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49
946화. 우연한 만남
경성, 사천감.
낙옥형은 금빛을 몰아 팔괘대에 떨어졌다.
감정은 탁자 앞에 앉아 조각상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낙옥형은 집중해서 본 끝에, 이는 그저 감정의 껍데기일 뿐 원신은 이미 사라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잠시 눈을 감고 감지해보았다.
곧 7층 단실로 방향을 틀었다.
* * *
아주 큰 단실에, 백의 술사 무리가 열정적으로 바삐 일하고 있었다.
“또 전쟁이군, 빌어먹을!”
“그러게나 말일세. 또 대량으로 법기를 정제하기 시작했군. 이런 법기는 영혼이 없잖아. 이는 우리 연금술사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물 연금술 같은 심오한 지식이 우리 세대의 지향점인데 말이야.”
“송 사형, 차라리 저희를 데리고 사천감을 떠나 자립하시지요. 저희 함께 연금술사 종파를 창립하자고요.”
송경은 바로 욕을 했다.
“감정 스승님께서 자네를 화로에 내던져 땔감으로 쓰시길 바라는가?”
이후 그가 잠시 멈칫하다 덧붙였다.
“추후 내가 감정 스승님을 대체하지 않는 이상 말이야.”
“사천감에 사람이 없는가?”
막 단실로 들어선 낙옥형이 도도한 목소리로 물었다.
송경은 그녀를 보고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넌 누구야? 언제 나타난 거지?’
낙옥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낙옥형이다.”
송경이 짧은 감탄사를 뱉었다.
“아아, 국사 대인…….”
낙옥형은 저 눈 밑 그늘이 짙은 사내가 혹시 자신에게 새로운 수작을 거는 건지 의심할 뻔했다. 감정의 제자 중 자신을 모르는 자가 있다니!
오히려 그녀가 송경을 알고 있었다. 초상화를 본 적이 있어서였다.
낙옥형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허칠안은? 내 전음 옥부가 그를 찾지 못하던데.”
“허 공자는 사천감에 오지 않은 지 오래됐습니다. 강호에 발을 들인 이후로 그를 거의 만나지 못했지요.”
송경은 아름다운 낙옥형을 한번 쳐다보다가, 자신이 하는 실험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여 바로 고개를 숙인 채 기구를 만지작거렸다.
“저도 그와 연락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손 사형 수중에 전음 소라가 있는데 허 공자 수중의 소라와 한 조합이지요. 손 사형을 찾으면 허 공자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음, 손 사형은 지금 아마 청주에 있을 겁니다.”
그가 말을 마치고 자연스레 고개를 드니, 국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송 사형, 저분이 바로 국사시군요. 정말 경국지색이십니다.”
옆에 있던 연금술사가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송경은 언짢은 기색을 비쳤다.
“생각하지 말게. 저런 여인은 자네가 마음에 둘 수 있는 여인이 아니야.”
연금술사도 못지않게 불쾌해했다.
“송 사형께서는 연금술에 대한 제 정성을 의심하시는군요. 저는 이미 이번 생은 연금술에 바치기로 맹세했습니다. 평생 혼인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허 공자에게는 여인을 대신할 것을 만들어 드릴 생각입니다.”
주변의 연금술사들도 연이어 맞장구쳤다.
“좋은 생각일세. 허 공자 같은 색마는 틀림없이 기뻐 날뛰며 밤낮으로 침상을 떠나지 못하겠지.”
“와, 그럼 허 공자도 남은 청서 반 권을 우리에게 선물해주겠지?”
“하지만 그리되면 국사의 노여움을 사지 않겠나?”
“뭐가 두려운가. 감정 스승님께서 우리 대신 책임져주실 텐데.”
송경은 손사래를 쳤다.
“부정한 수단만 생각하다니. 그렇게 쓸데없는 걸 만들 시간에 차라리 왕 재상에게 먼저 육체를 만들어주는 게 낫지.”
이에, 방금 ‘잔꾀’를 낸 연금술사가 물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왕 재상께서 곧 돌아가십니까?”
송경이 고개를 내저었다.
“1층 사람이 하는 말을 들으니 왕 재상께서 장기적인 과로로 병을 얻으셨고, 고치기 힘든 병을 오랫동안 앓고 계신다더군. 만약 제대로 요양하지 않으면 얼마 남지 않을 거라던데.”
1층 사람이란 약방의 그 술사들을 가리켰다.
사천감의 파벌 중, 송경이 이끄는 건 법기 제련에 능한 연금술사였다.
양천환이 이끄는 술사는 3층에 있는데, 전문적으로 고관대작과 평민에게 풍수지리를 알려주고 묘지를 택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그 1층 약방 술사들이 따르는 자는 종리였다.
이렇듯 사천감의 모든 파벌은 각자 다 뛰어난 분야가 있었다.
이내 한 술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용없습니다, 소용없어요. 왕 재상은 범인이라 영혼이 육신을 떠나면 귀신으로만 정제할 수 있을 뿐, 저희가 만든 몸에 들어갈 순 없습니다. 위연이 죽고, 왕 재상도 죽는다면……. 원경의 시대는 이제 철저하게 저무는군요.”
* * *
왕부, 후원.
청록 치마에 같은 색 상의를 걸친 왕사모가 임안과 나란히 걷고 있었다.
“재상 대인께서 어째 앓아누우신 건가? 사천감의 술사도 방법이 없고?”
임안이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임안의 걸음에 맞춰 붉은 치맛자락이 나풀나풀 흔들렸다. 그에 따라 가끔 사슴 가죽으로 만든 장화가 고개를 내밀 때도 있었다.
그녀의 머리 위엔 소봉관, 금보요, 진주 비녀 등 각종 장신구가 반짝였고, 동그란 달걀형 얼굴엔 은은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공주는 날이 갈수록 고혹적인 아름다움이 더해가고 있었다.
왕사모는 친분이 두터운 공주를 보더니 깊이 탄식했다.
“사천감 술사가 말하길, 아버지께서는 근심과 장기적인 과로가 병이 된 거라고 하네요. 벼슬에서 물러나 집에서 요양하시면 된다고……. 하지만 계속 저렇게 고생을 자처하신다면 저희도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임안이 옅은 웃음을 지었다.
“이 술사들, 여전히 그렇게 안하무인이라니.”
왕사모는 여우 가죽 외투를 여미며 계속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아버지께선 오래전부터 병을 앓고 계셔서 안정을 취하셔야 했는데 조정 안팎으로 재난이 닥치는 걸 어찌하겠습니까. 근심이 병이 되어 몸이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방치하신 것이지요.”
덩달아 표정이 굳은 임안은 그저 위로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요즘은 누워 계시니 조금이나마 안정을 취할 수 있잖아.”
왕사모는 억지로 웃음을 쥐어 짜냈다.
“사천감 술사가 말하길 이건 마음의 병이라 마음의 약으로 치료해야 한답니다. 아버지께서 병으로 쓰러지시기 전, 3가지 일을 우려하셨지요. 청주 전쟁, 유랑민, 서역 불문. 이 중 하나라도 해결할 수 있다면 아버지께서도 안심하고 요양하실 수 있을 텐데…….”
유랑민과 부실한 국고는 인과 관계가 있기에 같은 일이라 볼 수 있었다.
임안은 눈썹을 가볍게 찌푸렸다.
곁에서 왕사모는 생각이 단순한 단짝 친구를 바라보다 고개를 내저었다.
“됐습니다, 이 얘기는 안 하겠습니다. 제공들도 방법이 없는데 저희라고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임안은 잠시 입술을 오므린 채 왕사모의 얼굴을 살폈다.
“사모, 많이 여위었네. 허신년이 염려되기도 하고 재상 대인의 몸을 걱정해서 그렇겠지.”
왕사모는 금세 참담한 기색을 보였다.
“청주 형세가 험하잖아요. 그는 일개 서생일 뿐이니 당연히 걱정되지요. 본래 닷새 뒤에 그와 정혼하기로 했는데…….”
“겁낼 거 없어! 개자식이 있잖아. 설령 청주가 격파된다고 해도 허신년은 별일 없을 거야.”
임안이 눈썹을 치켜올린 채, 참새처럼 말을 쏟아냈다.
임안의 눈엔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이를 보고 왕사모는 얼른 화제를 돌려버렸다.
“그 얘기도 그만하겠습니다. 마마와 허 은라의 혼사는 폐하께서 도와주지 않으십니까?”
순간 임안이 새빨개진 얼굴로 말을 더듬거렸다.
“너, 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누가 그 개자식이랑 혼인한다니? 도대체 누가? 에휴, 난 그런 근거 없는 소문이 정말 싫어.”
왕사모가 상글상글 웃으며 말했다.
“저희가 안지도 여러 해인데 제가 마마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허 은라는 훌륭한 인재고 백성들의 영웅이니 그를 흠모하는 여인도 부지기수지요. 마마께서 하실 일은 얼른 명분을 만드는 겁니다. 명분이 생기면 허 은라는 바로 마마의 사내가 되고, 다른 여인들은 첩실이 되거나 그냥 강호에서 정분이 난 옛 추억이 되겠지요. 마마, 사모가 마마를 얕잡아 보는 게 아닙니다. 명분이 없이는 계속 이렇게 불안정하게 다툴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임안은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느낌에 볼을 부풀렸다.
* * *
섣달의 바람은 거의 살을 에는 듯했다. 임안과 왕사모도 바깥에 너무 오래 있지 않고, 각자의 하인을 거느린 채 회랑을 따라 안뜰로 돌아왔다.
이때 안뜰에서 음흉한 분위기의 중년 태감이 환관 둘과 함께 나왔다.
양측 모두 우연한 만남이었다.
“임안 마마를 뵙습니다.”
중년 태감과 그 뒤의 두 환관이 허리를 굽혀 예를 갖췄다.
“자네는 폐하 침전의 하급 관리지……. 여기는 뭐하러 왔는가?”
임안은 그를 알아보았지만 이름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황제 곁의 환관 중, 그녀가 기억하는 이름은 장인 태감 조현진뿐이었다.
“마마께 아룁니다. 폐하께서 재상 대인께 서역 불문이 이미 만요국 잔당에게 견제당해 우리 대봉에 위협을 가하기 어려울 거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재상 대인께서 안심하고 요양하실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중년 태감이 말했다.
왕사모는 너무도 놀랍고 기뻐서 만면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뭐라고 하시던가?”
“재상 대인께서 폐하께 정추(廷推)를 부탁드린다고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정추(廷推)는 황제가 불러들이고, 군신이 상의를 거치는 추천 제도의 일종이었다. 보통 중요한 직위가 공석일 때에 이 정추를 진행했다.
이로써 왕사모는 아버지가 벼슬에서 물러나거나 당분간은 재상 직무를 내려놓을 생각임을 깨달았다.
“알려주어 고맙네. 더 상세한 정보는 없나? 편치 않다면 말할 필요 없네.”
왕사모가 부드럽게 웃으며 금팔찌를 내밀었다.
중년 태감은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바로 곁에 임안이 지켜보고 있는데 뇌물 같은 건 감히 받을 수가 없었다.
“아닙니다! 무슨 기밀 정보도 아닙니다. 노비, 폐하께서 하신 말씀을 들었는데 이 일은 아마 허 은라와 관련 있는 듯합니다. 허 은라가 남강에서 대봉과 만요국의 동맹을 성사시켰다고 합니다. 소식은 청주에서 전해졌습니다. 노비가 아는 건 이 정도뿐입니다.”
‘허 은라가 대봉과 만요국 간의 동맹을 성사시켜 불문을 견제한 거구나…….’
왕사모는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녀는 비로소 허 은라가 청주에 없는 까닭을 알았다. 이내 그녀가 바로 고개를 돌려 임안을 쳐다보았다.
단짝 친구는 달콤하면서도 득의양양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날 실망시키지 않았어.”
* * *
황혼을 배경으로, 나뭇가지 위에 선 한 인영이 비쳤다.
주인공은 바로 묘재방이었다.
그는 아무 무게도 없는 종이처럼, 가는 나뭇가지 하나만 밟고 서 있었다.
다만 좀 기진맥진한 모습이긴 했다.
‘이게 바로 화경 경지의 품격인가?’
묘재방은 석양을 향해 팔을 벌렸다. 꼭 천하를 품은 듯한 기분이었다.
큰일을 손쉽게 처리하고 몸이 깃털처럼 가벼운 5품 화경! 그는 두 달 반 만에 연기경에서 5품으로 승직하여 화경 무사가 되었다.
용기는 비록 일찌감치 뽑혀버렸지만, 마지막 선물 허칠안을 남겼다.
묘재방은 허칠안을 만나 그의 정성 어린 가르침을 얻었다. 이 역시 용기가 그에게 선물한 행운이었다.
“내려오게! 할 말이 있네.”
돌연 나무 아래서 허칠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묘재방은 가뿐하게 땅으로 착지했다. 도중에 십여 차례 공중제비를 넘어 경공을 마음껏 과시하기도 했다. 화경 무사는 경공이 뛰어나서, 4품에 이르면 초보 단계에서도 어공으로 비행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