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59
956화. 대응책 (2)
마지막은 심고였다.
허칠안은 이 경지에 이르러서야 심고가 어수고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았다.
심고 모고는 중앙처리장치와 같아서 짐승으로 구성된 대군을 완벽하게 동원하고 배치할 수 있었다.
세상에 그보다 행군과 전쟁을 더 잘 아는 장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천하에 조합 능력이 초범 심고사를 초월할 수 있는 군대는 없었다.
그리고 심고는 지능이 높지 않은 생명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인간, 짐승 그리고 기령까지 포함하지만 이에 국한되지는 않았다.
지능이 높을수록 심고는 통제하기 어렵고, 낮다면 통제는 훨씬 쉬웠다.
하지만 이게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고지능 생물이 장기적으로 심고에 제약을 받으면, 저지능 생물이 되어 심고사의 조종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허칠안은 문득 심고의 힘이 자욱한 산림 지대가 떠올랐다. 그 안의 생명들은 지능이 높든, 낮든 전부 명령에 복종할 줄만 아는 사사로 변했었다.
한편, 심고사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는데 자칫하면 개체의 전력이 너무 낮아지고 목숨을 지킬 기능이 충분치 않아진다는 거였다.
‘심고사와 전쟁에서 우위를 겨룰 수 있는 건 주술사뿐이네. 그해 위 공이 산해관전역에서 어떻게 승리한 건지 정말 모르겠어. 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주술사의 공시술(控尸術)과 심고사의 수법을 억제할 수 있는 건 화포뿐인데. 사정거리 안이 진리인데…….’
허칠안은 속으로 개탄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갑자기 수축하고, 등 근육이 팽팽하게 조여졌다.
그는 돌연 기세를 몰아 튀어 나갈 때만 노리는 맹수가 된 것 같았다.
허칠안의 눈앞 2장(丈)밖에, 노란 털의 원숭이가 서 있었다.
원숭이는 온화한 눈빛으로 그를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허칠안도 원숭이에게 적의는 느낄 수 없어서 출격의 충동을 억눌렀다. 하지만 완전히 긴장을 풀지는 않았다. 마침 고족에겐 무사의 위험 예지를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성환두!
“이 몸이 너를 좀 보러 왔다.”
노란 털 원숭이가 사람의 언어를 내뱉었다.
자상하고 따뜻한,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당신은…….”
허칠안은 순간 생각이 번뜩였다. 머릿속에 스치는 이름이 있었다.
“아이들은 나를 천고 할머니라고 부르지.”
노란 털 원숭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허칠안은 리나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칠절고를 그녀에게 위탁하면서, 경성에 인연이 있는 사람을 찾으라고 했던 게 바로 이 천고 할머니, 천고 노인의 부인이었다.
“모두 천고에 미래를 엿보는 힘이 있다고 말하던데 오늘 견문을 넓힌 셈이로군요. 할머님께서는 선견지명이 있으시니 제가 남강에 왔고, 이곳에 있다는 걸 이미 다 계산하셨겠습니다.”
허칠안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노란 털 원숭이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차분하면서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용도가 내게 알려줬네. 리나가 부족에 돌아와서 나도 그제야 자네가 남강에 있다는 걸 알았지. 미래를 엿보는 데에는 많은 제약이 있다네.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산해관전역 때 이 늙은이가 패할 일도 없었겠지.
음, 감정이 천기를 차단해 전쟁의 결과를 못 보게 했을 가능성도 있네만. 이 수는 주술사에게도 효력을 발휘하거든. 모두가 위연이 보기 드물게 통솔력을 갖춘 인재라고 하던데 그건 거짓이 아니지. 하지만 자네들 중원의 그 감정이 남모르는 곳에서 하는 일은 아마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을 걸세.”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님께서는 무슨 일로 저를 직접 찾아오신 겁니까?”
노란 털 원숭이가 느릿하게 말했다.
“자네는 내게 묻고자 하는 게 아주 많겠지만, 이 몸도 마침 자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네. 다만 이번에 온 건 자네에게 충고하기 위해서야. 방금 허평봉의 제자가 날 찾아왔네. 고족 각 부족 족장한테 운주 반란군과 동맹을 맺고 연합해 대봉을 공격하고 중원을 분할하자 유세하더군.”
‘XX!’
허칠안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각 부족 족장들은 다 승낙했습니까?”
노란 털 원숭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21년 전 산해관전역에서 고족이 패했고, 각 부족은 굴복하지 않았지. 많은 이가 죽었고. 그 화를 20년이나 억눌렀으니 조만간 분출하려 할 걸세.”
허칠안도 전생에 역사를 꽤 연구했던 사람이었다. 각자 입장을 떠나, 원한이 쌓인 패전국이 보복을 시도하려 한다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
허칠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용도는 승낙하지 않았네. 하지만 전쟁의 정세가 불리하고 고족이 위기를 맞는다면, 역고부가 앉아서 보고만 있을 리는 없네. 천고부도 마찬가지지.”
“예, 할머님의 고충을 이해했습니다.”
노란 털 원숭이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천천히 입을 뗐다.
“칠절고는 이 몸이 남겨둔 후수네. 허평봉의 거사가 실패하면 그는 약속을 지킬 수 없고, 그리되면 유가 성인의 조각상도 복원할 수 없지. 그래서 칠절고를 남겨 이 인과를 잇는 후수로 삼았네.
하지만 이 몸이 말하려는 건 만약 허평봉의 거사가 성공한다면 그는 반드시 이 인과를 감내할 거란 것이야. 남강을 도와 나라를 세우고 두 주(州)의 땅을 할양하겠지. 1품 술사의 수단으로 역고에게 기운을 응집하고 유가 성인 조각상을 복원할 테고. 그렇게 되면 고신은 계속 깊이 잠들어 있을 것이네. 이 몸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거절할 이유가 없더군.”
허칠안은 잠자코 듣기만 했고, 천고 할머니는 계속 노란 털 원숭이를 조종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지금 몇몇 아이가 역고부에 매복해 자네를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네. 자네도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속히 떠나게. 그동안 내가 리나더러 자네를 찾아가라고 할 것이야. 자네가 묻고 싶은 일, 알고 싶은 일은 내가 리나를 통해 자네에게 전달해줄 것이네.”
허칠안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고족이 대봉에 군대를 출동시키겠다는 결심이 적지 않네. 족인의 원한이 켜켜이 쌓인 지 이미 오래라 천고 할머니조차 흐름에 역행하길 원치 않으니. 게다가 허평봉이 제시한 약조는 고신 봉인이야. 이건 고족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인데…….’
허칠안이 말했다.
“고족이 대봉을 치고 싶어 하는 것, 충분히 이해합니다. 결말은 대봉을 멸하고 중원을 분할하거나 고족의 많지 않은 기운을 흩뜨려 다신 일어날 수 없게 철저히 얌전해지는 것이지요. 할머님, 도무지 절충안이 없는 겁니까?”
천고 할머니는 묵묵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허칠안이 문득 입을 열었다.
“참, 저한테 법기가 하나 있습니다. 허평봉 손에서 빼앗아온 것이지요.”
그는 품에 손을 넣어 지서 파편을 가볍게 두드린 후, 구리 조각, 오색 돌, 옥 조각 등의 물건이 장식된 남강풍 팔찌를 꺼냈다.
천고 할머니는 좀처럼 팔찌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눈빛에 슬픔, 기쁨, 추억 등의 복잡한 감정이 섞여들고 있었다.
“할머님, 다시 좀 생각해보시지요.”
허칠안이 말했다.
천고 할머니는 잠시 고심 끝에, 무겁게 운을 뗐다.
“방법은 당연히 있지. 이 몸이 우선 자네가 왜 고족이 대봉을 이렇게 적시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그해 산해관전역 상황을 얘기해주겠네. 불문은 주로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망상에 빠진 남요와 북방 요족, 오랑캐를 상대하네. 또한 대봉은 고조 황제와 원한이 있는 무신교 그리고 우리 고족을 상대하지.
일곱 부족 중 시고부의 우시가 대봉을 가장 증오하네. 그의 부친이 위연의 칠일살진에 죽었기 때문일세. 다음으로는 정고부야. 그해 대봉 군이 절반이 넘는 정고부 사람들을 약탈해 수련 경지를 없애고 각지 교방사로 보냈거든.
독고부는 대봉 군에 많은 사상자를 냈네. 위연이 화가 나 직접 기병 3만을 이끌고 천 리를 달려와 독고부 전사를 철저하게 소탕하고 독고 족인 5천 명을 포로로 잡아가 모조리 생매장하여 죽였네.
지금까지도 독고부 인구는 여전히 일곱 부족 중에 가장 적네. 하지만 바로 그해 독고부의 족장, 장로가 정예병과 함께 거의 다 죽거나 다쳤기 때문에 발유가 비로소 두각을 나타내 족장이 될 수 있었지.
사실 그 본인은 대봉에 큰 원한이 없네. 게다가 독고부는 남강의 풍부한 독초와 독극물에 의존해서 중원 영토에도 야심이 없지. 중립파인 셈이야. 하지만 그의 태도가 족인의 태도를 결정할 수는 없어. 독고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대봉을 증오하고 있으니.
심고, 암고, 역고는 대봉을 바다만큼 증오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호감이 있는 것도 아니야. 이 몸의 천고부라면, 원한으로 천고의 예지를 동요할 수는 없네. 하지만 고신은 언제나 우리 부족이 중시하는 문제이니 고신을 봉인할 수 있다면, 누구든 우리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게지.”
‘위 공께서 그해 너무 독했어. 그야말로 종횡무진하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독한 인물이었군…….’
허칠안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런 고족은 절대로 대봉의 맹우가 될 수 없었다.
이내 천고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해야 할 말은 다 했네. 이제 어떻게 대처할지는 자네에게 달렸어.”
노란 털 원숭이는 손을 휘저어 팔찌를 빨아들인 후, 조심스레 손목에 끼고서 그 길로 훌쩍 떠나갔다.
* * *
우시의 질문에, 대장로는 지팡이를 내던지고 가슴을 꼿꼿하게 폈다. 그는 그렇게 잔뜩 부풀어 오른 우람한 근육을 과시하며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허칠안은 역고부의 친구네.”
우시가 쉰 목소리로 답했다.
“고족의 적이기도 하지요. 저희는 역고부 근거지에서 싸우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감히 방해한다면, 제가 예의가 없다고 탓하진 마십시오.”
다른 장로 몇몇이 잇따라 지팡이를 내던지며 근육질의 가슴을 활짝 폈다.
“싸우고 싶은가? 덤벼!”
심고부의 순언은 눈을 희번덕이며 불쾌함을 비쳤다.
“근육질의 이 야생 원숭이가 어떤 성격인지 모르는가? 죽은 자를 가지고 놀더니 머리가 망가진 거야?”
역고부 족인이 가장 참지 못하는 것이 자극 요법이었다. 그가 일단 발진하면 아무도 몰라봤다.
이때, 란옥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장로들께서는 그와 똑같이 굴지 마셔요. 고족은 형제자매 사이잖아요. 저희는 역고부가 나서기 어렵다는 걸 이해할 수 있어요. 이따가 지켜만 보세요. 안심하세요, 제가 그의 목숨은 살려둘 거니까요.”
장로 여섯은 그제야 얼굴을 펴고 콧방귀를 뀌었다.
“허칠안을 성가시게 하는 건 자네들 일이네. 하지만 지금 역고부 근거지에서 썩 꺼지게. 그가 하루라도 역고부에 있는 한, 자네들의 방자함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야.”
그들은 그래도 허칠안의 목숨을 지키고 싶었다.
고족 족장이 총출동했다. 여기서 용도가 개입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정도 수의 고수는 허칠안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허칠안이 아무리 금강을 죽였고, 설령 불문 소속의 나한이 되었다 해도 그 혼자서 고족에게 달려들 엄두는 나지 않을 터였다.
무엇보다 허칠안이 만약 여기서 죽는다면, 그의 동생 허영음이 장차 깊은 원한을 품을 게 틀림없었다.
심고사 순언은 귓바퀴를 살짝 움직여 경청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역고부에 없네. 얼마 전 역고부 장로들과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어.”
그녀는 역고부 주변의 뱀, 벌레, 쥐, 개미, 조류와 소통하며 그것들로부터 정보를 알아냈다. 뱀, 벌레, 쥐, 개미류는 몸을 숨기는 능력이 좋기에 먹이에 미친 역고부 오랑캐에게 소탕당하지 않은 것이었다.
“어디로 갔는가!”
우시가 나지막이 물었다.
“모르겠네.”
순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순간, 그녀가 날렵한 살구 눈을 반짝이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평원 끝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가 돌아왔군.”
암고부 족장은 아무 망설임 없이 그림자를 뒤흔들어 족장들을 뒤덮었다. 그는 그대로 그들을 데리고 나무 그늘로 사라졌다.
대장로 등은 얼굴빛이 확 변했다. 멀리 바라보니 푸른 장포를 입은 젊은이가 평원 끝에서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꼿꼿하게 서 있었다.
“큰일 났군. 그가 어째서 이 순간에 맞춰 돌아온 것인가!”
분노한 대장로는 상스러운 말로 욕을 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