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46
943화. 아는 건 빠짐없이 얘기해드리지요
백사군 내, 대원의 화원.
정자에 놓인 돌 탁자 옆에, 백의를 펄럭이는 술사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 맞은 편엔 가사를 걸치고 가슴을 반쯤 드러낸 보살이 앉아있었다.
“대봉 국력이 쇠약해진 지금까지도 감정 스승님께 이런 실력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난 지금껏 그를 얕잡아본 적은 없지만, 여전히 그를 과소평가했었던 겁니다.”
허평봉의 안색이 다소 창백했다.
가나수 보살은 찻잔을 쥐고 중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해 초대 감정이 1:3으로 싸워도 우세를 점할 수 있었지. 무종이 경성을 쳐부수고 혼군을 베어 죽인 후에야 대세가 기울어 우리에게 참수된 것이고.
지금 우리 둘의 힘으로 그와 승부가 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축하할 일일세. 불문도 더는 보살이 자네를 돕지 않을 거란 걸 알아야 해. 광현 보살은 남요가 이 기회에 남강 십만대산을 탈환할 거라 여기거든.”
허평봉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요의 기운이 아직 다하지 않은 건 거짓이 아닙니다. 하지만 영토가 없는 그들은 신기루와 같지요. 500년만 더 견디면 남요의 기운은 다할 겁니다. 불문은 언제 출병하여 뇌주 정벌에 나선다던가요?”
가나수 보살이 말했다.
“도액 나한이 군사 집결을 마치면 알아서 내게 연락할 걸세. 내가 중원에 들어섰을 때 서역 각국은 이미 군량과 마초, 군수 물자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야. 생각건대 요 며칠이겠군.”
허평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주 좋지요. 양군이 멀리서 서로 뜻이 통하면 석 달도 채 되지 않아 경성을 격파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가는 동안 내내 기운을 연화하면 경성에 도착했을 때 감정 스승님께서도 만회할 힘이 없을 겁니다.”
그는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질문을 던졌다.
“남강은 알맞게 배치됐나요?”
가나수 보살이 고개를 끄덕였다.
“십만대산을 지키는 아소라가 있으니 구미천호가 직접 온다고 해도 그를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이야.”
허평봉이 말없이 웃었다.
그때, 가나수가 찻잔을 내려놓고 오른손바닥을 평평하게 폈다. 손바닥에선 바로 금빛이 솟아올라 금사발로 변했다.
금사발은 부드러운 금색 광막(光幕)을 뿜어냈다.
그 광막 속에, 입술이 붉고 치아가 하얀 소년 승려가 경건한 표정으로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가나수, 남강에 일이 생겼네.”
소년 승려의 음성은 마치 하늘가에서 비롯된 듯 광활하고 희미했다. 무엇보다 여인인지, 사내인지, 젊은지, 노쇠한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가나수 보살이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물었다.
“무슨 일이지?”
“허칠안이 손현기와 손을 잡고 아소라를 물리쳤네. 봉인된 탑을 깨부순 뒤 신수의 나머지 사지를 가져갔고.”
허평봉의 눈이 가늘어졌다. 손에 쥔 찻잔 안에도 잔물결이 일었다.
가나수 보살이 천천히 말했다.
“그가 어떻게 처리한 거지?”
소년 승려는 그에 대한 답 대신, 본인이 전할 말만 이야기했다.
“내가 이미 도액에게 아란타로 돌아가라 했네. 남강 변방에 병력을 배치하고 남요가 세력을 회복하여 다시 쳐들어오는 걸 방비해야지.
상백에 봉인되어 있던 신수 오른팔은 상백 사건 때 곤경에서 벗어났네. 부도보탑 안에 봉인된 왼팔은 이미 불자가 가져갔고. 몸통은 이미 구미천호의 수중에 들어갔지. 이제는 신수의 두 다리도 잃어버렸으니 머리 외에 몸통은 이미 다 모은 셈이야.
내 예측이 틀림없다면 십만대산을 탈환하는 건 그저 남요의 첫걸음일 뿐이네. 그들은 자네가 아란타에 있지 않은 기간을 틈타 아란타를 공격할 거야. 동쪽 정벌 계획은 취소하게. 나는 뇌주를 공격하여 교란할 정도의 정예병 2만만 보낼 수밖에 없네. 자네 알아서 잘 처리하게.”
소년 승려의 형체가 금빛 장막 속으로 사라지고, 가나수 보살과 허평봉은 말없이 침묵만 지켰다.
* * *
성 안 옹성 내.
군사(軍事)를 의논하던 장수들은 보고하는 병사를 맞이했다.
“대장군!”
병사는 허리를 굽히고 읍한 후 말했다.
“국사께서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서역이 2만 정예병을 파견해 견제 목적으로 뇌주 변방에서 소란을 피울 거랍니다. 하지만 저희가 대봉을 공격하는 데는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각 병영의 장수들은 표정이 굳었다.
척광백이 나지막이 물었다.
“왜지?”
병사가 말했다.
“허칠안이 만요국 잔당과 연합하여 남강과 아란타를 공격했습니다. 불문이 병력을 배치하면서까지 그를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뭐라고?”
“허씨가 아란타를 공격하려 한다고?”
“그가 무슨 근거로? 일개 3품 무사인 그가 아란타를 공격한다고?”
“불문도 그를 너무 심각하게 여기는 거 아닌가?”
아연실색한 각 병영의 장수들이 분개하기 시작했다.
‘허칠안…….’
희현은 어두워진 낯빛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회의가 끝나고 허신년은 배가 고파 곧장 정방으로 달려갔다.
이미 점심시간은 지났지만, 오늘 그는 아침밥조차 먹을 틈이 없었다. 은사 장진을 따라 회의에 참석했고, 내내 청주 고위층과 군사를 논했다.
지금 그는 이미 등가죽이 배에 달라붙을 정도로 굶주린 상태였다.
문턱을 넘어 포정사사 안으로 들어선 순간, 허신년은 참혹한 광경을 맞이했다. 난잡한 식탁에 반찬 접시만 청소한 듯 깨끗이 비워진 광경을.
식탁 위엔 국물 한 방울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 동생 하나쯤 없어도 그만이지. 그리고 리나는……. 이 넓은 경성에 의탁할 곳 하나 없을까.’
허신년은 말없이 뒤돌아섰다.
* * *
밖으로 나온 허신년은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여자 하인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생각해보니, 허신년도 금세 이해가 됐다. 후아(后衙)는 포정사의 생활 구역이지만, 어쨌든 포정사사의 일부이자 관아의 땅이니 여자 하인이 너무 많이 있어선 안 됐다.
잠시 또 걷다가 허신년이 걸음을 멈췄다.
서쪽 소원 돌 탁자 옆에, 볼록 나온 배를 통통 두드리며 나른하게 햇볕을 쬐는 사제 둘이 보였다.
허신년의 입꼬리엔 살짝 경련이 일었다.
“너희 둘, 남강에 가려던 거 아닌가? 내일 출발하지.”
허영음은 깜짝 놀라 과장되게 입을 벌렸다.
“아? 사부님, 여기가 남강 아니에요?”
“당연히 아니지. 여긴 우리 고향이랑 한참 떨어져 있어. 음, 엄청 먼 정도까진 아니고. 널 업고 7박 7일쯤 안 자고 달리면 남강에 도착할 수 있지.”
리나가 가슴을 쫙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허영음은 기쁘게 웃으며 바로 그녀의 몸 위로 기어올랐다.
탁!
리나는 마치 파리를 잡듯 허영음의 엉덩이를 톡, 한번 때렸다.
“내일 출발하기로 했잖아. 영음이 넌 어쩜 그렇게 언제나 멍청하니?”
‘……너는 걔보다 얼마나 똑똑해서.’
“큼.”
허신년은 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한 후,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영음, 왜 내 밥은 안 남겼니?”
“영음이가 신년 형제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어요.”
리나가 얼른 책임을 전가했다.
그러자 허영음도 눈을 크게 뜨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둘째 오라버니는 배 안 고프잖아요.”
리나는 바로 고개를 격하게 흔들었다.
“그럼, 그건 어쩔 수 없지.”
“…….”
허신년은 더는 할 말도 없어서 그냥 자리를 떠버렸다.
정말이지 그럴 수만 있다면, 허신년은 동생과 리나의 머리를 한번 열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둘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어쩜 저리도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멍청할 수 있을까.
그때, 허신년은 막 아치형 뜰문 밖에서 걸어들어오는 한 사람을 보았다. 돌출형 입에 추한 외모, 손현기가 남강에서 수행원으로 데려온 요족이었다. 생각해보니 여태 이름은 물어본 적이 없었다.
“형씨, 본관은 허신년이라고 합니다.”
허신년이 직접 마중 나가 읍하며 말했다.
흰 원숭이 호법도 이 지역 풍속을 따라 어설프게나마 읍했다.
“형씨, 제가 어떻게 불러야 하겠습니까?”
허신년이 이제야 그의 이름을 물었다.
“원호법!”
‘아주 이상한 이름이네…….’
허신년은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갔다.
“제 형님이 허칠안입니다. 원호법, 남강에 있는 형님 상황을 좀 얘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원호법은 순간 눈을 반짝이며 태도를 확 바꾸었다.
“허 대인, 실례했습니다. 본 호법이 아는 건 빠짐없이 얘기해드리지요.”
* * *
허신년과 원호법은 뜰 안에 서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허신년은 이제 이 원호법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는 남강에서 온 만요국의 호법으로, 수련 경지는 4품경에 이르렀다.
그에게는 마음을 꿰뚫어 보는 천부적인 신통력이 있고, 불문의 타심통을 수행했다. 바로 이 능력으로 손현기의 제자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손현기의 상태를 잘 아는 허신년은 진실을 정확히 파악했다.
‘제자로 거둔 게 아니라 전음 도구로 삼은 거겠지…….’
원호법은 허신년을 물끄러미 보며 슬픈 얼굴을 했다.
“예, 허 대인이 맞혔습니다. 저는 그저 도구 원숭이일 뿐이지요.”
‘이런, 빌어먹을. 내 생각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걸 잊고 있었어. 아, 이런 사람이랑 교류하기 시작하면 정말 지치는데…….’
허신년은 굳은 얼굴로 황급히 변명했다.
“원호법, 오해하셨습니다. 전 조금도 비방의 의도가 없었습니다. 손 사형께선 원호법 능력이 마음에 들어 인재를 아끼는 마음이 생기신 겁니다.”
원호법이 조용히 말했다.
“나 같은 사람과 교류하기 시작하면 정말 지치지요. 허 대인께서도 무리하지 마십시오.”
“…….”
허신년은 정신을 가다듬고 속으로 성인 경전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제야 계속 뻗어 나가던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
원호법은 쪽빛 눈으로 그를 지켜보다가 금세 흥미를 잃고 시선을 옮겼다.
“그 야희 장로는 어떤 요괴입니까?”
방금 대화에서, 허신년은 형이 자요까지 꼭 붙들어 맨 것을 확인했다.
원호법이 답했다.
“야희 장로는 호족입니다.”
‘호족이군. 분명 수줍게 조용히 행동하며 중생을 어지럽혔으니 형님 눈에 든 것이겠지. 기회가 있다면 만나서 알아보고 싶다. 아니야, 멈춰, 멈춰! 더는 생각하지 마라. 배우고 때로는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배우고 때로는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허신년은 재빨리 생각을 가다듬고 멀지 않은 곳의 리나와 허영음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그 순간, 기지가 번뜩였다.
“원호법, 혹시 제 동생들 생각도 좀 엿볼 수 있겠습니까?”
허신년은 늘 동생의 멍청함이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이제 운명처럼 무시무시한 독심술의 대가를 알게 됐으니, 어쩌면 그 지능의 비밀도 풀 수 있지 않을까.
영음이 매일 뭘 생각하는지 알고 상황에 따라 문제를 처리할 수 있다면 당연히 옳은 길로 이끌 수 있었다. 어머니의 숙원을 풀 열쇠가 등장한 듯했다.
원호법은 허신년을 따라 허영음과 리나에게 다가갔다.
그는 곧 투명한 쪽빛 눈으로 리나와 허영음을 온화하게 응시했다.
허영음과 리나도 원호법을 인지했지만, 허신년과 함께 있으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제 둘은 계속 자질구레한 일만 쫑알대며 햇볕을 즐겼다.
흰 원숭이 호법은 두 사람을 지켜보며 아주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허신년도 덩달아 마음이 조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