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74
971화. 강대한 신마의 후예들
허칠안이 물었다.
“할머님께서는 도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천고 할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네.”
‘말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모른다고……?’
허칠안이 다시 물었다.
“미래에서 도존을 엿보지 않으셨나요?”
천고 할머니가 말했다.
“자네는 천고에 대해 오해가 있는 듯하네. 천고는 운명의 일각을 엿보는데 왜 일각이겠는가? 원인과 결과를 알 수 없는 단편, 자질구레하고 난잡한 단편, 그리고 어떤 일을 정확히 엿볼 수 없는 혼란. 모두 다 제한이 크며 통제할 수 없네. 이 늙은이가 무언가를 알고 싶다고 해서 바로 천고를 이용해 엿볼 수 있는 게 아니란 소리야.”
‘당신의 천고랑 감정의 ‘미래 실황방송’은 차이가 너무 큰 거 아냐……?’
허칠안이 재차 천고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그럼 할머님은 백제가 도존의 행적을 물은 목적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천고 할머니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온화하고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 번째로는 백제가 고신에게 문지기가 누구인지 물었네. 고신은 ‘그건 원래 유성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야 알고 보니…….’ 라고 대답했지.”
허칠안은 잠시 기다렸다가 결국 다급하게 말했다.
“뭘 알았습니까?”
천고 할머니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 늙은이 역시 알고 싶네. 하지만 유성 조각상의 힘이 고신을 막아 다시 봉인하였지.”
“…….”
허칠안은 하마터면 순간 화를 낼뻔했다.
‘유성이 사람 구실을 못 하네! 죽어서도 제동을 걸다니.’
“문지기에 대한 할머님 생각은요?”
“나는 문지기가 누구인지 모르네. 하지만 문지기에 관한 모든 정보는 누설할 수 없는 천기지. 자네는 사천감과 관계가 얕지 않으니 내 뜻을 이해할 것이야. 천기를 아는 자는 반드시 천기에 얽매이는 법.”
천고 할머니의 답변에, 허칠안은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천기를 엿보면 반드시 치르는 대가로 천지의 법칙이었다.
그는 물을 한 잔 따라 한 모금 홀짝인 후 주름진 노인을 쳐다보았다.
“할머님께서 갈문선을 눈감아주신 건 그를 이용해 고신한테서 문지기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함이군요.”
그 동기라면, 허칠안도 천고 할머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진작 허칠안과 동맹을 맺기로 했음에도 전혀 관여하지 않는 듯한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건 사실 갈문선이 극연으로 가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극연에 진입하려는 갈문선을 암암리에 돕기까지 했다.
아예 갈문선의 기운을 지워서 혼천신경이 그를 찾을 수 없게 하지 않았던가. 거기다 길가의 고충과 고수도 깨끗이 처리하여 갈문선이 유성 조각상까지 가는 길을 아주 순조롭게 만들었다.
물론 이것들 모두 추측일 뿐이고, 따로 사실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천고 할머니는 드디어 옷 수선을 마치고 실밥을 물어뜯으며 말했다.
“그렇네. 밤이 깊었어. 늙은이는 쉬어야겠네.”
“실례했습니다.”
허칠안은 바로 그림자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 * *
역고부로 돌아오니 정방에 촛불이 켜져 있었다.
리나와 막상 남매가 한창 야식을 먹고 있었다. 거의 인당 고기 한 대야씩을 마시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남매의 옷이 좀 엉망에, 둘 다 맨발이었다. 막상의 가슴에 핏자국도 보였는데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남매는 막 수련한 듯 보였다. 그래도 막상은 사내고, 오라버니다 보니 동생에게 그냥 얻어맞기만 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한바탕 운동을 끝낸 후, 남매는 음식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있었다.
막상이 말했다.
“너 대봉 공주나 대봉 제일의 미인을 내 아내로 데려오겠다면서.”
‘중원 여인은 너희 역고부의 심미관에 맞지 않는 것 같던데…….’
공주와 왕비에 관한 일이라 허칠안은 잠시 주의를 기울여 들었다.
“응, 데려왔잖아. 허칠안 옆에 있는 그 여인이 대봉 제일 미인이야.”
리나는 성실하고 진실하게 말했다.
“하얗게 태어난 건 그렇다 치자고. 태우면 까매질 테니. 그렇지만 외모가 그리 평범한데 어찌하여 대봉 제일 미인이란 소리가 나오는 거야? 역시 중원 여인은 하얗고 못생겼구나. 그 상대들이 나를 속인 거야.”
막상은 말하다 말고 환멸을 느꼈는지 급기야 화를 냈다.
그는 중원에서 온 상대에게 진북왕비가 대봉 제일 미인이라는 사실을 들었다. 중원 상인들도 제법 번지르르하게 얘기했었다.
막상이 고족 여인들과 비교했을 때 어떠한지 묻자, 중원 상인들은 남강의 구릿빛 피부를 보며 절박하게 말했었다.
“하늘 위의 구름과 밭의 진흙입니다.”
막상은 음식을 매섭게 씹으면서 분개했다.
“알고 보니 우리 남강 낭자야말로 구름이고, 대봉 여인이 진흙이구나.”
“아니, 아니야. 내가 만난 중원의 공주는 아주 생기발랄해. 다만 나보다 훨씬 뒤떨어질 뿐이지.”
“하긴, 네가 우리 역고부의 제일 미인이긴 하지.”
막상은 동생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허칠안은 조용히 속으로만 남매 둘을 향해 공수하곤 방으로 돌아갔다.
* * *
도로롱- 도로롱-
콩알이는 코도 참 박자감 넘치게 골았다.
강한 시력 덕에 허칠안은 굳이 불을 켜지 않아도 침상에 벌렁 나자빠진 콩알 같은 아이가 보였다.
짐승 가죽으로 만든 담요는 이미 걷어차여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콩알이의 오른 손목 한쪽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꼭 방금 갉아 먹힌 모양새였다.
그리 크지도 않은 침상인데, 콩알이가 무려 2/3를 차지하고 있었다.
허칠안은 일단 동생의 손발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짐승 가죽 담요를 잘 덮어준 뒤, 본인도 같이 덮고선 눈을 감았다.
* * *
몽롱한 가운데, 허칠안은 돌연 가슴이 찢기는 듯한 포효 소리를 들었다.
깜짝 놀란 그는 순간 잠에서 깼다.
초범경의 용감 무쌍한 원신에 의지해 허칠안은 자신이 아직 꿈속에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무신교 초범 고수가 왔나?’
꿈에서 그와 같은 이런 차원의 고수를 상대할 수 있는 건, 각 체계 중에서 4품일 때 ‘몽무’라고 불리는 주술사 체계뿐이었다.
도문 역시 꿈에서 영혼을 꾀는 법술이 있지만, 그건 음신이 직접 지닌 신이(神異)에 속해서 몽무와 비교하자면 전업과 부업의 차이와 같았다.
울부짖는 소리의 여음 사이로 허칠안은 한 장면을 보았다.
쪽빛 하늘 아래, 유성이 불빛을 끌어당기며 대지로 추락하고 있었다.
붉고 아름다운 불빛 사이엔 날개 한 쌍이 찢긴 거대한 불꽃 새가 있었다.
불꽃 새는 떨어지는 별처럼 불꽃을 따라 함께 떨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떨어진 대지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무수한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애꾸눈에 공허한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거인, 뱀 머리가 잘리고 거북 껍데기는 온통 금이 간 현무(玄武), 머리가 목덜미에서 벗어난 열두 쌍 팔의 거인, 산에 버금가는 썩은 몸뚱이에 앙상한 뼈만 남은 거대한 뱀.
몸의 절반만 남은 황금 사자, 한을 가득 품고 하늘을 응시하지만 이미 죽음에 이른 육구, 머리와 몸이 분리된 머리가 아홉 개 달린 뱀…….
이들은 일찍이 허칠안이 꿈에서 본 적 있는 상고 시대에 탄생한 신마였다.
“난 신마가 몰락할 때의 광경을 본 거야…….”
이곳은 그저 꿈속일 뿐이지만, 허칠안은 실제로 미친 듯이 뛰는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은 듯했다.
* * *
화면이 전환되면서 허칠안은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괴물’을 보았다.
그것은 산에 버금가는 몸뚱이를 움직여,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산골짜기로 기어들어 갔다.
이 괴물의 신체 구조는 아주 섬뜩했다. 힘줄이 도드라지고, 근육이 부풀어 있는 게 마치 근육으로 만들어진 산 같았다.
근육으로 만들어진 몸엔 숨구멍이 여러 개 있었다. 그곳에서 검푸른색의 수증기가 솟구쳐 올라 하늘을 감돌며 검푸른색 구름층을 형성했다.
그 육산(肉山) 밑바닥에는 걸쭉한 그림자가 흐르고 있었다.
고신!
이건 그저 꿈일 뿐이지만, 허칠안은 고신의 허약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고신이 극연으로 진입하면서 화면은 산산이 조각났다.
* * *
허칠안은 어두운 방에서 눈을 떴다. 팔이 뭔가에 물린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허영음이 그의 팔을 안고 물면서 자고 있었다. 옅은 눈썹이 살짝 꿈틀거리는 걸 보니, 먹을 수 없음에 의아해하는 듯했다.
족발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한테 어쩌다 이렇게 먹성 터지는 바보 동생이 생겼을까…….’
허칠안은 조용히 팔을 뺀 뒤, 허영음의 볼을 한번 꼬집었다.
십여 초 뒤, 허영음이 눈을 비비며 깨어났다. 몽롱한 눈의 아이는 정말로 천진난만한 모습 그 자체였다.
“배고파?”
허칠안이 물었다.
“큰오라버니! 방금 꿈에 맛있는 음식을 봤어요! 그런데 물 수 없었어요.”
콩알이는 기뻐 어쩔 줄 모르다가 금세 풀이 죽었다.
‘네가 대승기의 금강신공을 깨물 수 있다면, 극연으로 내려가 고신을 먹어도 돼…….’
허칠안은 미세하게 물린 자국이 가득한 콩알이의 오른손을 가리켰다.
“봐, 네 손도 물렸네.”
아이의 오른손에 그다지 뚜렷하지 않은 이빨 자국이 남아 있었다.
허칠안은 아마도 자신의 손목을 물을 때 좀 아팠는지, 콩알이가 자기 손은 본능적으로 세게 물지 않은 것이라 짐작했다.
실제로 허칠안을 물 때, 허영음은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냈었다.
콩알이는 자신의 오른손을 보았다. 역시나 물린 자국이 있으니 깜짝 놀라 눈과 입이 동그래졌다.
“누가 내 손을 잡아먹고 싶어 하는 거지?”
“리나.”
허칠안의 말에, 콩알이가 눈을 부릅떴다. 얼굴 가득 경계심을 드러낸 허영음은 한참을 참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사부님은 분명히 내가 저녁에 먹은 고기를 탐낸 거예요!”
허칠안은 아이의 말뜻을 이해하는 데 몇 초나 걸렸다. 리나가 허영음을 먹어서 어제 먹은 그 고기를 빼앗아 가려고 했다는 말이었다.
“내가 방금 리나를 쫓아냈어.”
“고마워요, 큰오라버니~”
콩알이는 그제야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했다. 사부가 자신을 먹어버리려 한다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사부는 자신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었다.
* * *
허영음은 이제 막 승직한 여파로 식사량이 많아져 허기를 느꼈다. 거기다 잠까지 많아서, 아예 잠자는 중에 족발 먹는 시늉을 한 것이었다.
이에 허칠안은 주방으로 가, 어느 동물인지 모를 동물의 허벅지를 찾아 얇게 자른 후 한 접시 볶아왔다.
엷은 촛불에 의지한 어두운 방에서, 허칠안은 한창 입가에 온통 기름을 묻힌 어린 동생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은 자꾸 저 멀리 흩날렸다.
신마는 한때 천지의 지배자였다. 신마가 도대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하지만 강대한 신마의 후예들을 보면, 일부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 북방에 웅거하는 요족과 오랑캐, 구미천호, 구주 대륙의 강한 영수, 해외 영수 이들 모두가 신마의 후예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상고 시대의 신마는 사람을 전율시킬 만큼 절대적으로 강대했을 터였다.
후대의 인족 수행자는 신마가 끝을 맺은 원인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다. 가장 광범위하고 주된 논조는 인족과 요족이 일어나 옛 대륙을 종횡하며 천하의 생명을 지배하던 신마를 물리쳤다는 것이었다.
신마가 죽은 뒤, 그 후예와 인족 두 종족은 무려 수천 년에 달하는 항쟁을 거쳐 결국에는 거의 다 소멸해버린 것이다.
‘내가 본 화면에는 인류는 없고, 요족도 없었어……. 그 화면은 예상하자면 아마 칠절고가 나한테 ‘전송’한 거야. 그리고 칠절고는 아마 고신이 봉인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는 수단이겠지. 바꿔 말하면, 이 화면들은 고신의 일부 기억일 가능성이 농후해.
만약 인류가 아니라면 어떤 존재가 신마를 깨끗하게 도살할 수 있을까? 고신은 또 어떻게 다행히 재난에서 벗어난 걸까? 보아하니 처맞아서 곧 죽을 것 같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