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43
940화. 송별
‘부향의 자매라. 매일 장안성 거리가 봄비로 촉촉해지겠는데.’
순간 생각이 번뜩인 허칠안은 문득 고개를 돌리다 흰 여우와 눈이 마주쳤다. 허칠안은 금세 실망한 듯 고개를 저었다. 저 꼬맹이는 예외였다.
구미천호는 곧 신수의 다리 앞으로 가 장딴지를 가볍게 누르며 말했다.
“500년 동안 나는 시시때때로 전심전력을 다해 어떻게 하면 봉인을 풀어 그를 곤경에서 구해낼지, 어떻게 남요를 이끌고 옛땅을 되찾을지 궁리했다. 드디어 그날이 머지않았구나.”
‘마마, 말만 하지 마시고 그 여자분들 사진이나 연락처라도 줘야죠…….’
속으로 딴생각을 하던 허칠안도 금세 정신을 차렸다.
“마마, 언제 거사를 일으켜 요족 정예병을 거느리고 십만대산을 되찾을 계획이십니까?”
구미천호는 잠시 생각 끝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구주로 돌아오면 신수를 깨우고 군대를 출동시켜 서역인을 토벌하고 아소라를 생포할 것이네. 그가 자네의 마지막 봉인을 풀 수 있도록. 그리고 신수 머리 외의 모든 사지를 다 모은 뒤 아란타로 진격할 것이고.”
‘아란타까지 공격할 거라고? 신수의 머리를 되찾고? 그럼 가나수 보살이 중원을 공격하는 운주에 계속 협조할 수 있을까?’
허칠안은 계속 머리를 굴리며 남몰래 분발하기 시작했다.
“마마께서는 언제 구주로 돌아오십니까?”
“시일이 좀 더 걸리네. 그간 내가 야희 등에게 구주 각지에 흩어져 있는 요족을 암암리에 불러들이라 했네. 병마가 집결하는 데 시간이 필요해.”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 준비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다.
“마마, 신수가 수라왕임을 아십니까?”
갑자기 허칠안이 폭약에 버금가는 얘기를 던졌다.
‘!!!’
일순간 손현기와 야희의 표정이 급변했다.
뒤이어 구미천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불요대전 말미에 이르러서야 그가 수라왕임을 알았다.”
‘친아버지 신분도 몰랐다니, 그해 신수와 만요국주가 일부러 숨겼나보네.’
허칠안이 다시 물었다.
“그럼 마마 몸에도 수라의 정혈이 있습니까? 하지만 왜 청목호법이 마마는 순수한 혈통의 구미천호라고 말했을까요?”
구미천호는 잠시 그를 뚫어지게 보다가 서서히 가벼운 웃음을 그렸다.
“허 은라가 사건 해결의 신이라더니, 과연 명불허전이군. 조금만 소홀히 해도 자네가 곧 내막을 확실히 파악하겠어.”
이내 살짝 멈칫하던 그녀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나는 순수한 혈통의 구미천호가 아니다. 본좌는 천성이 꼬리 8개로, 그해 어머니께서 환술(幻術)로 요족들을 기만한 것이다. 내가 순수한 혈통의 구미천호라 여기도록.
불요대전 말미에 어머니께선 화를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영온을 일부 분리해 내 몸에 주입하셨다. 난 어머니 영온을 얻은 후에야 수라의 피를 내보내고 순수한 구미천호로 화신했지. 그때 본좌도 신수의 진짜 신분을 알았다.”
허칠안도 이제야 진상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마마께서 해외로 나가 동족을 찾는 것이 다음 세대의 순수한 혈통을 위해서입니까?”
구미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볼 가치가 있다면 동료로 삼아 구주로 데려와 함께 만요국을 독립시킬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여 영온을 빼앗아 장차 내 자손을 위해 준비해야지. 지금은 후자에 더 기울었네. 하지만 바다는 끝없이 넓고 섬도 많아 지금도 해외에 구미천호가 더 있는지, 없는지 확신할 수가 없네.”
허칠안은 그녀의 말에서 2가지 핵심 요소를 간추렸다.
첫째, 구미천호는 반란에 아주 큰 희망을 품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해외로 나가 동족을 찾아 부하를 끌어들이고 싶은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 이는 바다에서 바늘 찾는 격이라 이 계획은 불확실성이 너무 컸다. 아무래도 그녀는 생각을 바꿔 새로운 계획을 세운 듯했다.
대화가 거의 끝난 걸 보자 야희가 황급히 물었다.
“마마, 신수 대사의 이 사지는 선입니까, 악입니까?”
그녀의 관심은 시종일관 신수의 나머지 사지가 깨어나면, 허칠안에게 협조해 봉마정을 풀어줄지, 말지에 집중돼 있었다.
구미천호가 약간 생각한 후에 답했다.
“사실 추측하기 쉽다. 상백 아래 봉인된 오른팔은 성격이 온화하고 자비롭지. 반대로 부도보탑 내의 왼팔은 난폭하고 살인을 일삼는다.
몸통은 시원시원하고 직설적이니 그렇다면 이 다리는 위에 언급한 모든 성격을 배제하면 되겠지. 어쩌면 상대하기 쉽지 않겠지만, 사악하고 난폭한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 자네들이 알아서 결정하도록.”
이 말을 끝으로 야희 왼눈의 물안개 같은 청광이 흩어져 사라졌다.
허칠안과 손현기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허칠안은 부도보탑과 태평도 등의 법기를 꺼냈고, 손현기도 약속한 듯이 진법을 구사했다.
무릇 3품 술사가 그리는 진법이란, 무조건 천하를 놀라게 할 대진이었다.
손현기가 진법을 다 새기자, 허칠안의 지시 아래 야희가 걸음을 뗐다.
그녀는 엄지손가락으로 새끼손가락을 꺾어 정혈 두 방울을 짜낸 후, 두 다리 위에 떨어트렸다.
순식간에 피를 머금은 다리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리는 갑자기 탁자 위에서 뛰어올랐다. 왼 다리는 야희의 얼굴을 걷어차려 했고, 오른 다리는 아랫배 쪽을 노렸다.
야희는 깜짝 놀라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웅웅…….
두 다리가 갑자기 솟아오른 청광 장벽에 가로막혔다. 이는 손현기의 진법, 화지위뢰(*畵地爲牢: 땅바닥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놓고 감옥으로 삼음)였다.
그 후, 신수의 분리된 두 다리는 석굴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다만 왼 다리는 왼쪽으로, 오른 다리는 계속 오른쪽으로 가고자 했다.
각자의 자아가 넘치는 다리는 반대 방향으로만 돌진하다가 어느덧 서로가 분리된 걸 깨닫고 다시금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퍽!
급하게 뛰던 두 다리는 결국 서로 부딪혀 넘어졌다.
두 다리는 나름대로 열심히 협조하고, 서로 보조를 맞추려는 듯했지만 매번 생각이 달라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뭐야, 이건 신수의 연기형 인격인가? 아니면 서커스 애호가?’
깜짝 놀란 허칠안은 약간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었다.
손현기와 야희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놀라고 경악한 얼굴이었지만 또 동시에 웃음을 참으려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신수 대사…….”
허칠안이 일부러 기침하며 두 다리의 공연을 중지시켰다.
신수의 두 다리도 허칠안의 말을 들었는지 순간 그 자리에 멈췄다. 그리고 바로 허칠안에게 달려들었다.
두 다리는 굽히지 않는 전사처럼 계속해서 왕성한 투지를 분출했다.
왼 다리는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 허칠안의 얼굴을 걷어찼고, 오른 다리는 무덕(武德)도 무시한 채 허칠안의 사타구니를 습격했다.
허칠안은 무표정하게 양손을 뻗어 두 다리의 발목을 잡았다. 신수의 두 다리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의 손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대치한 끝에, 신수의 잔혼이 의념을 전달했다.
“그래, 이놈아. 네 힘을 인정하마.”
허칠안도 발목을 풀고 공수했다.
“선배님께서는 500년 동안 봉인된 까닭에 신체가 허약해졌을 뿐입니다. 후배 허칠안, 선배님과 연원이 아주 깊습니다.”
신수는 꿋꿋하게 말했다.
“감지해냈다. 네 몸에 내 신체 일부가 있구나. 그래도 내가 사정을 봐줄 이유는 되지 않는다. 내 상태가 회복되면 너를 찾아가 사투를 벌이겠다. 너는 괜찮은 상대고, 몸속의 정혈도 아주 먹음직스럽구나.”
‘호전적인 인격이네. 음, 신수가 수라왕인데, 수라왕은 천성적으로 호전적이니 이 두 다리가 계승한 건 신수의 일부 호전적인 의지겠구나.’
깨달음을 얻은 허칠안이 다시 두 다리를 쳐다보았다.
“제가 선배님을 도와 상태를 회복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교환 조건으로 선배님은 저를 도와 몸속의 봉마정을 풀어주시지요.”
신수의 두 다리가 허칠안을 자세히 ‘살피다가’ 웃음기 어린 소리로 말했다.
“가능하다. 상대가 강할수록 나는 더 흥분되거든.”
‘내가 봉마정을 풀면 몸통을 던져버려서 너희 둘이 싸우게 할 거다.’
허칠안은 손현기를 돌아보았다.
“우선 선배님을 다시 봉인하시지요.”
지금 신수의 두 다리는 봉마정을 제거할 힘이 하나도 없었다.
손현기가 신수의 두 다리를 봉인해 나무 상자에 넣자, 허칠안이 물었다.
“손 사형, 다음은 무슨 생각이십니까?”
손현기도 이제는 알아서 붓을 들었다.
「청주에 가서 수비군을 지원한다.」
그는 또 야희를 보다가 글을 적었다.
「낭자께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소.」
야희가 바로 응했다.
“예, 손 사형, 얼마든지 분부하시지요.”
「원요를 데려가려 하오. 특별한 이유는 없소. 그저 그의 자질이 좋은 걸 보니 제자로 거두고 싶소.」
야희는 말없이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허칠안은 야희를 보며 물었다.
“원호법에게 무슨 특별한 용도가 있소?”
야희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웃음을 그렸다.
“좋은 일이네요.”
* * *
산골짜기 안.
손현기는 모닥불 앞에 뒷짐을 지고 서 있고, 옆에는 원호법이 있었다. 원호법은 영 내키지 않은 듯한 얼굴이었다.
야희는 골짜기 내 요족 무리를 이끌고 송별에 나섰다. 원호법은 단순한 소요가 아니라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위치였다.
원호법이 사천감 술사를 따라 멀리 중원으로 간다는 소식에, 요족 무리는 아쉬움에 눈물을 머금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원호법, 내 듣자 하니 인족 대다수는 마음이 좁고, 도량이 넓지 않다지. 자네는 중원에 가서 언행을 각별히 조심해야 하네. 손 사형께서 자네를 비호해 주시겠지만, 스스로를 지킬 줄도 알아야지.”
홍영호법이 빨개진 두 눈으로 인사를 전했지만, 원호법은 무표정이었다.
뒤이어 청목호법도 지팡이를 짚고 나와 원호법의 어깨를 토닥였다.
“젊은이는 응당 세상을 떠돌며 경험을 쌓아야 하는 법. 십만대산은 너무 작아 자네를 담지 못하네. 중원은 수려한 땅으로 걸출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고, 문명이 집약돼 있지. 한바탕 떠도는 것도 도움이 될 거야. 하지만 반드시 돌아와야 하네. 모든 건 반드시 돌아갈 곳이 있어. 남강이야말로 자네 집 아닌가.”
흰 원숭이 호법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곧 묘재방도 원호법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중원에서 봅시다!”
요족 무리는 잇따라 이별의 인사를 전했다. 하나같이 눈물을 머금고 작별의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인사가 마무리되자, 손현기가 허칠안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곤 원호법의 어깨를 눌렀다.
이내 청광 한 줄기가 솟구치더니, 두 사람을 감싼 채 멀리 사라져갔다.
* * *
하늘에 포대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김없이 뒷짐을 지고 선 손현기에게선 충만한 고인의 풍격이 묻어났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원호법을 주시하고 있었다.
원호법은 투명한 쪽빛 눈으로 그의 마음을 읽었다.
“손 사형의 마음이 제게 묻고 있군요. 방금 왜 그리도 냉담했는가. 동족들과 작별 인사를 하지 않고.”
손현기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호법은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홍영의 마음이 제게 말하더군요. 이 죽일 원숭이, 드디어 가는구나. 좋아 미치겠네. 내일 아침까지 술을 즐기며 축하해야겠어.
청목호법의 마음이 제게 말하더군요. 이 죽일 원숭이, 드디어 가는구나. 네가 가지 않으면 이 늙은이의 늘그막 명예가 다 사라질 거다. 다른 소요의 마음이 제게 말하더군요. 얼른 가라, 얼른 가…….”
“…….”
손현기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리고 점점 자신이 원호법을 데려가는 게 좋은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 * *
청주성, 백사군(白沙郡).
척광백은 성벽에 올라 사방에 봉화가 피어오르는 성지를 굽어보았다.
운주군이 막 이 변방의 가장 큰 도시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이곳부터 청주 변방 9개 군현으로 구성된 방어선이 철저하게 제거되고 운주군이 통치하는 구역에 포함되었다.
운주군은 사기가 높아졌지만, 총사령관 척광백은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각 부의 장수들을 소집한다. 옹성으로 와 공무를 논할 것이다.”
“네!”
부장군은 군도를 어깨에 메고 척광백의 명을 전하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