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72
969화. 모닥불 만찬회
허칠안은 부축하고 있던 순언을 란옥에게 맡기면서 물었다.
“강한 고수를 제거하는 데 보통 족인은 필요 없겠지요?”
천고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족인은 극연에 깊이 들어가는 순간 죽음의 위기를 맞으니 쓸모가 없지.”
‘그럼 나는 적어도 고족의 전사로 고용될 수는 있는 거잖아…….’
허칠안이 다시 물었다.
“고신이 깨어났다는 건 봉인이 헐거워졌다는 걸 의미하는 겁니까?”
천고 할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 년간 고신은 한시도 유성 봉인을 소모하지 않은 적이 없네. 유사하게 깨어난 적도 있었으나 빠르게 잠들곤 했지. 길게는 수십 년, 짧게는 수년. 사실이 증명하네. 초품의 봉인은 초품만이 뒤흔들 수 있어. 그 허평봉은 유성을 약화시키는 것조차 할 수 없네.”
허칠안이 천고 할머니를 본 순간, 그녀는 모든 족장을 훑으며 말했다.
“돌아가 족인에게 통지하게. 사흘 후, 4품 이상의 강자는 우리를 따라 극연을 탐색하고 고수를 참수할 것이네. 허 은라의 전투력은 무쌍하니 이 늙은이는 허 은라가 돕기를 간청하네.”
용도, 발유 몇몇이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알겠습니다. 고신의 힘이 솟구친 게 고족한텐 좋은 일이 아닌 겁니까?”
“자네 모르는가? 자네는 초범까지 고작 한 가닥 차이인데 어찌 고술의 깊은 뜻을 모르는가.”
용도가 의아한 얼굴로 허칠안을 쳐다봤다.
‘난 짝퉁이잖아. 너희랑 다르다고…….’
허칠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에, 용도가 알아서 말을 시작했다.
“직접 고신의 힘을 흡수하는 생명은 그 어떤 것이라도 괴물로 기형화되는데 극연 근처의 고충, 고수가 바로 그 예지. 고신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 고족 선배들은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목숨으로 고신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을 모색했지. 그것이 바로 고족 비술과 본명고의 유래다. 본명고는 고신의 힘에 의한 오염을 중화할 수 있기에 우리 고족이 고신의 힘을 흡수할 수 있도록 하지만, 오염되지는 않는다.”
‘본명고는 여과기에 해당하는군…….’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발유가 말을 받았다.
“본명고 역시 고로, 고신의 힘을 흡수했는데 왜 다른 고충, 고수처럼 기형적으로 광분하지 않았을까? 그건 성숙기에 단계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병목에 도달한 뒤에는 깊은 잠에 빠져 고신 힘의 오염을 제거한다. 다시 말해서 그건 보통 고충이나 고수처럼 고신의 힘 흡수를 통해 빠른 속도로 강대해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더 안정적이고 기형을 피할 수 있지만, 수련 경지의 성장이 억제당하는군…….’
허칠안은 몸속의 칠절고를 떠올렸다. 그것 역시 비슷한 이유로 더는 고신의 힘을 흡수할 수 없었다.
말하는 사이, 란옥이 체내의 정고를 제거해준 덕에 순언의 의식이 돌아왔다. 하지만 순언은 방금 일을 생생히 기억하는 듯 허칠안과 함부로 눈을 마주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내 족장들은 다 흩어지고, 허칠안도 용도를 따라 역고부로 향했다.
* * *
넓디넓은 평원을 지나 백산 아래 도착했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족장의 대원 밖에는 모닥불과 큰 냄비가 놓여 있었다. 리나는 그 옆에 웅크려 앉아 고기를 삶고 있었고, 주변에는 역고의 아이 일고여덟 명이 둘러싸고 있었다. 전부 10살도 안 돼 보였다.
그곳에 콩알이도 어엿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어서 고기가 등장하기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 눈망울이나 표정 하며 꼴깍 침을 삼키는 동작까지, 역고부 아이들과 차이점을 찾을 수 없었다.
‘영음이는 이미 역고부에 완벽하게 녹아든 느낌이네…….’
허칠안은 동생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한 바퀴 훑었다. 낯선 청장년이 적잖이 늘어있었다. 아마도 사냥을 나갔던 젊은 족인이 돌아온 것 같았다.
마침 용도가 흐뭇하게 말했다.
“매번 오라비가 사냥에서 돌아올 때마다 리나는 사냥감 일부를 부족 아이들에게 삶아주는 걸 좋아했지. 리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 줄 알아. 오라비보다 족장의 역할을 더 잘 이해하고. 리나는 어릴 때부터 총명했거든.”
“…….”
허칠안은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아예 말을 하지 않았다.
말문이 막힌 허칠안은 그냥 리나와 동생에게로 향했다. 막상 냄비 앞으로 오니, 그리 좋은 냄새는 나지 않았다.
“리나, 남치와 백희는?”
허영음을 포함해 모든 아이가 일제히 고개를 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행여 입이 줄까 봐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방에 있어요.”
리나는 고개도 들지 않고 온 마음을 기울여 고기를 삶았다. 이따금 맛을 내는 향신료도 한 줌 뿌렸다.
허칠안과 용도는 아이들을 돌아 대원으로 들어갔다.
* * *
휙- 휙-
안뜰에는 상반신을 노출한 젊은 사내가 강철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다부진 몸이 칼을 휘두를 때마다 팔과 척추 근육이 같이 움직였는데 아주 강인하고 근사해 보였다.
용도와 허칠안의 등장에, 사내는 즉시 칼을 내리고 공손히 외쳤다.
“아버지!”
용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칠안을 돌아보았다.
“우리 아들. 리나 오라비지. 막상이라고 하네.”
막상은 스물다섯이 채 되지 않은 나이로, 눈매가 리나와 비슷했다. 아주 영민하고 준수한 미모의 사나이였다. 다만 왼쪽에 깊은 흉터가 있고, 매서운 눈빛이 다소 거칠고 포악한 인상을 주었다.
“중원 사람, 허 은라다.”
용도는 간단명료하게 허칠안의 소개도 마쳤다.
막상은 이미 돌아온 장로들을 통해 오늘 허칠안의 장거를 알게 되었다. 그에게는 조금도 무례하게 굴 엄두가 나질 않아서, 막상은 바로 예를 갖췄다.
“예의 차릴 필요 없어요. 리나는 내 좋은 벗이고, 그쪽은 리나의 오라버니이니 가족이나 다름없죠.”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겉모습만 보면 이 막상 형은 그래도 꽤 괜찮은데? 리나처럼 얼굴에 어리버리하다고 쓰여있지도 않고.’
바로 막상의 말이 이어졌다.
“허 은라와 아버지 중에 누가 더 대단한가요? 제가 듣자 하니 족장 다섯 명 모두 오늘 허 은라한테 졌다던데요? 우리 아버지는 분명히 당신 상대는 아닐 거예요. 제가 단언할 수 있어요!”
‘……방금 한 말은 취소다. 역고부에는 진짜 멀쩡한 사람이 없네.’
허칠안은 인정할 수 없다는 얼굴로 싸워보고 싶어 안달 난 용도를 보고 있으려니 입꼬리에 경련이 일었다.
결국 그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뒤에서는 부자의 대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두 사람 모두 그만큼 큰 목청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버르장머리 없긴.”
“아버지는 분명히 허 은라와 한 판 붙고 싶으신 것 같은데 그럼 바로 붙으세요. 몸 사릴 필요가 있나요?”
“네가 리나 반만큼만 똑똑했어도 족장 자리를 네게 물려줬을 텐데.”
* * *
허칠안은 곧장 안뜰로 가, 모남치가 있는 방을 손쉽게 특정했다.
남루하지만 널찍한 방에는 연보라색 속옷과 흰 비단 바지를 입은 모남치가 있었다. 그녀는 한창 수건을 쥐고 팔과 목을 꼼꼼하게 닦고 있었다.
그때, 모남치도 누군가 난입한 걸 알고 안색이 크게 변했다. 허칠안임을 알았을 때는 겁에 질린 기색이 약간 줄어들었지만, 대신 뺨에 홍조를 띤 채 즉각 등을 돌리고 화를 냈다.
“나가! 나가! 나가!”
허칠안은 옥처럼 뽀얀 등을 보며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조금 전, 그가 그렇게 한심하게 보던 허영음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가 없었다.
끼익-
그가 문을 닫고 몇 분 기다리자 안에서 모남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허칠안은 방에 들어가 한 바퀴 훑은 뒤 말했다.
“확실히 좀 남루하네요. 목욕통조차 없다니.”
모남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조금도 민망하지 않은 척 굴었다. 그저 백희를 문지르는 손에 슬그머니 힘이 더해졌을 뿐이었다.
백희도 할 말은 없을 터였다. 본래는 이 여우가 망을 봐주는 역할을 맡기로 했었다. 따지고 보면 허칠안이 저렇게 무방비로 접근한 건 결국 이 여우 때문이 아니던가.
“방금 문제가 좀 있었는데…….”
허칠안은 극연에서의 경과를 알려주곤 탄식하며 말했다.
“제가 지금 허평봉의 일 처리 방법을 분명하게 파악한 셈입니다. 한 가지 목적 아래엔 언제나 두 번째 목적이 숨어 있지요. 하나가 성사되지 않으면, 바로 두 번째 계획을 진행하며 본인 노력이 절대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다음에 다시 마주치면 조심해야겠어요.”
모남치는 싸우고 죽이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닭 한 마리도 쉽게 죽이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녀는 허칠안이 손해만 보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번거롭겠지만 나중에 독초와 독과일 재배하는 것 좀 도와주세요. 너무 많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선 독고부가 재미를 볼 정도면 돼요.”
‘나한테 당뇨병이 없는 게 참 아쉽죠. 당뇨가 있었어도 직접 했을 텐데…….’
허칠안은 속으로 말 같지 않은 유머도 한 마디 덧붙였다.
“응!”
모남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에 들어온 이래로 그녀는 허칠안 대신 자주 독초를 심어 그의 이상한 취향을 만족시켜왔었다.
이내 허칠안은 그녀의 품에서 백희를 구해주었다.
“얘는 아직 아이일 뿐이잖아요. 그렇게 괴롭히지 마세요.”
백희는 허칠안이 모처럼 자신의 주인 노릇을 하자 아주 기뻐하면서도 못마땅한 듯 애교를 부렸다.
“몸이 어떤지 좀 살피세요. 얼마 전 야희 언니랑 십만대산에서 매일 잠자리를 했잖아요.”
“…….”
허칠안은 무표정하게 백희의 머리를 대야에 친히 눌러 넣었다.
* * *
이날 밤, 역고부가 족장 정원 밖 광장에서 모닥불 만찬회를 개최했다.
주제는 고기 먹고, 고기 먹고, 또 고기 먹기였다.
중원에 다녀온 리나는 허칠안 외에 가장 집중 받는 인물이 되었다.
고기가 세 차례 돌았을 즈음, 한 장로가 큰 소리로 말했다.
“리나, 중원에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던 순간들을 어서 얘기해보렴. 외출했다가 돌아오니 4품이 되었잖니. 모두 매우 궁금해한단다.”
특별히 언급할 만한 건, 역고부에 술이 없다는 것이었다. 술을 빚으려면 대량의 식량이 필요한데 역고부는 그렇게 사치스럽지 않았다. 이따금 다른 여섯 부족과 음식을 술로 교환하는 것이 다였다.
역고부에서 술은 사치품에 해당해서, 누구라도 술병을 들고 있다면 대체로 거만하게 굴기 일쑤였다.
한창 기분 좋게 고기를 먹고 있던 리나가 망연하게 고개를 들었다.
“리나 언니, 우리한테 좀 얘기해봐요.”
“리나, 중원은 풍요롭다고 들었어. 중원에 다녀오더니 하얘져서 못난 아가씨가 되었네. 수련 경지도 4품에 이르고. 분명 다채로운 경험을 했겠지.”
“얼른 얘기해봐. 우리 한시도 지체하지 못하겠다고.”
남녀노소가 이구동성으로 떠들썩하게 굴었다.
허칠안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해 얼른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풉, 풍부한 경험은 개뿔. 우리 집에서 공짜로 먹고 마시기만 했지…….’
리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일어나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뭐 제, 제 중원 여정은 당연히 풍부하고 다채로웠지요. 중원 사람들이랑 지혜와 용기를 겨루면서 상당한 고생을 했다고요. 강호에서 명성을 크게 떨치고 마지막에는 경성에 도착해 수행에 몰두했어요. 게, 게다가 예로부터 사서를 통틀어 천 년간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많이 했고요.”
“예를 들면?”
그녀의 오라버니 막상이 물었다.
난처해진 리나는 잠시 눈동자를 도르르, 굴렸다.
“예를 들자면! 허칠안이 국공을 죽이고 황제를 죽이는 일에 협조했던 거? 못 믿겠다면 직접 물어보셔도 돼요!”
사람들은 동시에 허칠안을 쳐다보았다.
‘국공을 죽인 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그렇지만 원경을 죽일 때는 힘을 보태긴 했지…….’
허칠안은 그냥 체면을 살려주는 셈 치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나에겐 별안간 족인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리나는 금세 거만하게 가슴을 펴고 양손을 허리춤에 얹었다.
“그럼 리나 언니는 중원에서의 이름이 뭐예요?”
한 아이가 큰 소리로 물었다.
잠시간 정적 후, 리나 역시 큰 소리로 대답했다.
“비, 비연 협객! 맞아, 중원 사람은 모두 나를 비연 협객이라고 불러!”
‘비연 협객이 하루아침에 남강의 구릿빛 낭자로 변한 걸 안다면, 칼을 들고 널 찾아갈 텐데…….’
허칠안의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다. 인파 속 아이 몇 명과 둘러앉은 허영음이 비연 협객에게 열렬히 박수갈채를 보내는 모습이 비쳤다.
아무래도 허영음은 이미 고족의 아이가 다 된 듯했다.
어쨌든 모닥불 만찬회는 즐거운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로 끝이 났다.
허칠안도 마냥 아첨과 아부를 즐기는 자는 아니라서, 속으로는 계속 역고부 사람은 전부 저속한 자들이라고 비아냥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