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36
933화. 신수의 나머지 사지
손현기가 고개를 끄덕이자 발밑에 청광이 솟아올라 허칠안 앞에 번뜩였다.
“사형, 왜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허칠안은 친절한 웃음을 보였다. 손 사형은 아주 훌륭한 도구였다. 실력은 강한데 말이 많지 않았다.
흰 원숭이는 무의식적으로 이 낯선 사람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맑고 투명한 쪽빛 눈은 금세 낯선 이의 마음을 간파했다.
“이 고단자의 마음이 알려주는군요. 내가 때마침 청주로 남하하여 스승님의 전투를 도울 생각이었는데 우회하여 왔네. 길이 너무 멀어 피곤해 죽겠더군. 방금은 쉬고 있었고.”
허칠안은 손 사형의 굳은 안색을 보고, 얼른 설명에 들어갔다.
“이분은 원호법으로 사람 마음을 꿰뚫어 보는 천부적인 신통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불문의 타심통을 수행하였는데 아주 훌륭합니다.”
그런데 말하다 문득, 허칠안은 한 생각이 번뜩였다.
“원호법, 번거롭겠지만 저를 따라 안으로 드시지요.”
‘나 대신 통역 좀…….’
손현기는 원호법을 뚫어지게 보다가, 허칠안을 따라 석굴로 향했다.
원호법도 그들의 뒤를 따라가는데 돌연 청목호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자는 초범경 술사이니 쓸데없는 말 하지 말게. 알겠는가?”
원호법이 뒤돌아 청목호법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청목 선배님 마음이 제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죽일 원숭이, 네 피부가 벗겨지고 뼈가 해체될 때까지 계속해서 막말하는 게 제일 좋겠어.”
얼굴이 빨개진 청목호법은 다시 지팡이를 쥐었다 풀기를 반복했다.
결국 홍영호법이 얼른 중재에 나섰다.
“얼른 들어가게. 허 은라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라고.”
원호법은 고개를 끄덕인 후 석굴로 들어갔다.
“저 호법, 좀 재미있으시군요…….”
묘재방이 홍영호법을 보며 말했다. 그는 방금까지 흥겹게 노래하고 춤추던 참이라, 머릿속에 별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원호법의 무시무시한 광기나 사회적 매장 같은 고통을 알 턱이 없었다.
홍영호법은 탄식을 했다.
“원호법은 어릴 때부터 절에서 노예로 살다가 후에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천부적인 신통력도 차차 각성한 겁니다. 또 무심코 불문의 타심통을 몰래 익혔지요. 이때부터는 아무리 해도 능력을 다스릴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럼 원호법은 어떻게 우리 사람이 된 겁니까?”
묘재방은 고작 한 시진만에 남강 요족과 한 식구가 되었다.
홍영호법은 다시금 한숨을 뱉었다.
“후에 절의 승려도 그를 참지 못하고 불문에서 내쫓아 알아서 살도록 내버려 뒀습니다.”
‘그것 참…….’
묘재방은 앞으로 원호법을 마주친다면 반드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유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홍영호법이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원호법은 4품 경지이나 천부적인 신통력은 더 강할 겁니다. 초범경 고수도 애써 생각을 다잡지 않으면 속마음을 간파 당할 겁니다. 4품경 중, 도문과 주술사 외에는 원호법의 능력을 차단할 수 있는 체계는 거의 없습니다.”
* * *
석굴 안.
허칠안은 손현기에게 상황을 더 자세하게 설명한 뒤 물었다.
“손 사형은 어떻게 보십니까?”
손현기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에 허칠안은 원호법을 쳐다보았고, 원호법은 그의 의중을 깨닫고 투명한 쪽빛 눈으로 손현기를 주시했다.
“손 사형의 마음이 제게 알려주는군요. 자네가 책임지고 아소라를 상대하면, 나는 진법을 부수겠네. 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아!”
순간 다급해진 손현기가 연거푸 외쳤다.
“뒤, 뒤……!”
허칠안은 숨을 내뱉은 후, 그를 대신해 말을 마쳤다.
“뒤에 그 말은 할 필요 없었네만.”
흰 원숭이 호법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칠안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문제없습니다. 아소라는 제가 맡아 상대하겠습니다. 제가 최대한 그를 견제할 것이니 손 사형은 책임지고 선사 대진을 해체해주십시오.”
그가 볼 땐 이 안배가 가장 합리적이었다. 술사는 진을 부수러 가는 게 전공과 맞는 셈 아니겠는가. 무사가 금강을 상대하는 것 역시 전공과 딱 맞았다. 육탄전으로 누가 더 강한지 보는 것이었다.
정식 업무를 빠르게 확정 지은 허칠안이 다시 또 물었다.
“손 사형께서 방금 청주에 감정을 도우러 갈 거라고 말씀하셨지요?”
손현기는 뒷짐을 지고 서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걸출한 통역가 원호법이 있었다.
“운주 역당이 이미 청주에 전면 공격을 퍼부었네. 스승님과 큰 사형 그리고 가나수 보살이 겨루고 있어. 대봉이 초범 고수가 부족하니 난 본래 전투를 도우러 가려 했네.”
허칠안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럼 전투에 유리한 시기를 지체하는 거 아닙니까?”
손현기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원호법이 말을 이었다.
“칼을 깊이 숨길수록 적은 더 두려움에 떨게 되지. 단기간 내 뜻밖의 사고는 없을 걸세. 그리고 운주 반란군은 서역 불국 군의 출격을 기다리고 있네. 우리가 이쪽에서 움직임을 크게 낼수록 좋지. 적을 견제할 수 있거든.”
허칠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운주 역당이 불문을 끌어들였다는 건 틀림없이 가나수 보살 한 사람에 그치지 않겠지. 서역의 군대도 조력한다라……. 만약 내가 서역 군대를 견제할 수 있다면, 조정의 압박이 훨씬 적어질 텐데…….’
그러다 문득 그가 고개를 돌렸다. 역시, 원호법은 또 쪽빛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허칠안은 얼른 손사래를 쳤다.
“제 생각은 말할 필요 없습니다.”
원호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다시 허 은라의 모기가 되긴 싫었다.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야희가 거대한 상자를 메고 돌아왔다.
콰당!
그녀가 상자를 바닥에 놓자, 묵직하고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상자로 향했다.
상자는 칠흑 같은 검은색에 금빛 광택이 배어 있었고, 겉면에 빽빽이 새겨진 불문은 어느 봉인 진법처럼 보였다.
“이건 마마께서 직접 새기신 불문 봉인 진법으로 신수 대사의 나머지 사지를 제압하는 데 쓰입니다. 10년마다 방대한 수의 생명으로 제사를 올려야 하지요. 그러지 않으면 봉인이 해제될 겁니다. 만약 봉인이 해제되고 마마가 계시지 않는다면, 그걸 다시 봉인하긴 어려울 겁니다.”
야희가 걱정을 내비쳤다.
원호법은 손현기를 한번 보고 이야기했다.
“손 사형의 마음이 제게 말합니다. 허, 불문의 진법은 볼품없는 쓰레기구먼. 조금 이따 내가 솜씨를 좀 보여줘야겠군. 너희 다 깜짝 놀랄 것이다.”
“…….”
손현기의 입가에 경련이 일어났다.
허칠안은 살짝 고개를 돌려 웃음을 참았다.
‘손 사형이 겉으론 저렇게 얌전해 보여도 속에는 경망스러운 마음이 있었네. 역시 허세 부리는 것과 무임승차 하는 건 인간의 천성이야…….’
그는 힘껏 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한 후 말했다.
“콜록콜록! 여시오.”
야희는 고개를 끄덕이곤 청록색 열쇠를 꺼내 자물쇠 구멍에 꽂았다.
철컥!
걸쇠가 열리는 순간, 무시무시하면서도 사나운 기운이 석굴 전체를 메웠다.
원호법은 그대로 맥이 풀려 덜덜 떨었다.
야희 역시 창백하게 질린 채 계속 뒷걸음만 쳤다.
반면, 손현기와 허칠안은 꼼짝도 하지 않고 동시에 상자 안을 보았다.
허칠안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신수 대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고 또 무슨 성격일까? 가능하다면 부도보탑 안에 있는 단수와 만나는 것도 괜찮겠는데…….’
* * *
상자가 열리고, 그 내용물이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몸통이었다. 양팔과 다리, 머리도 없지만 허칠안이 본 것 중 가장 완전한 신수의 몸뚱이였다.
특별히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건, 이 몸의 가랑이가 짐승 가죽으로 된 짧은 치마에 덮여 있었다는 것이었다.
허칠안은 저도 모르게 그해 TV에 나왔던 돌출형 입의 원숭이가 떠올랐다.
“아직 10년이 되지 않았는데 왜 나를 불러 깨우는 거야!”
몸통이 되살아났다.
몸통은 그렇게 천천히 일어나 잠시 사람들 앞을 떠다니다가 숨결을 거두었다.
“신수 대사, 노비가 마마의 명을 받들어 봉인을 열었습니다.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부담이 줄어든 야희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 신수 앞에서 예를 갖췄다.
신수의 몸통은 느리게 반 바퀴를 돌았다. 지금 동굴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훑어보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몸통은 허칠안을 발견했다.
순간, 가슴 부위의 검은콩 두 알이 쩍 갈라지더니 두 눈이 됐고, 다시 그 공포스러운 숨결이 되살아났다.
야희와 흰 원숭이는 재차 창백해진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다.
“네 몸에 내 기운이 있구나. 내 일부 신체가 네 몸속에 기생하고 있군.”
눈이 된 젖꼭지는 이글이글한 기운으로 허칠안을 주시했고, 가슴에서는 우레와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른팔입니다.”
허칠안이 냉정하게 대꾸했다. 그는 몸통에서 강한 적의도, 악의도 느끼지 못했다. 이는 몸통의 성격 역시 그의 몸에 기숙하고 있는 오른팔처럼 ‘온화’하다는 의미였다.
신수 몸통은 허칠안을 한번 자세히 살폈다.
“봉마정……. 너는 불문의 적인가? 음, 그렇다면 내 친구이기도 하군. 수련 경지는 괜찮네. 기초가 탄탄해. 좋은 전사야. 시간 날 때 술 한잔하지.”
‘같이 술을 마신다고……?’
허칠안은 몸통의 목에 난 그릇만 한 흉터를 보고 순간 멈칫했다. 어떻게 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호탕한 성격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다행히 탑 안의 누군가처럼 매일 죽여버리겠다고 외쳐대는 미치광이는 아니었다.
“대사님, 이분은 마마께서 모셔온 조력자입니다.”
야희는 곧 양측의 거래를 알린 뒤, 말을 덧붙였다.
“아소라가 남법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는 실력이 무시무시하여 저희가 상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대사께서 미리 그를 도와 봉마정을 제거해주셨으면 합니다.”
“문제없다. 하지만 봉마정을 제거하면 내 힘이 크게 손실될 테지. 사후에 정혈로 손실을 메워야 한다.”
신수 몸통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노비, 이해했습니다.”
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십만대산에 차고 넘치는 게 바로 짐승이었다. 아니면 작은 도시나 마을을 기습하여 서역 사람의 정혈을 탈취하는 선택지도 있었다.
그때, 허칠안은 한 생각이 번뜩였다.
“대사님, 제 몸에 기숙하실 수 있습니까? 단수처럼요.”
그러면 그는 이 신수 몸통의 초인적인 힘에 무임 승차할 수 있었다.
“안 된다. 네 몸속에는 봉마정이 있어 내가 기숙할 수 없다.”
‘그렇군. 역시 빈틈을 뚫을 수 없어…….’
허칠안은 실망한 듯 약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아소라를 직접 찾아가야 할 것 같았다.
“선배님께서는 어느 봉마정 두 개를 제거하실 수 있습니까?”
두 젖꼭지는 잠시 그를 주시하다가 웅웅, 소리를 냈다.
웃는 소리였다.
“그 두 개가 아직 네 몸에 있구나.”
‘좋아. 나는 역시 기운의 아들이야. 만약 이번에 또 반복된다면, 난 이 몸 속 기운이 가짜라는 의심부터 해야 해…….’
허칠안은 돌아서 사람들에게 분부했다.
“여러분은 석굴에서 물러나시지요.”
그리고 다시 신수 몸통을 쳐다보았다.
“선배님께서 봉마정을 제거해주시길 바랍니다.”
손현기와 야희, 원호법이 자요들을 데리고 석굴에서 물러나자, 돌연 신수 몸통의 가슴이 무너지며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바람은 끊임없이 밀려와 거대한 바람이 되고, 허칠안의 머리카락은 나부끼며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툭! 툭!
회오리바람은 금빛 전기 불꽃을 튀기며 석굴 안의 명암을 지휘했다.
그러다 잠시 후, 회오리바람 중심에서 불꽃이 발사되었다.
칙……!
불꽃은 정확히 허칠안 아랫배 위치에서 터졌다.
그곳은 임맥(任脈)의 봉마정이 자리한 곳이었다.
금빛 전기 불꽃은 마치 긴 밧줄로 변해 신수 몸통과 허칠안을 하나로 연결한 것처럼 보였다.
회오리바람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흡수하는 힘도 더 강대해졌다. 그렇게 긴 밧줄이 된 금빛 불꽃은 단단히 조이며 봉마정을 잡아당겼다.
허칠안의 귓가엔 불경을 외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는 이것이 봉마정을 풀 때의 구결임을 알아차렸다. 전에 두 번 봉마정을 제거할 때, 도정 나한과 신수 오른팔이 보조하는 주문을 외웠던 덕분이었다.
그는 이를 남몰래 기억했었지만, 애석하게도 주문을 외는 것만으로는 봉마정을 풀 수 없었다.
조금씩 봉마정이 뽑히며 허칠안의 얼굴에 심한 경련이 일어났다. 더불어 콩알만 한 땀방울도 비 오듯 흘러내렸다.
흡사 육신이 갈라지는 듯한 고통이 다시금 그를 찾아왔다.
슉…!
봉마정이 혈육을 벗어나는 소리와 함께 허칠안 단전 내의 기기가 용솟음쳤다. 밀물처럼 걷잡을 수 없었다. 내뱉지도 못하니 불쾌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때, 허칠안이 갑자기 양팔을 밖으로 휘둘렀다.
쿵!
기기가 석굴 안을 휘젓고 다니며 그 여파로 산 전체가 격하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