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32
929화. 야희의 의지
하늘가에 아침 태양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었다.
이 시각, 묘재방은 산골짜기에 가부좌를 틀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모닥불을 마주한 채 입술에 풀뿌리를 물고 있었다.
그리고 홍영은 큰 새 두 마리를 굽고 있었다. 묘재방을 찾으러 갔을 때 겸사겸사 사냥해온 것이었다.
묘재방은 너무 귀빈급 대접을 누리고 있어서 어쩐지 좀 쑥스러웠다.
“천만에요, 천만에요…….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한 일이죠. 묘 형은 허 은라의 제자니 역시 귀한 손님이지요. 귀빈을 대접하여 잘 먹고 잘 마시도록 하는 게 저희가 책임져야 할 의무입니다.”
홍영에겐 4품 고수의 풍모가 조금도 없었다. 마치 접대에 능한 관리 사회의 능구렁이를 보는 것 같았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홍영은 묘재방의 시선이 동굴 입구의 자요 둘에게 머물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너희 둘 이리 오거라.”
자요 둘은 잠시 망설이다가 가까이 다가왔다.
“홍영호법, 무슨 분부 있으십니까.”
홍영은 바로 그들을 나무랐다.
“바보들, 당연히 우리 귀한 손님한테 음식을 대접해야지. 묘 형은 허 은라를 따라 각지를 누비며 싸우는 인족 거물이시다. 반드시 잘 대접해야 한다. 만일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내 너희를 어떻게 벌하는지 지켜보거라.”
‘이 조요(鳥妖)가 이렇게 대인 관계를 잘 처리하다니…….’
묘재방은 문득 좀 자신만만해져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과찬이세요. 허 은라를 따라 금강 몇몇을 죽였을 뿐입니다. 저는 주로 거들었고, 허 은라가 아주 강하지요.”
순간 홍영은 눈을 반짝였다.
“묘 형, 이건 저희한테 제대로 얘기해주셔야 합니다.”
본래 별로 내키지 않았던 자요 둘도 재빨리 묘재방 좌우에 앉았다.
* * *
같은 날, 새벽녘.
허영음은 행낭을 메고 둘째 오라버니와 스승의 뒤를 따랐다.
세 사람 모두 전함에서 뻗어 나온 나무판자를 따라 갑판으로 올랐다.
이 전함 3척에는 병사와 군관 총 3천 명이 타고 있었다.
대봉의 군사 제도는 위소제(衛所制)로, 위소제는 전 황조 대주의 부병제(府兵制)를 탈바꿈한 것이었다. 위소제의 장점은 나라의 군비 지출을 크게 절감했다는 데 있었다.
거기다 병력을 확실하게 각 주로 분산시켜 군사를 빠르게 모아 반란을 잠재울 수도 있고, 또 어떤 장수가 사사롭게 본인 지위를 강화하는 데 군사를 동원하는 상황을 억제할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조정은 이번에 병력을 이동 배치하는 데 경성 관내 군대는 3천 명만 파견했다. 나머지는 다른 주에서 배치한 병사들이었다.
“영음아! 매사 조심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사, 사부…….”
부두에서 소리 높이던 숙모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원래는 사부의 말을 잘 들으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불현듯 저 사부의 실체가 떠올랐다.
사실 사부는 자신의 딸보다도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큰 오라버니에게 연락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숙모가 못 다한 말은 허평지가 황급히 대신했다.
곧 허영음이 자신보다 큰 행낭을 메고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머니, 저 전쟁 치르러 가요!”
주위의 병사, 부두의 행인이 잇따라 경악하며 쳐다보았다.
안 그래도 전함에 꼬맹이가 섞여 들어가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건만, 전쟁을 치르러 간다고……?
허평지는 깜짝 놀라 화를 냈다.
“네가 무슨 전쟁을 치른다는 거야! 너 이번에 사부님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면 절대 헛소리하면 안 돼!”
콩알이는 줄곧 자신이 전쟁을 치르러 가는 거라고 여겼다.
그로 인해 저 멀리 의혹의 눈초리들이 온통 허영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면사를 쓴 허영월이 소리를 높였다.
“영음! 허 은라의 동생으로서 모두의 기대와 희망을 저버리면 안 돼!”
일순간 그 수많은 의심의 눈빛들이 눈 녹듯 부드럽게 풀어졌다.
* * *
한차례 소동 끝에, 사부와 제자는 허신년을 따라 선실로 들어갔다.
때가 되자 전함은 돛을 올리고 멀리 항해를 시작했다.
허신년은 동생과 리나를 제 옆방에 안배하고선 신신당부했다.
“방에 가만히 있어. 함부로 뛰어다니지 말고 말썽 피우면 안 돼.”
“리나, 다른 사람이 준 음식은 절대, 절대 먹으면 안 되오. 제발 군관의 선의를 받아들이지 마시오.”
리나가 4품 고수라곤 해도, 그 식탐과 천진난만한 성격으로 행여 저질스러운 수법이라도 맞닥뜨린다면 그녀도 위험해질 수 있었다.
“응응!”
리나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리나는 독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남강에서 자란 그녀는 독을 감별하고 저항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건 독고부 사람인 것과는 관계도 없었다. 남강에서 자란 모두가 그러했다.
게다가 4품을 기절시키거나 독사시킬 수 있는 독약은 지나치게 진귀해, 일반 사람은 아예 가질 수도 없었다.
하지만 리나는 허신년이 딱히 견문이 넓지 않은 일개 서생이라고 생각해서 따로 설명해줄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식구들을 잘 데려다준 뒤, 허신년은 즉각 서재로 돌아가 병서를 연구하며 청주 전세 분석에 몰입했다.
* * *
리나는 돌아서자마자 허영음과 밖으로 나와 산책하다가 갑판에 이르렀다.
불어오는 찬 바람 속에, 사제 둘의 눈에는 작은 별이 떠올랐다.
이는 소녀들 인생 최초의 먼 항해였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낭자께서는 허 은라와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리나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뒤엔 갑옷을 입은 사각 얼굴의 중년이 서 있었다. 왜소하지만 튼튼한 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리나와 허영음을 주시하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리나는 그다지 표준적이지 않은 중원의 표준어를 썼다.
중년 군관은 바로 읍하며 말했다.
“금군영 보병 백부장 진효입니다! 여름에 허 은라를 따라 혈도삼천리 사건을 조사했었지요. 방금 듣자 하니 이 낭자가 허 은라의 동생이라고요?”
“큰 오라버니 친구구나……. 아저씨, 안녕하세요? 성이 뭐예요?”
허칠안의 친구란 얘기에, 콩알이는 금세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였다.
진효 역시 무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진 아저씨라고 부르면 돼. 허 은라에게 두 동생이 있다고 들었었지.”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머니를 더듬었으나 아무것도 잡히질 않았다. 현재 군장 차림이라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무슨 일 있나요?”
리나는 한 손으로 제자의 머리를 누르고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역시, 아이는 아이였다. 허영음은 아무것도 모른 채 낯선 사내에게 곧바로 경계심을 풀었다.
세상엔 본디 이렇게 자진해 수작을 거는 사내가 가장 위험한 법이었다. 보편적으로는 그 모두가 불량한 목적을 품고 있었다. 이는 리나가 대봉으로 오는 여정 중에 이미 깊이 체득한 것이었다.
다만 리나도 진효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었다.
“두 분은 이번에 어디로 가려는 겁니까?”
진효가 물었다.
“그쪽이랑 아무 상관없는 일인데!”
리나가 우렁차게 답했다.
갑자기 높아진 음량 탓에 진효가 깜짝 놀랐다. 누가 보면 지금 그가 눈앞의 소녀들에게 나쁜 짓이라도 했을 줄 알았을 터였다.
한 바퀴 둘러본 진효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소리를 낮췄다.
“무슨 일 있으면 저를 찾아오시면 됩니다. 물론, 허 대인 혼자 문제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지만요.”
진효는 이 남강 낭자의 경계심과 혐오를 명백하게 눈치챘다.
끝으로 그는 콩알이에게 친절한 웃음을 보이곤 선실로 돌아갔다.
* * *
“뭐라고요?! 허 은라가 정말 금강 둘을 죽였다고요?”
홍영은 거의 비명 지르듯 소리를 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는 묘재방이 그저 자화자찬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바로 상대를 헐뜯는 건 어리석은 사람이나 요괴나 하는 짓이니, 그냥 열심히 궁금해하며 감복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뿐이었다.
이것이 바로 타인과 어우러져 살아가려는 홍영의 풍격이었다.
이 일은 절대 사실처럼 들리진 않을 터였다. 거짓말로는 자세한 세부 내용까지는 말할 수 없을 것이고, 초범 사이의 전투란 범인이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직접 보지 않으면 절대 함부로 묘사할 수도 없었다.
지금 묘재방이 든 새 구이는 식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나 고기를 한 입 먹는 것보다 허풍을 떠는 게 더 중요했다.
그는 입을 틀어막은 두 자요와 홍영을 보며 이야기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허 은라라고 해도 금강과 무신교 우사의 공격을 맞닥뜨리니 매우 허둥대더군요. 다행히 그 곁에는 제가 있었지만요. 눈 깜짝할 사이, 제가 검을 몰아 일어났고 혼천신경을 꺼내 비추니 적이 겁에 질리더군요. 허 은라는 기회를 잡아 신위를 크게 떨쳐 적을 연속으로 물리쳤습니다.”
그때, 갑자기 좌측에 있던 자요가 물었다.
“하지만 당신은 무사인데 어떻게 검을 몰아 비행하나요?”
‘아, 이건…….’
묘재방은 순간 난처해졌다. 설명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구세주처럼 나타난 누군가가 있었다.
“네가 뭘 안다고. 묘 형의 능력이라면 당연히 상응하는 법기 비검이 있을 것이다. 너 같은 일개 요괴는 말참견하지 않도록.”
홍영의 꾸지람에 자요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얄팍한 식견으로 묘 대인을 의심한 게 부끄러웠다.
‘대인 관계에 너무 능한데…….’
묘재방이 얼른 말했다.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홍영 형, 이렇게 땅이 척박한 남강에 남아 있는 건 정말 재능을 썩히는 겁니다. 차라리 나와 함께 중원을 누비러 갑시다.”
홍영호법도 그 기세 그대로 이어갔다.
“그럼 수고스럽겠지만 중원 대협 묘 형이 보살펴주십시오.”
‘대협, 중원 대협…….’
내심 듣고 싶었던 말을 들은 묘재방은 금세 득의양양한 모습을 했다.
“홍영 형! 너무 늦게 만난 것이 한스럽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두 사람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널리 퍼졌다.
* * *
동굴 안.
야희는 여우 형태로 주조한 청동 향로를 꺼낸 후, 검은 향을 꽂고 비벼 불을 밝혔다. 곧이어 단향목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야희가 힘껏 숨을 들이쉬자 단향목이 콧속으로 들어왔다. 다음 순간 그녀의 왼눈에서 수증기 같은 청광이 하늘하늘 흘러나왔다.
강대한 의지가 강림했다.
“쯧쯧, 옛 정인끼리 모여 다정한 시간 보내지 않고 날 불러 뭐 하려고. 설마 나더러 옆에서 구경하라고? 그건 아니지, 본좌는 아직 처녀거든.”
그리 진지하지 않은 구미천호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야희’는 입을 가린 채 가볍게 웃고 있었다.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허칠안은 소리 없이 속으로만 비아냥거렸다.
이내 야희가 정중하게 말했다.
“마마, 노비가 허 은라에게 큰 비밀을 들었습니다. 중한 일인데 마마께서 이미 알고 계실지 몰라 당돌하게 연락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해해주십시오.”
말을 마친 ‘야희’가 고개를 돌려 허칠안을 쳐다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기밀 정보? 네 놈이 수행한 지 1년 반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디서 이렇게 많은 기밀 정보를 얻은 거지?”
허칠안은 답하지 않고 야희의 오른눈을 쳐다보았다.
야희가 바로 말했다.
“부처는 천여 년 전, 이미 유가 성인에게 봉인되었다고 합니다.”
순간 야희 왼눈의 청광이 격하게 떨렸다.
몇 초 후에야 구미천호는 전에 없이 무거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불, 불가능하다. 500년 전 부처가 나섰고, 내가 직접 그 전투를 목격했다. 틀릴 수가 없어.”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린 채 더욱더 말에 힘을 실었다.
“운록서원의 원장 조위가 직접 제게 알려준 겁니다. 유가 성인이 그 당시 일찍이 사라진 도존을 제외하고 살아있는 모든 초품을 봉인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