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67
964화. 협상의 기술
“고신 봉인 역시 고족의 최우선 과제이니 개인의 원한보다 중요하네.”
심고사 순언이 담담하게 말했다.
한 마디로 살기등등한 우시의 기세가 꺾였다. 그는 한동안 침묵에 빠졌다.
‘이 사람 참 예지롭고 총명한데? 역시 심고사다워…….’
허칠안은 순언을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멈칫하던 우시가 입을 열었다.
“좋네. 개인 원한은 제쳐두고 고신을 봉인하는 일만 얘기하자고. 운주와 동맹을 맺어도 고신을 봉인할 수 있네. 게다가 대봉 상황은 여러분도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 그럼 왜 명백히 약해 보이는 쪽에 도박을 걸려고 하는가?
게다가 운주와의 동맹을 택하면 족인은 환호하고, 열정으로 끓어오르고, 칼을 갈겠지. 하지만 대봉과 동맹을 맺으면 바로 족인이 분열을 일으킬 처지를 직면하게 될 걸세.”
역고부의 용도 외에 다른 족장들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침묵했다.
모두의 얼굴에 동요와 머뭇거림이 그대로 드러났다.
우시의 말은 대봉을 적대시하는 고족의 입장을 대변했고, 대봉을 도우면 불리한 형세를 맞닥뜨릴지도 모른다는 분명한 현실을 얘기했다.
솔직히 원한은 둘째치고 단순히 이해득실만 따져도 계산은 섰다. 만약 갈문선이 말한 대로 정말 대봉 상황이 엉망이라면, 불문의 도움을 받는 운주군이 대봉 조정을 전복시킬 가능성이 더 컸다.
게다가 자신들 쪽에서 온 힘을 쏟아 협조한다면 거의 확실한 일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용도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상기시켰다.
“자네들, 본인 처지를 잊지 말게. 만약 허칠안이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면 자네들은 진작에 죽었어.”
우시는 허칠안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
“아, 내가 잊었군. 자네들은 지금 그의 포로니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여러 족장은 허칠안을 돌아보며 잇따라 눈살을 찌푸렸다.
‘진짜 역고부는 다들 모자란 사람들인가…….’
허칠안은 속으로 개탄했다.
그는 사정을 봐주고, 앉아서 족장들과 대화하고 싶었다. 정말 원수에게 은혜를 베풀려는 게 아니라 그들이 운주 반란군과의 동맹 의지를 꺾길 바랐다. 말하자면 이 ‘은혜’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었다.
고족 족장들이 앉아서 담판하게 만드는 패일 뿐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허칠안이 상응하는 이익을 내놓아야 고족이 운주와 동맹을 맺지 않거나 군대를 출동시켜 대봉을 돕는다고 승낙할 것이 틀림없었다. 허칠안이 그들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만약 사기를 칠 거라면 ‘너희의 보잘것없는 목숨은 내 손에 쥐고 있다’라는 이유를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족이 진심으로 대봉과 동맹을 맺게 하려면 그 이유를 꺼내선 안 됐다. 그런 협박은 한번 나쁜 짓 하고 가버릴 때나 알맞았다.
맹우한테 사용했다간 돌아서자마자 암암리에 운주와 동맹을 맺어 뒤에서 칼을 찌를지도 몰랐다.
우시는 용도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 공허한 눈에는 아무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그 본인은 하찮은 듯 조롱하는 얼굴을 하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간단한 계책으로 어리석은 역고부를 낚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허칠안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그는 한순간 싹을 틔우지 못하게끔 골칫거리를 제거하는 방법까지 포함해 아주 많은 가능성을 생각했다.
‘지금 저들 상태면 난 암고를 죽일 수 없어. 너무 잘 도망치거든. 심고, 독고, 정고 세 족장은 죽일 수 있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역고부가 나를 죽을 때까지 놓아주지 않겠지……. 그러면 난 부득이하게 마구 죽일 수밖에 없고, 그럼 고족과 철저한 대립각을 세우게 되겠지.
또한 천고 할머니가 시종일관 참견하질 않아. 너무 침착해. 할머니가 내 인품을 그렇게까지 믿는다고? 할머니는 내가 궁지에 몰려서 정말 마구잡이로 죽일까 봐 두렵지도 않은 건가? 우린 이제 막 봤어. 할머니는 나를 잘 모르지. 근데 너무 침착해. 할머니한테 비장의 패가 있어 행여 내가 뒤엎을 걱정도 안 하는 게 아닌 이상.’
생각 끝에 눈을 가늘게 뜨던 허칠안이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은 아마 모를 것이다. 불문에는 가나수 보살과 소수의 승병 외에 중원의 전쟁에 개입할 힘이 없다. 왜냐하면 남요가 곧 거사를 일으킬 거거든. 만약 믿지 않는다면 십만대산도 남강에 있고 고족 근거지와 멀지 않은 편이니 너희가 사람을 보내 알아봐도 된다.”
족장들은 약간 경악했다. 우시도 새의 머리를 돌린 후, 공허하고 고요한 그 눈으로 허칠안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곧 순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은 우리가 사람을 보내 낱낱이 알아보겠다.”
만약 이것이 진짜라면 중원의 형세는 확실히 갈문선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쐐기 박히지는 않은 것이었다. 대봉과의 동맹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들이 대봉을 공격하는 데 따르는 위험은 다시 평가해봐야 했다.
계속해서 허칠안이 말을 이어갔다.
“썩어도 준치라고 운주 군이 강하고 대봉은 확실히 내우외환이긴 하다. 하지만 그게 대봉이 반드시 패한다는 걸 의미하진 않지. 그렇지 않으면 굳이 운주가 왜 사람을 보내 고족에게 유세했겠는가.”
족장들이 생각에 잠긴 걸 보고, 허칠안은 틈을 놓지 않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 고족 입장은 전세(戰勢)를 돌리는 것이 관건이지. 고족이 대봉과 동맹을 맺으면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시 족장이 말하는 열세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운주가 줄 수 있는 건 우리 대봉도 줄 수 있다. 고족의 민심이라면 나의 방금 약조는 여전히 유효하다. 일정량의 최상품 독초를 독고부에 제공할 것이다. 란옥 족장의 요구 역시 최대한 만족시킬 것이다.”
우시가 냉소를 지었다.
“고작? 그것들로 고족의 원한을 잠재우려고 한다니. 황당무계하구나.”
발유와 란옥은 마음이 동했지만 침묵을 택했다. 우시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최상품 독초와 독과일이 필수품은 아니었다.
발유처럼 대봉에 원한이 깊지 않은 자들은 달갑게 동의할 일이나, 족인 절반이 생매장당한 독고부의 원한을 잠재우긴 부족했다.
란옥의 경우, 더욱이 사욕일 뿐이었다.
잠자리를 같이하며 정고를 수행하는 최고의 사내 앞에, 부족 자매들이 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만약 허칠안이 매일 바쁘게 자매들을 따뜻하고 배부르게 해준다고 한들, 그것이 또 부족 사내들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결국 허칠안은 이쯤에서 속셈을 드러내기로 했다.
그는 탄식과 함께 입을 열었다.
“하긴, 여러분의 고충을 이해한다. 출병은 고집하지 않겠다. 그저 족장들께서 운주와의 동맹을 포기하고 중립을 택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방금 내가 주겠다고 약속한 건 변치 않는다.”
란옥과 발유는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거의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좋다!”
그저 중립을 택해 대봉에 군대를 보내지 않는 거라면, 처리는 쉬웠다. 그들은 정세가 불투명하여 족인이 사지로 향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부족을 위로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대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족인에게 풍부한 보고, 즉 독고를 가져다줄 수도 있었다.
허칠안은 웃었다. 처음부터 그는 고족이 출병하여 대봉을 도울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양측의 갈등이 너무 깊었다. 그것도 천고 할머니가 직접 와서 그를 일깨워줄 정도로 깊었다.
또한 운주와 대봉 모두 고족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상황에, 고족이 과거 앙금을 푼다는 건 가능성이 적어도 너무 적었다.
허칠안이 세운 진짜 계획은 먼저 그들과 싸워 굴복시킨 다음 고족이 운주와의 동맹을 포기할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소위 출병하여 돕는다는 건, 협상의 기술이었다.
먼저 가격을 필사적으로 높인 뒤에 폭락시켜, 대봉의 두 번째 제안을 이득으로 여기게끔 하는 심리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고족이 동맹을 취소하는 건 고작 첫발만 뗀 것이었다. 다음으로 허칠안은 여전히 그들이 출병하길 원했다.
하지만 고족 일곱 부족이 총출동하게 두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는 식량을 패로 삼아 역고부 고수가 참전하도록 요청할 계획이었다.
우선 허칠안은 각종 물자와 상품을 조건으로 내걸고, 암고와 심고 두 부족의 출전을 요청할 작정이었다. 두 부족은 대봉에 대한 원한이 비교적 가볍고, 약속도 지키겠다고 했으니 그들을 고용해 출전시키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남강은 음식이 부족하진 않지만, 찻잎, 서적 등 물자와 용품은 부족했다. 그 양을 충분하게 채워주면 그들도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허칠안은 우시를 너무 과소평가했다. 무려 부모를 죽인 원수인데, 우시의 집념이 그렇게 사소할 리는 없었다.
결국 순조로운 계획에 우시가 넘기 어려운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만약 그를 위로하지 못한다면, 형제자매처럼 지내는 고족 풍습 때문에 다른 여섯 부족이 수수방관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이내 우시가 비웃으며 말했다.
“자네들이 어떻게 결정할지는 자네들 일이네. 우리 시고부는 운주와 동맹을 맺기로 했으니 누구도 저지할 수 없네. 그때 가면 얼마나 많은 정고부와 독고부 족인이 나를 따르길 원하는지 봐야겠구먼.”
발유와 란옥의 안색이 변했다.
곧이어 새의 머리가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나를 죽이러 와도 무방하네. 나를 죽이면 문제가 해결되니까.”
허칠안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우시 족장이 어떻게 결정하든 그건 네 일이다. 하지만 나 역시 시고부에게 줄 선물이 있는데 왜 내 패를 우선 보려고 하지 않는가?”
만약 심고와 암고라면 허칠안도 정말 상대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전혀 생각해내지 못했을 터였다. 암말은 귀엽고 매력적이지만 그건 암말이고, 순언 역시 여인이었다. 기호가 맞지 않았다.
암고의 요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었다. 구태여 다른 사람이 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시고는 칠절고의 숙주였다. 허칠안도 그들의 요구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우시는 엄청난 농담을 들은 듯 비아냥과 경멸이 담긴 어조로 말했다.
“네게 무슨 패가 있든 나는…….”
콰당!
허칠안은 옥석경을 꺼내 거울 면을 뒤집고서 남김없이 쏟아냈다.
안에선 관이 떨어져 나왔고, 흔들리는 사이에 관의 판자가 미끄러졌다.
리나는 코를 막고 연신 뒤로 물러났다. 관에서 풍기는 냄새만 맡았을 뿐인데도 약간 현기증이 나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용도는 부들부채 같은 큰 손으로 황급히 허영음의 얼굴을 가리고, 아이를 아주 먼 곳으로 내던졌다.
관 안에 심하게 파손된 오래된 시체 한 구가 사람들 눈앞에 드러났다.
끝없는 세월 동안 깊이 잠든 미라처럼 보였다. 시체는 아주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가슴뼈, 갈비뼈가 많이 부러지고 머리도 불완전했다.
하지만 우시는 그 오래된 시체에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건…….”
우시는 저도 모르게 한 마디 내뱉었다. 저항하고 싶었다. 정말로 허칠안의 계략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오래된 시체를 보니 좀처럼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엄청난 갈망이 이성을 급격히 무너뜨렸다. 너무 완벽했다. 지금껏 우시가 본 그 어떤 시체보다 완벽했고, 시고부의 어떠한 꼭두각시보다 매혹적이었다. 아주 많이 파손돼 보인다고 해도 이 시체는 정말로 완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