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76
973화. 세 가지 일
묘재방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수비군에 고수가 너무 적습니다. 4품이 한 명뿐이라니요.”
허신년이 답했다.
“4품 고수는 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이니 당연히 희소하지요.”
“희소하다고요? 제가 허 은라를 따라 각지를 전전하며 싸웠는데 4품 경지의 잡어는 눈에 차지도 않던데요.”
묘재방은 우쭐대며 말했다.
‘너도 우리 형님을 따라다닌 거란 건 아는구나…….’
허신년은 두 손으로 성가퀴를 받치고 천천히 말했다.
“저한테 조당 제공들 역시 생소하지 않습니다. 전(殿) 전체가 다 그러하지요. 하지만 묘 형께서는 제공을 몇 분이나 만난 적이 있습니까?”
지금 허칠안의 영향이 미치는 차원과 마주한 상대는 분명히 어느 세력의 가장 고위층일 것이었다. 또한 거대 세력의 고위층이라면 당연히 구주에서 가장 걸출한 사람들일 터, 4품 역시 생소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청주의 작은 송산현에서 4품은 아주 높은 인물이었다. 송산현의 수비군에 4품 지휘관은 단 한 명으로 허신년과 동급이었다.
그 지휘관은 북성문 수비를 책임지고 있었다.
허신년도 이 화제에 얽매일 생각은 없어서 바로 다른 얘기를 시작했다. 숨을 한번 들이마시니, 코끝에 차디찬 밤바람이 감돌았다.
“저는 우리 형님에게 묘 형의 목표가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한 시대의 대협이 되는 거란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전란의 땅에서 그저 의협심을 발휘해 의로운 일을 했다고 널리 이름을 퍼뜨리긴 어렵지요. 묘 형이 오늘 구한 사람이 내일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유랑민과 백성들은 대봉군에게 구조되거나 반란군에게 구조될 겁니다. 마치 화물처럼 여러 차례 되풀이하겠지요. 그들은 자신들을 도와준 낯선 협객을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대협이 되려면 태평한 곳에 가서 닥치는 대로 부자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해야 합니다. 그래야 강호에 묘 형의 전설이 생기지요.”
허신년의 질문에 묘재방은 머리를 긁적이고 한참을 생각한 후에 말했다.
“나는 무조건 대협이 될 겁니다. 그러나 본 대협은 마침 아름다운 시절을 만나 그 꿈이 몇 년 더 당겨지거나 몇 년 더 늦춰져도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대봉은 이미 점점 늙어가고 있지요. 만약 목숨을 연명하지 못한다면, 정말 황조가 바뀔 겁니다.
사실 저는 황제가 누가 되든 상관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백성들에게는 재난입니다. 만약 청주가 막지 못한다면, 전화는 북방까지 번져 경성까지 널리 퍼질 겁니다. 그러면 수만 리 강산이 전부 초토화되겠지요. 그래서 저는 반란군을 청주에서 제압할 수 있는지 없는지. 전란을 청주에서 멎게 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신년은 다소 의외란 생각에 웃으며 말했다.
“묘 형은 정말 괄목상대하게 하는군요. 강호에 묘 형처럼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의협심 강한 인사는 아주 드뭅니다.”
묘재방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니요. 사실 전 대봉 조정에 딱히 호감이 없습니다. 허 은라와 작별할 때 제게 했던 말이 있지요. 허 은라가 저를 양성하고 제 수행을 지도한 이유는 그해 어떤 이가 허 은라에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랍니다. 그저 허 은라가 장차 조정과 백성에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라고 도왔을 뿐이라고요. 허 은라는 그 사람의 기대와 희망을 저버리지 않으려 하지요. 그래서 저도 허 은라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형님이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군…….’
허신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답을 하려는데, 갑자기 묘재방의 낯빛이 급격하게 변했다.
“적군이 화포를 밀고 돌아왔습니다!”
가슴이 철렁한 허신년은 정신을 집중해 멀리 내다보았다.
깊은 밤이라 무엇도 보이는 게 없었다. 하지만 허신년은 5품 무사 묘재방이 보통 사람보다 시력이 훨씬 뛰어난 것을 알기에, 당장 크게 소리쳤다.
“고(*鼓: 북)를 쳐라! 화포와 상노를 준비해라.”
성가퀴에 기대 휴식하던 병사와 경갑을 입고 마도에 누워 잠을 자던 병사들 모두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그들은 곧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며 포탄과 화살을 가득 담았다.
묘재방은 화포수를 밀치고 직접 각도를 조절한 뒤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우르르……, 쾅! 쾅!
불빛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면서 먼 곳을 밝게 비추었다. 성벽 위의 수비군들은 밤을 틈타 화포를 밀고 접근하는 적군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폭발하는 불빛이 아직 가시기도 전, 성벽 위의 상노와 화포가 연이어 발포되며 적을 향해 화력을 퍼부었다.
즉각 성을 지키는 군대의 우세가 드러났다. 성벽 위의 화포는 높이 굽어보는 까닭에 적군의 화포보다 사거리가 더 멀었다. 적군이 성벽을 폭격하려면 반드시 수비군의 화력 세례를 먼저 받아들여야 했다.
묘재방은 화포를 포수에게 돌려주고, 허신년을 향해 화를 냈다.
“적군이 야간기습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네? 뭐라고요? 화포 소리가 너무 울려서 안 들립니다!”
허신년은 귓구멍을 후비는 행위 예술까지 펼쳐가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를 보며, 묘재방은 속으로만 조용히 중얼거렸다.
‘역시, 지식인의 낯짝은 결코 무사의 동피철골보다 얇지 않아.’
이때, 적군의 화포대는 화포 3대와 차노 2대를 잃고 마침내 사정거리 범위 내로 돌진했다.
쾅! 쾅! 쾅!
빽빽한 화포 소리가 끊임없이 사람들의 귓가를 때렸다.
불빛이 성벽과 성벽의 꼭대기를 끊임없이 폭격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차노의 맑고 깨끗한 활시위 소리도 뒤섞였다.
상노의 파괴력은 화포에 훨씬 못 미쳤다. 성벽 파손이든, 병사에 대한 살상력이든 확실히 화약의 폭발력에 뒤처졌다.
하지만 차노, 상노의 역할은 시종일관 화포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도태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화살의 일대일 살상력이었다.
화포는 동피철골경 무사를 죽이지 못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갑옷을 부수는 화살의 힘은 군대에 속한 동피철골경 이하의 고수에게 중상을 입힐 수도, 그들을 죽일 수도 있었다.
전쟁터에 투입된 무사는 위기 예감이 무감각해졌다. 전쟁터의 위기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기에, 무사는 당연히 무시무시한 화살을 미리 피하기 어려웠다.
운이 좋으면 상대측 무사에게 중상을 입히거나 죽일 수 있는데 이는 아주 큰 효과를 내는 좋은 일이었다.
양측이 맞폭격하는 과정에 등갑(藤甲)을 입은 보병 천여 명은 공성추, 사다리, 방패 등의 도구를 들고 적진으로 돌격했다.
이 보병들은 운주 반란군이 규합한 유랑민으로, 오로지 성을 지키는 군사의 화력을 소모하는 데 쓰였다.
현재 호위병 2명이 방패를 들고 허신년 옆을 지켰고, 허신년은 성벽 위를 끊임없이 뛰어다니며 작전을 지휘했다.
그때, 호위병이 큰 소리로 권했다.
“대인, 우선 내려가시지요. 만일 화포가 대인에게까지 위험을 미치면 얻는 것보다 읽는 것이 많게 됩니다.”
“내 개인의 안위보다 군심이 더욱 중요하네.”
허신년은 한 손에 검을 쥐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병사에겐 빈자리를 메우라 지시하고, 민병에게 시체를 처리하고 부상자를 응급 처치하라고 명했다.
이 일들은 허신년이 아니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의 역할이 중요했다.
허신년은 송상현의 최고 지휘관이었다. 그가 성벽 위에서 병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움직이면, 수비군들은 절대 동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공방전은 한밤중까지 이어졌고, 궤멸당한 적군은 시체 더미를 내팽개친 뒤 즉각 철수하였다.
* * *
남강, 연못가.
낙옥형은 우의를 걸친 채 기슭 옆의 반들반들한 돌 위에 앉아 있었다. 아래엔 허칠안의 장포가 깔려 있었다.
우의 아래에는 옥처럼 하얗고 균형이 잡힌 발이 차디찬 연못 물에 고요히 담겨있었다.
그녀의 뺨에는 아직 홍조가 어려 있었다. 예쁜 눈은 살짝 가늘게 접혀 있었는데, 차가운 연못 물을 즐기고 있는 건지 아니면 봄날의 조수가 용솟음친 뒤의 여운을 즐기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허칠안은 연못에 서서 연꽃 도안이 수놓인 새하얀 속옷을 건져 올린 뒤, 손에 들고 만지작거렸다.
낙옥형은 연못 물보다도 맑고 투명한 눈길로 그를 훑어보았다. 눈빛에는 쉽게 알아채기 어려운 수줍음이 스쳤다.
허칠안은 부드러운 재질을 느끼며, 조금 전 그 섬세하고 매끄러운 촉감을 떠올렸다. 입가엔 어느새 잔잔한 웃음이 고였다.
“국사, 임신도 하십니까?”
순간, 낙옥형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러나 오히려 뺨에는 홍조가 올랐다.
차르르…….
백옥 같은 발이 물을 걷어차자, 세상 가장 날카로운 검기 같은 물보라가 사나운 기세로 허칠안의 얼굴을 덮쳤다.
허칠안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낙옥형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자네와 나 사이는 그저 거래일 뿐이다. 난 자네의 힘을 빌려 업화를 가라앉히고, 자네는 내 전투력을 빌릴 수 있지. 자식 일은 생각도 하지 말게.”
말을 마친 후, 허칠안이 자신의 아랫배를 주시하고 있는 것을 본 낙옥형은 부끄러움과 분노가 더욱 짙어졌다.
‘말은 딱딱하게 하면서 쌍수할 때는 지난번보다 더 협조적이고 더 잘 알고 있던데…….’
허칠안도 누군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그것도 얼마나 깊이 좋아하는지는 쌍수할 때에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낙옥형은 저렇게 말투는 거칠어도, 쌍수할 때는 처음처럼 큰 거부감이 없었다.
낙옥형이 정말로 허칠안에게 아무 감정이 없다면, 결코 겉으로 좋은 척을 할 수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너하고 모남치가 정말 천생연분이다. 말로는 전혀 인정하지 않으면서 몸은 아주 솔직하잖아…….’
허칠안이 뻔뻔하게 말했다.
“제가 언젠가 바가지를 쓸까 걱정하는 거잖아요. 어쨌든 국사도 후손은 남겨놔야 하지 않겠어요? 흠, 본론을 말하자면, 이번에 남강에 와서 엄청난 비밀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곧 천고 할머니가 알려준 고신과 백제의 문답 과정을 상세히 알렸다.
이야기가 끝난 후, 낙옥형은 그 정교하고 가느다란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 한참을 침음했다.
“세 가지 일을 확실하게 한다면, 자네는 세 문제 뒤에 각각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될 수 있을 걸세. 첫째, 먼 옛날 신마가 몰락한 원인. 둘째, 천지인 삼종 수행법의 결증(結症). 셋째, 고신이 왜 유성을 문지기라고 여기는가.”
그 3가지는 대시대의 폐막, 도존의 행방, ‘문지기는 누구인가였다.
그리고 이 틈에 낙옥형이 속옷을 도로 빼앗아 자신의 곁에 두고 우의를 정돈했다. 어쨌거나 그녀가 몸에 걸친 건 이 옷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허칠안이 속옷을 빼앗아 가는 것에 대비하고자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신마 시대는 너무 요원하여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없네. 하지만 자네가 만약 백제, 고신과 대화할 수 있다면 내막을 알 수 있겠지. 나는 자네가 시도하러 가는 걸 추천하지는 않네. 지금의 자네는 아직 이 둘과 평등하게 대화할 자격이 없거든. 도문의 문제는 내가 1품으로 승직하면 천종에 다녀올 것이네. 그때 내 소식을 기다리면 돼. 문지기에 관해서라면 자네가 조위나 감정에게 물어봐도 되네. 두 사람 중 한 명은 유가 체계의 계승자이고 한 명은 천기를 엿볼 수 있으니.”
“역시 국사답습니다. 정말 총명하십니다.”
허칠안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낙옥형은 표정은 싸늘했지만, 눈빛에는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높은 위치에 있고, 성격이 강한 여인에게는 이 수법이 가장 잘 먹혔다. 물론 반드시 허칠안의 아첨이야만 가능했다.
그는 낙옥형의 ‘명목’상 쌍수 도려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내가 아무리 아첨한다고 해도 결코 그녀를 만족시킬 순 없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