을 막고 약탈하는 수적(水匪)이 자주 나타나지요. 통상적으로는 은자를 좀 내기만 하면 넘어갈 수 있습니다.”
묘재방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만약 뜻밖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굳이 나서실 필요는 없습니다.”
묘재방은 다시 건방지게 고개를 끄덕이며 ‘고인(高人)’의 풍모를 유지했다.
주 집사는 바로 허리를 굽히고 물러났다.
이 상선은 검주 상회의 것으로, 우주에 장사하러 가는 배였다.
현재 묘재방의 신분은 검주 상회에서 새로 불러들인 객경이자, 상선이 남하할 때 안전을 책임지는 자였다.
반면 허칠안의 신분은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여기서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수행원일 뿐이었다.
* * *
상선이 반시진 항해하니, 물살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다시 일각을 항해하자 배의 속도가 매우 느려졌다.
이제는 배 밑바닥에서 노를 젓는 뱃사공에 의지해 항해할 수밖에 없었다.
쿵! 쿵! 쿵…….
주 집사가 갑자기 무인 십여 명을 데리고 선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다들 칼을 들고 활을 멘 채 사방을 경계했다.
이에 허칠안이 왼쪽 기슭을 멀리 내다보았다.
기슭 옆, 작은 배 수십 척이 물결을 가르고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원래 배들은 기슭에 정박해있던 배였다. 그러다 상선이 평탄한 유역에 진입하자 언덕에 대기하던 수적 백여 명이 즉각 배로 뛰어오른 것이었다.
조그만 배는 양 끝을 날카롭게 한 것으로 길이는 1장(丈)도 채 되지 않고, 너비는 고작 3척(尺)에 불과했다.
노로 쓰는 대나무로 만든 거대한 창은 가볍고 민첩했다. 수적들은 그 노로 열심히 파도를 갈랐다.
“어, 어쩜 저렇게 많은 수적이?!”
얼굴이 창백해진 주 집사는 눈만 크게 뜬 채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묘재방은 그를 가만히 보며 물었다.
“전에는 아니었나?”
주 집사는 정신을 가다듬고 간신히 쓴웃음을 짜냈다.
“이 수로는 제가 몇 번이나 지난 적 있습니다. 예전에 수적은 다 해봤자 20에서 30명이었는데 지금 이 숫자는 아마 100명이 넘겠는데요. 이, 이 식욕이 엄청나겠는데…….”
그때, 허칠안이 문득 물었다.
“이 배들은 뭐라고 하는가?”
주 집사는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음에도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창선(槍船)입니다. 민첩하기로 유명하여 수적들이 자주 사용하는 배지요. 물살이 잠잠한 유역에서는 상선도 이 배들만큼 빠르지 않습니다. 저들이 쥔 창은 저희 배 밑바닥을 쑤시는 데 쓰이지요. 저 창이 유일한 수단은 아닙니다, 배를 태우는 등유도 있어요.”
말하는 사이, 창선(槍船) 무리는 3장(丈)도 채 되지 않을 만큼 가까워졌다.
주 집사는 뱃전 옆으로 가, 숨을 한번 들이쉬곤 공수를 올렸다.
“영웅 여러분, 소생 주문(朱問)입니다. 바다에서는 모두 형제이지요. 나와서 살길을 강구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제가 형제 여러분께 은전 50냥을 준비했으니 부디 가는 길 편히 가시길 바랍니다.”
은자 50냥을 통행료라 하기엔 액수가 상당히 컸다.
허칠안의 야경꾼 1년 봉록이 50냥이었다. 그것도 재직 기간 먹고 마시지 않아야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액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