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50
947화. 큰 오라버니!
모닥불 옆, 허칠안이 물을 끓이면서 말했다.
“자네 이미 화경이 됐으니 우리의 인연도 여기서 끝이 났네. 오늘부터 자네에게 자유를 주지.”
묘재방은 순간 멍해졌다. 그 기뻤던 감정도 조금씩 자취를 감췄다.
그는 묵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요? 허 은라, 저, 저는 항상 허 은라를 따를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허칠안은 언짢은 얼굴로 한마디 욕을 내뱉었다.
“꺼지게! 자네는 여인도 아닌데 왜 나랑 함께하는가. 눈에 거슬려.”
그러다 점점 그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내가 약했던 시절, 나를 양성하는 데 모든 힘을 쏟은 사람을 만났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서. 그는 그저 내 성정이 강직해 잘못된 길로 들어설 리 없는 사람이라 그리했다고 말했네. 내가 장차 백성들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여겼고.
자네는 그에게 감사해야 해. 그래서 나도 자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거든. 그가 나를 발탁했던 것처럼 아무 사심 없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중원 백성을 위해서.”
묘재방은 잠시 침묵하더니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그럼 왜, 왜 또 저를 내쫓으려는 겁니까?”
허칠안이 웃었다.
“내가 더는 자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게 없어. 4품은 ‘의(意)’를 단련하는 과정이자 무사가 자신의 ‘도(道)’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네. 지금이 자네를 보내기에 딱 좋아. 가게, 묘재방! 앞으로 강호에서 자네의 전설을 들을 수 있길 기대하겠어. 나라와 백성을 위해 기꺼이 자신도 버린다는 묘 대협의 이야기를 말이야. 대협이 되는 게 자네의 꿈 아니었나?”
습관처럼 늘 웃던 묘재방은 모처럼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럼 앞으로 강호를 누비면서 허 은라의 제자라 자칭해도 됩니까?”
허칠안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나한테 자네처럼 무능한 제자는 없네. 자네는 이제 자신의 길을 가야지. 나와는 상관없이. 그럼 이만 꺼지게, 꺼져.”
묘재방이 살짝 입술을 삐죽였다.
“쳇,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이 몸은 장차 반드시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대협이 될 겁니다. 그때 가서 생떼 부리면서 제…… 라 칭하지 마십시오.”
그는 끝내 사부란 글자는 내뱉지 않았다.
이윽고 묘재방은 빽빽한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뒷모습에선 아무런 미련도 읽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십여 리를 꿋꿋이 걸어가던 그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축 처진 인영은 한참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 * *
사흘 후, 남강 북부.
허칠안은 약속한 삼첩폭(三疊瀑)이란 곳에 와 있었다.
그리고 약속 시간을 이틀이나 넘긴 오늘, 마침내 두 사제(師弟)가 도착했다.
정확히는 저 멀리 난석 사이를 가뿐히 오가는 두 거지가 보였다.
큰 거지나, 업혀 있는 작은 거지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엉망에, 얼굴에도 때가 꼈고 낡은 옷자락에선 시큼하고 구린 냄새가 풍겼다.
그 와중에도 리나의 새까맣고 또렷한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반면, 허영음은 멍한 두 눈에 어눌한 표정을 하고 입가에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꼭 지주 집의 바보 딸을 보는 듯했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야!”
허칠안이 깜짝 놀라 다가갔다.
리나는 허칠안을 보자마자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 영음을 향해 시원하게 말했다.
“됐어, 바보인 척 안 해도 돼. 우리 이제 안전하단다.”
허영음의 커다란 눈에 금세 생기가 돌았다.
“큰 오라버니!”
아이는 사부의 등에서 폴짝 뛰어내려 허칠안에게 달려들었다.
‘들어 보니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이틀 늦은 것과 관련이 있나?’
허칠안은 허영음을 받아 그대로 갈 곳을 인도했다.
퐁당!
허영음은 가볍게 날아 연못에 안착했다.
허칠안이 리나를 보며 연못을 가리켰다.
“그대도 가서 좀 씻으시오. 지서 파편에 깨끗한 옷을 비축해뒀겠지?”
“있죠, 있어요.”
리나는 즉각 돌덩이 위로 뛰어올라 연못에 입수했다.
그녀에게는 더는 지서로 소통할 때의 거들먹거리는 태도가 없었다.
허칠안은 등을 돌리고 큰 암석 위에 앉았다.
이제 곁에는 모남치와 그녀 품의 흰 여우뿐이었다. 홍영호법은 이들을 여기로 보낸 뒤에 십만대산으로 되돌아갔다.
“저 낭자가 오호예요. 저희 천지회 구성원이자 남강 역고부 낭자지요. 줄곧 경성 허부에 기숙하고 있었어요. 저 이제 남강에 다녀올 계획인데 저 낭자를 데리고 갈 겁니다.”
모남치는 여우의 머리를 만지며 연못을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쁘게 생겼네. 다만 좀 멍청해서 혼자 강호에 있으면 손해를 보겠어.”
어쩐지 모남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저 남강의 낭자는 연못가에서 대범하게 옷을 벗고 있었다. 바로 뒤에 시커먼 사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남치는, 그녀가 뒤에 있을 사내를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건 정말 아무 생각이 없거나 혹은 분명한 속셈이 있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더군다나 이 사내가 어디 보통 사내던가. 색마 중의 색마 아니었던가.
아무래도 모남치는 저 낭자가 그냥 무심하고 무던한 성격이든, 의도가 있든지 간에 결론은 자신을 도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허칠안은 리나를 대신해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냥 허허 웃기만 했다.
어차피 어떤 말도 통하지 않을 터였다. 리나는 원래 아무 생각이 없다고 얘기해봤자, 모남치는 오히려 리나의 편을 들어준다고 오해할 게 뻔했다.
* * *
반각 뒤, 사제 둘이 다시 깔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큰 오라버니!”
허영음은 흡사 나는 듯이 달려왔다. 토실토실한 아기 돼지처럼 돌 사이를 폴짝폴짝 잘도 뛰어다녔다.
곧 허영음이 빗지 않은 머리를 흩날리며 허칠안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허칠안은 미동도 없이 동생을 안아서 그대로 모남치에게 건넸다.
“미안한데 우리 동생 머리 좀 빗겨주세요.”
흰 여우는 이제 허칠안의 품에 안겼다.
백희는 새까만 눈으로 허영음을 관찰하다가 조그맣게 이야기했다.
“이 아이가 동생이었구나!”
‘그래, 넌 새끼 여우고, 얘는 새끼 인간이고.’
허칠안은 바로 새끼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영음아, 여기는 백희. 오라버니 친구 동생이니 잘 지내야 해.”
“알겠어요, 큰 오라버니!”
허영음은 고개를 끄덕인 후, 통통한 손을 뻗어 백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문득, 허칠안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콩알이가 고개를 돌리더니 남몰래 침을 꼴깍 삼키고 있었다.
“……너 왜 침을 삼켜?”
“안 삼켰는데.”
허영음은 즉각 고개를 흔들었다.
“너 방금 분명히 침 삼켰는데?”
“배가 고프니까…….”
남매의 대화를 들으며 백희는 허칠안의 품에 더 파고들었다. 그래도 뭔가 불안이 가시질 않았다.
드디어 콩알이 머리가 깔끔해졌다.
모남치가 자세를 바로 하자, 허칠안도 그제야 질문을 시작했다.
“어떻게 된 일이오? 왜 이렇게 궁상맞았던 것이오?”
리나는 갑자기 고민스러운 얼굴을 했다.
“오는 내내 계속 문제를 겪었어요. 길에서 마주친 중원 사람들은 저랑 자고 싶어 하거나, 영음을 먹고 싶어 했지요. 하지만 전부 저희한테 두들겨 맞고 갔어요. 나중에 한 어른이 말하길, 저희더러 유랑민으로 위장하고, 영음이는 바보처럼 구는 게 좋을 거라 했어요. 그래야 사람들 이목을 끌지 않을 거라고요. 그대로 했더니 역시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더라고요.”
이 간단한 말로 허칠안은 우주의 현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이미 굶주림에 미친 유랑민들은 사람까지 먹기 시작했다. 지금은 여인과 아이처럼 연약한 약자들은 좀처럼 살아남기도 힘든 난세였다.
‘인성은 위선적이고 흉악한 야수다. 율법은 그걸 속박하는 감옥이고, 도덕은 그걸 묶는 사슬이지. 하지만 질서가 점점 무너지면 이 흉악한 야수는 속박을 풀게 될 거야. 옛말에 제도가 무너지면 국가는 반드시 망한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이 뜻이었구나…….’
허칠안은 속으로 깊은 탄식을 뱉었다.
삼첩폭 옆, 모닥불을 피우고 모두 그 주변에 옹기종기 모였다.
허칠안은 야생 꿩, 사슴 등을 수십 마리 잡아 요리를 시작했다.
한바탕 배불리 먹고 마신 일행은 계속 남하해 남강 관내에 진입했다.
* * *
운주 군영, 지휘관 막사.
척광백은 청주 지도 앞에 서서 대나무 가지로 지도상 몇몇 성지를 차례대로 찍었다.
“이제 병선(兵綫)을 청주성으로 밀고 나가고 싶으면 우리는 방어선 세 곳을 뚫어야 하네. 첫 번째 방어선은 송산현(松山縣), 동릉(東陵), 완군(宛郡)이네. 닷새 안에 자네들이 이 성지 세 곳을 격파하길 청하네.”
이내 그가 대나무 가지로 ‘송산’이란 글자를 찍었다.
“특히 송산은 남쪽이 험준한 산봉우리와 인접하고, 서쪽은 송하(松河)로 전부 공격하기 쉽지 않은 방향이지. 성을 공격하려면 동성문과 북성문에서 돌파할 수밖에 없네. 여긴 아예 우리가 서쪽으로 나아갈 길을 단단히 못질해두었다네. 분명 양공이 대군을 파견해 지키고 있을 걸세. 자, 자네들 중 누가 본 사령관을 위해 가서 이 못을 뽑겠는가.”
희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사흘 안으로 이 성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척광백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자네는 갈 수 없어, 자네는 동릉을 치러 가야 하네. 손현기를 끌어내 청주의 관심을 끌게.”
그때, 우람한 체구의 한 장수가 일어났다.
“대장군, 안심하시고 제게 맡겨주십시오!”
그는 왼눈이 회백색이었다. 아마도 이미 시력을 잃은 듯했지만, 오른눈은 섬뜩할 정도로 맹렬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이 사내의 이름은 탁호연(卓浩然), 별칭은 ‘탁 살인마’였다.
호전적인 성격에 살인을 즐기는 그는 한번 발광하기 시작하면 약자, 강자 할 것 없이 달려들었다.
산을 점거하고 도적이 됐을 때는 상대를 약탈하며 지금껏 활로 하나 남기지 않았고, 매일 같이 대오를 이끌고 나가 평민을 살육했다.
이렇듯 악귀 같은 성정 탓에 운주군 장수에게 대접을 받진 못했지만, 그가 강력한 군 지휘 능력과 작전 능력을 갖췄다는 건 부인할 수 없었다.
척광백은 일찍이 그가 보기 드문 장군감이라고 직접 칭찬한 적도 있었다.
“좋네! 닷새 내에 송산현을 함락하지 못하면 돌아와서 요강이나 닦게.”
척광백이 웃으며 말했다.
탁호연은 입술을 핥았고, 오른눈에서 섬뜩한 광기를 발산했다.
최종 결정이 끝나고, 척광백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운이 좋다면 보름도 되지 않아 우리에게 새로운 지원병이 생길 걸세.”
이내 희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불문은 남요와 무신교 쪽을 상대할 실력을 유지하려 할 겁니다. 국사께서 사람을 보내 교섭한 적 있지만, 대주술사가 동맹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눈을 반짝였다.
“그렇다면 고족은 어떤가?”
척광백이 답하는 동시에 마찬가지로 희색을 표하는 장수들을 쳐다보았다.
“자네들도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고족에게 간 게 아니라면 갈문선(葛文宣)이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갈문선은 국사의 제자이자 잠룡성 청·장년파의 뛰어난 장수로, 지략이 뛰어나고, 군대를 배치하고 진을 치는 수준이 최고의 경지에 달했다.
그렇게 뛰어난 장수라면 본래 지휘관 막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운주군이 거사를 일으킨 뒤, 그는 지금껏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척광백이 계속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아군이 운주를 떠난 뒤, 감정은 이제 우리 머리 위에 매달린 칼자루와 같아졌네. 국사와 가나수 보살께서 그를 견제했지만, 마찬가지로 감정에게 견제당하기도 했지. 이는 국사께서 다른 걸 도모할 틈을 없게 만들었네. 십만대산의 상황, 만요국과 허칠안의 동맹이 바로 그 예지. 다행히 국사께서 일찍이 다 예상하시어 묘책을 남겨두고 갈문선에게 처리하라 하셨네.”
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사 이후, 국사와 감정은 바둑판에 몸을 던졌다. 전에는 암암리에 겨뤄왔다면, 지금은 공개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와 가나수는 감정을 견제하는 동시에 감정에게도 견제받아 다른 걸 도모할 힘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허칠안에게 뛰어오를 기회가 생겼고, 지금의 이 긴장된 형국이 형성되었다.
“내가 말했잖나. 주도면밀하신 국사께 방법이 없겠느냐고.”
“불문이 사라졌으나 고족이 출격해 도와준다면 결과는 같을 걸세.”
“남강 고족은 대봉과의 원한이 쌓이고 쌓인 지 이미 오래기에 반드시 출병할 걸세. 우리는 조용히 지원병을 기다리면 되고.”
장수들은 허평봉에게 맹목에 가까운 믿음을 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