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23
921화. 제공들의 분분한 의견
꿀꺽…….
혈단이 뜨거운 물결로 변해 빠르게 위장으로 흘러들었다.
이제 희현의 피부는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속도로 붉어졌다.
그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배를 감싸 안더니 결국 갑판에 웅크렸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인간의 한계를 넘는 고통에, 희현의 의식은 연기처럼 희미해졌다.
“헉헉…….”
희현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눈, 코, 귀에서도 피가 흘렀다. 피부는 크게 갈라졌고, 혈육은 안에서부터 바깥으로 찢겨 갈라졌다.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육신 붕괴를 막아낼 수 없을 듯했다.
하지만 허평봉은 그저 무관심하게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곧 죽나요? 이게 바로 죽음입니까? 제 육신은 이미 붕괴되고 오장육부를 다쳐 생기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왜 절 구해주지 않으십니까…….”
혼미한 정신에도 희현의 남은 의지는 여전히 사고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더 구원을 청하고 싶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성대까지도 분쇄됐기 때문이었다.
혈단의 힘은 그만큼 횡포해서 보통 사람은 아예 감당할 수도 없었다.
‘허칠안은 이걸 어떻게 버텨낸 거지……? 상상도 가질 않아. 그래, 그자도 버텨내는데 내가 무슨 근거로 안 된다는 거야. 허칠안은 되는데 내가 왜? 너 그냥 이렇게 사라지고 싶은 거야? 그자가 눈부시게 빛나는 걸 보고만 있을 거야? 황위를 도모하겠다는 미래의 패업이 수포로 돌아가도 좋아?’
“헉, 헉헉…….”
희현의 집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그는 입가로 무의미한 비명을 뱉었다. 분하고 답답한 마음에 터져 나온 포효 같았다.
이제 희현의 눈에선 엄청난 피가 흘러나왔다. 눈동자는 이미 다 녹아버려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현재 황금색 용 그림자가 자신의 몸을 휘감는 것도 보지 못했고, 붕괴한 육신이 점점 아물어가는 것도 보지 못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혈육이 끊임없는 붕괴와 회복을 반복하던 그때, 희현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했다. 그렇게 점점 정상적으로 돌아오던 의식은 종국엔 완전히 맑고 깨끗한 상태가 됐다.
그 순간, 희현의 귓가로 웃음기 어린 국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범 영역에 들어선 걸 축하하네.”
희현은 눈을 번쩍 뜨고 다시금 빛과 재회했다.
단순한 태양의 얼굴이 아니었다. 완벽히 새로 태어난 서광이었다.
* * *
남강, 천고부.
천고 할머니는 뜨락이 있는 저택을 나와 한달음에 지붕으로 올랐다.
그녀는 그 위에 굳건히 서서 하늘을 멀리 내다보았다.
“자미제성(紫薇帝星)이 움직였군. 중원의 정통 다툼이 시작됐구먼. 여보, 당신이 예언한 모든 게 이미 다 현실이 됐구려. 고신이 회생할 날이 머지않았어…….”
길게 탄식하던 천고 할머니는 잠시 침묵 끝에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대란이 곧 닥칠 텐데 문지기는 누구일까?”
* * *
정산성, 황폐한 산등성마루 위.
살륜아고는 어린 양 한 마리를 안고 서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산성 주변 산맥은 당시 그 전투에서 그에게 영기를 빼앗겨 황폐한 땅이 되어버렸다. 물론 정산성은 재건을 다 마쳤지만, 이곳은 더는 사람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위연, 자네가 중원을 위해 보탠 이 기운이 곧 막을 내리겠군.”
살륜아고는 허리춤의 새 양몰이 채찍을 뽑아 발 옆을 가볍게 두드렸다.
다음 순간, 한 인영이 부름에 응답했다.
이이포였다.
“두 가지 일이네. 현명금석(玄鳴金石)을 허칠안에게 보내게. 대봉에 가서 유랑민을 모아 데려오게. 정국, 강국, 염국 세 나라 인구를 메워야겠어.”
“네!”
이이포는 고개 숙여 명을 받들고, 바람을 몰아 떠났다.
* * *
영흥 1년, 11월 말.
희씨 후예가 운주 황위에 오르고 국호를 ‘광복’이라 하였다.
이로써 정식으로 대봉을 벗어난 운주는 이제 황조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었다.
이 소식은 허칠안에게도 전해졌다. 회경의 전서를 통해서였다.
때는 그가 이미 남강과 대봉의 경계에 다다랐을 무렵이었다.
* * *
‘와야 할 게 왔군. 감정이 한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모든 변수는 이 겨울에 있었어…….’
허칠안은 이 결과가 하나도 놀랍지 않았다. 언젠가는 이날이 올 것을 알고 일찍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운주는 조만간 뒤집힐 것이며 그 시기는 바로 이번 겨울이었다.
그에게 있어 운주의 격변은 매일 해와 달이 하늘의 색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구미천호와의 약속은 얼른 끝내고 가능한 한 봉마정을 제거해야겠다. 그래야만 실력을 회복해서 더 많은 변화에 대응할 수 있어. 음, 부향의 진짜 모습은 어떨지 모르겠네. 예쁠까?’
허칠안은 곧 지서 파편에서 계획서 한 부를 꺼냈다. 거기엔 그의 목표가 명확히 계획돼 있었다.
‘일단 위 공을 부활시키는 일은 뒤로 미뤄두고, 우선 신수 봉인을 풀어야겠다. 어쨌든 명금석은 지금 나도 찾을 수 없는데, 명금석이 없으면 초혼번의 주간(主杆)을 정제할 수 없으니…….’
계획을 적절히 조정한 허칠안은 모남치를 향해 손짓했다.
“대봉지리지 좀 보여주세요.”
대봉지리지는 모남치가 마치 여행 가는 사람처럼 신나서 산 것이었다. 그녀는 또 이왕 산 것은 제대로 이용하겠다는 것인지 어딜 가든 펼쳐서 관련 민속과 특산품 등을 확인하곤 했다.
“남강도 대봉 영역 내군.”
모남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 마디 중얼거린 후, 작은 보따리 안에서 책을 꺼내 던졌다. 책은 참 가여울 정도로 쭈글쭈글해진 상태였다.
‘책을 조금도 아끼질 않네…….’
허칠안은 가볍게 책을 받아 펼쳤다. 그가 이 대봉지리지를 보려는 건, 중원 지도가 아주 간략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대봉 13개 주를 불규칙한 네모 덩어리로 만들어놨을 정도로 상당히 간단한 지도였다.
‘운주는 바다에 접해 있는데 북쪽으로 가는 지역은 대부분 청주와 인접해있어. 허평봉이 운주를 기반으로 경성을 북벌하려면 반드시 청주를 먹어야 하지. 그렇지만 조정이 숨 돌릴 시간을 벌려면 역당을 운주에서 사생결단하는 게 상책이지. 그러니 이제 급변하는 정세는 청주로 모일 거야.’
* * *
어서방.
영흥제는 자세를 꼿꼿이 하고 대당 내 군신들의 다툼을 듣고 있었다.
경성에도 500년 전 그 혈통의 황족이 운주에서 황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조야 위아래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제공들은 어쨌건 마음의 준비를 해왔기에 꽤 안정적이었다. 아마 한재만 들끓지 않았어도 제 코가 석 자인 조정이 일찍이 남하해 출격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관리 사회 전체, 나아가 민간은 그렇게 차분한 반응일 수 없었다.
경찰의 해가 끝난 후, 대봉은 계속해서 말문이 막힐 만한 큰일을 겪었다.
무신교 정벌로 인한 대군 전멸, 선제의 붕어, 한재까지.
거기다 지금 운주에서 다시금 반란이 일어났다.
이제는 시정 백성들까지도 대란이 곧 닥칠 것임을 직감했고, 그로 인한 엄청난 공포가 생겨났다.
지식인과 직위가 높지 않은 경관은 그 공포와 공황이 더더욱 심했다.
그래서 요즘 경성 학자들은 빈번하게 문회를 개최해 벗들과 운주 역당의 일과 중원 정세를 주제로 토론을 펼쳤다.
“폐하, 운주 역당이 황위에 올라 조야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리고 불문이 역당을 돕는 일을 아는 자는 아주 적지요. 하지만 사실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고, 여기엔 내재된 위험이 막대합니다.”
병부 도급사중이 나지막이 말했다.
제공들의 얼굴은 말도 못 하게 굳어졌다. 지난날의 맹우가 배반하여 적이 된 상황이었다. 이로 인한 공포심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불문의 강대함은 보통 백성들도 깊이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지금, 500년 전 황실의 남겨진 혈통이라고 자칭하는 반란군이 운주에서 황위에 올랐고, 불문의 지지를 얻었다. 이 일이 퍼져나가면 세상은 조정과 대봉 황실에 의문을 갖게 될 것이었다.
물론 그런 의혹이 당장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터였다. 기껏해야 시정, 초야에 비난 여론이 생기는 정도 아니겠는가.
하지만 정세가 불리해질 경우, 비난 여론은 더 증폭될 게 뻔했다.
일단 백성들은 적에게 투항하기 시작하면 심리적 부담이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그들은 여전한 대봉의 백성으로서 투항에도 정통성이 있었다.
그러나 역당이 정말로 지금의 조정을 뒤집는다면, 민간은 아마 대봉을 되찾는 깃발조차 내걸 수 없을지도 몰랐다.
자고로 거사를 일으킨 자와 전쟁을 도발한 자 모두 명분을 매우 중시했다. 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유언비어 확산을 억제해야 합니다. 무릇 공포를 조장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이 일을 논하는 자는 감옥에 넣어 죄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형부상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방법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지 몰라도 유언비어는 반드시 억제해야 했다. 실제로 지난 역사의 수많은 예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본디 소문이란, 심리전의 가장 좋은 무기였다. 방임하고 방치하는 건 적에게 스스로 칼을 건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제공들도 형부상서의 방법이 하책에 속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때, 영흥제가 웃으며 입을 뗐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 막는 것보단 터주는 게 낫지. 사실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인 이상, 이를 백성들에게 자발적으로 공개하면 조정의 저력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지. 짐이 백성들에게 똑똑히 알려주는 것이다. 짐은 불문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정은 서역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이건…….’
제공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는 평소 황제의 침착하고 보수적인 일 처리 풍격과도 맞지 않았다.
형부상서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그도 더는 참을 수 없어 왕 재상을 한번 쳐다보았다. 왕 재상은 매우 침착한 표정이었다.
그 순간, 형부상서는 갑자기 생각이 번뜩였다.
“폐하, 혹시 좋은 대책이 있으십니까?”
영흥제는 제공들을 훑어보았다. 다들 고개를 살짝 숙이고 경청하는 자세를 취한 채, 이따금 고개를 들어 자신을 쳐다보았다.
물론 빠르게 머리를 숙였지만, 눈에 비친 간절함은 숨길 수가 없었다.
황제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약간은 조당을 장악했다는 쾌감이 들었다.
“얼마 전, 허칠안이 검주에서 무신교, 운주 역당, 불문과 싸움을 벌였는데 금강 둘을 차례로 베었다지. 지금 불문에는 더 이상 호법금강이 없다더군. 이는 허 은라의 대승이자 우리 황조의 대승이네.”
순간, 어서방 안이 급속도로 조용해지고 제공들이 동요하였다.
“폐하, 그, 그게 사실입니까?”
류홍이 깜짝 놀라 외쳤다.
비록 여기 모인 자들이 붓대 하나만 잡고 살았다 해도, 대봉 권력의 전봉으로서 불문 호법금강을 모를 수는 없었다.
호법금강, 3품! 3품이 어떤 개념이던가. 지금 대봉도 3품 무사 허칠안 혼자 다 떠받치고 있지 않은가!
영흥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은 빠르게 검주에 퍼질 것인데 거짓이어서는 안 되지.”
황제가 이런 장소에서 내뱉을 수 있는 정보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제공들은 귓가에 폭발하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모두 본인들의 것이었다. 표정에도 충격과 기쁨의 빛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금 이 감정은 대전의 승리와도 맞먹었다. 심지어 더 격한 기쁨이었다.
“폐하! 정보를 공개해주십시오!”
“장합니다. 그럼 불문이 돕는 반란군 소식을 안심하고 알려도 되겠습니다.”
“허 은라는 우리 대봉을 지키는 기둥이니 민심도 안정될 겁니다!”
제공들의 분분한 의견이 한창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영흥제도 이들을 따로 막지는 않았다. 본래 어서방의 소조회가 조회만큼 그렇게 엄숙하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제공들 역시 자신감을 확립하고, 기분을 털어놓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불문이 운주 역당을 돕는다는 사실이 퍼지면 백성들이 두려워할 게 뻔한데, 제공들이라고 당황하지 않았겠는가? 겉으론 산천처럼 덤덤했어도, 속은 당황함이 해조처럼 넘실대고 있었을 터였다.
허칠안이 검주에서 이룬 쾌거는 의심할 여지 없이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위대한 것이었다.
일단 이 권력자 집단부터 자신감을 되찾으면, 크게는 황조 전체의 결속력을 끌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