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64
961화. 끝내기 (2)
역고부 사람들이야 3가지 고술의 출처를 생각할 틈이 있겠지만, 장내 족장들은 그렇게 한가하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니었다.
장내 족장들의 충격도 지켜보는 이들만큼이나 엄청났지만, 지금은 적을 이기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다시금 어둠이 빛을 대신했다.
허칠안은 또 암고의 ‘몽폐’에 걸려 오감육식이 모조리 차단되었다.
뒤이어 그림자가 슬그머니 떠오르더니, 살짝 구부러진 비수가 어두운 금색 미간을 힘껏 찔렀다.
우시는 양손에 골도를 한 자루씩 들고 등을 파묻은 채, 두세 걸음 달려가 쌍칼을 교차해 허칠안의 목을 베었다.
발유는 이미 독소가 소용없다는 걸 알았지만, 검푸른 독화살 세 개를 협조적으로 뿜어냈다.
이에 순언은 세 동료가 정확히 적을 명중할 수 있도록 확보하고자 재차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 심고술로 통제를 가했다.
세 족장의 공격은 확실히 적을 명중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실체가 없는 그림자일 뿐이었다.
삼중 공격에 그림자는 순간 수증기처럼 뒤틀리더니 멀찍이 도약해 영자와 우시 앞에서 사라졌다.
영자는 즉각 솟구쳐 올라 달려들어선 그림자에 몸을 던진 채 쫓아갔다.
“순언, 얼른 물러나게!”
우시가 크게 외쳤다.
예쁘고 커다란 눈의 순언은 안색이 약간 변했다. 그녀는 원신을 조종하는 자신의 능력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걸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경험이 풍부한 그녀는 우시의 경고를 듣고 즉시 도약해 지면에서 벗어났다. 이러면 자신의 그림자를 뚫고 나오는 적을 저지할 수 있었다.
순언은 팔을 벌리고 쉴 새 없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공중으로 도약한 그녀는 경계심을 갖고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근처 나무 그늘을 뚫고 나오는 어두운 금색 형체가 보였다.
무사가 두 무릎을 굽히자 지면이 엄청난 소리와 함께 가라앉았다.
쿵!
그는 마치 하늘을 향해 쏜 날카로운 화살 같았다.
순언은 가슴이 철렁하여 입을 벌리고 끊임없이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이번 포효는 원신을 뒤흔들지 않고, 허칠안 마음속의 온화함과 여색을 탐하는 면을 불러일으켰다.
심고의 다른 수단이었다.
공정(共精)!
그 밖에도 그녀는 바삐 서두르듯 주변 수십 리의 짐승류를 소환했다.
그동안 몇 차례 공정을 쓰지 않은 건 원신을 뒤흔들어 억지로 통제하는 효과가 더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동료들에게 우세를 쥐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공정이 상대적으로 그렇게 강한 건 아니었다. 공정은 인성 중 본래 존재하던 감정을 자극할 수 있지만, 너무 과하면 상대가 즉시 이상함을 알아차리고 공정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이었다.
예컨대 의지력 강한 무사가 목숨을 건 전투를 할 때, 사지(死志)를 싹트게 하거나 소극적으로 변하게 하는 등의 공정은 대부분 실패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여색에 약한 면도, 성격상 훨씬 부드럽고 주도권은 상대에게 있었다. 자고로 공정은 일방적으로 가하는 게 아닌, 쌍방의 감정이 보조를 맞추는 것이었다.
만약 허칠안이 사지를 품는다면 순언 역시 사지가 싹틀 터였다.
일전의 전투에서 억지로 허칠안의 사지를 싹트게 했다면, 아마 순언 그 자신이 제일 먼저 달려들어 허칠안과 필사적으로 싸우러 들었을 것이었다.
공정을 받은 허칠안은 갑자기 온화해진 얼굴로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안심하시오. 내 살살 하겠소. 당신을 아프게 다루지 않을 것이오. 낭자는 처음이오?”
순언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초 뒤, 두 사람은 동시에 공정 상태를 벗어났다.
확실히 이상했다. 싸우다가 갑자기 그쪽까지 얘기가 번져나갔다.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었다. 위화감이 너무 심했다. 돌연 사지가 싹트는 것보다도 어색한 상황이라 결국 공정은 실패하고 말았다.
‘여색을 그리도 밝히는 그가 왜…….’
순언의 눈에 절망이 스쳤다.
이 순간, 심고사의 단점이 모조리 드러났다. 싸우고 죽이는 전투에 능하지 않은 심고사는 초범 무사의 습격에 저항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었다. 도망쳐봤자 속도도 충분하지 않았다.
쿵!
다시금 땅이 무너지는 소리가 울렸다.
우시는 즉각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추격하면서 동료에게 접근하는 허칠안을 막고자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끝없는 어둠이 그를 뒤덮었다.
우시 역시 허칠안이 조금 전 느꼈던 감각을 체득했다.
영자는 방금 ‘몽폐’를 시전한 탓에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몽폐를 짧은 시간 내에 연속으로 시전할 순 없었다. 결국 영자도 어쩔 수 없이 저 중원 사내가 순언에게 달라붙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탁! 탁! 탁!
허칠안은 아주 익숙한 연수를 맞았다.
이는 화경 이상의 무사만이 시전할 수 있는 연수였다.
그는 그제야 순언의 실력을 알아차렸다. 어쩌면 개인의 부족한 전투력을 메우기 위한 것이었을까?
이 예쁜 심고사도 4품 전봉의 무사였다.
허칠안은 살구 눈 미인의 두 손목을 잡고 등 뒤로 비틀었다.
스슥-
순언 귓불 위의 적색 뱀 두 마리는 충성스럽게 주인을 보호하며 허칠안의 팔을 물어버렸다.
허칠안은 한눈에 이 뱀의 독이 아주 독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투둑- 투둑-
가느다란 뱀 두 마리가 각자 허칠안의 팔뚝을 물자마자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이내 뱀은 이빨이 부서진 듯 고통스럽게 움츠리기 시작했다.
“너……!”
살구처럼 커다란 순언의 눈이 분노와 당황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곧장 분홍빛 입술을 벌리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려 했다.
이에 허칠안은 바로 그녀의 얼굴을 향해 농도 짙은 발정 기체와 정고 자고를 뿜어냈다.
길고 가느다란 검은색 자고는 순식간에 순언 입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불과 몇 초 사이에 순언의 혈액이 들끓기 시작했다. 피부는 빨갛게 물들고, 몸속 정욕에 불이 붙어 이성을 불태웠다.
‘정고, 그 역시 정고사구나…….’
순언의 마음에 믿기 어려운 생각이 스쳤다.
이로써 그녀의 얼마 남지 않은 이성이 철저히 붕괴했다. 피부는 빨개지고 얼굴은 불같이 달아올라, 순언은 연신 괴로움에 허리를 비틀었다.
‘몽폐’의 시효는 아주 짧았다. 우시는 빠르게 지각을 회복하고 골도를 든 채 측면에서 달려들었다. 맹렬한 기세가 남녀를 한꺼번에 죽일 듯했다.
우시는 고의로 살의와 도기를 빌려 그녀의 ‘소생’을 도왔다.
역시나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은 순언은 연약한 몸을 떨더니 흐리멍덩한 눈에 생기를 찾았다. 하지만…….
땅!
때는 이미 늦었다.
골도가 허칠안의 머리를 매섭게 내리치며 불똥이 일었다. 그렇지만 허칠안은 처음부터 피할 생각이 없었다는 듯, 즉시 순언을 힘껏 껴안았다.
우지직!
4품 무사지만 순언의 뼈는 십여 개 정도 부러진 데다 독소까지 동반한 상태였다.
허칠안은 곧 순언을 아무렇게나 버려둔 채 허공에 우뚝 섰다. 그는 그대로 암고, 시고, 독고 세 족장을 살피며 험상궂게 웃었다.
“너희 차례구나.”
족장 셋은 까닭 없이 가슴이 철렁했다.
깊게 숨을 들이쉰 허칠안은 아래의 세 사람을 향해 발정 기체를 뿜었다.
행시 외에 발유와 영자는 생리적인 반응을 보였다. 눈에 정욕이 불타올랐지만, 빠르게 의지로 극복하여 정욕을 억제했다.
이건 어쨌거나 초범 경지에 도달하지 않아서 위력이 좀 떨어졌다.
그러나 허칠안의 수법은 당연히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또 즉시 허공으로 사라졌다.
“발유, 발밑을 조심하게!”
영자가 크게 외쳤다.
발유는 말뜻을 알아듣고 바로 좌측을 향해 도약했다. 순언의 실패를 교훈 삼았기에 감히 어공할 엄두는 낼 수도 없었다.
역시나 허칠안은 발유의 그림자를 뚫고 나왔다.
발유는 침착하게 허리춤에 있는 짐승 가죽 주머니에서 검은 알약을 한 줌 꺼낸 후, 끝까지 쑤셔 넣고 통째로 삼켰다.
순간, 그의 몸 표면에서 갑자기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탁!
발유가 양손을 합치자 울림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새어 나왔다.
연기는 빠르게 허칠안을 삼켰다. 발목뼈처럼 그의 피부 표면에 달라붙어, 통증을 일으켰다.
‘역시, 멀리서 분사한 독액과 근거리에서 접촉한 독은 차원이 다르네.’
허칠안은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발유의 독은 그보다 한 단계 위라 독체로는 소화할 수 없었다.
‘나를 압박해서 물러나게 하고 싶은 건가?’
이윽고 허칠안 머리 뒤쪽 불의 고리가 터지며, 검은 연기를 마치 엷은 막처럼 털어냈다. 연기는 절반 이상이 증발하고 약간 희박해졌다.
연이어 허칠안은 입을 벌려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뒤에서 구하러 달려오던 우시와 영자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허칠안은 맹독의 검은 연기를 억지로 짊어진 채 두세 걸음 앞으로 달렸다. 그는 손발을 다 써서 몸의 관절을 다 무기로 만들었다.
탁! 탁! 탁…….
육박전은 채 3초도 가지 않았다.
발유는 순식간에 두 팔, 두 다리가 갈기갈기 찢겼다.
허칠안이 치른 대가는 몸 절반이 검보라색으로 변한 것이었다. 금강의 신체와 영혼은 독소에 부식되어 심각한 현기증과 구토를 동반했다.
용도 외에 다른 족장의 사지가 폭력에 절단됐다면 반쯤 폐인이 됐을 터였다. 하지만 독체는 달랐다. 독체는 다른 종류의 재생 능력이 있었다.
일단 잠시 발유를 망가뜨렸으니, 이제는 암고의 영자와 우시가 조종하는 행시만 남았다. 이쯤 되면 일은 이미 아주 간단해졌다.
금강신체와 무사의 불사신 그리고 칠절고 수법을 지닌 허칠안은 굳이 부도보탑을 쓰지 않아도 3품경 행시와 암살에 능한 암고사를 상대할 수 있었다. 형세가 어떠한지는 따로 말할 필요도 없었다.
끝없는 어둠이 다시 우시를 뒤덮었다. 허칠안은 그에게 몽폐를 시전했다.
동시에 허칠안의 오감육식 역시 영자에게 몽폐당했다.
허칠안은 우시의 위치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우시 역시 허칠안의 위치를 분간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슉!
어두운 금색 도광이 허칠안의 품을 뚫고 나와 행시를 휘감고 연거푸 찍어 내리기 시작했다. 곧바로 낭랑한 소리가 연거푸 들렸다.
띵! 띵! 띵!
허칠안은 태평도의 지시를 빌려 우시의 위치를 파악했다.
광포!
근육이 한 덩이씩 터지며 허칠안의 몸은 순식간에 2배 가까이 부풀어 올랐다. 허칠안은 소리를 듣고 위치를 분별해 기선을 제압했고 질풍을 동반한 소나기처럼 행시를 공격했다.
땅! 땅! 땅…….
이 과정에 허칠안의 미간은 끊임없이 영자의 공격을 받았다.
영자는 결국 빠르게 포기했다. 그는 그림자에 녹아들어 란옥, 순언, 사람 몽둥이로 변한 발유를 감싼 채, 천고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의 결정은 현명했다. 그는 자신이 허칠안의 이마를 뚫는 것보다, 허칠안이 행시를 때려 못쓰게 만드는 것이 난도가 더 높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푹…….
마침내 어느 주먹이 내리치며 우시의 머리가 터졌다.
산산이 조각난 머리에선 회백색 뇌장이 사방으로 튀었다.
* * *
영자는 족장 셋을 휘감고 그림자 도약으로 천고 할머니에게 돌아갔다.
그는 평상시처럼 그림자에 숨어 들어가지 않고 창백한 안색으로 말했다.
“할머님, 저희가 졌습니다.”
목소리엔 망연자실한 감정이 여실히 묻어나왔다.
사실 아직도 그는 패전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들 다섯 사람의 실력이면 어떠한 체계의 3품이라도 손쉽게 죽일 수 있었다.
무사가 거칠고 야만적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시간이 좀 오래 걸릴 뿐이었다. 부족 족장 7명이 손을 잡으면 2품 무사도 한을 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젊디젊은 3품 무사에게 간단히 패배했다. 확실히 매우 쉽게 패했다. 허칠안은 심한 중상을 전혀 입지 않았다. 족장들이 허칠안에게 가한 상처는 초범 무사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회복할 수 있는 정도였다.
“어떻게 대응하지?”
영자는 말하는 동시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용도를 쳐다보았다.
용도는 상대방과의 친분을 생각해 수수방관했다. 지금 허칠안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모조리 해치우겠다는 그의 생각을 포기하게 하려면, 결국 역고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천고 할머니는 아무 대답 없이 발유 옆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휴대하던 천 주머니에서 죽통 몇 개를 꺼내더니 입구의 나무 마개를 뽑고 안에 있던 보라색 독약을 발유의 입에 넣어주었다.
발유는 탐욕스럽게 독약을 삼켰다. 서서히 그의 얼굴이 짙은 보랏빛을 띠었다. 사람 전체가 자색 고구마가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