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54
951화. 비범한 재능
“영음은 천재예요! 사서에도 없는 천재라고요. 저는 저희 역고부를 위해, 역고부를 생각해서 천재를 받아들인 거예요.”
리나가 얼른 맞장구를 쳤다.
“우리 고족에는 사서가 없다.”
이는 조금 전 대장로가 총명하다고 칭찬한 그 ‘아추’ 낭자가 얘기했다.
리나는 말문이 막혔다.
순간 머릿속엔 경성에 있을 때 허신년이 자주 하던 말이 떠올랐다.
‘천 년간의 역사책을 두루 살펴도 고금에도 없는 일이구나. 사서를 샅샅이 다 훑어도…….’
이 말을 많이 듣고, 리나는 사서에 없는 건 아주 대단한 것이라 여겼다.
대장로가 천천히 말했다.
“우리 고족에도 천재가 부족하지 않다. 모든 세대마다 천재 몇몇이 탄생했지. 네 아버지도 그렇고, 너도 그런데 이 중원의 아이가 설령 천재라 한들 또 어떠하단 말이냐. 우리 고족이 탐을 내야 하나? 당장 아이를 모실까? 앞다투어 아이를 제자로 받아들여야 하나?”
말문이 막힌 리나를 두고, 이번엔 용도가 물었다.
“한 끼에 밥을 몇 그릇 먹을 수 있지?”
리나가 답했다.
“한 끼에 열 그릇 먹을 수 있어요. 반찬 없이는 열다섯 그릇이요.”
순간 자리에 있는 역고부 족인 모두가 멍해졌다.
대장로는 약간 놀란 듯 허영음을 자세히 한번 살펴보았다.
“자질은 확실히 괜찮군…….”
다른 장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열 그릇? 우리 아들도 비슷한 나이인데 다섯 그릇밖에 먹지 못하던데.”
“열다섯 그릇이잖나! 자네 아들은 쌀밥을 다섯 그릇 먹는 거고 저 아이는 쌀밥을 열다섯 그릇 먹는다는 게지.”
“역시, 과연 자질은 확실히 뛰어나군.”
역고부 족인 모두가 놀란 얼굴로 분분히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
허칠안은 아무래도 적응하기가 좀 벅찼다. 이 부족의 풍격에 녹아들고 적응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이 무리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세대 차이와 사상의 장벽이 너무 깊다는 생각만 들었다.
대장로는 헛기침으로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잠재우고, 그 자랑스러운 가슴 근육을 시원하게 폈다.
“확실히 뛰어나군. 하지만 우리 부족도 그처럼 잘 먹는 아이가 여럿이다.”
그의 얼굴에 교만한 표정이 떠올랐다.
허칠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허영음의 식사량이 많긴 해도, 역고부에도 분명 같은 식사량의 아이가 있을 것이었다. 식사량으로 천부적인 자질을 논한다면 고족에도 같은 급의 천부적인 아이가 있을 게 틀림없었다.
허영음이 유일무이한 아이는 아닐 테니, 고족이 허영음만을 위해 족규를 깰 리는 만무했다.
그때, ‘아추’라 불리는 낭자가 허영음을 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무언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대장로…….”
다들 그녀에게 시선이 쏠리자, 아추가 살짝 주저하다 말했다.
“하지만 고족의 아이는 날 때부터 본명고를 심잖아요.”
대장로가 언짢은 얼굴로 말했다.
“이걸 자네가 얘기한다고? 어릴 때부터 본명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자가 누가 있는가…….”
순간 멍해진 그가 뻣뻣한 목을 비틀어 허영음을 쳐다보았다.
“리, 리나가 언제 북상하여 중원에 갔지?”
대장로가 뒤에 있는 용도를 보고 조심스럽게 떠보았다.
이 말을 듣고, 주변 역고 족인과 다른 장로와 용도 모두 눈을 부릅떴다. 갑자기 떠오른 사실 하나가 있었다. 허영음은 역고족이 아니었다……!
“올해 여름입니다!”
용도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맞다. 사실 영음이가 역고를 수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 이것저것 다 따져도 서너 달이야. 이건 서너 달 만에 아무 기초도 없이 9품 전봉에 이른 것이나 다름없어!’
허칠안은 흐뭇하게 생각했다.
이때, 모남치가 느긋하게 말했다.
“이 사람들 정말 이상하네. 이 사람들이랑 오래 지내면 내 머리가 나빠질 것 같은데.”
허칠안은 갑자기 굳은 얼굴로 한 가지 의혹을 떠올렸다.
‘내가 왜 방금 식사량으로 천부적인 자질을 가늠했을까? 왜 영음이가 역고를 받아들인 지 고작 서너 달밖에 안 된 걸 생각도 못 한 거지?’
“천재로다! 사서에도 없는 천재야…….”
대장로는 흥분하여 하마터면 지팡이를 놓칠 뻔했다. 그는 곧 거의 날아가다시피 허영음 앞으로 달려갔고, 보물을 보듯 아이를 살폈다.
“용도가 어릴 적 9살에 9품 전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용도는 꼬박 9년 동안 공짜로 밥을 먹었는데 이 아이의 서너 달에도 미치지 않는구나.”
대장로가 큰 소리로 질책했다. 용도는 부끄러운 표정이었다.
‘아니, 영유아 시기는 계산에서 빼셔야죠…….’
허칠안도 이젠 멀쩡한 사고를 회복했다.
대장로는 양손으로 조그만 허영음의 어깨, 팔, 허벅지를 끊임없이 주무르고 눌러보다가 갑자기 크게 소리쳤다.
“체격이 실하고 정신이 맑구나! 이, 이는 선천적으로 역고를 위해 태어난 신체와 정신이야.”
나머지 다섯 장로와 용도도 성큼 달려와 웅크려 앉았다. 그들 역시 자그마한 허영음을 신중하게 만져보다가 점차 안색이 변했다.
놀라움과 의아함에서 충격으로, 또 충격에서 광희(狂喜)로까지 번졌다.
대장로는 잔뜩 상기된 낯빛으로 허칠안을 바라보았다.
“이 아이가 어릴 때부터 아주 잘 먹었는가?”
‘음, 한 끼에 세 그릇 먹었지? 반찬은 빼고…….’
허칠안은 별다른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다른 장로가 물었다.
“자주 배고프다고 하지 않는가?”
“네.”
순간 용도도 끼어들었다.
“뭐든 보기만 해도 다 먹고 싶다고 하지 않던가?”
그 말에, 모남치 품에 있던 백희가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렇지, 영음이는 귀신까지 먹고 싶어 했는데…….’
허칠안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적인 대답을 얻은 장로들은 다시 흥분하였다.
“정말 훌륭하군. 서너 달 만에 1단계 성숙기를 거친 천재라니!”
리나는 득의양양하게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맞죠? 맞죠? 분명 저 아이는 천재라고 말했잖아요!”
역고부 족인 모두가 놀라운 얼굴로 콩알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참에 허칠안이 쐐기를 박았다.
“그럼 우리 동생이 리나를 스승 삼아 역고 비술을 배워도 되는 겁니까?”
장로들은 얼굴에 감정을 서서히 지우고 콩알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다 잠시 서로 눈을 마주치던 끝에, 대장로가 앞장서 입을 열었다.
“부적절하네!”
한 장로가 따라서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부적절하지.”
또 다른 장로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리나를 스승으로 모시는 건 부적절해. 우리를 스승으로 모셔야지.”
“그렇지, 그렇지!”
리나는 아연실색하여 발을 동동 굴렀다.
“이 애는 제 제자예요!”
대장로가 조용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우리가 장로니, 우리가 정한다.”
리나는 허리춤에 양손을 얹고 식식거리며 소리쳤다.
“아버지! 저 대신 결정해주세요.”
용도는 고개를 저으며 딸을 대신해 이야기했다.
“장로들을 스승으로 모시는 건 확실히 부적절하지.”
“아버지…….”
역시! 리나는 아버지의 사랑에 감격했다.
“나를 스승으로 모시는 게 알맞지.”
용도는 더는 딸을 쳐다보지 않았다.
허칠안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리나를 쳐다보았다.
조금씩 굳어지는 그녀 얼굴이 정지된 화면 같기도, 조각상 같기도 했다.
* * *
천고부.
천장이 있는 저택 안, 푸른 무명 옷차림의 천고 할머니가 목찰(木扎)에 앉아 방금 땅에서 파낸 유충을 고르고 있었다.
통통하고 하얀 유충은 꼭 굼벵이 같았다. 둥근 고리가 가득한 몸이 다 지방으로 꽉 찬 유충이었다. 이는 ‘육잠(肉蠶)’이라는 고 유충의 일종이었다.
육잠은 성년이 된 후 색깔과 빛깔이 새까매지며 맹독을 지니고 있어 9품 무사를 손쉽게 독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유충일 때는 지방과 기운만 있는 것도 있어서 식량으로도 쓰였다. 보통 육잠 5마리면 밥 한 끼와 필적할 수 있었다. 조리 방법 역시 기름에 튀기든, 삶고, 끓이든 어떻게 해도 맛이 좋았다.
천장 아래, 다섯 사람이 더 있었다.
첫째로는 두봉을 입고 모자를 쓴, 썩은 내를 풍기는 산송장과 형형색색의 외투를 입고 손바닥에 전갈을 받치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그녀가 찬 귀걸이는 꼬리를 꽉 물고 있는 가느다란 적색 뱀이었다. 그것들이 자체로 둥근 고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짐승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바닥에 앉아 있는 중년 사내가 있었다. 그는 정신을 집중하여 몸에 지닌 포대에서 각양각색의 독극물을 꺼내 하나씩 흥미롭게 먹고 있었다.
또 짧은 상의에 흰색 바지, 그 위에 얇고 가벼운 비단 치마를 두른 여인도 있었다. 몸에 드러낸 부분이 많은 만큼, 굴곡진 몸매가 확연히 돋보이는 여인은 옅은 쪽빛 눈동자마저도 매혹적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마지막 한 사람은 점잖은 문인으로 백의의 사내였다. 나이가 젊은 사내는 서생의 고아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사내다운 강단도 넘쳐 흘렀다.
“용도는 왜 아직 오지 않습니까?”
두봉인이 특유의 거친 목소리로 짜증을 냈다.
천고 할머니는 여전히 육잠 유충을 고르며 여유롭게 설명했다.
“이미 그에게 서신을 보냈네.”
백의의 사내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큰일을 도모하는 자는 급할 게 없지요.”
그러자 얇고 가벼운 비단 치마를 걸친 여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잘 얘기하셨어요. 큰일을 도모하는 자는 제 욕구를 만족시키는데도 인색하지 않겠지요. 갈 장군, 오늘 밤 정고부(情蠱部)에서 기다릴게요.”
백의 사내는 안색이 약간 굳었다가 빠르게 미소를 회복했다.
“큰일이 성사되면 본 장군이 바로 란옥(鸞鈺) 족장에게 십만의 건장한 사내를 보낼 텐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말을 하던 그가 갑자기 동쪽을 쳐다보며 눈을 빛냈다.
“용도 족장이 돌아왔군.”
천고 할머니는 고개 들어 같은 방향을 쳐다보더니 금세 시선을 거뒀다.
이를 본 현장의 고족 족장 몇몇은 확실히 용도가 왔음을 알았다.
‘술사의 망기술은 수십 리, 심지어 백 리 밖에서도 적군의 상황을 볼 수 있지. 암고와 천고 외에 남강에는 망기술을 억제할 다른 수단이 없고…….’
귓불에 적색 뱀 두 마리가 있는 여인이 살구 같은 눈동자를 살짝 굴렸다.
* * *
10분 정도 기다리니 천장 아래 사람들 모두 지면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계속 진동하는 빈도수는 변하지 않았지만, 지진파는 갈수록 더 커졌다.
‘역고부는 괴력으로 유명하지만, 버젓한 역고부 족장이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돼…….’
순간 갈문선은 마음속에 대담한 추측이 떠올랐다.
용도는 20년 전, 3품 전봉이었다. 20년 세월이야 빠르게 지났어도, 그 시간이면 경지가 성장하지 않았다 해도 저력은 더 두터워졌을 터였다. 어쩌면 그는 지금 엄청난 실력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상태에 있는지도 몰랐다.
이처럼 걷는 사이에 동반되는 지진도, 2품 경지에 어렴풋이 닿아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움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었다.
진동은 점점 커지며 뜰 문 앞 광선이 뭔가에 막힐 때까지 지속됐다.
곧 모두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9척 거인이 허리를 숙인 채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용도는 천장 밑에서야 겨우 허리를 폈는데 하마터면 머리가 지붕에 닿을 뻔했다.
얇고 가벼운 비단옷 차림의 란옥은 혈기 왕성한 그 몸을 보고 붉은 입술을 핥았다. 매혹적인 그녀는 탐욕을 감추지 않았다.
정고부 족인에게 역고족과 중원 무사는 똑같은 최상급의 용광로였다. 하지만 중원 무사는 수만 리 밖에 있고, 역고 족인은 확실히 지척에 있었다.
그러나 같은 고족으로서 정고부는 역고부에게 손을 댈 방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역고부에는 정고부 맞춤형 족규가 있었다.
무릇 정고 족인과 관계를 맺은 자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족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