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68
965화. 교태를 부리는 여인
허칠안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시 족장, 관심 있다면 근거리에서 감상해도 무방하다.”
“흥! 나는 전혀 관심 없다.”
우시는 한번 고집부린 후에 날개를 퍼덕여 관 옆에 착지했다.
한마디도 없이 오래된 시체를 한참 응시하던 우시는 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는 가치가 매우 높은 고물을 감상하는 골동품 수집가처럼 아주 느릿한 속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시체를 관찰했다.
“엇!”
우시가 갑자기 오래된 시체의 얼굴을 힘껏 쪼았다. 날카로운 부리는 번개처럼 빨랐다. 전력을 다했다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오래된 시체를 파손할 순 없었고, 금속이 부딪쳐 나는 날카로운 울림도 전해지지 않았다.
우시는 문득 고개를 들어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말을 하려다 다시 멈추길 반복하던 그는 결국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건 무사의 시신 같지는 않군. 하지만 육신의 근성과 강도는 내 3품 행시를 초월하는 것 같은데.”
허칠안이 웃었다.
“전문가군. 맞다, 이건 무사의 시신이 아니다. 이 시신은 수천 년 전, 한 도문 강자의 시체지. 그는 2품 전봉으로 도겁에 실패한 뒤 옛 몸뚱이를 벗어버렸다. 그것이 바로 이 시체다.”
사실 2품 전봉도 아주 보수적인 계산이었다.
우시가 다소 굵직한 어조로 말했다.
“2품 전봉, 너는 2품 전봉이라고 확신하는가?”
질문할 때, 새 날개가 몇 번 펄럭였다. 어조에 힘을 싣는 듯했다.
허칠안이 빙그레 웃었다.
“3품 양신에게는 이렇게 견고하고 영구적인 육신이 없다.”
우시는 반박할 수 없었다. 도문 양신은 확실히 이런 육신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직접 측정해봤을 때도 이는 결코 무사의 육신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 망가진 거지?”
우시는 애써 담담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원망도, 이 시신에 대한 갈망도 감추려는 노력이었다.
‘그게 영지를 탄생한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더 매혹되겠지…….’
허칠안은 잠시 생각하다가 우시에게 그 일을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이러면 패가 더해지니 상대는 더더욱 거절하기 힘들어질 것이었다.
“이 일은 말하자면 길다. 이 시체는 영지를 탄생시킨 적이 있어 자아의식이 있다. 정상적인 생명과 다름없지. 내가 그걸 발견한 무덤에 봉인했다. 영지는 한참 후에야 우연히 무덤으로 돌아왔는데 그제야 그의 몸이 이미 파괴되고 혼비백산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지금 모든 이가 똑똑히 보았다. 거대한 새는 완전히 몸이 경직된 채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우시는 전에 없이 격앙된 감정으로 크게 호통을 쳤다.
전문적으로 시체를 다루는 집단으로서 시고부의 가장 높은 학술 목표는 시체가 어떻게 하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지였다. 이는 강자 원신이 시체를 점유하는 것과는 달랐다.
이 행위는 남의 몸을 빼앗고 들러붙는 것이라 부르지만 시고사가 원하는 건 시체를 살리는 것이었다.
당연히 진짜 죽은 사람은 다시 살릴 수 없지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일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시체가 영지를 탄생시키는 것이었다.
시고부에선 몇천 년이 지나도 이 위대한 목표를 실현한 사람이 없었다.
용도 등은 괴이한 표정으로 서로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란옥과 순언에겐 혐오의 빛이 스쳤다. 한 가지 일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일찍이 시고부 선배들이 추측한 적이 있었다. 행시가 몸속에 남긴 잔혼이 알맞게 육성되면 진정한 원신으로 탈바꿈할 수 있고, 영지가 탄생할 것이라고 했었다. 그러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었다.
자아 의지가 없는 잔혼이 어떻게 진정한 원신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그건 인족이 임신 없이 신체를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황당무계한 일이었다.
여섯 부족 족인이 보기에 그건 시고부 사람이 자신과 시체의 기형적인 관계를 위해 대는 핑계에 불과했다. 억지로 행시를 의인화하는 것이었다.
우시의 의문을 읽은 허칠안은 조금씩 기억을 더듬었다.
“그 도인이 옛 몸뚱이를 벗어버릴 때 일부 잔혼이 그 속에 남았다고 내게 알려준 적이 있었다. 이 일부 잔혼은 도인의 특수한 수법을 거쳐 손질되어 완전한 원신이 되었지.”
족장들은 순간 멍해져 경악한 눈빛으로 우시를 쳐다보았다.
우시도 이미 넋을 잃은 모습이었다.
“역시 그렇군, 역시 그랬어. 선조들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 정말 시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게 하는 방법이 있었어. 정말 선례가 있었다. 이건 허무맹랑한 환상이 아니야…….”
우시는 말할수록 흥분했고, 마지막에는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사람처럼 두 날개를 덩실덩실 푸드덕댔다.
허칠안은 잠시 기다렸다가, 시고부 족장이 잠잠해진 후에야 말했다.
“그럼 이 오래된 시체로 운주와 동맹을 맺지 않겠다고 약조할 수 있나?”
용도 등이 일제히 거대한 새를 주시했다.
“…….”
우시는 지금까지 성실하게 했던 맹세가 떠올라 순간 좀 굳어버렸다. 하지만 갈망이 수치를 뛰어넘는 건 너무도 흔한 세상사가 아니던가.
조금 헛기침 소리를 내던 우시가 쉰 목소리로 운을 뗐다.
“용도의 말이 맞다. 위연은 이미 죽었으니 이 원한도 끝난 것이다. 개인의 집념으로 족인을 헛되이 희생시키면 안 된다. 이 오래된 시체의 경우, 네가 한 말은 전부 어느 한쪽의 말이니 쉽게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이미 다른 여섯 부족을 설득시켰으니, 음, 나도 마지못해 승낙하지…….”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됐군.”
말하는 동시에 그는 관 뚜껑을 덮어 지서 파편에 도로 거뒀다.
“엇, 너……! 내가 운주와 동맹을 맺지 않겠다고 했잖은가! 못 들었나?”
우시는 목소리를 높이려다 간신히 분노를 참으며 이야기했다.
허칠안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했다.
“들었다. 이 시체는 네게 선물할 것이라 말했으니 반드시 네게 선물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중원 전쟁이 끝난 뒤에 약속을 이행하겠다.”
우시가 어떻게 이에 응할까. 시체를 보지 않았으면 모르겠다만, 이미 똑똑히 보고야 말았다. 어떻게 눈앞에서 시체를 잃겠는가. 천하의 어느 누가 평생의 사랑을 잃고 싶어 하겠는가!
우시는 차갑게 웃으며 쉰 목소리를 냈다.
“내가 무슨 근거로 네가 약속을 이행할 거라 믿지?”
허칠안 역시 냉소로 응답했다.
“그럼 나는 또 너를 무슨 근거로 믿지? 나중에 잡아떼면서 암암리에 운주와 동맹을 맺으면 나는 어떡하는가?”
“오래된 시체를 남기든가, 끝내든가.”
성격이 강한 우시는 타협 같은 건 전혀 몰랐다.
“작별 인사하지!”
허칠안은 바로 뒤돌아서며 속으로 묵묵히 숫자를 셌다.
‘3, 2, 1…….’
허칠안 역시 시고사였다. 그는 우시가 결코 자신을 거절할 수 없음을 확신했다. 그가 절대로 이모를 거절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잠깐!”
우시는 황급히 양 날개를 펼친 채, 허칠안이 뒤돌아보기만 기다렸다.
그리고 우시는 즉시 날개를 접고 새 머리를 한쪽으로 힐끗 돌렸다.
“이 행시를 내게 줘. 그리고 모든 동족이 증인으로 있는 가운데……. 증서를 쓰게.”
허칠안은 즉시 붓, 먹, 종이, 벼루를 꺼냈다. 그는 천고 할머니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증서를 쓰고 지장을 찍었다.
“받지. 중원 사람은 모두 본 은라가 약속을 잘 지킨다는 걸 알고 있어.”
허칠안은 묵적을 불어 말린 뒤, 종이를 접어 손끝에 끼워 건넸다.
거대한 새는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이따가 역고부에 와서 행시를 가져갈 것이다.”
조심스럽게 종이를 문 새는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거대한 새는 천천히 느리게 안정적으로 날았다. 너무 빨리 날았다간 행여 증서가 바람에 날아갈까 노심초사하는 사람처럼.
허칠안은 그 떠나가는 새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기, 아버지를 죽인 원수는 안 갚는 거야? 하, 드디어 협상이 끝났으니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네…….’
시선을 거둔 그가 란옥과 순언을 한번 훑고선 빙그레 웃었다.
“바로 두 누이의 상처를 치료해드리지.”
허칠안은 부도보탑을 꺼내 약사 법상의 허영을 탑 꼭대기에 띄웠다.
순언과 란옥은 부도보탑이 방금 행시의 불완전한 신체를 보수하는 걸 보았다. 그때도 전설 속의 보살 법보가 참 놀랍고 이상하다는 마음을 가졌었다.
곧이어 옥병이 금 부스러기 같은 빛을 쏟아냈다. 빛 가루는 봄날에 흩날리는 비처럼 그녀들을 뒤덮었다.
그 순간, 순언과 란옥의 골절 통증이 서서히 사라지고 심장과 폐가 뻥 뚫리는 듯한 청량감이 찾아왔다.
란옥은 팔을 벌린 채 핑그르르 돌았다. 얇은 치마는 그녀를 따라 꽃처럼 만개했다. 그녀는 다시 그 요염한 미인이 되어 매혹적인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뒷받침해주니 침상에서 허 은라가 사납게 굴어도 무섭지 않겠어.”
그녀는 이미 쌍방의 실력 차이를 확실히 인정했다. 이렇게 신기한 법보가 있으니 자신들 쪽에선 절대로 허칠안을 이길 수 없었다. 무엇보다 허칠안은 방금도 확실히 사정을 봐주었다.
끝으로 순언도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뭐, 어떡하라고. 나랑 진탕 놀 각오 됐다고? 감당할 수 있겠어?’
허칠안은 별다른 표정 없이 마음껏 교태를 부리는 여인을 한번 쳐다본 뒤, 순언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화답했다.
그리고 비로소 허칠안은 마침내 다른 일을 처리할 짬이 났다.
“할머님, 운주에서 온 그 갈문선은 어디 있습니까?”
영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싸움을 구경 안 했을 리 없지, 지금은 일찍이 도망쳤겠고.”
잠자코 있던 허칠안은 지서 파편에서 불완전한 구리거울을 쏟아냈다.
“본 나리에게 또 무슨 일을 부탁하려고.”
언제나 그랬듯 허칠안은 이 혼천신경의 어조를 약간 참을 수 없었지만, 태도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조금 전 역시 태평도가 소환되어 일하니 마음이 훨씬 편안했다.
“저를 중심으로 주변 1백 리를 비춰주시지요.”
허칠안의 분부에 혼천신경은 군말 없이 구리거울을 투명한 유리 거울처럼 흐릿하게 만들었다. 뒤이어 화면이 주마등처럼 빠른 속도로 스쳤다.
허칠안은 뛰어난 시력으로 이 화면들을 차례대로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거울은 갈문선 몸에 낙인을 심지 않아 바로 위치를 특정할 순 없었다. 때문에 지금은 이처럼 소박한 방식으로 추적할 수밖에 없었다.
‘말할 줄 아는 법보라니…….’
고족 족장들은 깜짝 놀랐다. 대체 허칠안의 몸엔 좋은 물건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때, 허칠안을 지켜보던 순언이 옆으로 가서 청량한 휘파람을 불었다.
십여 초쯤 지나자 빽빽한 날짐승이 사방팔방에서 날아왔다. 새까만 새 떼들은 사람들 머리 위를 빙빙 돌며 소란스럽게 울었다.
그 시끄러운 울음소리 대부분은 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못 봤어, 못 봤어.’
또 일부는 이미 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귀 기울여 경청하던 순언은 이내 허칠안을 돌아보았다.
“얼마 전까지는 남쪽 밀림에 있다가 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데. 서남쪽으로 갔다는군.”
허칠안 역시 새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기에 바로 분부를 내렸다.
“서남 방향을 비춰주시지요. 범위는 제한 없습니다.”
혼천신경의 화면이 계속해서 번쩍였다. 화면은 하나하나 빠른 속도로 스치며, 한계에 도달했다.
“찾지 못했다.”
허칠안은 결국 혼천신경을 거두고 실망스럽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곧이어 란옥이 이리저리 허리를 비틀며 다가와 느끼하게 말했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역할이니 굳이 신경 쓸 필요 있겠어? 그런데, 너희 중원 여인은 사랑하는 사내를 어떻게 부르지? 음, 허랑? 맞지!”
허칠안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날카로워진 모남치의 눈빛을 느꼈다.
이에 그는 진지하게 란옥을 무시하고 모남치가 주시하는 가운데 일부러 분노의 표정을 지었다.
란옥은 금세 억울한 얼굴이 됐다.
“어머나, 약속을 어기려고?”
“아니,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중원에서는 밤에 불을 끈 뒤에야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거요. 란옥 낭자, 낮에는 부디 예를 지켜주시길!”
허칠안은 잔뜩 분노한 표정으로 이 말을 내뱉었다.
이렇게 하면 거리가 멀어 대화가 들리질 않으니, 모남치는 분명 허칠안이 란옥에게 화를 낸다고 여길 것이었다.
실제로 먼 곳의 모남치는 정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