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57
954화. 고신의 힘
“다 준비됐는가?”
대장로의 투박한 손가락이 허영음의 뒷목을 찔렀다.
“뭘 준비해요?”
허영음이 해맑게 물었다.
“…….”
대장로는 잠시 침묵한 후에 말했다.
“기억해라. 감정을 가라앉히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나는 네가 고신의 힘을 빼앗도록 도와줄 것이다.”
곁에 있던 다섯 장로도 경고했다.
“먹을 걸 생각하면 안 된다. 반드시 냉정하게 생각을 비워야 한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몸속의 변화를 느끼는 데 집중하거라.”
“아.”
허영음은 짧게 감탄사를 뱉었다. 출발하기 전, 배가 고파 막 걸쭉한 고깃국을 먹은 참이었다. 그녀는 아주 만족스러웠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이의 시원한 대답에 장로들은 서로만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더 굳은 얼굴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여태까지 쌓은 경험이 말하고 있었다. 역고부 족인은 종종 오늘이나 내일 먹을거리를 고민하기에 좀처럼 진정할 수 없었다. 이는 고신의 힘을 교란하고 신체에 손상을 입혔다. 그래서 모든 족인의 승급에는 옆에서 고신의 힘을 정리하는 걸 돕는 웃어른이 필요했다.
“시작하시죠!”
한 장로가 말했다.
대장로는 고개를 끄덕인 후, 허영음 목덜미 쪽에 손가락을 찔렀다.
손가락은 점점 부풀어 오르며 굵고 단단해졌다. 동시에 허영음의 여린 피부에선 죽절충(竹節蟲)의 윤곽이 두드러졌다.
이는 허영음 척추 안에 녹아든 역고로, 리나의 모고에서 생겨난 자고였다.
자고는 대장로가 보낸 기혈의 힘을 받아 되살아났고, 외부에서 온 힘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
이를 보자마자 대장로가 바로 손가락을 거뒀지만, 이미 되살아난 본명고는 삼키는 걸 멈추지 않고 주위에 유리된 힘으로 목표를 돌렸다.
이때, 허칠안의 눈이 벌레처럼 녹색의 세로 눈동자로 변했다.
그는 소위 고신의 힘을 보았다. 공기 중에 겉도는 검붉은 개똥벌레로, 형상이 엷었지만 확실히 그의 눈에 띄었다.
허칠안은 그제야 뭔가를 깨달았다.
‘역고부가 흡수한 고신의 힘은 본질적으로 고신의 기혈이었구나. 고신 기혈의 힘은 무사와는 좀 달라. 경솔하게 흡수하면 괴물로 변할 거야. 어쩐지 1년 내내 여기서 생활하는 동식물이 ‘고’로 변태하더라니.’
허칠안은 검붉은 ‘개똥벌레’ 흡수를 시도했다. 그것들은 무사가 직접 흡수해 이용할 순 없었다. 몸에 역고를 지니고 있지 않은 이상, 억지로 수용하면 괴물이 되거나, 그것들을 배출해내야만 했다.
여기서 역고란 고신의 ‘독소’를 여과하는 여과기였다.
고신 기혈을 흡수해도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한 허칠안은 곧 먼 곳으로 걸어갔다.
이내 허칠안은 칠절고를 제압하는 힘을 풀고, 그것들이 주위의 고신 기혈을 마음껏 흡수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이러면 콩알이가 자원을 빼앗기는 걸 막아줄 수 있었다.
1분 1초 시간이 흐르며, 주변 기혈의 힘이 점점 줄어들었다.
“천재구나!”
대장로는 깜짝 놀라 멍하니 넋을 놓았다.
그는 허영음 목덜미 쪽의 역고가 빠른 속도로 강대해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아주 순탄했고, 한결같이 교란의 기미도 없었다. 게다가 이 형세를 보니 아직 끝도 아니었다.
하지만 허영음이 섭취한 양은 이미 다른 동급 역고 족인이 필요로 하는 고신의 힘을 뛰어넘었다.
아이의 잠재력은 그들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강대했다.
“사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천재지!”
한 장로가 다시금 말을 바로잡았다.
깜짝 놀란 다른 장로도 의아한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 아이는 어떻게 마음에 잡념을 없앨 수 있는 거지?”
아이의 사고는 단순하지만 생각은 잡다했다. 보통 아이는 허무맹랑하고 터무니없는 상상을 통제할 수 없어서, 성인보다 더 복잡하다 볼 수 있었다.
“모르겠네. 그러니 다들 내 제자가 사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천재라 말하잖나.”
또 다른 장로가 의견을 표했다.
뒤이어 대장로가 큰 소리로 맹세했다.
“장차 나는 손자를 저 아이와 맺어줄 것이네!”
순간 장로들 모두가 경계와 적의를 보였다. 한 차례 눈빛을 주고받은 그들은 어느새 거리를 벌렸고, 눈빛은 경계와 투지로 충만해졌다.
그때, 한 장로가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주변 고신의 힘이 희박해지지 않았나?”
그 말에 대장로와 나머지 장로들 시선이 드디어 ‘귀염둥이’를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전부 녹색의 세로 눈동자로 변한 그들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다 장대한 체구의 노인이 문득 경악과 망연자실한 빛을 보였다.
그들의 시야로 볼 때, 주변 공기는 아주 신선했다. 여태 개똥벌레처럼 공중을 겉돌던 고신의 힘은 이미 가련할 정도로 줄어든 상태였다.
“천재야……!”
대장로를 필두로 모두가 덜덜 떨리는 얼굴로 허영음을 돌아보았다.
‘주변 ‘고신의 힘’을 아이가 다 흡수했다고? 도대체 어떻게…….’
장로들의 의문과 흥분이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그때, 대장로가 고개를 저으며 허영음을 자세히 살폈다.
“엇? 아니네. 아이의 기력이 치솟은 건 틀림없지만, 아이는 여전히 8품 단계야. 이곳 고신의 힘은 농도가 극연 내부에 미치진 못하지만, 모조리 흡수하는 건 저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네.”
모든 장로는 눈살을 찌푸린 채 말이 없었다. 그들의 연륜으로도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결국 모두가 우거지상이 되었다.
이때, 모남치가 흰 여우를 안고 돌아왔다. 대장로는 하얀 피부의 이방인을 보며 서툰 대봉 표준어로 물었다.
“그 자식은?”
모남치가 답했다.
“여기저기 둘러본다고 하던데요.”
대장로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이방인이 극연의 상황이 궁금해 사방을 살피고 감상하며 경험을 쌓으려는 모양이었다.
더불어 그는 불문 금강을 죽일 수 있는 초범 무사니, 원시림 지대도, 설령 극연 내부로 깊이 들어간다 해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 * *
현재 원시림 깊이 들어온 허칠안은 암석 꼭대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토납하는 방식으로 공기 중에 겉도는 고신의 힘을 흡수 중이었다.
이곳의 고신의 힘 농도는 외곽의 10배도 넘었다. 흡수할 때마다 허칠안 몸속의 기혈이 약간씩 왕성해졌고, 진전 속도도 아주 빨랐다.
기혈은 기기와 무관했다. 기혈이 상징하는 건 기력으로, 보통은 기혈이 왕성할수록 체력이 좋아지고 힘도 세졌다.
그러니 3품 전봉이 기기를 시전하지 않는다면, 허칠안이 2명이라도 용도보다 힘이 약할 수도 있었다.
‘기혈이 왕성할수록 내가 연화해낼 수 있는 기기는 더 많아져. 고신을 삼킨 기혈의 힘을 최대한 내 것으로 만든 뒤에 이모를 찾아가 쌍수하고 마지막으로 봉마정을 뽑아내면 나는 완벽한 3품 전봉이 되는 거야. 아니, 언제든 2품을 돌파할 수 있는 3품 무사지. 그때의 진북왕보다 더 강해질 거야.’
* * *
일각 후.
허칠안은 토납하는 자세 그대로 고신의 힘을 계속 흡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칠절고도 흡수를 멈췄다.
완전히 극한에 도달하여, 그도 더는 고신의 힘을 소화할 수 없었다.
허칠안은 칠절고를 자세히 한번 ‘살펴보았다.’
역고의 능력은 독고, 시고, 암고까지 따라잡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를 넘어선 상태였다.
그는 지금 그 역고의 두 번째 능력, 광포(狂暴)를 얻었다.
광포는 세포를 자극해 짧은 시간 내 정상을 넘어서는 힘을 폭발시킬 수 있었다. 대가는 폭발이 끝난 뒤엔 나른한 상태에 들어서고 식사량이 극심히 증가해 마구 먹고 마셔야만 소모를 메울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러지 않으면 기혈이 쇠약해져 수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후!
그때였다. 갑자기 허공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이어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바위 한 덩어리가 선회하며 날아와 허칠안을 내리쳤다.
허칠안은 가볍게 몸만 옆으로 돌려 바위가 스쳐 가도록 내버려두었다.
지면을 내리친 바위는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었다. 그리고도 계속 굴러가던 바위는 변이한 나무 두 그루를 부러뜨렸다.
이곳 식물은 고신 기혈을 흡수하여 일정한 변이가 일어났다. 하여, 보통 나무들보다 더 질기고 단단한 편이었다.
바위의 습격을 피한 허칠안은 전방을 쳐다보았다.
밀림 속, 나무 그늘에 덩치가 크고 용맹스러운 성성이(猩猩)가 서 있었다.
새빨간 두 눈에, 튀어나온 송곳니, 위쪽 근육이 주름진 긴 입술의 성성이는 흉악한 몰골로 허칠안을 주시하고 있었다.
성성이는 인간이 자신을 쳐다보는 걸 보고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단단한 가슴을 두드렸다. 그리곤 바닥에서 자갈을 한 움큼 쥐어 힘껏 내던졌다.
순식간에 자갈들이 억수 같이 쏟아지는 화살 비가 되어 날아왔다.
‘이 성성이는 무서울 정도로 힘이 센데……?’
허칠안은 몸을 녹인 후, 성성이 뒤에 있는 그림자를 뚫고 나왔다.
그는 곧 힘껏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손가락뼈가 콩을 볶듯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오른팔 근육 전체가 부풀어 올랐다.
팔은 무려 2배나 굵고 단단해졌다. 완전히 기형화된 모습이었다.
광포, 이것이 바로 광포였다.
퍽!
주먹은 마치 화포처럼 발사되었다.
공기는 거의 허칠안 주먹에 다져지며 맑은 소리를 냈다.
결과는 처참했다. 성성이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고, 피와 장기는 바닥에 흩뿌려졌다.
순식간에 이 주변은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지금 용도를 찾아가 팔씨름 한번 해보고 싶네.’
허칠안도 자신의 변화를 흐뭇하게 느꼈다.
그는 바로 지체하지 않고 돌아서 동쪽을 향해 걸었다.
동쪽으로 30리 걸어가면, ‘독고의 힘’이 만연한 구역이었다.
* * *
허칠안은 이제 장독(*瘴气: 장기. 습하고 더운 땅에 생기는 독한 기운)으로 뒤덮인 지대에 이르렀다.
그는 본래 ‘독고의 힘’이 뒤덮인 구역은 상대적으로 식물도 드물고, 일부 맹독성 식물만 생존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한데, 누가 알았겠는가. 여긴 온통 나뭇가지와 잎이 우거져 있었고, 심지어 나무들도 다 길이가 길고 거대하기까지 했다. 나뭇가지와 잎은 어찌나 겹겹이 쌓였는지 바람도 통하지 않을 만큼 빽빽했다.
탁!
허칠안은 나뭇가지를 꺾고 가지에 달린 나뭇잎을 입에 넣어보았다.
“독이 있네. 근데 품질이 나빠.”
뒤이어 또 관목과 잡초의 맛도 보았는데 전부 독소를 머금고 있었다.
다만 독성이 크지 않아 독고에게 별다른 이득은 없었다. 그래도 부작용을 완화하는 간식으로 충당할 수는 있었다.
그는 계속 걸어가며 맛을 보다가 가끔 독충 몇 마리와 독초 몇 줄기를 땄다. 안으로 더 걸어갈수록 식물과 독충의 품질이 높아졌고 독성도 강해졌다.
* * *
제법 흥미진진하게 먹을 수 있는 곳에 도착한 뒤, 허칠안은 나무 그늘 밑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공기 중에 만연한 장독과 독기를 토납해, 독고에 영양을 공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칠절고는 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더는 독기를 흡수할 수 없었다.
허칠안은 이제 새로운 독고 능력인 독체(毒体)를 장악했다.
독체는 전환과 흡수, 이 두 가지 능력이 있었다.
먼저 전환은 모든 무독성 물질을 독성 물질로 변화시키고, 모든 유독성 물질을 무독성 물질로 변화시켰다.
또한 흡수는 모든 유독성 물질을 흡수해 본인의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여기엔 적의 기기, 검기 등의 공격도 포함이었다.
동시에 독극물 흡수를 통해 몸을 회복시킬 수도 있었다. 설령 팔다리가 잘려도 주변에 독극물이 많으면 그걸 흡수해 독체로 전환이 가능했다.
다만 허칠안에게 이 능력은 약간 계륵이긴 했다. 저속한 무사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바로 팔다리가 잘리는 것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