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44
941화. 공무 논의
백사군, 옹성.
선반으로 받친 청주의 지도 앞에, 운주의 장수들이 서 있었다.
제일 앞에는 군장에 붉은 외투를 걸친 척광백이 서 있고, 그의 뒤로 운주국 각 대대의 장수들이 있었다.
희현 역시 갑옷을 입고, 허리엔 군도를 차고 좌측 맨 앞에 앉아 있었다.
장수들은 하나같이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정숙을 유지하고 있지만, 눈빛엔 희색이 역력했다.
이들은 고작 3일 만에 청주 변방 9개 현을 제거하고 1차 방어선을 철저하게 격파했다. 대군에게 든든한 뒷배가 생긴 것이었다.
“다들 기분이 좋구먼. 출병하여 대승을 거두었으니 오늘 밤에는 크게 취해도 무방하다.”
척광백은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다들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지만 누구도 입을 떼진 않았다.
뒤이어 척광백이 곁에 있는 부장군에게 명했다.
“성 안 상황을 말해보게.”
부장군이 일어나 모든 장수들을 둘러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청주 수비군이 철수하기 전 성 곳곳에 있는 곡창의 군량과 마초를 전부 불태웠습니다. 동시에 대량의 솜이불과 직물을 집중적으로 태웠지요. 또한, 성 내 부호, 상인, 부유한 자들은 이미 다 철수해 지금 백사군 내에는 배고픈 빈곤한 백성과 유랑민뿐입니다. 다른 9개 현성 모두 이러합니다.”
“뭐라고요?”
모든 장수가 깜짝 놀랐다.
부장군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전에 이미 청주 포정사사가 견벽청야를 명했습니다. 성 밖 마을 중 열 집에 아홉 집은 텅 비어 있어 식량은 조금도 약탈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등진 채 서 있는 척광백이 개탄을 했다.
“대단한 양공, 자비로운 자는 군사를 통솔할 수 없다더니 그가 백성에게 더 모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 여러분은 아직도 술을 마시고 싶은가?”
다들 침묵했다. 그들은 청주 변방 방어선을 쳤고 뒷배도 마련했지만, 이것이 안정적인 상황이라 단정할 수가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희현이 장수들을 존중하는 말투로 말했다.
“양공은 처음부터 변방 9개 군현을 사수할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가 사전에 부호를 철수시키고 유랑민과 빈민만을 남긴 건 이 난장판을 우리에게 떠넘길 계획이었던 겁니다.”
척광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청주 지도를 가리켰다.
“청주는 만 리에 걸쳐, 그가 이리저리 옮겨 다닐 공간이 충분한데 왜 변방을 사수하겠는가? 지금 조정의 지원병이 도착하지 않았으니 그가 우리와 사투를 벌이는 게 아니라 뒤얽히기를 택한 건 옳은 방법이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아주 절묘하게 쓴 수야.”
보통 성을 공격해 진지를 철수시킬 땐 상대의 처지가 더 나빠지길 바랐다. 탄환도 다 쓰고 식량도 떨어져 곳곳이 유랑민인 게 가장 좋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단 성지를 점령하면 반란군이 할 일은 안정 유지였다. 그 지역에서 소란이 인다면 그건 오히려 부담일 뿐이었다.
물론, 그저 약탈이 목적이라면 이런 건 다 무시해도 좋았다. 사람들을 죄다 죽여버리면 그만 아니던가. 이는 외족이 침략했을 때 적용되는 부분이었다.
지금 운주 반란군은 진정으로 민심을 모아 대의를 차지하려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절대 환영할만한 일이 아니었다.
한 장수가 말했다.
“그는 빈민과 유랑민으로 우리를 무너뜨리고 싶은 겁니다. 흥, 때마침 이번에 공성 작전으로 민병이 거의 다 죽거나 다쳤는데 이들 모두 아주 좋은 병사 공급원이군요.”
본디 모든 계책에는 양면성이 있었다.
이내 희현이 그를 한번 쳐다보고 말했다.
“양공이 견벽청야 전술을 펼치고 군량과 마초를 전부 불태워 우리에게 쌀 한 알도 주지 않으면 저희 측 군수품 압력은 배가 될 겁니다. 이는 무딘 칼로 살을 베어 우리의 저력을 서서히 소모시키는 겁니다.”
양공의 목적은 아주 분명했다. 청주에 있으면서 가능한 한 반란군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것이었다.
장수들도 다 똑똑하고 경험이 풍부한 자들이라 이를 손쉽게 이해했다.
그때, 희현이 바로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저희를 얕보았습니다.”
척광백이 담담하게 말했다.
“국사께서 여러 해 동안 준비하여 저력이 튼튼한데 어찌 작은 청주 때문에 무너지겠는가? 때마침 모병하여 죽을 베풀 수 있으니 이를 빌려 우리 의병의 명성을 널리 퍼뜨리자고.”
장수들은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척광백이 말했다.
“서역 승병 역시 등장할 차례가 됐군. 내가 이미 사람을 보내 국사의 지시를 받으러 갔네.”
* * *
청주 포정사사.
뒤뜰 정방, 원형 탁자에 진수성찬이 가득했다.
이 성찬을 차지한 건 아주 익숙한 2인조였다.
리나와 허영음. 사제 둘은 거의 탁자에 엎드려서 음식을 마시고 있었다. 둘 다 사이좋게 양 볼이 동그랗게 부풀어 올랐으며, 입술은 쉴 새가 없었다.
“매일 생선이랑 소금에 절인 고기만 먹으니 뭐가 나오질 않더라고.”
리나는 그 고운 얼굴로 똥이 안 나온다는 소리를 거침없이 내뱉었다. 확실히 이제껏 신선한 채소와 과일이 좀 부족하긴 했었다.
“사부님, 저는 똥 잘 싸요!”
허영음이 큰 소리로 자신이 사부보다 뛰어남을 과시했다.
“우리 신년 형제한테도 좀 남겨줄까?”
리나는 말과 달리 음식을 삼키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배를 타고 청주로 향하던 도중, 허신년에게 학업을 전수하는 은사 장진과 이모백이 찾아와 한발 앞서 제자를 청주로 데리러왔다. 그리고 허신년은 당연히 동생과 리나를 배에 남겨둘 수 없어 같이 여정에 올랐다.
“둘째 오라버니는 배 하나도 안 고프대요.”
허영음은 알아서 허신년의 상태를 진단했다.
“그래? 그럼 방법이 없지.”
리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포정사사 의사당.
허신년은 찻잔을 받치고 뜨거운 차를 한 모금 홀짝였다. 그는 말없이 눈앞의 광경을 보고 있었다.
배꽃 나무 긴 탁자 맨 앞자리에는 빨간 옷을 입은 청주 포정사 양공이 앉아 있었다. 운록서원 출신에 글솜씨로 중원에 명성이 자자했던 이 자양거사는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그는 무려 닷새간 잠을 자지 못했다. 누가 봐도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정신도 여전히 강인하게 살아 있었다. 참 모순적이게도 매우 피로한 모습에서 무궁무진한 힘이 느껴졌다.
“……현재 청주 정세는 이러하네. 변방을 지키지 못했어. 장진 자네의 의견은 어떠한가?”
양공이 일장 연설 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곁의 장진을 쳐다보았다.
두 동창은 천 리 길을 달려와 양공의 참모가 되었다. 장진의 주전공이 병법으로, 양공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인재였다.
장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약 나라면 그 상인, 부호, 향신 등 명문 귀족이 떠나게 하지 않았을 걸세. 반란군은 반드시 전쟁으로 전쟁에 필요한 것을 조달할 거야. 성을 파괴하는 날이 바로 그들이 집과 가족을 잃을 때겠지.
집과 가족을 잃고 싶지 않으면 성지 사수를 도와야 하네. 이렇게 해야만 반란군의 병력을 최대한 다 소모시킬 수 있어. 그러나 이건 조정에서 지원병을 보내는 경우지. 양공, 자네의 이 절충법은 아주 좋았네.”
말을 마친 그가 문득 득의양양하게 있는 제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제자를 한번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에 웃으며 말을 건넸다.
“신년, 자네가 청주 정세를 분석해주게.”
청주 지부, 도지휘사, 제형안찰사와 그들 휘하의 문관, 무장이 잇따라 허신년에게 주목했다. 하지만 허신년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등허리를 꼿꼿하게 펴고선 그 사람들을 천천히 훑었다.
“본관은 청주를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어떻게 지켜야 할지는 우선 여러 대인께서 세 가지 사항을 잘 이해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운주의 환경입니다. 운주는 기후가 습하고 따뜻해 토지가 비옥하고 집마다 여유 식량이 있습니다. 거기다 바다를 등지고 있고, 염전이 많지요. 지난 20년간 역당은 암암리에 조정의 조운 관아를 침범해 수많은 철광을 각지로 운반했습니다. 소금, 철, 식량 모두 부족하지 않지요. 이렇게 풍요로운 곳에서 유랑민과 빈민으로 상대를 무너뜨리려는 건 달걀로 바위 치기일 뿐입니다.”
청주 지부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럼 허 대인 말뜻은 양 포정사의 책략이 부적절하다?”
허신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양 포정사의 책략은 당연히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주안점을 바꿔야 합니다. 그들을 무너뜨릴 생각을 하지 말고 그들의 정예병을 철저히 부숴버려야지요. 여러분, 운주의 별칭을 아직 기억하십니까?”
그가 양공 뒤의 벽에 붙은 청주, 운주의 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비주(匪州)!”
“고조 황제 때부터 운주는 전조 역당이 점거하고 있었고, 산적이 되어 화를 초래했습니다. 600년간 운주 비적의 난은 끝내 해결되지 않았지요. 그럼 대인들께선 지난번 황책을 다시 만들었을 때 운주에 인구가 몇이었는지 기억하고 계십니까?”
관원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는 이가 없었다. 청주의 관리들이 운주의 일을 어찌 알겠는가.
이때, 양공이 탁자를 두드리며 불만스러운 빛으로 관원들을 훑었다.
“마지막은 원경 30년으로 운주가 황책에 기재한 백성은 83만 가구, 인구는 약 350만이네.”
이는 8년 전의 수치였다.
허신년은 공수하더니 차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매번 황책을 다시 만들 때마다 운주 인구는 급감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비적의 난이 횡행한 대가이지요.”
이 순간, 모든 관원은 이미 그가 뭘 말하고 싶은지 이해했다.
“인구는 그들의 군대 수를 제한합니다. 게다가 과거 몇십 년 동안 군사를 훈련하고 양성하는 일은 전부 몰래 진행했었지요.”
허신년은 주먹으로 탁자를 가볍게 치며 조금 더 말에 힘을 실었다.
“정예 병사의 부족함이 바로 역당의 가장 큰 허점입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최대한 그들의 정예병을 몰살시켜야 합니다. 이게 바로 저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일리 있군!”
사람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진, 양공, 이모백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허신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둘, 전투력! 초범경의 전투력은 전쟁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초범 강자가 관습적인 전투의 승패를 뒤집을 수도 있지요.”
그가 ‘관습적인’ 전역이라 칭한 건, 산해관전역처럼 세상에는 초대형 전역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구주 각 세력을 휩쓰는 전쟁은 초범 강자가 전세를 뒤집긴 어려웠다. 초범이 강하지 않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장내 입장한 고수가 너무 많았다.
물론 초품이나 1품 무사 같은 차원은 별개로 논해야겠지만.
“적군 총사령관이 누군가?”
갑자기 이모백이 물었다.
“성은 척, 이름은 광백, 이름난 자는 아닐세.”
양공의 말에, 장진이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그런 자가 3군을 통솔한다고?”
양공이 천천히 답했다.
“유명하지 않다고 재능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지. 그자는 아주 뛰어나네. 그가 군사를 파견해 유랑민을 몰아내고 고수를 유랑민 틈에 섞어 수비군을 마비시켰지. 그렇게 손쉽게 성벽에 접근했다네. 변방의 황령현(黃嶺縣)이 손 쓸 틈도 없이 당해서 고작 하루 버틴 후에 함락당했지.”
장진이 냉소를 지었다.
“성을 지키는 장수가 우유부단하고 모질지 못해 유랑민이 멋대로 접근하게 했군. 죽어 마땅하겠어!”
“이미 순직했네.”
빈틈없는 청주 도지휘사 주밀(周密)이 탄식하며 말했다.
이모백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당분간은 이 총사령관이 초범경인지 아닌지 모르겠군.”
양공이 입을 열었다.
“음, 감정 견제를 맡은 가나수 보살, 허평봉 외에 반란군에서는 초범경이 나타나지 않았네. 그러나 나서지 않고 숨겼을 가능성이 농후하지.”
유가의 4품 고수이자 글솜씨로 중원에 명성을 떨친 대유, 양공은 재능 면에서도, 성격 면에서도 뚜렷한 결점이나 단점이 없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오만하게 적을 얕잡아 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