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33
930화. 주인과 하인의 상봉
‘유가 성인이 천존 외의 모든 초품을 봉인했다니…….’
야희는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 비밀을 소화하기가 좀 벅찼다. 두 정보가 모순되는 점이 있었다.
이어, 허칠안이 세 추측을 얘기하자 구미천호가 나지막이 말했다.
“자네는 어떻게 부처 과위를 성취하는지 아는가?”
그녀의 말투는 몹시 진지했다. 평소의 그 간드러진 목소리가 아니었다.
허칠안은 고개를 저었고, 구미천호는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말했다.
“9대 법상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 바로 부처 과위네. 내가 그해 현세한 9대 법상을 직접 보았네. 의심할 여지도 없는 부처였지. 세상에 제2의 부처가 있을 가능성은 없거든. 신수가 걷는 길은 선사, 금강 그리고 무사의 길일세. 하지만 그는 기껏해야 금강법상만 장악했어.”
‘그럼 그해 나선 사람이 다른 초품일 가능성은 없어. 신수도 아니니 내 두 가지 추측을 바로 뒤집는 거야. 나선 사람이 부처라면…….’
허칠안이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쓰읍, 부처가 500년 전 봉인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요?”
“우선 조급하게 결론 내리지 말자고. 이 모든 걸 명확히 하고 싶으면, 신수의 모든 봉인을 풀면 되네. 음, 신수의 나머지 사지마다 그의 잔혼이 담겨 있는데 부도보탑 안의 신수는 기억이 얼마나 있던가?”
허칠안은 아래턱을 쓰다듬었다.
“마마가 저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게 무심코 한마디 한 적이 있습니다. 부처, 신의를 저버린 자식아!”
‘이건……!’
야희는 생각이 번뜩였고, 어렴풋이 무언가를 파악했다.
그녀 몸속의 구미천호 역시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 뒤, 구미천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분명하군. 일찍이 신수가 부처와 거래한 적 있어. 그들만 아는 거래겠지.”
“단서가 너무 적어 진실을 추측할 수 없습니다. 단서가 부족하면 아무것도 상의할 수 없어요. 마마께 이 비밀을 공짜로 알려드린 게 아닙니다.”
허칠안은 한마디로 깔끔히 정리했다.
구미천호는 다시 그 착실하지 않은 태도로 돌아와 야희를 통제했다.
이내 야희는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매혹적인 웃음을 그려 보였다.
“허랑, 오늘 밤은 말씀하시는 횟수대로 따를게요.”
‘오늘 밤에는 안 잘 건데…….’
허칠안이 진지하게 말했다.
“마마, 본 은라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미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지요. 보수는 나중에 한꺼번에 청산하겠습니다.
우선 본론부터 얘기하겠습니다. 수라왕의 막내아들 아소라가 제자리로 돌아왔고 현재 남법사에 있습니다. 제 전투력으로는 그와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 미리 약조를 지켜주셔야 합니다. 봉마정 2개를 제거해주십시오. 그럼 제가 더 승산 있습니다.”
2 더하기 1은 나한과 금강이 손을 잡는 것과 맞먹었다. 허칠안도 마음속으로 계산이 섰다.
구미천호는 잠시 생각 끝에 말했다.
“봉마정을 없애면 이길 수 있다?”
허칠안이 웃었다.
“조력자를 찾을 겁니다.”
“좋네. 내가 야희에게 자네를 데리고 신수의 그 신체 일부를 보러 가라고 하겠네. 더 있는가?”
구미천호도 시원시원하게 응했다.
허칠안은 야희 오른눈을 보며 말했다.
“부향……, 아니, 야희는 앞으로 제 사람입니다. 제가 억지로 야희를 데려가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 마마께선 이 점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야희는 더는 마마의 노비가 아닙니다. 마마가 야희에게 명령할 순 있어도 야희를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구미천호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자네가 야희를 데려가도 난 아무 반대도 하지 않을 것이야. 나는 백희까지도 자네에게 보낼 수 있네.”
백희는 바로 울상을 했다.
“싫어요, 싫다고요!”
“…….”
허칠안은 눈동자만 굴려 여우를 쳐다보았다.
‘내가 그렇게 미움을 사는 유형이었나?’
“마지막 요구는 혼천신경이 아주 유용하니 그걸 한동안 더 사용하게 해 달라는 겁니다. 끽해도 석 달을 넘진 않을 겁니다. 만약 연기될 경우 추가로 마마께 보수를 지불하거나 일을 돕겠습니다.”
혼천신경은 앞으로 허칠안의 어떤 계획과 관련이 있어 당분간 구미천호에게 돌려줄 수 없었다.
구미천호는 바로 짜증을 냈다.
“과하군! 그건 우리 어머니 유품이자 내가 어릴 때부터 가지고 놀던 물건일세. 내 일부 기억이 담겨 있는 거야. 그 요구는 들어줄 수 없네.”
허칠안은 의외로 강하게 밀어붙였다.
“아니요, 저는 그게 필요합니다. 이 점은 의견이 일치되지 않겠군요. 그럼 저희 협력은 취소입니다.”
순간 야희가 왼눈을 가늘게 뜨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취소면 취소지. 본좌는 협박을 받지 않는다.”
곧 두 사람은 무표정하게 눈을 마주쳤고, 누구도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야희만 중간에 끼어 이리저리 난처한 상황이 됐다.
“설령 봉마정을 제거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는 어쨌든 3품이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나한을 계속 사냥하면 되지요. 시간이 오래 지나면 봉인을 풀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마마께서는 천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까? 중원 대란이 임박했습니다. 불문은 반드시 군대를 파견해 증원할 것입니다. 이때가 아란타가 가장 텅 비었을 때입니다.”
협상 기술에 정통한 허칠안은 절대 쉽게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구미천호가 빙그레 웃었다.
“봉인을 못 풀면 자네는 실력을 회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2품에 충격을 가할 수도 없네. 자네가 이번 정통 다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어. 협력하면 상생이고, 협력하지 않으면 쌍방 모두 손해지. 잘 생각하게.”
혼천신경의 기능은 그녀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중요했다. 결단코 손쉽게 양보할 수는 없었다.
허칠안은 온화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왜 모두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는 걸까요?”
구미천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어떻게 물러나지?”
“혼천신경은 독립적인 의식이 있으니 그 스스로 선택하게 하시지요.”
“문제없네!”
구미천호는 자신만만해했다.
허칠안은 그 자리에서 지서 파편을 꺼냈다. 구미천호 앞에선 천지회 구성원 신분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그녀를 굉장히 신뢰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구미천호도 잘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곧 허칠안이 손가락을 구부려 거울 면을 살짝 두드렸다.
콰당!
반쪽짜리 혼천신경은 탁자에 뒤집혀 떨어졌다.
“난 눈이 멀었어, 눈이 멀었다고.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아 더는 일을 할 수가 없는데!”
혼천신경이 빽, 소리를 질렀다.
야희 아니, 구미천호는 확실히 좀 멍해 보였다. 이 거울이 약간 낯선 듯했으나 금세 감정을 추스르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못난 거울아, 500년을 보지 못했구나. 나 보고 싶었지?”
그녀의 목소리는 성숙한 여인에서 명랑한 소녀처럼 바뀌어 있었다.
“…….”
혼천신경은 바로 조용해졌다. 그러다 서서히 거울 면에 속눈썹 없는 눈 하나가 드러나 눈동자를 조금씩 야희 쪽으로 굴렸다.
순간 혼천신경은 경악한 듯 거울 전체를 격하게 흔들었다.
“공주마마! 공주마마! 정말 마마이십니까?!”
혼천신경이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날 성황묘에서 허칠안과 구미천호가 만났을 때, 혼천신경은 탑령 노승의 봉인으로 바깥일은 잘 알지 못했었다. 그날의 거래도 나중에 허칠안에게 듣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었다.
구미천호는 겸사겸사 거울을 들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해 내가 늘 네게 물었었지.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쁜 여우냐고. 네 답은 늘 어머니였다. 지금 다시 묻겠다. 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우지?”
혼천신경은 감격에 겨운 나머지 흐느끼며 말했다.
“공주마마죠, 공주마마십니다……. 제가 드디어 마마를 뵙게 됐군요. 밖에서 500년을 떠돌면서도 공주마마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 사라진다고 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눈물겹도록 감동적인 주인과 하인의 상봉이네.’
허칠안은 눈을 희번덕였다.
구미천호는 계속해서 아름답게 말을 이었다.
“이 자식이 네가 좀 더 머물러주길 원하더구나. 하지만 난 원치 않아. 난 너와 여러 해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잖니. 정말 헤어지기 아쉬워.”
이때, 허칠안은 그녀의 흐름을 끊고자 얼른 끼어들었다.
“그래서 저희는 그쪽이 제 곁에 한동안 더 남아 있을지 말지 스스로 결정하게끔 맡기기로 했어요.”
“아, 이, 이건…….”
혼천신경의 목소리가 갑자기 변했다. 그렇게 한동안 격렬한 마음의 갈등이 이어지나 싶더니, 다시금 나지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공주마마를 뵐 수 있는 건 신의 행운입니다. 죽어도 여한이 없는 행운이지요. 하지만 저는 허씨 옆에 남아 있는 걸 택하겠습니다.”
구미천호의 떠오른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혼천신경을 주시하며 방금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다시금 확인을 거쳤다.
“뭐라고?”
“이, 이건……. 공주마마를 뵐 수 있는 건 신의 행운입니다. 죽어도 여한이 없는 행운이지요.”
혼천신경이 말했다.
거기다 허칠안이 빙그레 웃으며 덧붙였다.
“하지만 제 곁에 남기로 선택했다네요.”
혼천신경이 힘없이 이야기했다.
“그렇습니다…….”
‘야희’의 입가에 가볍게 경련이 일어나더니 애처로운 소리가 새어 나왔다.
“거울아, 본 공주가 너를 찾기 위해 구주 전역을 죄다 돌아다녔다는 걸 아니? 너를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런데 이제 막 알게 된 사내를 위해 나를 버리고 가겠다고?”
혼천신경은 바로 소리 높여 외쳤다.
“공주마마, 고생하셨습니다. 신을 생각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제 곁에 남기로 선택했다네요.”
허칠안은 빙그레 웃으며 다시금 조금 전의 말을 반복했다.
“그, 그렇습니다…….”
혼천신경은 힘없이 답한 뒤, 곧바로 충심을 표했다.
“하지만 공주마마, 안심하십시오. 신의 마음은 마마께 있습니다. 저는 허씨 곁에 남아 첩자 노릇을 하려는 겁니다.”
탁!
구미천호는 혼천신경을 힘껏 뒤집었다. 이내 야희의 매끈한 이마에 핏대가 솟아나더니, 한동안 허칠안을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서서히 야희 왼눈의 청광이 사라졌다.
육신을 다시 장악한 야희는 조심스럽게 첫마디를 뗐다.
“마마께서 화나셨어요. 몇백 년 동안 마마께서 화난 걸 본 적도 없는데.”
‘주종의 정도 편안함만 못하다는 거지…….’
허칠안은 이 결과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현재 혼천신경은 영지가 불완전하여 용기로 온양해 스스로를 보완하는 일이 더 시급했다.
이는 생명이 가진 당연하고도 지극히 기본적인 욕구였다.
“뭐해! 어서 본좌를 도로 거두지 않고. 퉤! 나한테 골칫거리만 안기는군.”
혼천신경은 그대로 날아올라 분풀이로 허칠안의 얼굴을 때리려 했다.
하지만 허칠안이 가볍게 손을 들어 혼천신경을 잡았다.
“나중에 그쪽이 처리할 일이 생길 거요. 아마 시간도 좀 오래 걸리고 번거로울 테지.”
“꿈도 꾸지 마!”
혼천신경은 단번에 거절했다.
“그쪽 영지 보완이 끝나면 내가 감정께 그쪽의 잃어버린 몸 반쪽을 보완해달라고 할 거요.”
보완하는 건 기령이 아닌 육신에 버금갔다. 이는 법기 제련 전문가 출신인 감정이라면 틀림없이 해낼 수 있을 터였다.
“허 은라,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분부하십시오.”
결국 혼천신경의 간곡한 부탁으로 실랑이도 끝이 났다.
대략이나마 일 처리를 마친 허칠안은 돌연 야희를 향해 눈을 반짝였다.
“본연의 업무를 할 차례군.”
수없이 ‘교류’했던 부향은 그 말뜻을 바로 이해하곤 얼굴이 붉어졌다.
* * *
운주 변방.
이곳에 갑옷을 걸치고 무기를 든 6만 대군이 집결해 있었다.
이들은 질서정연하게 여섯 덩어리로 방진(方陣)을 쳤다. 1만이 한 방진으로, 방진마다 중기병 1천, 화통수 1천, 경기병 2천, 보병 5천, 화포 대대 5백, 신노(神弩) 대대 5백으로 구성되었다.
또 이 6만 대군 후방에도 유랑민으로 구성된 민병 3만이 더 있었다.
이렇듯 대봉 지원병이 아직 도착하기도 전, 운주 반란군은 이미 집결을 마친 채 북상하여 청주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