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71
968화. 또 다른 계획 (2)
해외 영수 백제는 천천히 주변을 훑더니 갈문선 뒤의 어느 곳을 잠시 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그렇게 또 아래쪽 극연을 굽어보다가 돌연 간단하면서도 이상한 음절을 내뱉었다.
갈문선이 지금껏 들어본 적도 없는 언어였다. 그건 인간의 목소리로 낼 수 없는 음절이었다.
‘누구랑 얘기하고 있는 거지…….’
갈문선의 머릿속에 무서운 추측이 스쳤다.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무의식적으로 소매 안의 전송 법기를 꽉 쥐었다.
전송 법기가 있다면 이곳에서 나갈 수 있었다. 전송은 사전에 장소를 지정하여 빠르게 탈출할 수 있었다.
전송 법기는 한 방향과 무작위로 나뉘는데, 미리 진법을 새기지 않고 전송 지점을 설정하지 않으면 무작위 전송으로 변해 일정 범위 내에서 임의의 장소로 전송되었다.
갈문선은 유성 조각상 앞에 정확히 도달하진 않았지만, 전송 지점을 정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극연 안에서 무작위 전송을 한다는 건 그냥 자신의 목숨에 대한 무책임하게 내던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때, 갈문선은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몸의 모공이 열리면서 식은땀이 폭발했다. 무사의 위기 예감이 발동한 것이다. 온 신경이 그에게 위험 신호를 전송하며 도망치라고 미친 듯 재촉했다.
하지만 그는 참았다. 고개를 숙인 채 포복하여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극연에서 무시무시한 의지가 깨어났다. 포복하고 있던 갈문선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극연 안에서 무언가 나오려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건 가슴이 내려앉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극연 안에 뭐가 있는가?
답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칠흑 같은 극연에서 검은 연기가 하늘하늘 피어올랐다.
곧이어 백제 앞에 멈춘 연기는 바깥층이 도약하는 화염처럼 흔들렸고, 내핵에는 눈이 한 쌍 보였다.
그 눈엔 어떠한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냉담함조차 없었다.
영수 백제는 검은 연기를 보며 다시 한번 괴상한 음절을 내뱉었다.
말을 마치고 몇 초간 침묵하던 백제는 경청하듯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가려진 모퉁이에 숨은 노란 털 원숭이 역시 귀를 기울였다.
백제는 잠시 또 어떤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입에서 이상한 음절을 내뱉었다. 이번에는 아주 긴 단락으로, 십여 초가 지나서야 말을 마쳤다.
노란 털 원숭이는 귀 기울여 한참을 듣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뒤이어 백제는 다시 입을 열어 세 번째 질문을 던졌다.
이상한 음절을 마친 후 백제는 검은 연기를 뚫어지게 주시했다. 사람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듯 길고 가느다란 목을 앞으로 살짝 내밀기도 했다.
그 질문이 아주 중요한 모양이었다.
노란 털 원숭이는 이제 발각될 위험도 고려하지 않고 은신처에서 걸어 나와 온 정신을 집중해 기다렸다.
철컥!
그때, 극연까지 울려 퍼진 한 소리가 있었다. 유성 조각상 꼭대기에서 빠르게 회전하던 놋쇠 쟁반이 산산이 가루가 된 것이었다.
이내 극연 깊은 곳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무형으로 사라지고, 영수 백제는 급강하하여 어느 정도 거리를 쫓아가다가 청광 장벽에 부딪혔다.
흰빛으로 응집된 신체는 하마터면 붕괴할 뻔했다.
거대한 탄식이 극연에 울려 퍼졌다.
영수 백제는 바닥에 포복한 갈문선을 쳐다보더니 우렁찬 소리로 말했다.
“내 비늘 조각을 도로 가져가라!”
백제는 그 순간 흰빛으로 변해 흩어졌다. 다시 흰 비늘 조각이 된 그것은 저절로 갈문선의 앞까지 날아갔다.
갈문선은 신중히 비늘 조각을 비단 주머니로 거두다가 갑자기 귓바퀴를 움직였다. 위쪽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매우 소란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들이 쫓아온 건가? 허칠안이 왔구나……!’
낯빛이 급변한 갈문선은 눈에 공포가 스쳤다. 그는 분명 허칠안의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똑똑히 본 사람이었다.
갈문선은 미련도 없이 전송옥부를 과감하게 부수고, 솟구친 청광 속으로 사라졌다. 떠나기 전, 그는 급강하하는 금빛을 보았다.
바로 머리 뒤에 불의 고리가 타고 있는 허칠안이었다.
* * *
포탄처럼 날아온 허칠안은 유성 조각상 앞에 근접하자, 역학 법칙에 맞지 않게 급작스레 멈추었다. 모든 관성을 무형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5품 무사를 화경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는 소리 소문 없이 두 발로 착지해 고개를 들고 유성 조각상을 자세히 살폈다. 생김새는 훌륭하고, 이목구비는 위엄이 넘치나 살기등등해 보이지는 않았다. 심지어는 창생을 사랑하는 자비로움도 배어 있었다.
조각상이 입은 긴 장포는 현재 유가 주류 장포와는 양식이 달랐다. 유관에도 역사가 서려 있는데 오늘날 유관보다 더 높고 더 무거워 보였다.
그리고 그의 미간에, 깊은 틈이 있었다.
‘이게 바로 유성 조각상이군. 고신을 봉인하는 핵심…….’
허칠안은 의관을 바로 하고, 중원 인족 역사상 최강자에게 허리를 굽혔다.
‘나도 언젠가 당신처럼 강해지고 싶지만, 그렇게 단명할 수는 없습니다.’
뒤이어, 천고 할머니 등이 잇따라 도착했다.
발유와 영자는 조각상 앞으로 성큼성큼 달려가 한참을 자세히 살피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각상은 온전합니다. 훼손되지 않았어요.”
란옥, 순언, 천고 할머니도 가까이 다가와 조각상을 자세히 관찰한 후에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란옥은 허칠안을 돌아보며 붉은 입술을 치켜올렸다.
“내가 말했잖아. 유성의 봉인이 어떻게 훼손하겠다고 훼손되겠어?”
순언은 계속해서 아무 이상도 없는 주위를 살피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허 은라의 예측이 맞았어. 갈문선은 확실히 극연에 왔어. 단순히 내려와 감상만 했을 리는 없겠지.”
갈문선이 허칠안을 쳐다보는 동시에 허칠안 일행 역시 그를 쳐다보았다.
그 길로 허칠안은 낭떠러지 옆으로 걸어가선, 칠흑같이 어두워 밑이 보이지 않는 극연을 굽어보며 상대를 떠보았다.
“봉인이 아직 있는가?”
연이어 순언은 청량한 휘파람을 불어, 머리가 두 개 달린 새를 한 마리 소환했다. 순언은 그 새를 극연으로 달려들도록 조종했다.
허칠안은 똑똑히 보았다. 새는 일정 거리를 급강하한 뒤 환한 빛에 가루가 되었다. 환한 빛은 잔물결처럼 흩어져 극연 전체를 밝혔다.
곧 순언은 몸을 굽혀 돌을 줍더니 골짜기로 내던졌다. 환한 빛은 반응이 없었고, 돌은 어둠 속에서 사라졌다.
허칠안은 한참을 귀 기울였으나 돌이 떨어지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순언이 설명했다.
“무릇 생명이 있는 건 극연에 진입할 수 없다. 하지만 의식이 없는 사물은 유성의 봉인을 꿰뚫을 수 있지.”
허칠안은 잠시 생각한 후에 답했다.
“아마 의식이 있는 물건이겠지. 안 그럼 기령도 들어갈 수 있을 테니.”
순언이 쓴웃음을 지었다.
“고족에는 법보가 없어 시도해본 적이 없다.”
순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가 서 있는 발밑의 지면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하면서 자갈과 모래가 완만한 비탈을 따라 굴러떨어졌다.
“으르렁……!”
극연 안, 아득한 땅바닥에서 나지막하고 무시무시한 포효가 전해졌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먼 탓에 소리는 위로 올라와 순수한 음파로 변했다.
동시에 허칠안은 목덜미 쪽 칠절고가 불안하게 움직이는 걸 느꼈다. 그의 척추를 벗어나 이곳을 탈출하려는 것 같았다.
“고신이 깨어난 건가?”
란옥은 얼마나 놀란 건지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은 두려움일 뿐,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냉정하게 뒤로 물러났다.
울부짖는 소리가 끝난 뒤에도 땅의 진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격해졌다. 자갈과 모래도 완만한 비탈 위에서 끊임없이 굴러떨어졌다.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모든 이가 극연에서 기세가 드높고 무시무시한 역량이 솟구쳐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순언의 안색이 급변했다.
“고신의 힘이다. 어서 물러나!”
‘무슨 뜻이야. 여기 전부 고신의 힘 아니야……?’
허칠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잘난 척, 교만 떨지 않는 그는 즉시 순언의 말을 듣고 뒤로 물러났다.
다음 순간, 허칠안은 비로소 순언의 말뜻을 깨달았다.
극연에서 드높은 고신의 힘이 솟구쳤다. 검붉은 기혈의 힘, 짙푸른 독고의 힘, 칠흑같이 까만 시고의 힘, 연푸른 심고의 힘…….
하나같이 순도가 높고 수량이 충만해, 극연 밖의 어느 곳보다 뛰어났다.
허칠안과 순언은 낭떠러지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어 순도 높은 정고의 힘에 뒤덮였다. 문득 숨을 들이켜면, 전부 달콤하고 느끼한 기운투성이였다.
허칠안은 계속 입이 바싹 마르고 온몸이 뜨거워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욕이 몸속에서 끊임없이 솟구쳤다. 칠절고가 몸속에 침입한 정고의 힘을 탐욕스럽게 흡수하곤 있지만, 완벽하게 소화할 수는 없었다.
허칠안조차 이러한데, 명색이 심고사인 순언은 어떻겠는가.
바로 의식이 희미해진 순언은 어여쁜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름다운 입술 사이로도 달콤한 신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타는 듯한 갈증에 순언은 즉각 곁에 있는 허칠안을 껴안고, 뜨겁고 열정적인 입맞춤을 했다. 손으론 그의 몸을 서툴게 더듬으며 약점을 찾아 헤맸다.
‘너 정말 풋내기구나…….’
허칠안은 가볍게 손날을 휘둘러 그녀를 기절시켰다. 이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순언의 의지는 이미 정고에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허칠안은 순언을 부축해, 발유 등의 곁으로 물러났다.
고개를 젖히자, 이 드높은 기운이 고공까지 솟구쳤다가 천천히 흩뿌려지더니 극연 근처로 흩어져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가게. 우선 여기를 떠나자고.”
천고 할머니가 나지막이 말했다.
허칠안의 일행은 함께 왔던 길로 돌아갔다.
도중에 미쳐버린 고충과 고수도 보였다.
그것들은 이 드높은 고신의 힘의 자양을 받으며 무시무시한 이변을 일으켰다. 머리 2개 달린 새는 3번째 머리가 자라났고, 거대한 구렁이는 허물을 벗기 시작하며 더 굵고 길어졌다.
벌레 떼는 몸이 빠른 속도로 부풀어 쥐만큼 커졌으며, 식물은 미친 듯이 자라며 처절한 울음소리 혹은 아이의 웃음소리를 전했다.
품종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추한 기형 괴물에게는 2번째 생식기가 나타났고, 성성이 옆구리에서는 새 팔이 한 쌍 자랐으며, 거대한 그림자가 아무런 목적 없이 떠돌다가 길가의 생명을 삼키기까지 했다.
한 마디로, 극연 전체의 괴물이 다 미쳐있었다.
* * *
원시림 밖.
허칠안 일행은 영자의 안내 덕분에 빠르게 극연에서 물러났다.
“유성 조각상이 훼손되지 않았고, 봉인도 그대론데 왜 이렇게 된 거지?”
허칠안은 외부인으로서 눈앞의 상황에 무지했다.
발유가 나지막이 말했다.
“고신은 한시도 힘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다. 상태가 아주 불안정하여 적을 때도, 많을 때도 있지. 그것의 힘은 극연 근처의 고수를 이상하리만큼 강대하게 변화시킨다. 6~70년마다 극연에서 초범경의 고수가 탄생하는데 고수를 베어 죽이는 일은 고족이 반드시 져야 할 책임이다. 그리고 매번 초범 고수가 세상에 나올 때마다 필연적으로 우리 종족 족장의 몰락을 동반한다.”
허칠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 이번은 정상적인 현상이다?”
천고 할머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그 자식이 일으킨 일이네. 그가 무슨 수법을 썼는지 모르겠으나 이 늙은이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고신의 의식이 한 단계 더 깨어났을 걸세. 유사한 힘이 솟구쳤으니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여러 번 있을 것이야.”
문득 란옥 등의 안색이 나빠졌다.
계속해서 천고 할머니의 차분한 말이 이어졌다.
“자네 말이 맞네. 이게 바로 허평봉이 우리 고족 초범 고수를 견제하는 데 쓴 수단일세. 고신을 한 단계 더 각성시킴으로써 극연 근처 고신의 힘이 짧은 시간 내에 폭등한 게지. 초범 고수가 탄생할 확률을 촉진시켰어. 우리가 부득이하게 남강을 지키도록 압박했네. 힘이 넘치고 초범에 발을 들여놓을 가능성 있는 고수를 상대하느라 중원 일에 개입할 틈이 없게 만든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