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40
937화. 혈통의 힘
곧 손현기가 손가락으로 허공에 진을 그렸다. 형태는 각기 다 달랐다.
그만큼 다른 영역의 힘을 상징하는 진법이 탄생했고, 초대형 구경 화포에 질서정연하게 새겨졌다. 이는 포신을 공고히 하는 데 쓰이거나 영력을 응집하는 데 쓰임이 있었다.
십여 초 뒤, 수십 개의 진법이 다 새겨졌다.
초대형 구경 법기 화포도 완벽한 완성이었다.
탁!
손현기가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자 포관 위 진문이 차례로 밝아지기 시작했다. 점점 연쇄 효과가 일어나고, 종국엔 포신 전체의 진문을 밝혔다.
강대한 영력이 모이기 시작하니, 포구 안에선 주먹 크기만 한 빛 덩어리가 반짝였다. 영력이 응집되며 빛 덩이는 계속해서 몸집을 불렸다.
이 과정도 대략 10초 정도 유지되다가 손현기가 갑자기 외쳤다.
“좋아!”
손현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허칠안에게 마구잡이로 폭력을 퍼붓던 아소라의 가슴이 움푹 파였다. 뒤이어 아랫배, 옆구리, 등, 어깨 등등, 신체 곳곳이 정도가 다르게 무너져 내렸다.
어두운 금빛 피부는 자기처럼 갈라졌고, 순간 그의 금강신공마저 무너졌다. 결국 오장육부는 중상을 입고 기운은 빠르게 쇠약해졌다.
옥쇄!
허칠안은 즉각 옥쇄를 발동해 상처의 60%를 되돌려주었다.
이는 옥쇄가 할 수 있는 극한이었다.
또 아소라가 중상을 입은 이 틈을 타, 허칠안은 그림자에 녹아들어 다시 먼 곳에 나타났다.
탁!
이어, 손현기는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냈다.
쿵!
포관이 뜨거운 빛을 내뿜으며 직경 1m의 빛기둥이 아소라를 뒤덮었다.
이 빛의 기둥으로 남법사 전체가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졌다.
승려들은 이 빛기둥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마치 태양을 직시한 것처럼 자극받은 눈동자는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울고 있는 이들은 갑작스럽게 반전된 이 전개가 당최 이해되질 않았다.
반면, 허칠안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빛기둥을 주시하고 있었다.
곧 부도보탑의 탑 꼭대기에 약사 법상의 허영이 떠올랐다. 옥병에서 쏟아진 부드러운 금빛이 그의 상처를 치유하였다. 거기다 3품 무사의 강한 자가 치유 능력과 호응해 살적과위의 힘을 천천히 뽑아냈다.
‘엄청나게 강하다……. 역시 불문 2품 중 전투력으로 유명한 살적과위답네. 진국검 특성에는 못 미쳐도 티끌 모아 태산인 상황에도 초범 무사의 자가 치유력을 억제할 수 있다니……. 1:1로 싸우면 난 아소라를 이길 수 없어. 옥쇄도 60%의 부상만 돌려줄 수 있으니 쌍방 모두 손해지. 나한테 약사 법상이 있어 참 다행이야…….’
허칠안은 여전히 가슴이 거칠게 뛰고 있었다. 2품에 3품을 더한 불문 고수는 정말이지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했다.
‘그래도 전력을 다한 손 사형의 일격에 내 옥쇄가 입힌 상처를 더하면 아소라는 죽지 않는다 해도 위협이 되진 않을 거야. 대세는 이미 정해졌어.’
빛기둥은 20초 정도 유지되다가 힘을 다 쓴 후엔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아소라의 형체가 드러났다.
빛기둥이 강타한 자리엔 깊은 구덩이가 생겼고, 그는 양손을 합장한 채 구덩이 안에 앉아 있었다.
입은 가사는 이미 다 타버렸고, 피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피부는 거의 녹은 초처럼 연붉은 혈육까지 드러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몸서리쳐지는 건 그의 머리였다. 혈육이 타버려서 까맣게 탄 두개골만 자리해 있고, 이목구비는 다 녹아 한데 일그러져 있었다. 거기다 눈가에는 까맣게 탄 구멍 2개뿐, 눈동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허칠안의 옥쇄는 아소라의 금신을 직접 부수고 내장에 중상을 입혔다. 아소라가 제때 신공을 시전해 ‘포격’을 막아냈다 해도,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선 전력을 다한 3품 술사의 일격을 면하긴 어려웠다.
‘이 틈을 타 목숨을 거둬가야겠네…….’
허칠안은 다시 그림자에 녹아들어, 아소라 뒤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그대로 아소라를 향해 태평도를 내리쳤다.
아소라는 현재 금강신공의 뒷받침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제는 태평도의 칼끝을 막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허칠안이 아소라의 머리를 베고, 손현기에게 봉인을 맡기기만 하면 아소라의 생기도 바닥날 터였다.
앞으로 아소라에게 남은 건 철저한 몰락의 길뿐이었다.
둥! 둥! 둥…….
그런데 갑자기 허칠안은 어디선가 고(鼓) 소리를 들었다. 그 묵직한 소리가 의아했지만, 태평도의 참수에 지장을 주진 않았다.
띵!
순간, 날카로운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울렸다.
태평도는 불똥을 튀겼다. 아소라의 머리를 베지 못하고 상대가 내민 손바닥에 가로막힌 것이었다.
먹처럼 까만 손바닥이었다.
놀랍게도 지금 불타 사라진 아소라의 피부가 빠르게 재생되고 있었다.
두개골은 연붉은 혈육으로 뒤덮였다가 칠흑같이 까만 피부가 되더니 단 몇 초만에 아소라의 상처가 전부 회복되었다.
동시에 용모도 크게 변했다. 사람 자체가 먹처럼 새까맣게 변해서 꼭 심연 속의 악마를 보고 있는 듯했다.
“혈통의 힘을 방출하지 않은 지 아주 오래되었군. 나 자신이 수라족의 가장 강한 전사라는 걸 잊을 뻔했다.”
탄식과 함께 아소라가 손가락을 굽혀 튕겼다.
하마터면 허칠안은 태평도를 놓칠 뻔했다. 비로소 그는 조금 전 둥둥 울리던 소리가 다름 아닌 아소라의 심장 박동 소리였음을 깨달았다.
‘이건…….’
허칠안의 눈이 조금씩 커졌다. 정말 극도로 놀라운 충격이었다.
그가 이렇게 이성을 잃을 만큼 경악한 건 아소라의 힘에 공포를 느껴서가 아니었다. 허칠안은 전에도 이처럼 새까만 피부의 소유자를 본 적이 있었다.
신수의 칠흑법상(漆黑法相)!
‘혈통의 힘……. 이게 수라족의 혈통의 힘?! 그럼 신수가…….’
‘신수가 수라족, 수라왕이라고?!’
정말 신수가 수라족이라면 그에 부합하는 건 전설 속 그 수라왕뿐이었다. 부처에 의해 봉마정으로 봉인돼 아란타 성산 아래 억눌린 그 수라왕!
하지만 전설에 따르면 그 수라왕은 이미 죽음의 길에 들어섰다.
허칠안은 이외 다른 경우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라왕 사후, ‘아소라’ 칭호를 계승한 건 수라왕의 막내아들밖에 없었다.
아소라는 수라족 최강의 전사라는 뜻이었다. 신수가 진정 수라족이 맞다면 그 반보 무신은 당연히 수라왕일 것이었다.
‘신수가 수라왕이고, 수라왕과 만요국주는 사통한 사이다. 구미천호는 수라왕의 딸이니 아소라와 남매고……. 와, 이거 재밌어지는데!’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의혹은 여전히 많았다.
허칠안이 알기론, 수라족이 불문으로 귀순한 건 적어도 천 년 전 일이거나 그보다 더 오래됐다. 또 갑자탕요는 500년 전에 발생한 것이었다.
그런데 천 년 전 이미 몰락했을 수라왕이 신수라고?
아예 연대표 자체가 맞지 않았다.
만약 수라왕이 정말 불문으로 귀의했다면, 불문에선 틀림없이 마구 떠벌렸을 게 분명했다. 불경에 기록하고, 천하 신도들에게 명백히 알려 불문의 위신을 세웠을 터였다. 더더욱 수라왕이 대자대비한 부처에 의해 소멸당했다는 사실을 알릴 리는 없었다.
‘참! 거래, 신수와 부처 사이에는 알려지지 않은 거래가 있지…….’
순간적으로 생각이 번뜩인 허칠안은 어렴풋이 뭔가를 파악했다.
하지만 그 이상 추리를 이어갈 여유는 없었다. 아소라가 뿜어낸 숨결이 점점 공포스러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남법사 전체가 그림자 속에 뒤덮옆다.
9척 키, 칠흑 같은 피부, 다부지게 굴곡진 근육에 툭 튀어나온 눈썹 뼈까지. 지금 아소라는 꼭 지옥에서 걸어 나온 전신(戰神) 같았다.
돌출된 눈썹 뼈 아래, 그 날카로운 눈에선 선홍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허칠안은 그의 눈에서 학살, 잔학, 전투 등의 살기등등한 낱말을 읽었다.
과연, 그는 수라족의 타고난 전사였다.
“아미타불!”
허칠안은 둘째치고, 남법사 승려들조차 아소라의 현 상태를 경계했다.
다들 진을 치던 걸 멈추고 불호를 외며 물러났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난폭한 상태에 빠진 아소라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허칠안은 태평도를 들고 경계에 집중했다. 동시에 고개를 들어 고공을 쳐다보았다. 하늘엔 손현기의 두 번째 포격이 응집하기 시작했다.
‘만약 신수가 수라왕이라면 아소라는 이 일을 알까? 만약 모른다면 기회를 틈타 같이 반란을 기도할 수도 있을 텐데…….’
순간 생각이 번뜩인 허칠안이 전음으로 물었다.
“탑 안에 봉인된 자가 누구인지 아는가?”
“마승(魔僧)!”
아소라가 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더는 젊지도 순박하지도 않았다. 모든 걸 내려다보듯 냉담한 기운만 풍겼다.
허칠안은 계속 전음으로 말했다.
“그가 네 부친 수라왕이자 전대 아소라라는 건 아나?”
아소라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또 어떠한가. 불문에 들어오면 세상 모든 일이 공허한 것을.”
‘불신을 새로 만든 뒤에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깨달아 추구하는 바가 없고 속세와도 연을 끊음으로써 자네에게 보복하지 않을 걸세.’
허칠안은 당대 제일의 보살, 유리가 떠올랐다. 서역에서 경성으로 와 허평봉에게 협조하며 했던 말이었다.
불문에 들어오면 세상 모든 일이 공허하다고…….
일순 허칠안은 가슴이 철렁했다. 정말 유리보살의 말대로 된다면, 지금 그의 상황도 아소라보다 딱히 나을 게 없었다.
쟁! 쟁!
아소라가 손가락으로 날카롭고 새까만 발톱을 튕기자 검은빛이 솟구쳤다.
이후 그의 형체가 사라지더니 돌연 전송처럼 허칠안 앞으로 돌파했다.
‘엄청 빠르네…….’
허칠안의 눈동자에 아소라의 추한 얼굴이 어렸다.
그 순간, 허칠안의 전투본능이 생각을 뛰어넘어 태평도를 내리쳤다.
슉-
어두운 금빛 선혈이 사방으로 번지며 잘린 팔과 태평도가 함께 추락했다.
‘살적과위 힘이 저 수라의 육신과 정신이랑 맞물렸어. 금강신공으로는 아예 막을 수조차 없는데.’
허칠안은 우측으로 뛰어올라 한쪽 팔로 멋지게 공중제비를 돌았다. 도중에 그는 잘린 팔을 주워 옥쇄를 발동했다.
이 상처를 고스란히 아소라에게 돌려주고, 그의 공격 흐름을 끊어냈다.
아소라의 새까만 오른팔에 뼈에 박힌 발톱 자국이 드러났다. 하지만 결국 그의 팔을 갈기갈기 찢지는 못했다.
이내 아소라는 힘껏 주먹을 쥐고 오른팔 근육을 터뜨렸다.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옥쇄 반환 비율이 떨어졌어. 50%도 안 돼…….’
순간 가슴이 철렁한 허칠안은 바로 그림자에 녹아들었다.
곧이어 허칠안이 원래 서 있던 자리에 갑자기 거구의 아소라가 나타났다.
아소라는 오른 주먹을 가격했는데, 목표는 허칠안의 머리였다.
그때, 십여 장(丈) 밖에 허칠안이 나타나 오른쪽으로 태평도를 휘둘렀다.
띵!
불똥이 튀고, 때마침 나타난 아소라는 가슴을 베였다.
동시에 칼을 뽑아 든 허칠안은 다시 그림자에 녹아들어 사라지고, 다시 봉인된 탑 아래쪽에 나타났다.
띵!
또 한 번 불똥이 튀며, 허칠안은 그림자 도약을 시전해 사라졌다.
이처럼 거대한 서원에, 두 사람은 기이한 방식으로 전투하고 있었다. 때로는 동에서, 때로는 남에서 나타났으며, 어떤 때에는 ‘띵’하는 소리와 여기저기 튀는 불똥만 보일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허칠안도 더는 그저 그런 무사가 아니었다. 고통도 참고, 오롯이 집중할 줄 알며, 칠절고 마저 장악한 그는 몹시도 다채로운 솜씨를 자랑했다.
첫째로 그는 ‘이성환두’의 법술을 이용해 기운을 감춘 뒤 그림자 도약을 빌려 달라붙었다.
이러면 아소라도 허칠안이 어느 쪽에서 나타날지 판단할 수 없었다. 설령 무시무시한 속도로 추격한다 해도 어쨌든 적의 기선까지 예측할 순 없기에 계속 한 박자씩은 늦었다.
물론 여기에도 단점은 있었다. 허칠안은 반드시 끊임없이 도약해야만 했다. 일단 느려지면, 예컨대 기회를 틈타 봉인된 탑을 파괴한다면 바로 아소라에게 잡힐 게 뻔했다.
또, 봉인된 탑은 68명의 선사가 결성한 진법에 뒤덮여 있어 제아무리 허칠안이라 해도 손쉽게 파괴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