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51
948화. 역고부 (1)
이틀 뒤, 황폐한 산에서 사람 넷과 여우 한 마리가 걸어 나왔다.
평탄한 관도 옆에 이른 일행은 리나의 안내에 따라 부족을 교묘하게 피해, 마침내 역고부 구역에 도착했다.
“앞으로 80리 더 가면 백산(伯山)이에요. 우리 역고부 근거지죠.”
리나는 집으로 돌아왔다는 기쁨에 폴짝폴짝 뛰었다.
그녀의 뒤로 허칠안이 태평도를 쥔 채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왔다. 그는 여태껏 모두를 위해 이처럼 직접 길을 내고 있었다.
결국 허칠안이 불쾌한 얼굴로 한마디 했다.
“드디어 길이 생겼네……. 아직도 길을 잃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것이오? 왜 진작에 이 관도로 오지 않고 굳이 산을 넘고 재를 넘은 것이오?”
“아유,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지름길로 데려가는 거라고요. 그 김에 밉살스러운 부족들도 피한 거고요.”
리나가 설명했다.
허칠안은 팔을 치켜올려 모남치를 한번 고쳐 업었다.
“알겠소, 계속 앞으로 가지.”
산길은 걷기에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산을 벗어났으니 허칠안도 모남치를 그냥 내려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남치가 곧 지쳐 쓰러질 것 같아, 허칠안은 그녀를 계속 업고 걸었다. 그 김에 모남치의 부드러운 감촉도 느낄 수 있어, 허칠안도 나름 만족해하는 얼굴이었다.
모남치도 굳이 걷겠다고 말하진 않았다. 서로가 검은 속내를 잘 알고 있으니 그냥 이대로 입 닫고 있는 게 상책이었다.
80리 길은 아마 하루를 꼬박 걸어야 할 것이었다.
* * *
반 시진쯤 걷자 황폐한 산이 점점 줄고 평야가 많아졌다. 남강 기후는 습윤해서 산은 여전히 푸르고 길가에는 잡초가 자라났다.
이곳은 한재가 닥친 중원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슉!
그때, 갑자기 좌측에서 바람 소리가 덮쳐왔다.
허칠안을 목표로 한 듯했다.
그는 그대로 멈춰서 고개를 돌려 가볍게 숨을 내뿜었다. 그 무시무시한 힘에,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화살이 연약한 버들가지처럼 날아갔다.
이윽고 왼쪽 관목 사이로 짐승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등에 쇠뿔을 멘 젊은 사내 2명이 뛰쳐나왔다. 다들 피부는 까무잡잡했고, 눈동자는 푸르스름했으며 머리카락이 곱슬곱슬했다.
“너희는 상대가 아니니 우리 역고부 근거지에 들어오면 안 된다!”
왼쪽에 있는 네모난 얼굴의 사내가 남강의 말로 호통쳤다.
그리고 오른쪽의 사내는 활시위를 당기고 허칠안을 조준했다.
허칠안은 이 무리의 유일한 사내였다. 그래서인지 이 사내들도 그리 큰 적의는 품고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린 허영음의 존재 덕분인 듯했다.
“토룡(土龍), 목두(木斗)! 나야, 나라고!”
리나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저 사내들을 잘 아는 눈치였다.
“넌 누구냐?”
네모난 얼굴의 사내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였다.
리나는 잠시 멍해졌다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응? 나야! 나! 나 리나잖아!”
“헛소리, 뽀얗게 생겼잖아. 딱 봐도 중원 여인인데!”
활시위를 당긴 사내가 돌연 리나를 향해 화살을 한 발 쐈다.
근거리에서 쏜 화살은 속도가 훨씬 빨랐다. 거의 돌을 가를 만한 힘을 품은 채 리나를 향해 날아 왔다.
띵!
리나는 손가락을 굽혀 화살을 튕겼다.
별로 공들이지도 않고 대충 손만 까딱인 정도였다.
이내 그녀는 고개를 돌려 어리버리한 제자와 허칠안, 모남치를 쳐다보더니 부끄러운 듯 화를 냈다.
“좀 맞자!”
가늘고 긴 다리의 폭발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리나는 튕기듯 일어나 자신에게 화살을 쏜 사내를 걷어차버렸다.
그리고 네모난 얼굴의 사내가 골도(骨刀)를 뽑기 전, 그녀가 허리를 비틀어 팔을 흔들었다.
탁!
리나의 오른팔이 반원을 쓸며 따귀를 날렸다. 그 힘에 네모난 얼굴의 사내는 제자리에서 두 바퀴쯤 돌았다.
그대로 쓰러진 사내는 눈앞에 빙빙 도는 별을 마주했다.
하지만 타격이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과연 역고부다웠다. 사내들은 얻어맞아도 끄떡없이 잽싸게 몸을 일으켰다.
먼저 화살을 쏜 젊은 사내가 리나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정말 리나라고? 너 어째서 중원 여인들처럼 하얗게 된 거지?”
한번 맞붙으니 동족인지 아닌지는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발차기 속도 하며, 따귀 실력까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네모난 얼굴의 사내도 곁에서 덧붙였다.
“거기다 살도 붙고.”
남강 기후는 무덥고, 자외선이 강해 이곳에서 생활하는 남강 토착민은 다 피부가 까무잡잡했다. 여인의 피부도 주로 밀색을 띠었다.
하지만 리나는 반년간 허부에 살면서 자외선의 학대를 피했다. 게다가 숙모의 주안단을 몰래 훔쳐 먹은 결과, 피부도 희고 보드라워졌다.
“설마 너희들, 내 얼굴 못 알아보는 거야?”
리나가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역용일지도 모르잖아! 내가 방금 네 수준을 떠본 것인데 진짜 리나라면 틀림없이 내 화살을 막을 수 있었다.”
활을 쏜 사내가 득의양양하게 반박했다.
말문이 막힌 리나는 얼른 허칠안 쪽을 돌아보았다.
“별일 아니에요, 별일 아니에요. 우리 역고부 족인은 항상 신중하고 총명하거든요. 그냥 저를 한번 떠본 거예요.”
‘아니, 생판 모르는 중원 사람이 어떻게 자기들 이름을 부르겠냐고. 거기다 진짜로 역용했다면 왜 굳이 피부를 하얗게 만들어. 남강에 오면서.’
허칠안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두 사내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내 허영음이 겁에 질린 얼굴로 외쳤다.
“아, 사부님이 정말 남강 사람이라서 다행이에요!”
활을 쏜 젊은이는 겁에 질린 중원 아이를 보고 더 득의양양해졌다.
“리나, 이들은 다 누구지?”
“이 아이는 내가 중원에서 거둔 제자야. 여기는 내 제자의 오라버니고. 경성에 있을 때 이 가족분들의 보살핌을 받은 거야.”
리나가 족인에게 허칠안, 허영음 남매를 소개했다. 모남치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그녀를 잘 몰라서였다.
리나의 소개로, 허칠안도 이제 두 고족 젊은이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활을 쏜 젊은이의 이름은 토룡이었다. 길고 가는 두 팔과 균형 잡힌 근육은 딱 봐도 타고난 활잡이였다.
네모난 얼굴의 젊은이는 목두라 하는데, 태어날 때부터 얼굴형이 네모난 편이라 부모님이 목두란 이름을 선물해주셨다고 했다.
“제자?”
목두는 깜짝 놀랐다.
“너는 족장의 딸이 어찌 멋대로 제자를 거둔 것이야? 게다가 중원 사람을 거두다니. 장로들이 널 때릴지도 모른다.”
토룡도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부화뇌동하진 않지만, 못마땅한 빛이었다.
고족의 비술은 절대 외부인에게 전하지 않았다. 7개 부족 사이에도 자신의 것을 더 귀중히 여기는 분위기와 파벌로 인한 편견도 존재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중원의 아이를 제자로 거두겠다니. 이는 고족의 법규에도 저촉되는 고족의 금기였다.
하지만 리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하! 난 전혀 두렵지 않은데? 장로들은 4품이잖아, 나도 4품이고. 누가 이길지는 확신할 수도 없다고. 누구라도 감히 손찌검한다면 내 이 주먹으로 하나씩 전부 다 때려죽일 거야.”
목두가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족장이 첫번째로 널 때릴 거다.”
갑자기 이름 모를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이 동시에 깜짝 놀라 외쳤다.
“뭐? 4품으로 승직했다고?”
리나는 의기양양할 겨를도 없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거둔 이 제자는 보기 드문 천재야.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고. 사서를 기록한 이래로 지금껏 나타난 적도 없는 천재!”
그녀는 자신이 가진 약소한 어휘를 죄다 끌어모아 허영음을 칭찬했다.
목두와 토룡은 문득 어리바리한 콩알이를 내려다보았다.
“천재? 한 끼에 밥 몇 그릇을 먹을 수 있지?”
리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영음은 한 끼에 열 그릇을 먹을 수 있어! 반찬은 치지도 않은 거야.”
목두와 토룡은 서로를 힐끗 보며 약간 동요했다.
“확실히 보기 드문 천재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다고? 족규(族規)는 족규지. 너도 천재지만, 네가 감히 고족의 비술을 사사로이 전파했다면 마찬가지로 벌을 받을 거라고.”
허칠안은 알아들을 수 없는 남강의 말에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뭐라고 얘기하는 것이오?”
리나는 한숨을 한번 내뱉고 설명했다.
“제가 멋대로 중원 사람을 제자로 거둬서 장로들이 엄벌에 처할 거래요.”
“남강 고족의 고술을 외부인에게 전파해서는 안 된다고 듣기는 했소만. 구체적인 규칙이 어떠하오?”
허칠안이 리나를 쳐다보았다.
리나는 가만히 눈동자를 위로 굴렸다.
“구체적인 규칙이라면……. 허락 없이 고술을 노예에게 전하면 3600번 채찍으로 맞는다……. 음, 이건 부족에 따라 채찍을 때리는 횟수가 달라요. 저희 역고부가 가장 많죠! 허락 없이 고술을 타민족, 더욱이 중원 사람에게 전하면 죽을죄! 사부와 제자 모두 죽어야 해요.”
‘???’
허칠안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영음이를 제자로 거둘 때는 왜 아무 말도 안 했소? 자기 부족의 규칙을 알고 있으면서 왜 영음이를 남강으로 데려가려 한 것이오?”
리나가 감히 잊었다 말한다면, 허칠안이 먼저 그녀를 처단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리나는 계속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상고 시대에 고신의 힘은 극연 밖까지 영향을 미쳤어요. 저희 선조들이 천신만고 끝에 고신의 힘을 이용하는 비법을 모색했고 이때부터 7대 고족 부락이 생긴 거죠. 비법은 저희 고족이 자립하는 근본이에요.”
고신의 힘은 극연에서 방사돼 주위 생물을 ‘고(蛊)’로 만들었다.
이론적으로 볼 때 상응하는 비법을 익히기만 하면 이 힘은 누구든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고족도 비술을 매우 중시하는 것이고, 사사로운 전수는 죽을죄로 간주했다.
‘어쩐지 시가 선조가 철시 단계에 머물러 있더라니. 후속 비술을 배우지 못했나 보네…….’
“아주 정확히 기억하고 있네! 그런데도 이게 지금 사람이 할 짓이오?”
결국 허칠안의 언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리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본명고 성숙에는 9가지 단계가 있는데 각 단계가 품계 하나에 해당해요. 본명고가 다음 단계로 승직하려고 할 때마다 본족 비법과 고신의 힘으로 도와야만 본명고를 최대치로 개발할 수 있지요.
비법만 있고, 고신의 힘이 없으면 설령 억지로 단계를 나아간다고 해도 근간이 불안정할 것이고, 전투력도 다른 체계의 동급 고수에 훨씬 못 미칠 거예요. 그래서 저는 영음을 데리고 남강으로 온 거고요.”
갑자기 모남치가 끼어들었다.
“왜, 아이를 여기로 데려와서 채찍질하려고?”
지금 그녀는 죽을 짓을 사서 하냐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리나는 좀 불쾌한 얼굴을 했다.
“에휴, 제 말 좀 끝까지 들으세요. 그리고 그쪽은 누구랑도 친하지 않으면서 뭔데 제 말을 끊는 거죠?”
모남치에게 한마디 한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비술을 사적으로 전하는 건 당연히 죽을죄죠. 하지만 영음이 장로와 아버지께 인정받아 제 진정한 제자가 된다면 괜찮아요. 저희 고족의 고수도 종종 밖에 나가 천재를 찾아요. 그렇게 인재를 데리고 돌아와 검증을 거치고 시험을 통과하면 인정을 받을 수 있죠.”
허칠안도 이젠 리나의 계획을 깨달았다. 리나는 영음이 부족의 시험을 받아들여서 철저한 역고족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럼 후속 승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그 당당하던 리나가 갑자기 기가 한풀 꺾였다.
“하지만……. 고족은 아직 중원 사람을 제자로 거둔 선례가 없어요. 전노(戰奴)는 적지 않지만……. 제 생각엔 문제없을 것 같아요. 영음은 사서에도 기록된 적 없는 천재잖아요. 아버지와 장로들께선 분명 전례를 깰 거예요!”
‘진짜야? 하나도 안 믿기는데…….’
허칠안이 계속 굳은 얼굴로 리나를 지켜보고 있는데, 곁에서 모남치가 피식 웃으며 묻는 소리가 들렸다.
“너희 고족에 사서가 있어?”
“없죠.”
“…….”
허칠안은 진짜 그녀를 먼저 처단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