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66
963화. 동맹
천고 할머니는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칠절고는 내가 리나더러 경성에 가져가라고 했네.”
“…….”
순간 주변이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족장들은 참지 못하고 분분히 리나를 쳐다보았다. 하나같이 경직되거나 망연자실하거나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리나는 모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할머니께서 경성에 가져가 인연이 있는 사람을 찾으라고 했어요.”
‘올해 일이구나…….’
순언 등의 족장은 도무지 이 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대체 누가 고족 정통인지 의심이 피어났다.
용도는 딸을 묵묵히 주시하다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물었다.
“넌 왜 우리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니?”
리나는 뭘 그런 걸 묻냐는 듯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잊어버렸죠!”
천고 할머니는 용도가 어깨에 앉힌 허영음의 손에서 나무 막대기를 가져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다급히 말을 시작했다.
“고신 봉인이라면 그는 일종의 가능성이네. 감정 대제자의 약속도 가능성이고. 우린 감정 대제자와 협력을 택할 수도, 허칠안을 택할 수도 있어.”
만약 고족 족장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틀림없이 허평봉과의 협력을 택할 것이었다. 고신을 봉인할 수도, 원수를 갚아 원한을 풀 수도 있었다.
실제로 이들은 확실히 그런 선택을 했다.
영자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할머님, 진작 알고 계셨으면서 왜 그전에는 우리에게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고 저희를 막지도 않으셨습니까?”
이들이 허칠안이 고술에 정통하여 정고, 독고, 심고를 두려워하지 않을뿐더러 그들의 수법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절대 죽음을 자초하러 올 일은 없었을 터었다.
천고 할머니는 느릿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자네들이 싸워서 두려움을 느꼈으니 내가 미리 말하지 않은 걸 원망하는 것이네. 이 늙은이가 사전에 말해줬다면, 자네들은 또 다른 방안을 취했겠지. 이 아이를 인질로 삼는다거나. 결국 한판 붙은 것은 아주 좋은 일 아닌가? 자네들의 독기와 분노를 다 꺾었으니 이렇게 해야 앉아서 얘기 나누기에도 좋지.”
사람들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이걸 바로 선병후례(先兵后禮)라고 하는 거다. 우선 너희들 예기를 꺾고 난 뒤에 이득을 주고 협력을 논하는 거지…….’
얼추 포석을 깐 걸 보자 허칠안이 입을 열었다.
“내가 여러분을 죽이지 않은 건 여러분이 다시 고려해볼 수 있길 바라서였다. 자, 이제는 대봉과 협력하는 게 어떻겠는가?”
“불가능하다!”
“족인은 응하지 않을 것이고, 나 역시 승낙하지 않는다.”
불가능이라 답한 건 발유, 뒤이어진 말은 란옥이 한 것이었다.
역고부 외에 독고부와 정고부의 족인은 대봉에 대한 원한과 증오가 극에 달했다고 할 만했다.
허칠안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우선 내 조건을 좀 들어보지. 난 너희 고족이 고신을 봉인하는 걸 돕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걸 어떻게 봉인하는지 모르지만, 너희는 아마 천고 노인을 믿겠지.”
란옥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건 네가 칠절고를 받아들였으니 본디 감내해야 하는 인과다.”
허칠안이 그녀를 흘겨보았다.
“네가 지금까지 살 수 있는 게 바로 내 승부수다.”
란옥은 말없이 잠자코 있었다.
이번엔 발유가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는 운주와 동맹을 거절하고 대봉을 공격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다.”
허칠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용도를 보며 말했다.
“내가 대봉을 대신해 약조할 수 있다. 반란군을 평정하고 경작을 회복한 후 10년간은 매년 역고부에게 배를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식량을 주겠다.”
용도와 여섯 장로의 눈이 반짝였다. 다들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허칠안은 다시 발유를 쳐다보며 말했다.
“독고부에게 매년 일정량의 최상품 독초와 독과일을 제공하겠다. 구체적인 수량은 사후에 다시 상의해도 된다.”
발유는 입을 벌렸다. 마음은 거절하고 싶었지만, 머리가 허락하질 않았다.
이어, 허칠안은 란옥을 돌아보며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너는 뭘 원하지?”
고족 일곱 부족 중 정고부, 독고부, 시고부가 대봉에 대한 원한이 가장 깊었다. 이에 허칠안은 먼저 곁에 있는 이 행시를 잘 다스려 시고부와 협상하는 패로 썼다.
허칠안도 시고부가 지난날 악감정을 완전히 없애는 것까진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운주와 동맹을 맺지 않는 것만으로 족했다.
하지만 정고부에게는 허칠안이 내놓을 수 있는 패가 없었다.
란옥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남강에 남아 나와 3년을 함께 있지. 너는 정고술을 할 줄 아니 내가 뭘 가리키는지 아마 이해했겠지?”
허칠안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담이 작은 모남치는 여전히 먼 곳에 움츠린 채 오지 않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잠시간 란옥의 아름다운 얼굴을 자세히 살피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3년은 안 되지. 기껏해야 석 달이다.”
‘???’
란옥은 순간 멍해졌다. 그녀는 버젓한 대봉 제일 무사가 이런 요구에 응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시원스럽게?
순간 이것이 거절인지, 승낙인지 분간도 할 수 없었다.
‘승낙하면 족인이 분명 불만을 품고 소란을 피우겠지. 하지만 거절은…….’
란옥은 근사한 허칠안의 몸을 보고 있으려니, 끝내 거절의 말은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허칠안은 계속해서 순언과 영자를 보면서 말했다.
“내가 최대한 빨리 대봉에서 사신을 파견하게 하여 고족과 동맹에 관한 일을 상의하도록 할 것이다. 원하는 게 있다면 제시해도 된다.”
그가 앞서 언급한 약조는 그저 기본 반찬 하나 차려준 것에 불과했다. 고족이 출병하여 대봉을 지원하게 하는 건 당연히 이런 애들 장난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당시 요족과 오랑캐가 경성에 사절단을 파견해 도움을 청하며 체결한 동맹 조약엔, 상당한 양의 가축과 양털 등의 물자를 지급하겠다는 제시가 있었다.
대봉도 이 득의양양한 고족의 도움을 받으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해야 했다.
영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시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대봉에 대한 원한이 매우 깊거든.”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모두 응한다면 시고부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또 어찌할 수 있겠는가? 나 역시 그가 출병할 필요는 없다. 당연히 그가 중립을 선택하도록 할 방법이 있다.”
허칠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늘가에서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새는 한창 산간 평지 위를 선회했다.
조시(鳥尸)의 꼭두각시였다.
우시가 온 것이었다.
‘이렇게 빨리 오다니…….’
허칠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란옥과 발유 두 족장을 아직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 본래는 우선 이 몇몇을 설득한 다음, 자신과 함께 시고부를 설득해 고족의 대세를 제압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우시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우시는 직접 조시를 조종하여 달려왔다.
조시는 잠시 하늘에서 선회하다가 아래쪽 상황이 안정되고 동족 족장들이 무탈한 걸 본 후에야 활공하여 내려왔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오진 않고 그저 멀리서 천고 할머니 등을 바라보았다.
“자네들 포로로 잡혔군.”
조시가 공기를 뒤흔들며 입에서 사람의 언어를 내뱉었다.
쉬고 나지막한 목소리, 우시였다.
행시 몸에 기숙하던 자고가 죽고, 우시는 즉각 조시를 조종해 상황을 살피러 왔다. 그리고 눈앞의 상황을 보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고사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영원한 안전이었다. 몸을 숨긴 곳이 발각되지 않는 이상, 꼭두각시가 아무리 많이 죽어도 본체는 무탈할 수 있었다.
허칠안은 그를 자세히 살폈다. 우시가 조종하는 거대한 새 역시도 차분하게 허칠안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그저 화해했을 뿐이다.”
허칠안이 말했다.
우시는 허칠안을 상대하지 않고 공허한 눈으로 천고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족장 몇몇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한번 우시에게 알렸다.
거대한 새는 재차 머리를 돌려 란옥 등을 쳐다보았다. 그들에게 긍정적인 답을 얻은 우시는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내가 반대할 이유는 없네. 자네들이 대봉과 동맹을 맺으려거든 그건 자네들 일이지. 하지만 시고부가 운주와 동맹을 맺는 건 시고부 일이니 우리 서로 간섭하지 말자고.”
란옥 등은 눈살을 찌푸렸다. 고족은 줄곧 함께 공격했건만, 어찌 전장에서 무장 충돌이 일어날 경우가 생긴 것인가.
그때, 허칠안이 곁의 행시 꼭두각시를 가리키며 담담히 말했다.
“나는 네 출병은 필요 없다. 네가 운주와 동맹만 맺지 않아도 이 꼭두각시는 네게 돌려주지. 3품 신체와 정신을 지닌 꼭두각시면 충분한 조건이겠지.”
우시는 꼭두각시를 쳐다도 보지 않고 냉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우리 시고부를 너무 얕잡아보는군. 같은 수준의 꼭두각시는 우리 부족에 하나 더 있거든.”
우시는 3품 독고사로 경계에 제한을 받아 한 번에 같은 경지의 행시 한 구, 그 외에 4품 몇 구만 조종할 수 있었다.
이것이 아니라면 방금 온 건 ‘육성신’이거나 다른 3품일 터였다.
시체를 키우고 시체를 제련하기로 유명한 시고부는 1천 년의 온축이 있는데 어찌 초범경 행시가 단 한 구만 있을 수 있겠는가.
부족에 남은 3품 행시는 무사가 아닌 요족의 강자가 남긴 시체였다.
‘역시 대봉에 대한 시고부의 원한만으론 앙금을 풀긴 어렵겠어…….’
허칠안도 이에 대해 일찌감치 마음의 준비를 한 바였다.
뒤이어 용도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위연은 이미 죽었네. 자네 부친을 죽인 원한은 진작에 끝이 났어. 우시, 자네 한 사람 집념 때문에 시고부와 고족이 분열되게 하지 말게.”
우시는 콧방귀를 뀌며 공허하고 고요한 눈빛으로 모두를 훑었다.
“부친을 죽인 원수를 어찌 잊는다고 잊고, 끝낸다고 끝내겠는가. 말은 바로 하게. 고족과 분열을 일으키는 건 자네들이네. 란옥, 자네 대봉 군대에 포로로 잡혀 교방사에 들어간 족인들을 잊은 건가? 발유, 족인 5천이 전부 생매장당해 자네 독고부는 지금까지도 사람 수가 가장 적은 부족이잖나.
자네가 대봉과 동맹을 맺는 데 족인이 동의할 거라고 생각했는가? 그리고 역고, 암고, 심고, 천고, 그해 자네 족인도 산해관전역에서 적잖이 죽었네. 도대체 누가 고족의 의지와 맞서고 있단 말인가?”
란옥과 발유는 순간 부끄러운 얼굴이 됐다. 둘 중 하나는 허칠안의 몸을 탐했고, 한 명은 최상품 독초와 독과일을 탐냈으니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은 맘속에선 거의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우시의 말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두 사람의 마음을 찔렀다. 자꾸만 주저하게 되고, 계속된 거부감이 일어났다.
틀린 말이 없었다. 각 세력과 비교했을 때, 고족 인구는 정말 불쌍할 정도로 적었다. 하지만 고족은 모든 백성이 전사고, 모든 족인이 고술을 수행하여 종족의 전투력은 머리털이 치솟을 정도로 강했다.
이는 족장들이 중원의 황제처럼 평범한 족인을 마음대로 살리고 죽이고 빼앗을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족인은 어린 양이 아니었다. 만약 족장이 등을 돌린다면 족인은 다른 여러 부족에게 도움을 구해 족장을 처리할 것이었다.
아니면 아예 남강에서 도망쳐 다른 곳에서 생활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