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38
935화. 저 금강은 누군가?
황혼에 물든 하늘 아래, 만요산 정취는 또 다른 멋을 발했다.
만요산은 남강 십만대산의 핵심 지역으로 산세는 높지 않아도 매우 웅장하고 기이했다. 주봉 하나만 해도 수십 리에 걸쳐 있을 정도였다.
그 자태는 꼭 옆으로 누운 거인을 보는 듯했다.
남강 명승지 중의 하나인 만요산은 영기가 넘쳐흘러 대대로 우수한 요족을 낳았다. 지금도 산중 요족의 수는 여전히 방대했지만, 점차 세월이 흐르며 요족의 위치는 주인에서 노예로 꺾이고 말았다.
그 새로운 지배자의 자리는 불문이 차지했다.
이 산꼭대기에 지어진 남법사는 남국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불문은 만요산을 점령한 이후, 나무를 베고 길을 뚫는 등 대규모 토목공사로 웅성을 한 채 쌓았었다.
현재 허칠안은 두봉을 걸친 해 ‘남국’ 성에 있는 길을 걷고 있었다.
곁에는 야희, 손현기, 묘재방도 함께였다.
이들 역시도 같은 두봉을 걸치고 있었다.
“끽끽…….”
돌연 날카로운 원숭이 울음소리가 허칠안의 귀를 사로잡았다.
고개를 돌리니, 길가에 어떤 이가 원숭이 놀이를 하고 있었다. 노란 털의 원숭이는 사람을 마주치면 읍을 하며 재물을 구걸했다.
행인이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 즉각 공중제비를 돌거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무릎을 꿇거나 머리를 조아렸다.
“전부 화형(化形)하지 않은 소요군.”
허칠안이 부스러기 은전 한 알을 꺼내 던져주었다.
노란 털 원숭이는 부스러기 은전을 줍더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쿵! 쿵!
원숭이의 이마는 연신 바닥과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야희의 눈에 애통한 기색이 어렸다.
“화형하지 않은 소요가 제일 통제하기 쉬우니까요.”
요족은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한 종류는 생각이 트인 짐승이 스스로 수행하여 점차 대요(大妖)가 되는 것이었다.
이들의 자식은 선천적인 요족으로, 그들이 바로 또 다른 류의 요족이었다. 선천적인 요족은 인간처럼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생각이 트이곤 했다.
만요산 요족은 대체로 그해 대요의 자손이었다. 비록 짐승의 형태를 하고 있긴 해도 아주 뛰어난 지혜를 갖고 있었다. 백희가 그 예였다.
“화형한 요족도 있겠죠?”
묘재방이 물었다.
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있지요. 하지만 극히 드뭅니다. 대부분은 절의 노예거나 탈것, 아니면 성 안 고관대작의 지배를 받습니다. 서역 고관대작이 화형한 요족을 사육하는 건 보통 전쟁 노예로 삼기 위함입니다. 극소수의 예외도 있지만.”
“극소수 예외?”
묘재방의 물음에, 야희는 냉소를 보였다.
“예를 들어 용모가 아름다운 요족 여인은 그들 노리개가 됩니다. 그건 그래도 대우가 좋은 경우지요. 대우가 나쁜 경우는 군에 보내지는데…….”
야희는 말끝을 흐렸지만, 묘재방도 충분히 그 답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묘재방은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 * *
밤의 장막 아래, 남법사 보탑 꼭대기에 거대한 인영이 비쳤다.
아소라였다.
그는 한창 탑 꼭대기에서 웅대한 웅성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때, 그가 갑자기 탑 아래 그림자로 시선을 돌렸다.
두봉을 걸치고 모자를 쓴 사람의 형상이었다.
실로 아무 소리 없이, 무슨 기척 하나 없이 나타난 자였다.
“암고, 남강 고족 사람인가?”
돌출된 눈썹 뼈 아래, 아소라의 날카로운 눈이 번뜩였다.
그는 꽤 이상한 느낌이었다. 내려다보는 눈에 멸시를 담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담박하고 온화했다. 그 상반된 기질이 적당히 어우러지고 있었다.
허칠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등불이 환하게 켜진 불탑을 훑었다. 문은 닫혀 있지만, 저 탑 안에 선사 68명으로 이루어진 선진이 있다는 건 알았다. 그들이 남강 십만대산의 기운을 빌려 신수 나머지 사지를 제압하고 있었다.
불문 선공은 체계 전체의 근간으로 불문이 장차 깨달음을 얻으려면 반드시 좌선하여 입정해야 했다. 이것으로도 선공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선공이 높고 깊은 대사는 한 번 앉으면 수년, 수십 년 나아가 일갑자 동안 먹지 않고, 마시지 않고서 외부 세계와 단절할 수 있었다.
저 탑 안의 선사 68명이 바로 그런 상태였다.
선사들은 조각상처럼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외부 세계의 움직임 역시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또 야희가 말하길, 탑 안의 선사들은 일갑자마다 배치를 바꾸어 돌아가면서 좌선하며 진을 친다고 했었다.
무엇보다 허칠안은 신수를 봉인한 이 불탑에서 강대한 진법의 힘을 느끼고 있었다. 그 엄청난 기운이 이 불탑을 비호 중이었다.
이내 시선을 거둔 허칠안이 입을 열었다.
모자 안에선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고족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잠시 멈칫하던 그가 다시 천천히 말했다.
“나는 불문이 버린 제자, 무천(無天)이다!”
동시에 허칠안은 모자를 벗고 얼굴을 치켜들었다. 젊고 준수한 얼굴에 순간 금칠이 반짝이더니 빠르게 온몸을 뒤덮고 어두운 금색으로 변했다.
슉~
끝으로 머리 뒤에선 불꽃이 솟구치며 이글거리는 불의 고리를 형성했다.
금강, 불문의 호교금강이었다.
아소라의 날카로우면서도 담박한 눈에 마침내 경악의 빛이 스쳤다.
“무천?”
그의 목소리는 젊고 두터웠다.
“500년 동안 적잖은 일이 발생했다. 난 부처의 비밀을 알았고, 그해 요족을 멸한 전쟁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불문은 나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아란타의 보살과 나한들 중, 내 존재를 네게 말해준 자가 없더냐?”
허칠안이 비웃음을 흘렸다.
그는 지금 아소라를 공갈 협박하고 있었다. 이 수라왕의 막내아들에게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였다.
아소라가 제자리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불자’의 존재를 안다고 해도 허칠안의 금강신공 대성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외관상 허칠안은 조금의 거짓도 없는 금강이었다. 불문이 버린 제자라는 신분을 날조해 멸요전에 개입했던 이 강자를 속인다면 기밀 정보를 캐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무천’을 자칭하는 자를 마주해도 아소라는 내내 차분한 얼굴이었다. 감정이 거의 동요하지 않았다.
허칠안은 낙담하지 않고 계속 소리를 높였다.
“부처는 신의를 저버린 소인이다. 그는 불문을 통솔할 자격이 없다. 그해 그가 신수를 이용해 만요국을 멸하여…….”
순간, 아소라의 두 눈에서 금빛이 뿜어나오더니 허공에 폭음이 일었다.
아소라는 그대로 탑 꼭대기에서 사라져 허칠안에게 달려들었다.
몸놀림은 흡사 토끼를 덮치는 매 같았다.
‘아주 빠르군…….’
허칠안의 직감이 빨리 피하라는 경고를 보냈지만, 어쩐 일인지 그는 바닥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움직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불문 계율의 힘이 그를 속박하고 있었다.
불호를 외지 않았음에도 계율의 힘은 순식간에 강림했다. 본래 선사 체계는 나한 과위까지 수련한다면 이 같은 경지에 이르렀다. 생각만으로도 적의 말과 행동을 ‘규정’해 상대가 불문의 각종 계율을 지키게 만드는 것이었다.
‘반응이 이렇게 크다니. 역시 그는 멸요전 내막을 알고 있어. 그리고 방금 내 말이 이미 진상에 접근한 것 같은데…….’
그때, 갑자기 허칠안 머리 위에서 금빛이 솟아오르더니 작고 영롱한 탑으로 변했다. 제2층에 억눌린 힘이 열린 것이다.
쿵!
소리와 함께 허칠안을 중심으로 방원 100m의 원형 구덩이가 생겼다.
아소라의 형체는 그대로 뻣뻣하게 ‘내리쳐’졌다. 수백, 수천 배에 달하는 인력을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부도보탑의 견제로 아소라의 흐름이 무너졌고, 허칠안에게 가해진 계율은 단 1초 정도밖에 유지되지 않았다.
“부도보탑?”
아소라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검주에서 금강법상을 방어한 뒤로, 탑령 노승은 더는 불문 제자에게 손대지 않겠다는 약속을 언급하지 않았다. 자신이 정한 규칙을 잊은 듯했다.
물론 지난번은 탑령도 강요로 어쩔 수 없이 국면과 타협한 감이 있었다.
이번에는 허칠안이 직접 탑으로 들어가 노승에게 나서달라고 부탁했다.
탑령 노승은 다시 또 규칙을 깼지만, 거기엔 명확한 까닭이 있었다.
허칠안이 최근 알게 된 비밀을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부처는 유가 성인에게 봉인됐다는 사실, 신수와 만요국주의 관계, 신수와 부처 사이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거래 등등.
허칠안은 이 단서를 바탕으로 추측에 나섰다. ‘전문적’인 각도에서 보면 법제보살의 실종이 어쩌면 부처와 은밀한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허칠안은 탑령을 도와 삼백여 년 전 사라진 법제보살을 찾아주겠다고 가슴을 치며 장담했었다. 대가는 앞으로 부도보탑이 그에게 요구하는 건 반드시 응한다는 조건이었다.
이윽고 허칠안이 소리 없이 솟구쳐 나왔다. 화경이 신체를 완벽하게 장악한 덕에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발밑엔 돌 하나 깨지지 않았다.
후!
그는 곧 왼 다리를 축으로 등허리에 힘을 싣고, 오른 다리를 휘둘렀다.
공기가 채찍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아소라는 오른손을 펼쳐 허칠안의 다리를 움켜쥐었다.
곧 그의 팔 근육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그가 미친 듯 팔을 흔들었다.
펑!
결국 아소라는 무시무시한 힘을 제거했다.
그 순간, 허칠안이 다른 발로 솟구쳐 올라 쉴 틈 없는 공격을 펼쳤다.
우선 아소라의 얼굴에 무릎을 내리꽂고, 주먹으로 좌우를 가격했다. 주먹에 주먹을 더하니, 공기파가 연이어 폭발했다.
적막한 남법사 상공엔 대포 같은 폭죽 소리가 끝도 없이 퍼져나갔다.
이 과정에 부도보탑 제2층에 억눌린 힘이 역할을 발휘해 아소라를 필사적으로 제압했다. 무사는 일단 기선 제압만 하면, 1톤에 달하는 상처를 입힐 수도 있었다.
아마 다른 체계의 3품 고수였다면, 지금 이미 육신이 다 터졌을지 몰랐다. 그러나 아소라는 그저 계속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나기만 했다.
다만 매번 근육을 팽팽하게 죄어 덤비려 해도, 모두 실패로 끝났다.
철컥! 철컥! 철컥…….
아소라가 한 발 뒤로 물러설 때마다 바닥에 깊은 발자국을 남겼다.
그는 다시 한번 억지로 자세를 취했다. 그의 목덜미 쪽 근육이 한 바퀴 팽창 후 몸 전체 근육이 하나로 뭉쳐졌다. 반격을 강행하려는 듯했다.
띵!
이때, 허칠안 가슴에서 도광이 솟구쳐 아소라의 목구멍에 불똥을 새겼다.
도광이 아소라의 방어를 뚫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아소라는 칼에 베인 곳이 쿡쿡 쑤시고, 등이 싸늘해졌다. 힘을 비축하던 근육들도 자극을 받아 굳어진 것이었다.
‘그를 죽인다, 그를 죽인다, 일련에 그를 죽인다…….’
허칠안은 싸울수록 용감해졌다. 입에 태평도를 물고, 아소라가 흐름을 끊으려 할 때마다 태평도의 예기로 비축한 힘을 격파했다.
* * *
서원의 전투는 사찰 내 무승과 선사들의 이목을 끌었다.
점차 선방에선 인영이 하나씩 뛰쳐나오더니, 법기를 부려 허공을 가르거나 근처 탑 꼭대기 위에서 관전에 들어갔다.
마승을 봉인한 높은 탑 밖에, 머리 뒤 불의 고리가 타고 있는 금빛 찬란한 금강 둘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를 본 순간, 모두가 망연자실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왜 호법금강들이 사찰 내에서 전투를 벌이는 거지?
저 금강은 누군가? 누구기에 아소라와 치고받고 싸울 정도란 말인가!
“저자는 호법금강이 아니네, 외적이야!”
흰 눈썹의 노승이 나지막이 말했다.
다른 승려들도 아소라와 교전하는 금강이 동문이 아님을 빠르게 알아차렸다. 지금 불문에 금강은 도범과 도난 둘뿐이었다. 거기서 새로운 금강이 더 탄생했다면 불문은 이미 온 천하에 명백히 알렸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저 누군가는 머리카락도 다 깎지 않은 상태였다.
“남법사의 동문을 소집하게. 함께 진을 쳐 상대하자고.”
항렬이 높은 노승이 적의 도전에 응할 일손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천 년을 계승해 온 대교로서, 자연스레 ‘미약한 힘’을 결집해 초범 강자의 진법을 상대하거나 견제하곤 했다.
다만, 이럴 경우 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었다.
그래도 자신들 쪽에 초범이 있다면, 죽음을 불사할 가치가 있었다.
쿵!
그때, 갑자기 포탄이 어둠의 장막을 가르고 남법사를 강타했다.
충격파는 안마당을 평평하게 깎고, 지붕을 날렸다.
멀리서 더 많은 폭발음이 들려왔다. ‘남국’성 각지에 화약 연기가 피어올랐고, 불빛이 하늘로 치솟았다.
남국성에 잠입한 묘재방, 야희 그리고 요족들의 움직임이었다.
이들은 사전에 성안 각지에 숨겼던 화약을 터뜨려 혼란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