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48
945화. 도중
허칠안은 ‘구주지리서’를 들고 정신을 집중했다.
남강 서쪽 320리, ‘견신(犬神)’이라는 부족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 부락은 성인이 되면 반드시 ‘각견(角犬)’이라 불리는 괴물과 혼인해야 한다는 풍습이 있었다. 그렇게 ‘견신’ 부족 주변 지역에서 같이 생활하고 사냥하며 생사를 의지하는 것이었다.
이내 허칠안이 일어나 한 손에는 책을 쥐고 한 손은 뒷짐을 지었다. 꼭 학생을 가르치는 스승의 자세를 하고, 모남치에게 과학을 보급했다.
“이는 대자연의 선택이지요. 모든 풍습과 문화의 탄생은 주변 환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환경이 문화를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예를 들어 저희 중원의 농경 생활과 북방 요족, 오랑캐의 유목 생활은 환경이 결정한 겁니다.”
모남치는 알 듯 말 듯 한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 그럼 그들이 각견과 혼인하는 것도 환경 때문이라고?”
“책에서 말하길 ‘각견’이라는 괴물은 타고난 성품이 호전적이고 또 인간의 본성도 잘 알고 있다고 합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아주 좋은 동반자이지요. 짝이 되어 함께 살아간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럼 후손은 어떻게 번성하지?”
모남치가 순진무구하게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얘기에 색깔이 좀 도는데?’
“하하, 마마께서 이걸 제일 궁금해할 줄 알았습니다.”
아, 모남치는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제 더는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모남치의 얼굴은 일순간 새빨갛게 물들어 버렸다.
“전 이게 비교적 존중하며 길들이는 방법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각견은 인간의 본성을 잘 알고, 상당히 높은 지혜를 갖고 있습니다. 평범한 견류와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길들일 수 없지요. 저희 중원과 접촉한 후, 견신 부족은 ‘혼인’이 상당히 성대한 의식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의식을 모방하여 각견에 대한 존중을 나타내는 거지요. 그리고 각견 역시 이 의식을 받아들였습니다.”
허칠안은 아마 그곳에서의 결혼은 중원 인족이 이해하는 결혼과는 다를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
“자네, 앞으로 3장만 넘겨봐.”
허칠안이 앞으로 3장을 넘겼다. 거기엔 ‘반(盤)’이란 부족의 얘기가 있었는데, 그곳 족장은 새색시의 첫날밤을 뺏을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언제나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건 아닌 거잖아.”
모남치가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허칠안은 잠시 아래턱을 쓰다듬더니 반문했다.
“마마, 사자 무리의 권력 구조를 알고 계시나요?”
모남치가 고개를 저었다.
“수컷 한 마리가 암컷 무리를 지배하지요. 수사자는 무리를 통치할 때 전임자의 새끼를 전부 물어 죽입니다. 이 첫날밤이 비슷한 이치지요. 생각해보세요. 만일 저 색시 중 누군가 족장의 자손을 낳는다면, 그 혈통을 이을 수 있습니다. 이건 환경과 큰 관련은 없지만, 자손을 번성시키려는 생명의 본능과 관련이 있지요.”
이는 허칠안이 아무렇게나 지껄인 말이 아니었다.
습관과 풍속은 본디 환경과 본능에 따라 형성되었다. 아니면 어떻게 그 지역 풍토는 그 지역 사람을 기른다는 말이 있겠는가.
옛말엔 생물 진화의 가장 본질적인 진실이 담겨 있었다.
모남치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이야기했다.
“자네, 뒤로 8장 더 넘겨보게.”
허칠안은 다시 뒤로 8장을 넘겼다. 거기에 기재된 부족의 풍습은, 아들이 만 18세가 되면 반드시 부친에게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패하면 그 길로 집에서 쫓겨나고 승리하면 부친의 모든 걸 계승 받았다. 아버지의 여인, 자신의 여자, 남자 형제까지 예외는 없었다.
‘에이, XX 더 지어내지도 못하겠네. 내가 그 부족들을 만나본 적도 없는데 그 풍습의 유래는 어떻게 아냐고…….’
그러다 허칠안이 문득 모남치를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잠깐만, 마마가 기억하는 부족들은 왜 하나같이 이 모양입니까?”
“그, 그건 그냥 이상하니까 기억에 남은 거지…….”
모남치는 결국 전세를 역전당했다. 그녀는 한참 입술을 달싹이다 그냥 고개를 돌리더니, 갑자기 다른 풍경에 심취한 척했다.
‘그래, 전생에 여신도 사랑 교육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고 했었지.’
허칠안은 곧 ‘구주지리지’를 한쪽에 던져놓고 지서 파편을 꺼냈다.
[삼: 리나, 영음과 아직 배에 있소? 언제 청주에 도착할 수 있소?]홍영호법을 타면 닷새도 채 되지 않아 고족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족도 오랑캐에 속하지 않던가. 아무래도 손님을 불친절하게 접대할 가능성이 있으니 현지인을 데려가면 갈등 해결에 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오: 나 우주에 있어. 어제부터 우주에 있었지.]리나는 이제 그들이 아주 친해졌다고 생각하는지 격식을 차리려던 전과 달리 굉장히 편하게 말을 놓았다.
‘이렇게 빨리?’
허칠안은 어리둥절했다.
[삼: 누가 우주에 데려간 것이오?]배로 움직이면 이렇게 빠를 수 없었다. 리나는 또 무사보다 저속한 역고족이니 검을 조종하여 비행했을 리도 만무했다.
[오: 배에서 신년 형제의 스승을 만났지. 다 함께 청주로 갔었어. 그리고 어제 신년 사형이 나와 영음을 청주에서 내쫓았고.]‘???’
허칠안이 잠시 눈썹을 찌푸렸다.
‘너희 둘, 신년이 음식 뺏어 먹은 거 아니야?’
[삼: 길은 아오?] [오: 허칠안, 너 나를 너무 얕잡아보는데. 신년 형제가 구결 한 마디를 일러주었다고. 위는 북, 아래는 남, 왼쪽은 서, 오른쪽은 동이니 남쪽을 향해 힘껏 돌진하라고 말이야.]‘이야, 그 와중에 라임을 맞췄어?’
허칠안이 동생을 향한 찬사를 보냈다.
그때, 갑자기 이묘진의 전서가 도착했다.
[이: 길을 잃으면 행인에게 물어보면 돼. 우주에서 남하하면 바로 남강이고. 너 북상해서 경성에 올 때 우주에 갔었던 거 기억하지?] [오: 아마도.]“…….”
순간, 천지회 구성원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질문을 쏟아냈다.
[삼: 얼마나 있으면 우주에서 남강에 이를 수 있소?] [오: 길 잃지 않고, 사기당하지 않으면 7박 7일을 꼬박 달리면 도착할 수 있어. 영음이를 업고도 끄떡없지.]“후…….”
허칠안은 잠시 한숨을 내뱉고 전서를 썼다.
[삼: 낯선 사람은 절대 상대하면 안 되오.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언제든 나를 찾고. 우리 영음이는 어떠하오?] [오: 먹고, 자고, 마시고 딱히 문제없어.]‘그래, 금련 도사도 전에 영음이 명이 질기다고 말했었지.’
허칠안이 막 지서 파편을 거두려는데, 돌연 이영소의 전서가 도착했다.
[칠: 여러분, 300명 규모의 대오를 어떻게 통솔합니까?]허칠안은 보자마자 일이 생겼음을 알았다.
[삼: 자네 뭐한 건가?]천지회 구성원 모두 묵묵히 이영소의 대답을 기다렸다.
[칠: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이 유랑민을 약탈하는 걸 용납지 않았고, 민간 여인을 모욕하는 걸 용납지 않았고, 상대를 약탈하는 걸 용납지 않았을 뿐입니다. 모든 악행을 전부 다 용납하지 않았지요. 또한 그들이 마을을 떠나 정기적으로 식량을 보내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본래 다들 잘 있었는데 며칠 안 돼 절 암살할 생각을 하더군요.]이영소는 현재 유랑민을 한곳에 모아 황폐한 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이: 멍청이, 너 그들을 감금하고 있군. 평소 그들을 어찌 관리한 거야?] [칠: 관리 안 하는데…….] [이: 이 멍청한! 그들 훈련을 시켜야지! 관리하지도 않고 자유를 속박하는데 너를 암살하지 않고 누구를 암살하리! 됐다. 나중에 내게 단독으로 전서하면 내가 대오를 어떻게 다스리는지 가르쳐주지.]천종의 와룡이 말을 마치자 초원진의 전서가 왔다.
[사: 내 쪽에선 유랑민 천 명을 한곳에 모았고, 훈련은 1차 성과를 거뒀네. 며칠 더 지나면 그들을 데리고 청주에 가서 참전할 작정이네. 그리고 한 가지 더, 내 수하 중 강호에서 도망쳐온 유랑민의 말이, 그쪽에도 유랑민을 한곳에 모아 상인과 향신을 약탈하는 강호 인사가 있다던데.] [이: 황제 놈이 허칠안의 제안을 무시한 거 아닌가? 우연의 일치인가?] [사: 마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초원진은 직접 회경에게 접선했다.
[일: 본 공주가 사람을 보내 한 일이네. 칠안의 계책은 아주 효과적이야. 본 공주가 심복 20명에게 유랑민을 한곳에 모으고 향신과 부호를 약탈하라고 시켰어. 조정은 매일 떠돌이 도적들이 거리낌 없이 잔학한 짓을 일삼고 난을 일으킨다는 상소를 받고 있네. 하지만 본 공주가 받은 비밀 보고에 따르면 오히려 각지가 훨씬 안정됐다더군.]회경은 대범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이 안정은 전과 비교해 상대적일 뿐, 회경이 보낸 일원과 천지회 구성원의 노력만으로 중원 유랑민 전체를 억누르긴 불가능했다.
그래도 허칠안의 계책이 아무 효과도 없었다고 말할 순 없었다. 향신과 상인을 약탈해 유랑민을 먹여 살렸으니 현지도 빠르게 안정될 터였다. 한 가구를 약탈하면 거의 100가구를 먹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군현의 통치 계층을 뒤흔드는 일이었다.
만약 비적의 두목이 민간 영웅이라면 대봉 조정의 통치력이 아슬아슬해지겠지만, 그 비적의 두목이 자신의 사람이라면 희생되는 건 고작 향신, 명문 귀족 같은 중저층 통치 계급뿐이었다.
계속 회경의 전서가 이어졌다.
[일: 초원진, 자네 대오가 1차로 기강을 확립했다면, 군량과 마초를 사재기해 서쪽으로 전진할 준비를 하게. 자네들도 마찬가지야. 특히 이묘진, 본 공주는 자네가 군사를 통솔해 싸우는 게 강점이란 걸 알고 있네. 지금 바로 서쪽으로 가되, 가는 길에 유랑민을 모아 대오를 구성하는 게 제일 좋겠어.] [이: 왜죠? 무슨 근거로 그 말을 들어야 하죠?]비연 여협객은 우선 고집을 부렸다.
뒤이어, 초원진이 전서를 보냈다.
[사: 마마의 뜻을 이해했습니다. 지금 청주에 전쟁의 불길이 이는데 운주 역당을 지지하는 불문이 잠잠하다니, 조만간 뇌주로 출병하려는 겁니다.]회경이 말을 이어받았다.
[일: 그때 가면 조정은 이중으로 적을 상대해야 하고, 거기에 내우(*內憂: 나라 안의 걱정)까지 더해지니 어쩔 수 없이 전선을 좁힐 수밖에 없지. 그럼 운주와 불문 연합군은 전선을 경성까지 밀고 나올 것이야.]이묘진은 그제야 크게 깨닫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군대를 인솔하는 능력은 출중하나 대국관은 좀 부족했다. 줄곧 청주가 이번 전쟁의 핵심이라고만 여기며 불문을 소홀히 한 것이다.
[육: 그때 가면 얼마나 무고한 백성이 전쟁의 불길에 타죽을까요.]항원 대사의 안타까운 심경이 전해졌다.
그때, 허칠안의 전서가 분위기를 뒤바꿨다.
[삼: 불문은 동쪽 정벌에 나서지 않을 겁니다. 기껏해야 소규모로 소란을 피우고 말 겁니다.] [일: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삼: 제가 남강에서 소소한 일을 좀 했습니다. 2품 나한 아소라와 붙어 신수의 봉인을 풀고 만요국과 동맹을 맺었지요. 조만간 만요국은 옛 땅을 되찾으려 십만대산의 불문 세력을 공격할 겁니다. 다들 소식을 기다리시지요.]순간 천지회 내부에 침묵이 흘렀다. 의아할 정도로 분위기가 고요했다.
[칠: 선배님과 2품 나한이 한판 붙었고, 그 무슨 신수의 봉인을 푸는 데까지 성공했다고요?]‘이게 소소한 일이야?’
이영소는 머릿속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 느낌이었다.
허칠안은 분명 봉인돼 있었건만, 언제 2품 나한과 맞붙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것인가! 지난번 검주에 있을 때 그는 하마터면 2품 우사의 손에 죽을 뻔했었다. 2품과 실력을 비교해도 훨씬 뒤처졌다.
[일: 정말인가? 정말 만요국과 동맹을 맺었어? 만요국이 불문과 전쟁을 벌여 옛 영토를 되찾으려 한다고?]그 도도한 장공주가 연거푸 질문을 쏟아냈다. 회경이 순간 얼마나 크게 동요한 것인지 충분히 짐작되는 반응이었다.
‘허칠안 이 자식, 정말 지금껏 사람을 실망시키지를 않는군…….’
이묘진도 속으로 개탄했다.
[사: 훌륭하군. 그럼 난 안심하고 남하하여 청주를 지원할 수 있겠어. 지금은 만요국으로 불문을 견제하는 게 제일 좋은 선택지네. 이 방법을 떠올릴 사람은 적지 않겠으나 진정 만요국과 선이 닿는 자는 허칠안뿐이지.] [육: 아미타불. 허 대인, 이번에 수많은 백성을 구하셨군요.]단체 채팅이 끝나고, 허칠안은 지서 파편을 거두었다.
고개를 드니 수놓인 신발을 벗고 개울물에 물장구치는 모남치가 보였다.
그녀의 발은 허칠안의 손보다 조금 컸고, 굳은살 하나 없이 매끈했다.
‘화신의 매력은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분위기랑 용모야. 생각해보니 국사도 나와 쌍수하자고 찾아올 때가 됐는데 왜 연락도 없이 느긋한 거지? 큰일 났다. 아마 인터넷이 끊겨서 날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
순간 허칠안은 맹렬히 느껴지는 반향에 두려움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