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69
966화. 사람 구실 못하는 자의 풍격
“알겠어. 아주 재미있네!”
란옥은 해죽이 웃으며 허칠안에게 또 추파를 던졌다.
‘허칠안, 또 여인과 애매하게 엮였군…….’
리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모두를 등진 채 품에서 지서 파편을 꺼냈다.
방금 초원진이 말을 마친 뒤, 지서 파편에서 간헐적으로 누군가 전서를 했었다. 지금껏 리나는 전투에 정신이 팔려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었지만, 이제는 천지회 구성원에게 소식을 전할 여유가 생겼다.
[오: 끝났다!]리나가 세 글자를 보낸 후, 계속 글을 쓰려는데 갑자기 지서 파편의 전서가 들끓기 시작했다.
[이: 어째서 지금에야 회신하나? 이 몸이 그리 여러 번 전서했는데 볼 수 없었던 건가? 허칠안이 뜻밖의 사고가 나서 회신할 엄두가 나지 않았나?] [일: 허칠안은 어떤가? 결과는 어떻고?] [칠: 허칠안은 나쁜 놈이라 분명 수명이 엄청나게 길 것이야. 아마, 음, 아마 별일 없겠지. 도망쳤겠지?] [육: 리나 시주님, 허 대인 상황이 어떠합니까? 심하게 다쳤나요?] [사: 얼른 말하시오, 어떠하오?]정말 이 전서가 전송된 시간은 길어봤자 5초도 채 되지 않았다.
자수의 길이로 보면 이들 모두가 동시에 쓴 것이었다.
리나도 마침 두 번째 마디를 다 적었다.
[오: 허칠안이 이겼어요.]순간 지서 단체 채팅방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리나는 금련 도사가 갑자기 자신을 차단한 것인지 조용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장 급한 성격의 이묘진조차 답이 없었으니,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꼬박 이십여 초 후, 이영소의 전서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칠: 망했군. 허칠안이 죽었네. 오호가 우리에게 진상을 알릴 엄두가 나지 않아 거짓말을 한 거야.]하지만 리나의 성격을 아는 사람들은 그것이 순수한 진실임을 알았다.
허칠안은 분명 이긴 것이었다.
[이: 어떻게? 허칠안이 그렇게 빨리 2품으로 승직하기란 불가능한데.]이묘진은 거의 손을 덜덜 떨면서 이 말을 적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이 흥분과 감동인지, 충격과 놀라움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이번은 검주에 있을 때와 달랐다. 견융산 전투에서 허칠안은 고조 황제의 영혼을 소환하여 비로소 국면을 만회했다.
하지만 이후에 허칠안이 여러 차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이 동료들에게 직접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수는 절대 2번은 쓸 수 없다고. 게다가 진국검도 이미 경성으로 돌아간 손현기에게 건네줬다고 했다.
[사: 십만대산에서 아소라와 싸울 때 이미 2품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을지도?]초원진은 가까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설을 제시했으나, 이영소가 과감하게 그 추론을 뒤집었다.
[칠: 아니에요. 그의 몸속에 제거하지 않은 봉마정이 더 있습니다.]짧은 침묵 후에, 초원진의 전서가 도착했다.
[사: 우리에게 경과를 좀 상세하게 말해줄 수 있소?] [오: 네.]리나는 글을 빠르게 쓰지 못했다. 쓸 줄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오랫동안 생각했고, 오탈자는 한 무더기였다.
하지만 천지회 사람들은 아주 진지하게 리나의 전서를 읽어내려갔다.
[오: 다 말했어요.]초원진의 전서가 이어졌다.
[사: 그가 봉마정에 의해 수련 경지가 봉해진 것이 마치 어제 같은데 불과 2달 만에 칠절고를 이런 경지까지 수행해내다니. 그는 본래가 3품 무사인 데다 칠절고를 사용하면 고족 족장 몇 명을 이기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지.]천지회 구성원은 개탄하는 것 말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심지어 의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감개무량한 흥취조차 사라지고 무감각한 기분만 남았다.
잠시간 경악과 개탄이 이어지다가, 회경이 먼저 본론을 떠올렸다.
[일: 고족은 운주와 맺기로 한 동맹을 취소하는 데 동의했는가?]천지회 구성원도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야 허칠안이 이 싸움을 한 목적을 기억해낸 것이다.
리나는 간단명료하게 전서로 대답했다.
[오: 그렇습니다.] [이: 아주 훌륭하군. 고족이 참전하지 않는다면 대봉과 운주 역당은 얼마든 싸울 수 있지. 대봉의 장병들 모두 허칠안에게 감사해야겠어. 또 한 번 대봉의 조정을 구했으니 말이야.]허칠안은 전쟁터에 있진 않았지만, 조만간 중원을 휩쓸 이 전쟁에 중요한 일을 아주 많이 해왔다.
회경이 그 말에 응했다.
[일: 그의 공적은 묻히지 않을 것이네. 대봉의 장병과 백성이 그가 한 모든 일을 알게 될 걸세.] [육: 허 대인께서는 언제나 빈승을 실망시키지 않는군요. 빈승 역시 열심히 수행해서 과거에 허 대인께서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여 그를 실망시키지 않아야겠습니다.]‘항원 대사, 그 말 좀 이상하게 들리는데. 마치 출정 전에 온갖 다짐을 하는 병사 같아요…….’
이묘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항원 대머리 말이 아주 이상하게 들리는데…….’
리나가 막 전서하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나, 돌아가자꾸나.”
리나는 깜짝 놀라 즉시 지서 파편을 거두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용도를 돌아보았다.
“아, 알겠어요.”
“너 방금 뭐 하고 있었니?”
용도가 물었다.
“저, 저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용도는 딸을 보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나는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기지가 있었다. 멍청한 오라버니와는 달리, 일을 숨길 줄 알았다.
다른 한편, 모남치를 향해 걸어가던 허칠안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는 천고 할머니 등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잠깐만.”
“왜?”
허칠안 뒤를 바짝 따르던 란옥이 가장 먼저 되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두 사람보다 살짝 뒤처진 영자, 발유, 순언 역시 허칠안을 향해 의문의 시선을 던졌다.
허칠안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상황이 너무 간단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허평봉은 누구보다 고족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고족의 선택은 중원 전쟁 결과를 결정지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중요한 세력을, 고작 제자 한 사람 보내 구두로 약조를 받고 고족이 거절할 수 없는 조건 몇 가지만 내던졌다.
물론 그 조건들은 고족이 동맹을 승낙하기 충분했다. 만약 허칠안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고족은 벌써 운주와 순조롭게 동맹을 맺었을 터였다.
하지만 허평봉은 허칠안이 남강에 있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허칠안이 강호를 거니는 내내 용기를 수집할 때 의지한 것이 바로 기이하고 강한 고술이었다. 허평봉은 틀림없이 이 정보를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온갖 궁리를 짜내 중원을 탐하는 인물이, 이렇게 상식적이지 않은 고술을 보고도 못 본척할 리가?
‘허평봉은 아마 칠절고가 뭔지 잘 모를 거야. 하지만 분명 내 고술이 천고 노인의 후수 안배에서 비롯됐단 건 짐작할 수 있겠지. 고족과 연원이 있는 나도 남강에 있고, 고족은 또 이렇게 중요한데 달랑 제자 한 사람 보내 고족에게 유세를 펼친다는 건……. 이건 허평봉 풍격과 맞지 않아.’
허칠안은 속으로 한차례 분석한 뒤 결론을 내렸다.
허평봉에게 다른 목적이 있거나 혹은 고족을 제압하여 동맹을 실패로 만들고 고족 고수가 남강을 떠나지 못하도록 할 방법이 있거나.
그 사고대로 추리하자면 허평봉이 고족을 상대하는 수법은 추측하기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극연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허칠안은 돌아서 천고 할머니 옆으로 향했다.
“할머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천고 노인이 그해 허평봉과 손을 잡고 국운을 빼앗은 건 유가 성인의 조각상을 복원하고 고신을 봉인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지요.”
허칠안이 고신과 관련된 일을 얘기하자, 내내 뒤에서 애교를 부리던 란옥도 금세 진지한 얼굴이 됐다.
순언 등 족장 역시 엄숙한 표정으로 그와 천고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천고 할머니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고족의 모든 동력은 바로 고신을 봉인하기 위함이지.”
란옥이 허칠안의 팔짱을 끼며 물었다.
“도대체 뭘 얘기하고 싶은 거야?”
란옥의 중원어는 표준적이진 않지만, 목소리는 부드럽고 듣기 좋았다.
“극연, 감정 대제자의 목표는 극연입니다. 만약 운주와 고족이 동맹을 맺지 못하게 되면 그는 아마 유가 성인의 봉인을 뒤흔들고자 시도할 겁니다.”
허칠안은 숨기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심고사 순언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유가 성인의 봉인은 보통 사람이 흔들 수 있는 게 아니야. 할머님조차도 흔들 방법이 없지.”
족장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그가 너무 많은 걸 생각했다고 여겼다.
허칠안은 진지한 얼굴로 나지막이 말했다.
“너희는 내 말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유가 성인의 봉인은 기운과 관련 있고, 이게 바로 천고 노인이 대봉 국운을 빼앗으려던 이유니까.”
잠시 멈칫하던 그가 모든 족장을 휙 둘러보며 말했다.
“기운에 대한 술사의 장악력은 유가가 더하다.”
순간, 란옥 등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허칠안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허평봉은 봉인을 뒤흔들려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무슨 목적이 있으니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된다. 얼른 극연으로 가라.”
말을 마치자마자 족장들은 앞다투어 바람을 몰고 일어났다.
모두가 좋지 않은 얼굴로 극연 방향을 향해갔다.
* * *
“살짝 절망스러울 정도로 강대하군…….”
원시림 깊은 곳, 갈문선은 장독으로 가득 찬 밀림 사이를 도약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엔 아직도 조금 전 관측한 전투의 여운이 가득했다.
허칠안이 고족 족장 다섯을 무찌르는 걸 보았을 때, 갈문선은 엄청난 분노와 상실감에 사로잡혔다. 무려 초범 다섯이 나섰으나 허칠안 앞에 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단번에 제압당했다.
갈문선의 상실감은 끝내 공포가 됐고, 물러나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가 솟구쳤다. 그는 남강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갈문선은 아직 완수하지 않은 임무가 있었다. 동맹을 맺는 일이 수포로 돌아갔으니 이제는 다음 계획을 개시해야 했다.
머릿속엔 출발하기 전, 스승의 당부가 메아리쳤다.
‘만약 허칠안이 중간에서 방해하여 동맹이 무산되면 내가 네게 맡긴 물건을 가지고 극연에 다녀오거라.’
“스승님께서는 역시나 선견지명이 있으셔.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다른 일을 도모하여 절대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갈문선은 민첩한 몸놀림으로 밀림 속을 질주하거나 나무 끝을 밟고 움직였다.
솨솨솨솩-
길가의 독충과 독수(毒獸)는 절로 그를 두려워하며 피하기 바빴다.
갈문선은 본디 군대를 배치하고 진을 치는데 능했으나, 그 자체는 5품 화경에 6품 연금술사인지라 원시림 내부까지 깊이 들어갈 순 없었다.
하지만 술사 체계의 9품을 ‘의자’라 부르지 않던가.
애초에 치료와 독은 따로 나눌 수 없었다.
우선 갈문선은 해독하는 알약을 먹었다. 이러면 장독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그는 몸에 독충을 쫓는 약 가루를 발랐다. 그래야만 독고의 힘으로 뒤덮인 구역에서 극연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다른 구역이었다면, 그는 극연에 접근하기도 전에 이미 안에 있는 독충과 독수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었다.
점점 주변의 나무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땅에는 큼지막한 검은 흙이 군데군데 검은 반점처럼 드러났다. 그래도 갈문선은 이 밀림을 가로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