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31
928화. 또 다른 이가 있다
“아, 죄송합니다. 방금 그쪽 머리 위에 모기가 있어서 때려잡았어요.”
원호법의 최후는 바로 허칠안이 만든 것이었다.
그는 소리도 없이 원호법을 손바닥으로 냅다 내리쳐버렸다.
이윽고 허칠안은 원호법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그냥 사소한 친절이었으니 굳이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는 의사를 표했다.
확실히 허칠안은 조금 전 받은 충격이 너무 컸던 모양이었다. 무의식중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니 생각을 다잡는 걸 그만 놓치고 말았다.
‘타심통만 수련하고 폐구선은 수련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있을까? 원숭이 형?’
허칠안이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리는데, 원호법이 몸을 털고 일어났다.
“저 대신 모기를 쫓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허 은라.”
원호법은 다시 또 투명한 쪽빛 눈을 고정한 채 허칠안의 마음의 소리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그때, 청목호법이 말했다.
“만요국은 지금껏 국주께서 반보 무신이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귀하께서는 누구의 말을 들으신 겁니까?”
허칠안은 당황했다. 마치 누가 당신에게 1 더하기 1은 2라고 알려준 거냐며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허칠안이 이 고대로 온 지도 고작해야 1년 반이었다. 시간의 척도가 이리도 약소하니 ‘만요국’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도 빠르게 떠올랐다.
그가 초임 야경꾼이던 시절, 경성 부곽현 태강현에서 요물이 사람을 먹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그 요물은 근처 탄광촌민을 내쫓고 패거리와 함께 초석을 파 비밀리에 화약을 제조했다.
허칠안은 주광효, 송정풍과 진상을 규명한 뒤 이옥춘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때 춘 형은 요물이 만요국 잔당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추측했었다. 허칠안은 상당히 사건 조사에 절실했던지라, 그걸 잊지 않고 기억에 새겼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성미가 거친 무승 항원 대사가 밤중에 평원백부에 난입하여 평원백을 죽였다. 그렇게 막다른 길에 몰린 항원은 지서 단체 채팅방에 도움을 청했고, 마침 그날 밤 순찰하던 허칠안이 구해주었다.
이를 빌미로 허칠안은 ‘등가교환’의 원칙을 내세워 천지회 구성원한테 만요국 정보를 캐냈다.
‘맞다! 리나가 했던 말이지? 리나가 갑자탕요 때 부처가 나선 건 만요국주가 반보 무신이었기 때문이라 말했어. 난 진짜 멍청이야, 처음부터 리나의 사람 됨됨이를 알아봤어야 했는데, 리나의 음모에 빠졌던 거야…….”
허칠안은 순간 가슴이 다 갑갑해졌다.
동시에 그는 더 많은 일이 떠올랐다. 하나를 꼽자면, 당시 금련도사가 만요국주는 반보 무신이 아니라 1품이라고 은근슬쩍 바로잡았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모두 금련도사가 그저 지종의 개라고만 생각했었다. 그가 무슨 만요국을 알겠는가? 분명 남강에서 태어난 오호가 더 믿을만했다.
사실은 개가 지종 우두머리고, 믿음직한 오호는 그냥 먹보일 뿐이었는데.
“만요국주는 1품입니까?”
허칠안이 약간 다급한 어조로 캐물었다.
청목호법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럼 반보 무신은…….”
허칠안은 묻고 나서 숨을 죽였다.
이내 청목호법의 느릿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신수 대사입니다. 우리가 이번에 구해야 하는 인물이기도 하지요.”
‘역시……!’
허칠안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드러났다. 추측이 맞았다는 깨달음과 동시에 놀랍게도 그였다는 경악이 공존했다.
‘반보 무신’이 만요국주란 결론을 뒤집은 순간, 진상이 고개를 들었다. 허칠안은 전에 없이 명확한 3가지 단서를 추려냈다.
첫째, 신수는 500년 전에 경성으로 보내져 봉인됐고, 만요국은 500년 전에 멸망했다. 시간이 이렇게 꼭 들어맞지만, 허칠안은 신수가 500년 전 ‘죽었다’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진작에 시신은 토막이 났을지도 몰랐다.
둘째, 만요국은 신수의 나머지 사지를 극도로 중시한다.
구미천호는 단수를 허칠안에게 보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번이나 나서서 도와주기까지 했다. 물론 신수를 중시한다고 신수와 연원이 있음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어쨌건 적의 적은 벗이니 구미천호는 적을 키워 불문을 상대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셋째, 신수의 불사 특성이었다.
단수는 상백에 봉인되었다. 그 후로 500년간 절명의 위기에 처했고 외부의 힘이 돕지도 않았지만, 그는 뜻밖에도 아직 죽지 않았다. 초품인 부처조차도 그를 철저히 죽일 수는 없었다.
1품 무사가 이렇게 무시무시한 생명력을 갖추고 있긴 불가능했다.
허칠안도 1품 무사의 실력을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만요국주는 1품 요족으로, 요족은 무사와 같은 길을 걸었다.
다만 요족이 4품일 때 천부적인 신통력을 수행한다면, 무사는 ‘의’를 수행한다는 데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역사는 분명히 증명하고 있었다. 만요국주가 이미 몰락했다는 건 부처가 1품 무사를 죽일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유가 성인은 각 체계를 9품으로 나누었는데 유독 부처, 무신 등의 존재만 품계를 벗어났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초품이 1품을 상대하면 무조건 압도적인 우세를 점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 그럼 신수 대사와 만요국의 관계는요?”
허칠안이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청목호법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등급이 너무 낮으니 어찌 알겠습니까? 하지만 국주와 신수 대사는 반드시 서로 아는 관계입니다. 관계가 좋은 도우지요.”
‘음, 불문의 멸요 전쟁에서 신수도 만요국 편에 서진 않겠네…….’
그는 상황을 비꼬았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또 흰 원숭이 호법이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청목호법의 마음이 제게 알려주는군요. 늙은이는 국주와 신수가 사통한 관계인지 의심스럽습니다.”
“…….”
석굴 안이 순간 침묵에 잠겼다.
흰 원숭이 호법도 얼마나 놀란 건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이건 청목호법이 말씀하신 겁니다. 저와는 무관해요!”
참 푸르른 청목호법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검푸른 머리칼도 한 가닥씩 곤두섰고, 그 가닥마다 푸른색 기운이 가득 찼다. 그리고 손은 넝쿨 지팡이를 꽉 조였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잠시 발버둥 치던 청목호법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늙은이가 자네와 같이 굴 수야 있나. 허, 맞네. 당시 우리 소요들은 확실히 국주와 신수 대사의 관계를 비방한 적이 있었지. 다만 소국주께서 가장 좋은 증명이야. 소국주께서는 순수한 혈통의 구미천호시니.”
흰 원숭이 호법은 다시 그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쪽빛 눈으로 청목호법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마음이 알립니다. 그래도 늙은이는 그들이 사통한 관계라 의심한다고.”
사통한 관계는 본래 명분이 없어 낯을 들 수가 없었다.
“…….”
재차 석굴에 적막이 찾아왔다.
청목호법도 이제는 묵묵히 지팡이를 꽉 쥔 채 사냥의 서막을 열었다.
한동안 흰 유광 한 줄기와 푸른 유광 한 줄기가 서로 쫓고 쫓김을 반복하더니 급기야 석굴을 뚫고 나가 하늘가로 사라졌다.
부향은 아니, 야희는 소리를 낮춰 말했다.
“원호법의 천부적인 신통력은 그 자체로 사람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지요. 다만 불문의 타심통을 몰래 익힌 뒤엔 4품 범주를 벗어나서 약간 다스리기 어렵게 됐어요. 그래서 종종 장소를 가리지 않고 헛소리를 하지요.”
‘늘 헛소리를 한다고? 거의 자아를 내맡긴 수준인데…….’
허칠안은 속으로만 조용히 생각했다.
곧이어 야희가 석굴 내 자요에게 분부를 내렸다.
“너희들은 나가서 지키고 있거라. 허락 없이 안에 들어오면 안 된다.”
모두 다 떠난 후, 야희는 비로소 사랑하는 사내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왜 그러시나요?”
허칠안은 야희의 허리를 감쌌지만, 지금 감상에 젖을 때는 아니었다.
“그대는 아마 모르겠지만, 부처는 진작 유가 성인에게 봉인되었소.”
“뭐라고요?!”
야희의 낯빛이 급변했다.
허칠안도 그녀의 심장박동이 빨라진 걸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유가 성인이 왜 부처를 봉인하지? 만약 부처가 이미 유가 성인에게 봉인되었다면 그해 나선 건 누구지?’
야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등줄기에선 뜻 모를 찬 기운이 솟구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럼 유가 성인이 나중에 봉인한 것일 수는 없나요?”
갑자기 백희가 끼어들었다. 백희는 아직 새끼지만, 지능이 꽤 돼서 이 비밀스러운 이야기에 내포된 공포를 알아차렸다.
야희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유성의 수명은 여든둘밖에 되지 않아. 이미 죽은 지 1천 년이 넘었고, 불요대전은 500년 전이야. 허랑, 이 방면은 허랑이 뛰어나잖아요. 어떻게 보세요?”
그녀는 반사적으로 사랑하는 사내에게 도움을 청했다.
“3가지 추측을 했소. 하지만 다 반박이 존재하고 단서가 부족하오.”
허칠안은 잠시 멈칫하며 말을 끊었다. 그는 밝은 눈으로 부드럽게 눈을 맞추는 야희를 보고, 조금 더 천천히 이야기했다.
“부처가 이미 봉인에서 벗어났거나, 그해 또 다른 사람이 나섰던가, 신수가 일방적으로 만요국의 멸망을 주도했거나. 부처와 무신은 함께 봉인됐소. 무신은 근래 들어서야 차츰 봉인에서 벗어났지. 같은 초품인데 부처가 500년 전 봉인을 벗어났을 리는 없지 않겠소?
만약 또 다른 사람이 있다면 자세히 생각할수록 무서운 일이오. 하지만 이 가능성은 크지 않소. 지금 십만대산은 서역 판도에 올라가 있어 불문의 근거지가 되었소. 기운이 불문을 보호하고 있지. 만약 그해 나선 게 어떤 존재라면 그 목적은 무엇이겠소? 단순히 불문을 위해 애쓴 건 아닐 테지.
신수가 만요국 멸망을 주도한 것에 관해서는, 음, 만약 이렇다면 신수는 또 누구에 의해 시체가 나누어진 것이오? 부처도 봉인됐는데 어떤 존재가 반보 무신의 시체를 토막 낼 수 있단 말이오?”
야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깊은 시름에 빠졌다.
“마마께서는 부처가 유성에게 봉인 당했다는 이 일을 알고 계시나요?”
허칠안은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잘 모르겠소. 그대들 마마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나는 그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하지만 유가 성인이 부처를 봉인한 일은 구주에 아는 자가 얼마 되지 않소. 나도 유가 우두머리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이런 내막이 있을 거라는 건 몰랐을 것이오.”
500년 전 ‘갑자탕요’ 전역은 짙은 안개가 겹겹이 쌓여 있었고, 그 안엔 더 깊은 비밀이 감춰져 있었다.
“백희, 너희 마마께 연락해줘.”
허칠안이 말했다.
하지만 백희는 나른한 듯 움직이길 거부했다.
“야희 언니도 마마와 연락할 수 있으니 언니한테 일하러 가라고 해요.”
보통 집안일은 장자가 하고, 가장 어린 백희는 귀여움이나 담당하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언니들은 백희를 귀염둥이라 부르며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고 각종 음식을 던져주곤 했다.
‘부향도 구미천호에게 연락할 수 있군…….’
허칠안은 미간을 치켜올리고 옛 정인을 자세히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