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18
916화. 비적의 난 (1)
“50냥으로 거지를 내쫓는 건가?”
창선 한 척 위, 문득 조롱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 집사 등은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검은 옷에 외투를 걸친 사내였다.
그는 허리에 칼을 한 자루 차고 뱃머리에 견고하게 서 있었다. 나이는 대략 30대 초반으로 피부가 거칠고 까무잡잡하며 눈빛이 날카롭고 오만했다.
주 집사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각하께서는 야원앙이 아니시지요? 그분은 어디 계십니까?”
주 집사가 기억하기론 이 수적 떼 두목은 ‘야원앙(野鴛鴦)’이라는 무사였다. 그는 연기경 수련 경지에 오른 자로, 규칙을 중시하는 편이라 은자를 주면 바로 보내주곤 했었다.
그때, 주 집사가 뭐라 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사내가 훌쩍 솟구쳐올라 상선 뱃머리를 세차게 내리쳤다.
쿵!
순간 뱃머리가 가라앉아 배에 있던 모두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이내 사내는 유일하게 우뚝 서서 꼼짝하지 않는 묘재방과 활을 메고 칼을 찬 몇몇 호선(護船) 무사를 차례로 훑어보았다.
“허! 무술에 뛰어난 자가 더 있구나. 야원앙? 은혜도 모르는 그 자식을 말하는 건가? 그는 이미 내게 머리가 잘려 강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난 의리가 있는 편이라 그 대신 아내를 잘 보살피고 있지.”
주 집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각하, 은자를 얼마나 원하십니까? 솔직히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사내는 손바닥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펼쳤다.
“이만큼.”
‘500냥……!’
주 집사의 목소리가 더욱 낮게 가라앉았다.
“각하, 농담하지 마십시오.”
배에 있는 모든 물건의 순이익이 500냥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내는 빙그레 웃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는 돈뿐만 아니라 여인도 원한다. 수하에 형제가 이렇게 많으니 여인이 없으면 생활을 할 수가 없더군. 이 몸이 너희들에게 절충안을 제시하지. 여인 한 명당 10냥씩 깎고, 용모가 좋으면 20냥을 깎겠다.”
말하는 동시에 모남치를 발견한 그가 성에 안 찬다는 듯 혀를 찼다.
“쯧, 저런 물건은 은자 5냥. 더 많이는 안 된다. 형제들이 며칠 심심풀이하기에는 충분하겠군.”
모남치는 아무 말 없이 냉소만 지었다.
“강호에 나와 뒤섞이려면 일을 극단적으로 처리하면 안 되지요…….”
본래 좋은 말로 충고하려던 주 집사는 갑자기 목이 메었다.
이 순간, 사내가 일부러 햇빛을 보며 무언가를 암시했기 때문이었다.
피부에 한층 연하게 생긴 신광……. 6품, 동피철골이었다!
‘아, 악독한 자를 만났군…….’
주 집사는 급변한 얼굴로 묘재방을 쳐다보았다.
통상 이런 차원의 고수를 만나면 재수 없다 칠 수밖에 없었다. 주 집사는 묘재방의 수준을 가늠할 순 없지만, 일단 결정권을 그에게 넘겼다. 묘재방이 이해득실을 따져 볼 것이라 기대를 거는 것이었다.
“꾸물거리기는! 이 나리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다!”
사내가 탁자 옆으로 걸어와 술을 한 모금 들이붓곤 휘파람을 불었다.
툭! 툭!
바로 몇 번 소리가 울리고, 쇠 갈고리 십여 개가 뱃전을 휘어 감았다.
수적들은 그대로 밧줄을 따라 기어올랐다. 올라오지 못한 수적들은 배 밑바닥을 향해 긴 창을 겨누거나 등유 단지를 열었다. 사내가 명령만 내리면 즉각 배를 뚫고 태워버릴 심산이었다.
역시, 이들은 장사꾼이 아닌 수적이었다.
도적들의 사전에 흥정 같은 건 없었다.
수적들이 배에 오른 뒤, 검은 옷의 사내가 명령을 내렸다.
“안에 가서 재물을 수탈하고 여인을 모두 데리고 나와라.”
또 그는 모남치를 가리키며 덧붙였다.
“이 여인도 데려가지. 하지만 덤인 셈이니 은자는 계산하지 않는다.”
사내의 말투는 가벼웠지만, 긴장을 늦추지는 않았다. 그의 오른손은 시종일관 칼자루를 누르고 있었다.
수적 둘은 즉시 모남치에게 향했다. 두 사람 모두 칼을 든 몹쓸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펑! 펑!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수적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수적 둘은 모남치에게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돌연 엄청난 힘에 충격을 받고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검은 옷 사내의 안색이 급변한 순간, 허칠안이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다 내려보내라.”
“내, 내려가라. 전부 내려가……!”
검은 옷의 사내는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조금 전 아연실색했던 주 집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수적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 수만에 전임 우두머리를 벤 인물이 평범한 사내 앞에 메추라기처럼 연약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고작 수행원 하나가 이렇게 강한데 묘 대협의 실력은 어떤 수준이란 말인가.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무섭겠군…….’
주 집사 역시도 속으로 엄청 놀랐다.
오는 동안 허칠안이 계속 묘재방의 수행원을 자처한 결과였다.
몰려들었던 수적은 다시 썰물처럼 우르르 몰려갔다.
그리고 검은 옷의 사내는 간절한 애원을 시작했다.
“각하, 부디 관대하게 봐주십시오. 할 말이 있으면 좋게 상의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오늘 제가 고인을 몰라봤습니다.”
그는 상대가 선박의 화물을 원하지 않는 한, 쌍방이 함께 죽을 리는 없다고 믿었다.
본래 그들 같은 수적은 고수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많은 고수가 인명피해나 화물 등을 이유로 타협을 택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렴, 은자로 처리할 수 있는 일에 굳이 목숨을 내놓을 필요는 없었다.
허칠안도 역시나 그를 죽이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어디 인사인가?”
“우주입니다!”
한 차례 문답 후, 허칠안은 이 사내가 손태(孫泰)라는 우주 인사임을 알게 되었다. 손태는 나쁜 짓을 하며 법을 어긴 자로, 우주 관아에 지명 수배당한 강호 산인이었다.
손태는 그렇게 어느 지역에서건 패거리를 만들 수 없어졌다. 조정의 지명 수배령이 각 주에 공유되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돌며 은혜를 갚고 원수를 갚았다. 은자가 부족하진 않았지만, 누구도 곁에 둘 수 없는 철저한 혼자가 됐다.
그러다 올해 겨울, 한재가 도처에 퍼지며 알게 모르게 각 주 사이의 질서가 무너졌고, 더는 이 지명 수배범을 신경 쓰는 이도 없어졌다.
손태는 이때부터 유랑민과 다른 강호 산인을 모으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이 지역 수로를 차지하며 제왕의 자리에 올랐다.
지금 휘하에 수적이 100명이니 꽤 괜찮은 세력인 셈이었다.
‘정세가 발전함에 따라, 계속 이렇게 가다간 비슷한 도적, 수적이 조정을 뒤집는 의병으로 변할 것이다. 아니면 한쪽의 ‘제후’를 할거하고 눈사태의 일원이 되겠지…….’
속으로 가볍게 탄식한 허칠안이 손태를 쳐다보았다.
“살고 싶은가?”
손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칠안은 곧 묘재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을 죽이면 넌 살 수 있다. 나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뒤이어 허칠안이 묘재방에게 말했다.
“이건 자네의 첫 번째 시험이네. 이각 후, 저자의 머리를 들고 오게. 실패한다면 자네와 나 사이 사제의 정은 이로써 끝이야.”
땅! 땅!
허칠안이 손태와 묘재방을 상선에서 걷어찼다.
두 사람은 기슭을 따라 추락했다.
이어서 허칠안은 주 집사더러 닻을 내려 제자리에 멈추라고 한 뒤, 모남치와 나란히 관전했다.
주 집사는 깜짝 놀라 멍하게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수행원이라는 자가 진짜 주인임을 알게 된 것이었다.
“묘재방을 걱정하는가?”
모남치가 허칠안의 굳은 표정을 보고 물었다.
허칠안은 조용히 목소리를 낮춰 답했다.
“만약 제가 위 공이라면 무력으로 금기를 범하는 이 무사들을 어떻게 다스렸을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대봉의 적은 운주 역도뿐만이 아니었다.
이처럼 유리한 형세를 이용해 난을 일으키는 강호인도 있고, 배불리 먹기 위해 가는 곳마다 약탈하는 유랑민도 있었다.
* * *
왕부, 서재 안.
의욕 없는 표정의 왕 재상은 난로를 끌어안고 탁자를 두드렸다.
“신년, 이건 각지에서 보내온 접본이다. 겨울에 들어선 이래, 각지에 비적으로 인한 재난이 심각하구나. 강호 산인은 기세를 몰아 유랑민을 한곳에 모으고 민가를 습격하여 약탈하고 있다. 내우외환이야. 오늘 폐하께서 제공들에게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책문하셨어. 자네는 무슨 의견이 있는가.”
허신년은 왕 재상이 그를 시험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지난 몇 달간 이 비슷한 시험이 심심찮게 있었다.
왕 재상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는 이력이 너무 얕아 왕당 내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없네. 내 몸이 언제 좋아질 수 있을지도 모르고, 좋아지지 못할 가능성도 있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운영해온 조직을 내주어야 하니 정말로 안타깝구먼.”
허신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두를 필요 없네. 사흘 내로만 답을 주면 돼. 가보게.”
왕 재상은 지친 듯 손을 흔들었다.
* * *
오늘 휴가를 낸 허신년은 본래 정혼자와 함께 놀 계획이었다.
그러나 둘은 어쨌든 혼례를 올리지 않아서 사적인 만남은 이각을 넘길 수 없었다. 더 길어지면 정방으로 가서 얘기를 나눠야 했다.
둘만 있는 것도 정말 두 사람만 있는 건 아니고, 늘 하인이 동행했다.
사실 청춘들 사이에 가장 무서운 것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서로의 가려운 부분을 열성적으로 긁어주는 것 아니겠는가.
보통 이 시대엔 혼례를 올린 후 통상적으로 이어지는 절차가 있는데, 그 과정에 이미 초야를 치른 것이 확인되면 그만한 망신은 없었다.
물론 왕가는 허신년의 됨됨이에 안심하고 있지만, 지켜야 할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했다. 이 문제에 있어선 조금의 양보도 없었다.
그리하여 이각이 지난 뒤, 왕사모는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공무를 논하러 아버지의 서재로 떠나는 정혼자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 * *
“재상 대인, 저를 곤란하게 하시는군요.”
허신년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지켰다.
보통 어른이 이렇게 말했다면, 그는 기꺼이 일어나 작별을 고했을 터였다. 하지만 미래의 장인어른 앞에서 허신년은 훨씬 제멋대로 굴었다.
사실 비적으로 인한 피해를 해결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여태껏 조정은 유랑민과 산을 점거해 왕 노릇을 하는 도적 우두머리를 같은 방식으로 대했다. 철저히 토벌하고 복종시켜 당근과 채찍을 함께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적의 난이 화(禍)가 되어 비적을 토벌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국면이 되었다. 조정도 계속해서 이재민을 구휼할 재력과 물자가 없었다. 따라서 이는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라 할 수 있었다.
“모험 정신을 발휘해야 부귀영화를 얻을 수 있다네. 여기 쓰는 게 그리 정확하진 않지만 이치는 같지. 다른 사람이 못하는 일을 해야만 다른 사람이 앉지 못하는 위치에 앉을 수 있는 법. 보게. 폐하께서 기부를 호소하신 뒤, 상황이 많이 호전되었네. 그러지 않았다면 상황이 더 심각해졌을 거야.”
왕 재상도 억지로 내쫓지는 않고 허신년에게 접본을 내밀었다.
잠시 멈칫하던 그가 한담을 나누듯 한 마디 툭 던졌다.
“듣자 하니 최근 장공주마마와 비교적 가깝게 지낸다고?”
허신년이 접본을 들고 뒤적이며 말했다.
“이따금 장공주마마와 학식을 논하곤 합니다.”
왕 재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딱히 표정 없이 말했다.
“장공주께서는 재능이 뛰어나고 타고난 자질이 총명하여 웬만한 사내보다도 낫지. 공주께서 만약 사내로 태어나 이런 난제를 마주했다면, 분명 해결책을 생각해낼 수 있었을 것이야.”
‘내게 장공주를 찾아가 상의하라고 암시하는 거구나…….’
허신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공주마마의 재능은 정말 존경스럽지요.”
대화의 물꼬가 트이자 왕 재상은 다시 뜨거운 차 한 잔을 따른 뒤, 입으로 후후 불며 식혔다.
“검주 무림맹 일은 들었겠지.”
허신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들은 바 있습니다.”
“조만간 세세한 정보도 전해져올 것이다. 이 일의 공개 여부는 사건의 크고 작음을 봐야겠지. 만약 극약이라면 뒤로 눌러놓을 것이다.”
왕 재상의 말뜻은 만약 전쟁의 결과가 좋으면 우선 백성에게 공개하지 않고, 극약 처방이 필요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