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21
919화. 바둑
“허신년은 큰 인재구나. 중시해도 되겠어!”
영흥제는 개탄하며 몇 번이고 반복해서 밀절(*密折: 비밀 상소)을 읽었다. 흥분하다가도 우려가 샘솟고, 이를 갈다가도 고개를 저으며 오래도록 갈등을 반복했다.
“후…….”
마침내 황제는 긴 숨을 내뱉었다.
마음속에선 이미 결정이 선 상태였다.
“화로를 내어오거라!”
영흥제의 분부에 조현진이 즉시 화로를 받치고 왔다.
밀절은 불길의 품에서 까만 재로 변했다.
이 내용이 밖으로 퍼지면 틀림없이 조정과 민간을 뒤흔들 터였다.
영흥제는 이 계책을 채택할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 번째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위험이 너무 컸다.
이 일이 누설된다면, 그의 황위가 위태로워질 것이었다.
영흥제는 아버지 원경제가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처럼 근간이 깊고 두터워 조당 제공을 안정적으로 제압할 수 없었다.
그는 이제야 막 황위에 오른, 채 2달도 되지 않은 풋내기 군주였다.
설령 영흥제가 아버지처럼 오랫동안 쌓아온 위세가 대단한 황제라고 해도 이런 계책을 쓸 엄두는 나지 않았다.
이 일을 위해 심복을 보낸다는 건 사실 약점을 내보내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것도 그를 영원히 회복할 수 없게 만드는 약점이 될 것이었다.
심지어 황제는 심복은 고사하고 친모, 친동생에게도 이런 약점을 쥐여 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심복이 영원히 충성할 거란 보장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 * *
부도보탑 안.
허칠안은 이미 우주에 도착해 부도보탑을 몰아 남강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려 얼른 묘재방을 돌아보았다.
“와서 잠시만 나 대신 두게.”
그는 지금 작은 탁자에 앉아 모남치와 대련 중이었다. 흑돌과 백돌은 서로 양보 없이 맞붙었고, 정세는 변화무쌍하여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었다.
탑령 노승은 깜짝 놀라 멍해진 상태였다. 이 두 사람의 바둑 솜씨가 이렇게까지 비범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탓이었다.
권법 연마를 멈춘 묘재방이 땀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하지만 닦아도, 닦아도 그 난처한 표정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저 바둑 둘 줄 모르는데요?”
하지만 허칠안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남치가 자네를 가르칠 것이네. 바둑 두는 데 딱히 어려울 건 없어. 스스로의 지혜를 믿으면 되는 거야.”
묘재방은 곧 허칠안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 순간, 묘재방은 입이 쩍 벌어졌다.
바둑판은 빈틈없이 빽빽했다. 바둑돌이 거의 바둑판을 다 뒤덮고 있었다. 이 정도까지 두었는데도 아직 승패가 가려지지 않은 것이었다!
허칠안과 모남치의 솜씨를 가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모남치가 묘재방을 보며 말했다.
“자네가 흑을 잡게, 내가 백을 잡을 테니.”
묘재방이 머리를 긁적였다.
“저 할 줄 모릅니다.”
“아주 간단해. 바둑알 5개를 일렬로 만들면 이긴 것이야.”
“그게 무슨 바둑이지요?”
“그게 바로 바둑이라네.”
모남치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이 시각, 허칠안은 창가로 걸어가 지서 파편을 꺼냈다.
전서는 회경이 보낸 것이었다.
[일: 영흥제가 허신년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네. 오늘 사람을 보내 그에게 말을 전했더군. ‘경의 계책은 아주 훌륭하지만, 짐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 여기서 그만두게. 더는 언급할 필요 없어.’라고.]‘영흥제 패기가 부족하네…….’
허칠안은 실망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 뭐라고? 우리가 이렇게 큰 힘을 들여 묘책을 생각했는데 쓰지 않겠다고? 퉤, 영흥제도 아버지만큼이나 꼴불견이군. 둘 다 쓸모없는 황제야.]성난 젊은이는 크게 화를 냈다.
[사: 사실 그 선택을 비난할 건 없네. 사람마다 다 패기가 있는 건 아니니. 처지를 바꿔보면 그의 어려움도 이해할 수 있지. 분명 새로운 군주로서 안정을 추구하고 싶겠지. 신년의 계책을 받아들이는 덴 너무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위험성도 너무 커. 또 화를 일으키는 유랑민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도 않고. 하지만 일단 까발려지면 그는 관리 계층 전체에게 배반당할 걸세.] [칠: 그가 받아들이지 않아도 우리가 직접 행동해도 무방하네. 다만 이러면 효과가 크게 떨어지겠지. 어쨌거나 천지회 일손에는 한계가 있으니.]성자의 전서에 허칠안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오호. 우리 아우님이 아주 적극적으로 활동하네? 얼마 전 사회적으로 매장됐다는 것도 다 까먹은 건가?’
[이: 허칠안, 유랑민을 처리할 다른 계책은 없는가?]이묘진은 사실 회경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회경과 잘 알지 못해서 허칠안을 도구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허칠안은 일단 속으로만 조용히 답변했다.
‘무슨 방법이 더 있겠어? 종전의 계책은 계급 갈등을 격화시켜 일부 계급을 희생하고 대국과 황권을 보존하는 거였지. 다른 계책을 말하자면, 그건 갈등을 전이시키는 건데 대외 전쟁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 하지만…….
대외 전쟁으로 갈등을 전이하는 방식은 사회 갈등이 아직 완전히 격화되지 않았을 때만 적용돼. 현재 대봉의 상황으로 다른 사람을 도발해 국전을 벌이자는 건 나라가 빨리 망하지 않아 불만스럽다고 얘기하는 거랑 뭐가 달라. 이 수가 쓸모 있다면, 숭정(*崇禎: 명나라 사종 주유검의 연호)이 웃겠지…….’
[삼: 사실 있긴 하오. 조정에서 징병하고, 유랑민을 총알받이로 삼아 운주 역당을 상대할 수 있소. 물론, 운주도 틀림없이 이 수를 쓸 것이오.]바로 갈등을 전이하는 방법이었다.
천지회 구성원들은 잠자코 있었다. 그때 가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라는 말로 참담한 상황을 완벽하게 개괄할 수 있을 터였다.
[삼: 우선은 눈앞의 일을 잘 처리합시다. 묘진, 초 형, 이영소를 제외하고 한 사람 더 보내 유랑민을 모으고 산을 점거하여 왕이 될 수 있습니다.]전서하는 동시에 허칠안은 바둑판 앞에 앉아 있는 묘재방을 쳐다보았다.
[칠: 묘재방이겠지요.]이영소가 단숨에 그 인물이 누군지 맞혔다.
[삼: 음, 지금 그의 수준은 좀 부족하지만, 한 달이면 화경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참, 제가 화경으로 빠르게 승직할 수 있는 비결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연신경 이후 쉬지 않고 원신을 단련하여 뇌를 일깨우는 겁니다.] [일: 무슨 뜻인가?]회경이 바로 전서를 보냈다. 그녀는 비결에 대해 관심이 많은 듯했다.
다른 사람의 경우, 초원진도 약간 관심을 보였다.
반면 천종의 이묘진, 이영소는 도문 수사고 항원은 이미 4품이었다.
리나는 평소대로 묵묵부답이었는데, 그녀는 늘 천지회 구성원이 상의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고, 툭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삼: 연신경을 단련하면 뇌를 일깨울 수 있고, 신체와 정신 단련을 통해 신체를 장악하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4품에 더 쉽게 도달하는 것이지요. 전 이미 이 비결을 묘재방에게 실험해보았습니다.] [사: 왜 그런 걸까?]초원진도 반은 무사였다.
[삼: 신체는 원신의 통제를 받기 때문입니다. 원신이 강할수록 신체의 장악력이 더욱 강해집니다.]허칠안은 뇌를 원신으로 바꾸어 천지회 구성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얘기했다. 그러나 사실 원신과 뇌는 달랐다. 뇌는 원신의 저장 장치로 원신이 장대해짐에 따라 뇌도 한 단계 더 발전했다.
하여, 원신이 강한 사람은 보편적으로 신체에 대한 장악력이 막강했다.
[이: 그렇군. 이 얘기를 들으니 원영을 수련해낸 뒤 몸이 제비처럼 가벼워지고 체술(体術)도 따라 강화되는 느낌을 받았던 때가 떠오르는군. 알고 보니 본질적으로는 육신에 대한 내 장악력이 강해진 거였어.]이묘진도 비로소 모든 걸 깨달았다.
보통은 품계가 향상되면서 신체 각 방면의 능력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라 그 까닭을 꼬치꼬치 따져 묻진 않았다. 어쨌건 모두가 학문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일: 허칠안, 자네는 정말 천재군.]이로써 천지회 내부 회의가 끝났다.
허칠안은 지서 파편을 잘 거두고 바둑판 옆으로 돌아갔다. 묘재방은 흥분한 얼굴로 날 듯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이번 바둑 대결을 보고도 탑령 노승이 깜짝 놀랐다. 승부는 좀처럼 결판이 나지 않았고, 둘의 바둑 솜씨는 너무나도 뛰어났다.
“알고 보니 이게 바로 바둑이군요. 허, 전혀 어렵지 않네요. 저는 바둑판 대련은 지식인이나 할 수 있는 일인 줄 알았어요. 학문을 깊이 닦아야만 할 수 있는 놀이인 줄 알았는데, 고작 이 정도였다니!”
묘재방은 세상의 본질을 엿보았다는 듯 즐거워했다.
이에 허칠안은 조용히 심보가 못된 왕비를 쳐다보았다.
‘내 제자는 원래 똑똑하지 않은데, 있는 힘껏 낚다니…….’
* * *
황궁, 덕향원.
회경은 창가에서 책 한 권 손에 쥐고 뜰 안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쉬지 않고 원신을 단련하면 화경으로 더 빠르게 승직할 수 있다라…….”
사실 무사는 연기경 대원만일 때, 일단 연신경으로 순조롭게 승직하기만 하면 그리 오래 관상할 필요가 없었다. 대부분은 기기 연마와 약욕에 시간을 할애해 동피철골로 승직하기 위한 포석을 깔았다.
동피철골경에 이르면 육신을 연마해 화경을 차츰 깨달았다.
모든 품계에는 다른 주안점이 있는데, 이는 모두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회경은 동피철골경으로 승직한 뒤, 일정 간격을 두고 한번 관상할 뿐, 원신의 단련을 소홀히 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이미 동피철골경으로 승직한 상태였다.
그날 어서방 밖 편청에서 뜨거운 차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게 바로 가장 확실한 증명이었다.
그때도 회경은 무심코 수련경지를 드러내는 크나큰 부주의를 보였다.
회경은 곧 책상으로 돌아가 종이 한 장을 찢고, 일련의 이름을 적었다.
「첫 번째 이름: 진영!」
그녀는 먹물을 잘 불어 말린 후 종이를 잘 접고 서재를 떠났다.
“마차를 준비하거라. 본 공주, 저택으로 돌아가야겠다.”
궁녀에게 명한 회경은 바깥 뜰까지 걸어가 시위장을 불러 종이를 건넸다.
“여기 명단에 있는 자더러 저택에 와서 나를 찾으라고 하거라.”
* * *
운주, 도지휘사 관아 감옥.
이곳의 습한 공기에는 썩은 내가 옅게 뒤섞여 있었다.
사로(謝蘆)는 고개를 들어 성벽 공기 구멍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보았다.
그가 이 감옥에 갇힌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그러나 조정은 새로 임명된 운주 포정사이자 버젓한 정3품 고관의 처지를 따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감옥은 습하고 추워 그는 손발이 이미 동상에 걸렸다. 또 오랜 시간 목욕하지 않아서 온몸엔 악취가 나고 피부까지도 약간 짓물렀다.
사로는 본래 장주 지부로 대봉 곡창을 관할하고 있었다. 공적이 높아 민간과 관리 사회에서 적잖이 입에 오르내리는 인물이었다.
하여, 상임 운주 포정사 송장보가 처형당한 뒤 그는 빠르게 부임해 운주의 포정사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때 사로는 운주가 난장판이라 단정한 뒤, 장기전을 치를 준비를 마쳤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는가. 부임한 뒤는 아주 탄탄대로였다. 작당하여 못살게 구는 부하도 없었고, 도지휘사 양천남의 제압도 없었다.
사로는 갈수록 충성심 강한 양천남에 대한 호감이 커졌다.
그렇게 3달이 지난 어느 날, 양천남이 갑자기 연회를 베풀었다.
그 자리에서 양천남은 조정이 부패했고, 탐관오리가 횡행해 백성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가 없다며 통렬하게 비판했었다.
그리고 사로에게는 500년 전 황실이 남긴 혈통의 존재를 이야기하며 그가 잠룡성에 합류하기를 진지하게 청했다. 부패한 황실을 뒤집고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대봉의 정통을 다시 맞지 않겠느냐고.
사로는 일단 동의하는 척한 뒤,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즉시 밀서를 써 조정에 보고했다.
하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이미 감시당하고 있던 뒤였다.
결국 밀서는 보내지지 않았고 그는 그대로 감옥에 갇혔다.
갑자기 어두운 복도에서 갑옷 소리가 울렸다. 이윽고 울타리 밖에 크고 우뚝한 형체가 멈췄다.
갑옷을 입고 칼을 찬 사내는 위엄이 넘쳤다.
바로 운주 도지휘사 양천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