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65
962화. 모두가 큰 깨달음을 얻다
뒤이어 신기한 광경이 발생했다. 허칠안에게 갈기갈기 찢긴 팔의 상처와 허벅지 뿌리 부분의 자색 혈육이 꿈틀거리며 자라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유의 두 팔과 두 발은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하지만 피부색은 여전히 짙은 보라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본디 독체를 수행한 독고사는 무사와 비슷한 불사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본질은 달랐다. 불완전한 신체를 회복하려면 대량의 독소가 필요했다.
이제 그자 지닌 독체의 독성은 단일하게 변했고, 회복할 때 쓴 독에 따라 독체도 같은 독으로 변했다.
이는 독고사에게 있어선 실력이 크게 떨어진 것과 다름없었다.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다른 독극물을 흡수해야만 회복할 수 있었다.
“란옥 몸속의 독을 빼내게.”
천고 할머니의 말에, 발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매우 열망하던 일이었다. 그는 지금 독소 보충이 시급했다.
매혹적인 미모의 란옥 앞으로 걸어간 발유는 힘껏 숨을 들이마셨다. 순식간에 란옥의 코와 입에서 검푸른 독기가 흘러나와 발유에게 흡수됐다.
발유는 깜짝 놀란 듯 눈을 반짝였다.
“아주 순수한 시고군. 시고부의 모든 시고를 더한 것보다도 순수해.”
“으음…….”
란옥은 조금씩 의식을 회복했다. 그러나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다.
그녀는 지금 갈비뼈, 팔뼈, 가슴뼈 등 십여 군데가 골절되었다. 그녀는 초범경 강자라 회복할 수 있었지만, 역고와 무사처럼 빠르게 회복될 수 없는 건 틀림없었다.
란옥이 눈을 떠 처음으로 보인 반응은, 억지로 통증을 참으며 먼 곳의 허칠안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눈빛엔 꺼림칙한 감정과 공포가 묻어나왔다.
계속해서 천고 할머니가 말했다.
“란옥, 순언 몸속의 정고를 뽑아내게.”
란옥은 고개를 끄덕이고선 시선을 거뒀다.
입술을 오므린 채 억지로 통증을 참으며 일어난 란옥이 순언에게 향했다.
심고사는 빨갛게 열이 오른 얼굴로 이따금 뭔가를 조그맣게 속삭였다.
‘네가 발정할 때도 다른 여인보다 고귀하지는 않구나…….’
란옥은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리곤 손바닥을 순언의 명치에 댔다.
몇 초 뒤, 혼란스러운 정신에 감정이 매혹됐던 심고사가 천천히 평온을 되찾은 얼굴로 눈을 떴다.
그녀는 즉시 눈살을 찌푸렸다. 뼈가 부러진 통증을 느낀 것이었다.
하지만 초범은 어쨌거나 초범이었다. 육신이 특출나지 않다고 해도 이 정도 상처는 큰 문제도 아니었다.
순언의 반응도 란옥과 똑같았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주위를 둘러보던 순언은 먼 곳의 허칠안에게 시선이 꽂혔다.
“대체 누구지? 왜 그렇게 많은 고술에 정통한 거야?”
순언은 망연한 눈빛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족장들 모두의 의문을 내뱉었다. 아주 속상한 싸움이었다. 그들이 그리도 자랑스러워했던 수단이 허칠안에게는 아무 효과도 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허칠안 역시도 독고사, 심고사, 암고사, 역고사, 정고사였기 때문이었다. 현재 그가 익히지 못한 건 천고와 시고뿐인듯했다.
고족 역사상 지금껏 그렇게 많은 고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쌍고는 이미 극한이었다. 3가지, 나아가 4가지 고술을 장악하고자 했던 사람은 그 누구라도 결국에는 육신이 붕괴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때, 족장들은 허칠안이 그 3품 행시 옆에 쪼그려 앉아 어두운 금색 탑을 꺼내는 걸 보았다.
탑 꼭대기에는 법상이 응집돼 있었다. 법상은 매끄러운 몸에 자비롭고 인자한 얼굴로 손에는 옥병을 하나 받치고 있었다.
곧이어 병 입구에선 금색 부스러기 빛이 봄비처럼 흘러나왔다.
그대로 행시의 몸에 뿌려진 빛 부스러기가 파손된 행시의 머리를 회복시켰다. 눈으로 직접 보일 만큼 빠른 회복 속도였다.
뒤이어 이 3품 행시가 몸을 일으킨 후, 허칠안을 향해 공손히 군례를 올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허 각하를 뵙습니다!”
이제는 거의 대접에 중독되다시피 한 허칠안은 행시의 경칭에 아주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행시는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순전한 꼭두각시로 상응하는 육신의 힘만 지니고 있었다.
또 하나는 막 전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행시로 만들어진 것으로, 일부 생전의 기능과 법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조금 전 허칠안은 주먹으로 행시의 머리를 부쉈다. 행시가 후자의 경우였다면 내부의 잔혼이 사라지고, 생전의 일부 기능과 법술도 잃을 터였다.
하지만 이 3품 행시는 그 자체로 영혼이 거의 다 사라진 유형이라 애초에 생전의 능력을 살리지 못했다.
그래서 약사 법상이 행시를 다 보수한 뒤에도 거의 손실이 없었다.
란옥, 순언 그리고 용도 등은 이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지금 그들의 가슴 속에는 엄청난 혼란의 파도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시고술도 할 줄 알다니…….”
순언이 넋을 잃은 채 중얼거렸다.
쉭- 쉭-
순언의 귓불에 있는 가느다란 뱀 두 마리도 분노한 듯 소리를 냈다. 애써 몸까지 길게 뻗는 걸 보면, 밉살스러운 허칠안을 해결하고 싶은 듯했다.
여러 족장의 등에선 식은땀이 쏟아졌다. 그들은 아주 강한 적을 만난 것처럼 지나치게 경계하는 동시에 낙담하고 절망했다.
온몸에 자색을 띤 발유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고신 외에 이렇게 많은 고술을 장악할 수 있는 자는 없네.”
‘고신…….’
란옥 등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왠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란옥은 그 신비로운 청년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흉악하게 입을 벌리고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쉭- 쉭-
순언 귓불의 두 뱀은 즉시 분노를 거두고 벌벌 떨며 몸을 움츠렸다.
놀란 란옥은 크게 소리부터 질렀다.
“용도! 자네 계속 수수방관할 작정인가?”
상대적으로 상태가 온전한 두 족장 ‘영자’와 발유는 동료들의 앞을 막아섰다. 두 족장 모두 눈앞의 강력한 적을 삼엄하게 경계했다.
용도는 잠시 침묵하다가 동족들을 향해 걸어갔다.
“퉤퉤퉤……!”
아직 용도의 어깨에 있던 허영음은 발유 등을 향해 힘껏 침을 뱉었다.
이윽고 천고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사람들의 옆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허칠안을 맞으러 가는 길이었다.
순간 영자는 안색이 크게 변했다.
“할머님?”
천고는 심고와 비슷하게 전투로 유명하지 않고, 다른 분야에 능력이 치우쳐져 있었다. 천고 할머니는 저런 강자 앞에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게 뻔했다. 너무도 강력한 상대라 구하고 싶어도 그럴 틈조차 없을 터였다.
“괜찮네!”
천고 할머니는 빙그레 웃곤 곧장 허칠안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이어진 광경에 란옥 등은 더욱더 넋을 잃었다. 지금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게 정말 현실인 건지 도저히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허칠안은 즉각 천고 할머니를 향해 몸을 굽히고 읍한 후, 미소를 지었다.
“할머님, 저 그런대로 잘한 겁니까?”
천고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대로 분수 있게 손을 썼구먼. 가서 저들과 얘기해보게. 자네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겠지.”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곤 천고 할머니를 스쳐 지났다.
곧이어 허칠안이 모든 족장 앞에 이르렀다.
허칠안은 먼저 용도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인사한 후, 공포에 질린 망연한 얼굴들을 훑으며 웃었다.
“만약 내가 지금 너희를 죽이려 한다면 용도 한 사람으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은가? 너희 생각은 어떤가.”
역고부 출신의 용도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의 말에 불복하면서도 해 보고 싶어 안달이 난 얼굴이었다.
반면, 란옥, 순언, 발유, 영자는 말없이 잠자코 있었다.
지금 그런 얘기가 다 무슨 소용인가. 이들도 당연히 불복하지만 현 상태로는 절대로 불가능이었다. 용도와 연합해 죽일 수가 없으니 이 순간 고집을 부리는 건 아무 이득도 없었다.
결국 객관적으로 형세를 파악하는 자가 가장 뛰어난 법이기에, 그저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너희, 불복하지 말아라. 내 ‘의(意)’는 아직 시전하지도 않았다. 내 법보와 절세신병도 쓰지 않았지. 너희 고족 족장 7명이 손을 잡는다고 해도 나를 어찌할 수는 없다. 너희들, 불문 법제 보살의 부도보탑을 본 적은 없겠지. 하지만 아마 들어는 봤을 것이다.”
허칠안이 손을 뻗어 부도보탑을 손바닥에 받친 후, 빙그레 웃었다.
순언 등은 일순간 낯빛이 변했다. 불복의 기색은 금세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계속해서 허칠안이 말을 이었다.
“그러므로 너희 모두는 내게 목숨을 빚졌다. 나는 원수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아니다. 너희가 날 죽이고 싶었는데, 내가 도리어 너희를 죽인다고 탓하지 말아라. 너희 목숨을 살려둔 건 분명한 내 은혜이니 갚아야 한다.”
“너 도대체 누구냐.”
“뭘 원하는 건가.”
란옥과 순언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들도 이젠 허칠안을 꺼리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에게 다른 목적이 있고 흥정의 여지가 있음을 알아챘다. 더는 필사적으로 싸울 의지도 없었다.
또한 영자와 발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앞선 두 사람과 같은 의문을 품고 있다는 건 이심전심으로 알 수 있었다.
“나의 신분은 너희가 아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았다면 나를 포위하여 죽이려 들지 않았겠지. 여러분이 묻고 싶은 건 고술 문제겠지?”
허칠안은 말을 하면서 천고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달리 반대의 뜻을 표하지 않았다. 허칠안은 그제야 다음 말을 이었다.
“내 고술은 칠절고에서 유래한다.”
‘칠절고…….’
순언 등 네 사람은 망연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 명칭을 들어본 적도 없는 게 확실했다.
역고부의 용도와 여섯 장로 역시 마찬가지로 망연했다.
그때, 천고 할머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늙은이가 얘기하지. 칠절고는 이 늙은이가 평생 심혈을 기울인 것이네. 고족의 7가지 고술을 다 모았지. 천고를 기반으로 나머지 여섯 고술을 수용했네. 수십 년간 정련했고, 그리하여 유충 한 마리가 살아남았지. 칠절고는 이 늙은이가 고신을 봉인하기 위해 준비한 후수네. 칠절고를 얻은 자는 이 인과를 받고 고족을 도와 고신을 봉인해야 하지. 자세한 상황은 말할 수 없네.”
천기를 누설하면 천벌을 받고, 술사와 천고 모두 규칙을 준수해야 했다.
사람들은 한참을 침묵하며 천고 할머니의 말을 소화하려 노력했다.
칠절고 같은 수법을 정련하는 건 고족에겐 규칙을 깨는 행위였다.
이는 분명 고족의 조직을 파괴하겠지만, 고신을 봉인하는 일은 중요했기에 족장들이 허칠안을 마지못해서라도 받아들이게 할 수 있었다.
이내 천고 할머니가 모두를 다독거리듯 말했다.
“자네들 안심하게. 칠절고는 유일무이하니 두 번째는 없을 거야. 게다가 이 고는 보통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닐세. 지금 구주에서 아마 허칠안만이 가능할 것이야.”
‘그러니까 소위 인연 있는 사람이라는 건 사실 핑계였네. 할머니가 칠절고를 리나한테 건넨 것도 사실은 나한테 준 거였어…….’
허칠안은 천고 할머니가 미래의 어떤 일들을 엿보았다는 의심이 들었다. 어쩌면 그 천고 노인이 언젠가의 미래를 엿보았고 그래서 이런 안배를 한 건지도 몰랐다.
유감스러운 건 허칠안의 의문은 끝내 해답을 얻지 못하리라는 사실이었다.
천기는 결코 발설할 수 없었다.
이때, 심고사 순언이 뭔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그해 천고 노인이 감정 대제자와 국운을 도모하면서 칠절고를 자신의 몸속에 주입해 암암리에 키운 것이군요. 장차 감정 대제자가 패배해도 저희는 고신 봉인을 도울 사람이 여전히 존재하는 거고요.”
그녀의 말로 모두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이 바로 진실 같았다.
용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쩐지 대봉 제일 무사가 될 수 있었더라니. 어쩐지 이렇게 높은 전투력을 지니고 있더라니. 칠절고술이 초범에 접근한 건, 알고 보니 어릴 때부터 우리 고족의 비법을 수행해서였군.”
이는 용도가 전에 한 추측과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더 합리적이었다.
허칠안은 젊은 나이에 몸에 일곱 가지 고술을 지니고 초범에까지 접근했다. 이는 위연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천고 노인의 ‘육성’을 받아 어릴 때부터 고술을 수행하기 시작한 것이라면 정확히 얘기가 들어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