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28
925화. 반보 무신 (1)
허칠안은 백희의 안내를 따라, 십만대산 변두리 지대에서 어공을 했다.
십만대산의 핵심 지역은 그해 만요국 수도, 만요산(万妖山)이었다. 그 만요산은 현재 ‘남국(南國)’으로 이름을 바꾸어 남법사가 통치하고 있었다.
27채 대성은 ‘남국성’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쳐 있었다. 또 십만대산 경계 구역엔 도시와 마을이 없는데 이 산지가 매우 광활하기 때문이었다.
불문에는 모든 지역을 점령할 만큼 그렇게 방대한 인구가 없었고, 지형으로 인해 인족이 거주하기에 부적합한 곳이 많았다.
이 역시 만요국 잔당이 잠입할 여지가 되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많은 요족이 십만대산에 몰래 잠입해 변두리 지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불문도 이를 잘 알지만 줄곧 아랑곳하지 않았다. 인자해서가 아니었다. 실제로 방법이 없어서였다.
자고로 전쟁 중 가장 힘든 것이 후속 유격전이었다. 성을 공격하고 진지를 철수하는 것보다 더욱 난이도가 높았다.
영토를 잃은 직후, 남요(南妖)들은 거리낄 것 없이 제멋대로가 되었다.
백희는 십만대산 변두리 지대에 요족으로 구성된 마을이 총 12개라고 했었다. 그중 어떤 이들은 천연 석회굴 안에, 어떤 이들은 험준하고 깊은 산속에, 어떤 이들은 물살이 센 하류 근처에 있다고 말했다.
이 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남루하여 언제든 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 이것들의 장점은 어느 정도 호소력을 지녔다는 것인데, 상징적 건축물에 해당하는 건물들로 짧은 시간 내 만요국 족인을 모을 수 있었다.
‘군사 기지에 속하니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이 마을들은 병력을 빠르게 조직할 수 있겠네.’
그 순간, 허칠안이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지금까지 오는 내내 그는 단 한 번도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십만대산은 아마 구주 대륙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산지 지형이겠지. 여긴 인간이 살긴 적합하지 않아. 독충, 맹수, 독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어. 어쩐지 요국이 됐더라니. 십만대산은 사실 인간이 대규모로 살기엔 부적합해. 경작할 땅이 부족해 사냥으로 생계를 꾸릴 수만 있겠지. 그럼 인류 문명도 수렵 시대로 되돌아가게 되는 거야.
그해 불문이 남김없이 총출동해 남요를 멸했었지. 이건 사실 전쟁의 핵심 목적에는 어긋난 거야. 여기엔 반드시 다른 진정한 목적이 있을 텐데, 그게 바로 기운인 거지. 구미천호도 말한 적 있어. 십만대산에는 구주 대륙 요족의 기운이 응집돼 있어 신수를 봉인할 수 있다고.
대담하게 추측해보면 불문이 모든 걸 고려하지 않고 만요국을 멸망시킨 진짜 목적은 기운을 약탈하기 위해서일까? 그게 사실이라면 기운이라는 물건은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건데. 무신교와 불문이 중원을 물들이려 한 것도 아마 기운 때문이겠지. 하지만 유가 성인이 그들을 봉인했고, 술사 체계는 기운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허칠안은 조용히 자신이 잘 아는 정보와 비밀들을 떠올렸다. 무지몽매하지만 또 그 사이로 영감이 터져 나와 진상에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무시무시한 진상이…….
하지만 그게 너무 지나치게 모호해서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
이때, 백희가 발을 들어 저 멀리 산골짜기를 가리키며 환호했다.
“저기예요!”
* * *
“야희 장로께서 다시 의식을 잃으셨군요.”
동틀 무렵, 홍영은 산골짜기 남쪽 절벽 꼭대기에서 호박색 눈으로 먼 산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는 야간에 관측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났다. 설령 달빛 하나 없는 캄캄한 밤일지라도 고공에서 광활한 밀림 속 목표를 포착할 수 있었다.
야희는 남법사에서 아소라를 마주쳤다. 상대가 다시 실마리를 좇아 찾아오지 않을 거라 단정할 순 없었다. 경계는 필수적인 원칙이었다.
나무 아래, 흰 원숭이가 맑고 투명한 쪽빛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자네 마음이 내게 알려주는군…….”
“멈춰, 멈춰! 타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아주 예의 없는 짓일세.”
홍영은 황급히 말을 끊고 최대한 선하고 온화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억지로 정신을 붙잡고 속에서 심한 쌍욕이 나오지 않도록 자중했다.
흰 원숭이가 천천히 말했다.
“자네는 점점 인족 관료 같아지는군. 좌우로 영접하길 좋아하고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고. 하지만 자네는 자신이 자랑스러운 적조(赤鳥) 종족이자 하늘의 왕이라는 걸 잊은 건가?”
“자네 말이 맞네. 이게 내 단점이지. 꼭 고칠 걸세.”
홍영은 남의 비판을 잘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그때, 흰 원숭이가 다시 이야기했다.
“하지만 자네 마음이 알려주고 있어. 인류 관료의 그 수단으로는 빠르게 요맥(妖脉)을 쌓을 수 있고, 관계를 맺어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령 득 보지 못한다 해도 나쁠 건 없으니. 역시, 어리석은 원숭이는 산에서만 대왕으로 불릴 수밖에. 저속하군!”
홍영의 턱이 바르르 떨렸다. 그는 본래도 원호법을 좋아하지 않았다. 저 못난 원숭이는 사람 마음을 꿰뚫어 보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다행히 홍영도 낯가죽이 얇진 않아서,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여태껏 요족으로서의 풍부한 경력도 그의 낯가죽을 꽤 두껍게 쌓아놓았다.
“청목호법이 말씀하시길 야희 장로가 살 수 있는 날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더군. 국주께서 말씀하신 조력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네만.”
흰 원숭이는 잠시 생각 끝에 답했다.
“20년 전, 산해관전역에서 우리 만요국과 동맹을 맺은 건 무신교, 북방 요족, 오랑캐, 고족이네. 북방 요족은 우리와 같은 갈래는 아니지만, 같은 요족이니 가능성이 아주 크지. 무신교와 고족의 고수도 가능성이 있네.
음, 국주께서 그자가 야희 장로를 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무신교 고수일 가능성이 가장 크겠군. 주술사의 혈령술이 살적과위의 힘을 없앨 수 있을지도 모르니.”
야희 장로와 허칠안의 관계 그리고 구미천호의 계획은 그들 같은 호법이 알 수가 없었다. 딱 잘라 말하자면 애초에 그럴 자격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대봉 허 은라라는 인물을 잘 알지도 못했다.
남강 십만대산과 대봉은 그만큼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서로 왕래하지 않아 소식이 막혀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홍영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누군가 접근했네!”
그는 저 멀리서 밤하늘을 죽일 듯이 주시하고 있었다.
몇 초 뒤, 홍영이 또 갑자기 소리를 냈다.
“어? 백희 장로?”
기운이 점차 오르던 흰 원숭이가 의아한 듯 고개를 돌렸다.
“백희 장로께서 사내 한 명을 데리고 돌아오셨네.”
홍영이 설명했다.
“사내?”
“응, 주술사가 아니라 무사인 것 같던데…….”
홍영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사?!”
흰 원숭이는 점점 곤혹스러워졌다.
홍영은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그자가 바람을 부리는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이제 거리는 두 사람이 있는 산과 100장(丈)도 채 되지 않았다. 이 거리면 흰 원숭이도 제대로 볼 수 있는 범위였다.
툭…….
산에 착지한 허칠안이 조용히 눈앞의 두 요족을 훑었다.
이윽고 허칠안 머리에 엎드린 백희가 기분 좋게 앞발을 흔들었다.
“홍영호법, 원호법.”
백희가 앳된 아이 같은 소리로 소리쳤다.
홍영호법은 눈이 커다래졌다.
“백희 장로, 어째서 여기에 계십니까?”
“나는 마마의 명을 받고 야희 언니를 도우러 남강으로 돌아왔네.”
백희가 명랑하게 말했다.
“이분은…….”
홍영과 흰 원숭이가 동시에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머리만 좀 있다면 누구나 알았다. 국주가 말한 지원병이 백희가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백희는 아직 새끼 여우일 뿐이었다.
허칠안은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뒷짐을 진 채 있었다. 냉랭한 건 아니지만 딱히 열정적이지도 않아서 오히려 더 노련한 고수 같은 면모가 비쳤다.
“이분은 허 은라네, 대봉의 허 은라. 들어본 적 있는가?”
백희의 소개에 홍영과 흰 원숭이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곧 홍영은 문득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귀하께서 바로 경찰이 있던 해에 궐기한 대봉 풍운아이자 예언사라고 불리는 사건 해결의 기재?”
흰 원숭이도 금세 거들었다.
“감옥에 있으면서도 기이한 사건을 간파할 수 있고, 운주에서 홀로 수만의 반란군을 막은 허 은라?”
‘……뭔 소리야, 다 언제적 얘기를. 너희 다 어제 인터넷 개통했어?’
허칠안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에 백희가 그의 귓가에 엎드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두 호법은 남강 사무만 책임질 뿐, 지금껏 십만대산에서 나오지 않아 대봉 일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 순간, 흰 원숭이가 굳은 얼굴로 이야기했다.
“허 은라께서 기이한 사건을 간파하고, 운주에서 반란군을 막은 건 작년 말의 일 아닙니까. 그게 그렇게 고리타분한 이야기입니까? 또한 왜 마을에 그물망을 관통하는 것이지요(*허칠안이 속으로 ‘어제 인터넷 개통했냐’라고 한 말을 원호법이 옛 식으로 해석한 것)?”
허칠안은 깜짝 놀랐다.
“제 생각을 꿰뚫어 볼 수 있군요.”
흰 원숭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마음을 꿰뚫어 보는 건 우리 종족의 천부적인 신통력입니다. 그리고 저는 어릴 때 요노(妖奴)로 두 선사(禪寺)에서 복역하면서 남몰래 불문의 타심통을 익혔지요.”
‘불문 타심통에 사람 마음을 아는 천부적인 신통력이 더해졌다고?’
허칠안은 흰 원숭이를 자세히 살피다가 얼른 생각을 거뒀다.
허 은라가 색마라는 사실은 무조건 대외적 비밀에 부쳐야 했다.
다행히 3품의 정신력으론 생각을 다잡고 외부인이 엿볼 수 없도록 하는 것쯤은 가능했다.
“야희 언니는?”
흰 여우가 물었다.
홍영은 근심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
“야희 장로께서 어젯밤 남법사를 남몰래 정탐하러 갔다가 수라왕의 막내아들 아소라에게 맞아 다쳤습니다. 그 아소라는 살적과위를 깨달아 그 힘이 매우 포악하여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야희 장로께서 살 수 있는 날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마마께서 말씀하시길 조만간 도와줄 고수가 올 거라고 하셨는데…….”
홍영이 허칠안에게로 고개를 돌려 숭배와 존경의 빛을 드러냈다.
“설마 허 은라입니까?”
그때, 곁에서 흰 원숭이가 담담하게 말했다.
“홍영의 마음이 제게 말하는군요. 이 자식은 아니겠지. 기껏해야 4품인데 야희 장로를 구하는 건 둘째치고, 아소라 간에 기별도 안 가겠는데.”
“…….”
낯빛이 변한 홍영은 간신히 어색한 웃음을 끌어모았다.
“원호법은 뭐든 다 좋은데 절에 너무 여러 해 동안 있느라 정직하고 솔직한 기풍에 물들고 말았습니다, 하하하…….”
허칠안은 속으로 조용히 두 호법에게 꼬리표를 달았다.
‘사교에 능한 요조 하나와 남의 속마음과 생각을 꿰뚫어 볼 수 있지만, 과하게 정직하고 솔직한 원숭이라…….’
“저는 야희 장로와 오랜 벗입니다. 절 야희 장로에게 데려가 주십시오. 또 제 수행원이 뒤에 있으니 번거롭겠지만 홍영호법께서 마중 나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수행원의 이름은 묘재방이라고 합니다.”
두 호법도 연대 책임을 지는 백희가 있으니 허칠안을 믿었다.
그렇게 흰 원숭이가 허칠안을 데리고 산골짜기로 들어갔고, 홍영은 다시 붉은색 거대한 새가 되어 날아갔다.
두 호법 모두 국주가 말한 조력자가 이 대봉의 은라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이 은라 배후의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는 그저 그 고수가 파견한, 길의 상황을 조사하는 앞잡이에 불과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