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30
927화. 반보 무신 (3)
야희는 흰 여우의 머리를 문질러주곤 다시 말을 이어갔다.
“허랑이 마마께서 청해온 지원병인가요? 저를 치료한 사람이고요?”
그녀는 분명 묻고 있었지만, 속으론 확신이 있었다. 어쩐지 마마께서 상대를 잘 모시라고 당부하더라니. 허칠안이 그 모든 해답이었다.
허랑은 마마가 아주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절대 마마의 노여움을 살 리가 없었다.
이때, 허칠안이 계속되는 인사를 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음, 신수의 나머지 사지 상황에 대해 좀 얘기해보시오. 내 일은 나중에 다시 자세히 다 말해주겠소.”
“저희가 불문에게 통제당하는 많은 요노를 동원해 남강과 서역을 오가는 상인 일부를 매수했어요. 막대한 시간을 들여 신수의 나머지 사지가 봉인된 구체적 위치를 알아냈죠. 불문은 우리 요족 길들이기를 좋아해요. 요족을 탈것과 일손으로 삼지요. 수련경지가 높은 족인은 정기적으로 경을 듣고 세뇌당해요.
하지만 수련경지가 보잘것없는 족인은 정력을 소모해 도화하길 원하는 이가 아무도 없어서 통상적으로는 무력으로 겁을 줘요. 이 족인이 저희가 암암리에 연락해 반란을 기도할 수 있는 대상이에요.
신수는 남법사 서원(西院) 오래된 탑에 봉인돼 있어요. 탑은 그 자체로는 기묘한 점이 없지만, 탑 안에 1년 내내 좌선하며 경을 외는 선사 68명이 있어요. 불법으로 신수의 마성을 몰아내고 봉인을 가세한 것이지요. 이밖에 유리보살이 직접 불탑에 영진이라고 이름을 새겼어요. 그런 까닭에 이 탑은 십만대산의 기운이 응집되어 있지요.”
진지하게 경청하던 허칠안은 야희가 말을 멈춘 후에야 이야기했다.
“선사 68명으로 구성된 선진(禪陣)이면 초범경이 깰 수 없는 건 아니오.”
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본래 저희는 웅왕을 산 밖으로 모셔서 불문의 수비가 빈틈을 타 일거에 진을 부술 계획이었는데 뜻밖에 아소라가 제자리로 돌아왔더군요.”
“아소라?”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말에 허칠안은 가슴이 무거워졌다. 이 말은 통상적으로 나한이 다시 태어나 소생함을 형용하고 있었다.
“아소라는 수라왕의 막내아들로 살적과위를 깨달은 나한이자 금강의 신체와 영혼을 지닌 3품 무사예요.”
야희는 굳은 얼굴로 허칠안을 응시했다. 아소라가 3품 무사 한 명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사실은, 차마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미 진짜 몸을 회복했더라도 그녀는 허칠안 앞에선 늘 약자를 자청했다.
‘2 더하기 3…….’
허칠안은 절로 입이 벌어졌다. 살적과위든, 금강의 신체와 영혼을 지닌 무사든 모두 공격과 토벌로 유명했다.
“웅왕은?”
야희는 조금도 숨기지 않고 알고 있는 바를 다 말해주었다.
“웅왕은 현재 우리 요족에서 마마 외에 유일한 초범 요왕(妖王)이에요. 만요국의 가장 높은 지도자는 우리 호족 족장 구미천호지요. 동시에 남요의 공주이기도 하고요.
국주 곁에는 최소 9명의 장로가 있어요. 전성기 때는 장로가 14명이었는데 그중 초범경은 3명이었지요. 장로 아래가 바로 호법이에요. 장로가 밖에 있을 때는 국주 의지의 전달자가 돼요. 장로는 통상적으로 호족에서 선발되고요.
호족 외에는 12명의 요왕이 있는데 만요국 전성기 때는 20명의 요왕이 있었어요. 물론, 모든 요왕이 초범경인 건 아니고요. 웅왕은 500년 전, 북요대전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요왕이에요. 대전이 터졌을 때 때마침 땅 밑으로 피해 잠을 자 화를 면했지요.”
“잠을 잤다고?”
허칠안은 자신이 뭔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야희도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웅왕은 정말 너무 게을러요. 몇 년간 한 번을 움직이지 않아요. 한번 잠들면 몇십 년, 심지어는 몇백 년이에요.”
“불러도 깨지 않고?”
“그는 잠잘 때마다 주변 몇 리 내 모든 생물을 끌어들여 같이 깊은 잠을 자요. 이건 그의 천부적인 신통력이지요.”
‘그게 무슨 천부적인 신통력이라는 건데…….’
허칠안도 순간 힘이 빠졌다. 이제야 구미천호가 왜 자신에게 도움을 청한 건지 이해가 됐다.
그 요왕은 나라가 망하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질 때도 잠만 잤는데 하물며 일개 신수라니!
“허 은라께서는 어떻게 움직일 계획이십니까?”
옆에 있던 흰 원숭이 호법이 질문을 던졌다.
“급하지 않습니다. 제가 우선 정보를 정탐할 때까지 기다리시지요.”
허칠안은 곧 가슴에 손을 뻗어 지서 파편 뒷면을 가볍게 두드렸다.
복잡한 무늬가 새겨진 청동 거울은, 거울 면이 절반은 깨진 상태였다.
“개자식, 나를 꺼내 뭐 하려고. 얼른 나를 돌려보내!”
혼천신경은 상스럽게 욕을 퍼부었다.
“일할 때가 됐어요. 안 그럼 제가 그쪽을 뭐하러 부양하겠나요.”
허칠안도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왜 일하는 건 항상 나야! 네 그 망할 칼은 한 번도 쓰지 않고? 도대체 누구야말로 네 본명 법기야?”
혼천신경이 계속해서 화를 내며 꾸짖었다.
그때, 거울을 주시하며 한참을 자세히 지켜보던 청목호법이 갑자기 흥분하여 눈물을 마구 흘렸다.
“이, 이건……! 이건 그해 국주의 혼천신경?!”
혼천신경은 그제야 잠시 조용해졌다가 다시 이야기했다.
“아, 너로구나, 늙은 나무 정령. 500년이 지났는데 너는 여전히 조금도 발전이 없구나. 언제 초범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겠는가?”
청목호법은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고 대성통곡했다.
“신경 대인을 뵙습니다! 이 늙은이, 살아 있는 동안 세상에 다시 나타난 신경을 뵐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흰 원숭이 호법은 투명한 쪽빛 눈으로 혼천신경을 주시했다. 그 신분이 더할 나위 없이 궁금해졌다. 제일 궁금한 건, 분명 요족에서 숭고한 지위를 갖고 있는 것 같은 이 구리거울이 왜 대봉의 은라 손에 있는지였다.
이내 속눈썹을 파르르 떨던 야희가 소리 낮춰 물었다.
“이건 그해 국주께서 화장대 위에 두던 거울, 법보 혼천?”
“우연히 이 물건을 얻게 됐고, 그대의 국주와 거래를 했소. 국주가 해외에 나갔다 돌아오면 내가 거울을 만요국에 돌려줄 것이고 국주는 나를 도와 봉마정 2개를 풀어줄 것이오.”
야희에게 답을 준 허칠안이 다시 혼천신경에게 집중했다.
“혼천, 만요산 위치를 특정할 수 있습니까?”
‘봉마정? 무슨 뜻이지. 뭐가 봉마정을 푼다는 거야…….’
야희, 청목호법, 원호법 모두가 같은 의문을 품었다.
곧이어 청동 거울 면에 물결이 넘실거리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화면이 굳어지고 오래된 사찰이 비쳤다.
허칠안은 눈을 가늘게 떴다. 오래된 사찰 서원에 고탑이 있었고, 그 탑 꼭대기에 어렴풋한 사람 형체가 보였다.
“서쪽으로 그 고탑 위치를 특정해주십시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화면은 서원을 잡아끌어 확대했다. 탑 꼭대기에 서 있는 그 사람 형체가 선명하게 비쳤다.
그는 약 9척(尺)의 키에 강철처럼 주조된 신체와 영혼을 지니고 있었다. 또, 고작 가사 하나만 걸치고 있어 크고 다부진 근육이 선명히 드러났다.
피부는 어두운 금색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합장한 채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어, 이목구비는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의 머리 뒤에는 불길이 맹렬한 불의 고리가 있었다. 그 불의 고리 핵심에는 호침처럼 밖으로 방출되는 금빛이 보였다.
저 머리 뒤 불의 고리는 금강법상의 특징 중 하나였다. 이 특징은 금강신공을 수행한 3품 금강의 몸에도 나타났다.
그리고 머리 뒤 불의 바퀴는 나한의 특징이었다.
말하자면 화면 속 인물은 불의 고리와 불의 바퀴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이는 그가 금강이자 나한임을 뜻하는 것이었다.
야희의 말과 꼭 들어맞았다.
이때, 화면 속 사람 형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전체적으로 못생긴 얼굴인데, 그래도 형언할 수 없는 용맹함이 느껴졌다.
사내는 차갑고 딱딱한 얼굴 윤곽에, 볼은 수척했고, 눈썹 부위는 민둥민둥했다. 그런데 그 눈썹뼈가 유난히 높이 올라가 있어 두 눈이 다 가려질 정도였다. 그 모습이 참 이상할 정도로 날카로워보였다.
전체 비율은 아주 좋았다. 좋은데, 하필 이상한 이목구비와 조합하니 매우 괴이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리도 못나게 생길 수 있을까.
허칠안은 자꾸만 그를 보고 있으려니 탄식이 다 새어 나왔다.
그때였다. 순간 화면이 무너지며 혼천신경이 비명을 질렀다.
“나 눈이 멀었어! 눈이 멀었다고……!”
한참 비명을 지르던 혼천신경은 다시 잠잠해진 후 서둘러 덧붙였다.
“됐어, 얼른 돌아가게 해줘. 힘들어 죽겠다고.”
‘지난번 낙옥형을 엿본 것보다는 눈먼 정도가 가볍네. 이건 아소라의 수련경지가 낙옥형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걸 의미해……. 음, 하지만 보통 2품보다는 훨씬 강해…….’
허칠안은 혼천신경의 호소에 만족했다.
“500년이 흐르니 신경의 성격이 변했군요…….”
청목호법은 좀처럼 지금의 신경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허칠안이 그를 위해 설명을 이었다.
“광현보살에게 두 동강으로 잘린 뒤 기령도 불완전해졌습니다. 그래서 넋이 나갔는데 최근이 돼서야 정상으로 회복했지요. 하지만 성격은 어느 정도 변화가 있습니다.”
청목호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세상의 온갖 풍파를 머금은 그 눈이 약간 흐릿해지더니 입가에선 탄식이 새어 나왔다.
“이해했습니다, 이해했어요……. 벌써 500년이 훌쩍 지났군요. 그해 만요국의 성대한 분위기가 아직 눈앞에 있는 듯합니다.
그해 그 전투는 너무 처참했습니다. 초범 강자가 많이 죽었지요. 불문과 요족이 핏대를 세워 온 산이 피로 물들었고, 산골짜기에는 족인의 시체가 가득 쌓였습니다. 저희에게는 요왕 20명과 장로 14명 그리고 수십만의 노예들이 있었지요. 그 당시 구주 대륙에서 저희 남요와 교전할 수 있는 세력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부처는 너무 강했습니다…….”
허칠안은 역사를 탐구하는 마음가짐으로 맞장구를 쳤다.
“초품이 도대체 얼마나 무서운 겁니까? 반보 무신인 구미천호조차 부처에게 졌다니요.”
야희, 흰 원숭이 호법, 백희, 모두가 청목호법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목호법은 지금껏 그해 나라를 망하게 한 전투에 관해 거의 논한 적이 없었다. 오늘 혼천신경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반쯤은 먼지로 뒤덮인 그 역사를 들어볼 기회는 전혀 없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청목호법이 멍하게 있다가, 이상한 표정을 했다.
이후 몇 초간 침묵하던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국주께서는 반보 무신이 아닙니다.”
순간, 허칠안은 소름이 끼쳤다.
“무슨 뜻입니까?”
허칠안은 잠시 좀 넋이 나갔다.
지금 이 순간, 여태껏 알고 있던 지식이 단번에 전복되고 말았다.
만요국주의 위격은 반보 무신이었다. 이는 그의 인식에 깊이 뿌리 박힌 것이라 할 수는 없어도, 비교적 확실한 일이었다.
500년 전, 불문에는 초범 부처, 1품 보살 넷 그리고 많은 수의 나한과 금강이 있었다.
이렇게 방대한 세력이 포위해 토벌하는 가운데, 쌍방이 모두 손해를 입을 정도로 싸울 수 있었으니 만요국주는 반드시 반보 무신이어야 했다. 그래야만 모든 결과가 합리적이었다.
만약 만요국주가 반보 무신이 아니라면 ‘갑자탕요’란 역사가 거짓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였다. 이는 역사 전체가 뒤집히는 일이었다.
허칠안은 만요국주가 초품 무신이란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봤다.
이유는 간단했다. 만요국주가 정말 초품 무신이라면, 설령 부처가 무신, 고신과 손잡고 공격해도 그저 하찮게 웃으며 불후의 한 마디를 남겨야 했다.
‘겨우?’
물론, 이 추측은 순전히 허칠안 개인의 억측일 뿐이었다. 아마 초품 간 차이가 그렇게 크지는 않을 터였다.
다만 한 가지 단정할 수 있는 건 부처는 무신을 죽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절대로 불가능했다.
‘만요국주가 반보 무신이 아니면, 1품일 수밖에 없는데…….’
허칠안이 의문을 표하려던 찰나, 갑자기 원호법이 나섰다. 그 쓸데없이 솔직하고도 솔직한 그 호법이.
“허 은라의 마음이 제게 알려주는군요. 전임 국주가 만약 초품 무신이라면 하찮게 웃으며 불후…….”
원호법의 말이 그대로 끊겼다.
그는 어느새 바닥에 누워 사지를 경련하고 있었다.
범인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