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25
13화를 읽은 참이었다.
책에는 대주 전·중기에 발생한 한 친왕의 젊은 날 경험이 기재돼 있었다.
그 친왕은 본래 서자였다. 위에는 적황자가 셋이나 누르고 있어, 왕관은 그에게 떨어질 기미조차 없었다.
하지만 아주 공교롭게도 적황자 셋이 일련의 다툼으로 죽거나 황제에게 미움받는 등의 일이 벌어졌다. 결국은 이 서출 황자에게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갔다.
염친왕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회경, 넌 정말 본왕의 좋은 동생이구나. 내가 마음이 급했다. ‘적자’간 다툼이 이제 서막을 열었건만 ‘서자’인 내가 어찌 이렇게 인내심이 없었을까.”
* * *
남강, 십만대산.
쓸쓸한 밤하늘 아래, 끝없이 이어지는 험준한 산에서는 때때로 부엉이의 처량한 울음이 들려왔다.
그때, 2장(丈) 정도 되는 거대한 적색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치고 겹겹이 쌓인 산맥을 스쳐 왔다.
활공하던 새가 어느 산골짜기에 이르렀을 무렵, 갑자기 날개를 모았다.
그렇게 거대한 새는 공중에서 급격히 변화하였다.
깃털은 몸속으로 움츠러들고, 날개는 인간의 팔이 되고, 날카로운 부리는 입술이, 머리는 공처럼 부풀어 평범한 사람의 머리가 됐다.
곧이어 새가 산골짜기에 낙하했을 때는 이미 용맹한 사내가 되어 있었다. 좁고 긴 눈도 완벽한 사람의 것이었다.
이 산골짜기엔 석굴이 있었다.
석굴 밖은 짐승 가죽을 두른 여인 2명이 지키고 있었는데, 다들 건강하고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는 여인들이었다.
“홍영호법(紅纓護法)을 뵙습니다!”
여인 둘이 즉각 허리를 굽히고 예를 갖췄다.
“야희 장로의 상황은 어떠한가?”
조요 홍영이 동굴 깊은 곳을 보며 물었다.
좌측 여인이 바로 답을 올렸다.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저희가 이미 사람을 보내 청목호법(靑木護法)을 모시러 갔습니다.”
홍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야희 장로가 누구한테 맞아 다친 거라고?”
우측 여인이 답했다.
“야희 장로께서 어젯밤 남법사(南法寺)에 정보를 정탐하러 가서 마지막 확인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리 중상을 입고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의식을 잃은 뒤 아직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좌측 여인이 덧붙였다.
“야희 장로께서 입은 부상이 아주 이상합니다. 몸속 힘이 계속 생기를 없애는데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도 내일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청목호법께서 오시기만을 기다릴 수밖에요.”
‘홍영’이라 불리는 조요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때, 갑자기 우렁차게 울부짖는 소리가 사방의 들판을 뒤흔들었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남쪽 산봉우리 위에 서 있는 흰 원숭이 한 마리가 보였다. 원숭이는 고개를 젖히고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저 밉살스러운 원숭이는 왜 온 거야…….’
홍영은 몹시 싫다는 기색을 보이다, 순식간에 웃는 얼굴로 탈바꿈했다.
쿵!
나무 사이를 도약하던 원숭이가 산골짜기에 당도했다.
“원호법(袁護法), 드디어 자네가 왔구먼.”
홍영은 친절한 웃음으로 맞았다. 그는 야희 장로 휘하의 3대 호법으로 언제나 ‘동료’ 사이의 화합을 매우 중시했다.
원숭이는 착지하자마자 장신의 호리호리한 사내로 변했다. 하지만 넓은 이마에 두툼한 입술 등 전체적인 얼굴을 보면 아직도 인간과 원숭이 경계에 있는 듯한 용모였다.
다만 그다지 썩 훌륭하지 않은 얼굴엔 굉장히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쪽빛 눈이었다. 그의 눈은 세상의 모든 걸 비출 듯 맑고 투명했다.
흰 원숭이가 빙그레 웃는 홍영을 쳐다보았다. 쪽빛 눈은 마치 속마음을 다 꿰뚫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가 무미건조한 어조로 첫마디를 뗐다.
“자네 속마음이 말해주는데? 정말 재수 없네, 이 지긋지긋한 원숭이는 어째서 아직도 죽지 않았을까.”
갑자기 표정이 굳어버린 홍영은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하하! 하, 하하하!”
그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답을 찾고 있던 찰나, 돌연 산골짜기의 나무들이 심하게 흔들렸다.
빽빽하게 우거진 수풀이 통째 뒤흔들리고 있었다. 꼭 거인이 되살아나 흉악하게 날뛰는 것만 같았다.
그때, 흔들리는 수풀 사이로 눈부신 초록빛이 흩날렸다. 까만 밤하늘이 반딧불이로 가득한 은하수로 변한 듯했다.
빛들은 곧 높이 솟은 거목의 허영으로 응집되었다.
거목의 나뭇가지와 잎은 밖으로 겹겹이 뻗어, 구름에 온통 뒤덮인 모양이었다. 아니, 산골짜기 전체가 나뭇가지와 잎사귀에 뒤덮인 듯했다.
이내 거목 허영이 녹색 빛을 흩뿌려 녹색 머리, 녹색 수염, 녹색 눈썹의 노인을 만들었다. 끝으로 노인의 손엔 넝쿨을 휘감아 만든 지팡이가 생겼다.
“청목호법!”
원숭이, 붉은 새 그리고 여인 둘이 동시에 예를 갖췄다.
온몸이 녹색 빛인 노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부드럽게 물었다.
“야희 장로께서는 안에 계시는가?”
홍영이 황급히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야희 장로께서 남법사를 살피시다가 뜻밖의 사고를 당해 상황이 위급합니다.”
‘빼낼 수 없는 힘…….’
청목호법은 가슴이 무거워졌다.
“그래, 얼른 본 호법과 들어가서 보자고.”
좌측 여인은 상냥하게 예를 갖췄다.
“호법 여러분들, 안으로 드시지요.”
* * *
호법 셋은 여인을 따라 동굴로 들어갔다. 널찍한 복도, 석벽에는 횃불이 꽂혀 있고, 20보마다 미인이 한 명씩 서 있었다.
‘역시 호족(狐族)답군. 하나같이 최고의 미인이야…….’
홍영은 자요(*雌妖: 암컷 요괴)들의 미모에 감탄이 나왔다.
그때, 흰 원숭이 호법이 나지막이 말했다.
“역시 호족답군. 하나같이 최고의 미인이네…….”
홍영은 바로 얼굴이 굳어선 픽, 웃음을 흘렸다.
“원호법은 기분파군.”
그러자 흰 원숭이가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자네 마음의 소리를 말한 건데.”
“…….”
* * *
십여 장(丈) 깊이 복도를 지나니 전방에 거대한 석굴이 있었다.
바닥에는 짐승 가죽이 깔려 있고 둥근 탁자와 둥근 의자, 병풍, 분재 등의 물품이 놓여 있었다. 평범한 인간 여인의 규방과 다를 것이 없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휘장이 드리워진 큰 침상이었다. 조각된 여우는 생동감이 빼어나서 금방이라도 여기저기 뛰어다닐 것만 같았다.
전체적으로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침상이었다.
“청목호법, 얼른 보십시오.”
침상 옆에 서 있는 자요가 즉시 침상 휘장을 젖히고 초조하게 말했다.
청목호법은 만요국의 의술 명인으로 단약 정제, 약초 재배에 능했다. 그가 의술 연구에 전념할 때 술사 체계는 아직 탄생하기도 전이었다.
침상 위엔 아름다운 여인이 누워 있었다. 얼굴은 갸름했고, 이목구비는 그린 듯 수려했다. 하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얼굴색은 창백했고, 매우 고통스러운 듯 혼수상태에도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청목호법은 침상 옆으로 가, 가벼운 갖옷 안에서 그 여인의 새하얀 팔목을 쥐었다. 이후 여인의 몸으로 투명한 녹색 기운이 흘러 들어갔다.
파~
순간 여인의 몸에서 금빛이 튕겨 나오더니 청목호법을 날려버렸다. 그의 몸은 빠르게 부서져 녹색 빛으로 변했다.
그러다 삽시간에 빛은 다시 노인으로 응집되었다.
“살적과위!”
청목호법의 얼굴이 굳었다.
“뭐라고요?”
깜짝 놀란 조요 홍영은 안색이 급변했다. 그도 이제야 제거할 수 없으며 계속 생기를 잃는다는 그 말을 이해했다.
그는 만요국 신세대 호법으로서 그해 불요대전(佛妖大戰)을 겪지 않았지만, 20년 전 산해관전역에는 참가했었다.
살적과위는 나한 3대 과위 중 가장 공격적인 과위로 보살 아래 불문에서 가장 강한 살해 수법으로 유명했다.
살적과위의 가장 큰 특징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