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79
976화. 지도 절반
암고부를 나선 허칠안은 어공하여 하늘을 비행하다가 반 시진 뒤, 심고부 근거지에 이르렀다.
이 지역은 경치가 아름답고, 날짐승과 들짐승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심고부 가옥은 울창한 삼림에 있었다. 청록빛 나뭇가지 사이로 누각이 돋보이고, 인간과 짐승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곳이었다.
알록달록한 호랑이를 타고 산과 들을 즐겁게 뛰노는 소녀, 들판의 축력(畜力)이 충만한 각양각색의 대형 생물, 대나무 바구니를 들고 온 산천 가득 과일을 따고 있는 민첩하고 깜찍한 긴꼬리원숭이들까지.
갑자기 허칠안은 아래쪽 밀림에서 온몸이 비늘 조각으로 뒤덮인 거대한 짐승이 뛰쳐 오르는 걸 보았다. 짐승은 얇은 날개를 흔들며 젊은 심고 족인을 태운 채 그의 곁을 선회하였다.
“허 은라, 족장께서 허 은라를 모시라고 하였습니다.”
젊은 순찰대원은 표준적이지 않은 중원 말로 아주 예의 있게 말했다.
“응.”
허칠안이 어공하여 온 것은 순언이 눈치채도록 일부러 의도한 것이었다.
곧이어 그 젊은 심고부 족인은 날짐승을 몰고 숲으로 착지했다.
허칠안은 저도 모르게 이 생각이 떠올랐다.
‘음, 이 날짐승은 암컷이 아니야. 보아하니 기마병이군, 정식 기마병…….’
* * *
머지않아 허칠안은 순찰대원을 따라 산봉우리 남쪽, 벼랑 끝의 각루 앞에 이르렀다. 각루 옆에는 우뚝 솟은 오래된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가지 위엔 다람쥐가 뛰놀고, 가지 아래엔 흰 원숭이가 울부짖고 있었다.
각루 밖에는 긴 다리에 검은 깃털을 가진 새 몇 마리가 뭔가를 쪼아먹다가 낯선 사람의 등장에 깜짝 놀라 허둥지둥하며 날아갔다.
그리고 이곳엔 남색 긴 치마에, 귓불에는 적색 뱀 두 마리를 매단 아름다운 순언이 옅은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순언 족장!”
허칠안도 미소로 답했다.
* * *
두 사람은 각루로 들어가 1층 정방에 자리를 잡았다.
심고사 허칠안은 구석에 숨은 각종 독충과 독사, 작은 짐승을 눈치챘다.
그를 보고 순언이 농담조로 말했다.
“이곳은 도처가 전부 뱀, 벌레, 쥐, 개미, 날짐승과 들짐승인데 허 은라에게 꽤 친근감을 주는가 봐?”
‘그럼, 그것들을 전부 소집해서 함께 광장무를 추고 싶은 심정인데.’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푹 빠져서 돌아갈 생각이 나질 않네. 더 친근감이 느껴져.”
이 간단한 한 마디가 마치 양측의 거리를 좁힌 듯했다.
순언의 살구 같은 눈에 물길이 촉촉하게 고였다.
“하지만 짐승과 지나치게 친밀해도 그 속에서 방향을 잃기 쉬워.”
‘뭐, 짐승과 몸을 앞뒤로 흔드는 운동을 말하는 건가…….’
허칠안의 얼굴에 편견 없는 웃음이 번졌다.
“그건 각자의 개인적인 선택이지.”
순언은 허칠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편견 없는 그를 보니 순언의 웃음도 한결 온화해졌다.
“부족에서는 무릇 짐승과 규칙에 어긋나는 짓을 한 자는 더는 혼인하면 안 된다고 규정한다.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기도 하지.”
허칠안이 말했다.
“본명고로부터 비롯되는 충동을 참는 건 의지를 연마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본능에 의해 타락하면 심고의 수행에 유리하지. 부득이하게도 양날의 칼이라고 말할 수밖에.”
그러나 속으로 그는 남강에 있는 동안 암말을 내보내지 않고 부도보탑에 잘 머무르게 해야겠다고 생각을 굳혔다. 심고부 사람이 몰래 훔쳐 가거나 역고부 사람에게 잡아먹힐 것을 걱정한 것이었다.
대화가 그런대로 유쾌하게 흘러가자, 허칠안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심고부에게도 암고부와 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순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심고부는 식량이 부족하지 않아. 나는 식량을 직물, 찻잎, 자기, 소금과 철로 바꾸길 희망하네만.”
심고사한테 고기를 먹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경작 방면으로도 짐승을 부려 노동력을 충당할 수 있었다.
“문제없다.”
허칠안의 승낙으로 거래가 성사되자, 순언이 방긋 웃으며 물었다.
“그렇다면 허 은라는 어떤 병종을 원하지? 심고사가 가장 잘하는 건 짐승을 다루는 것이다. 중원은 강한 짐승이 부족하고, 각지에 흩어져 있어 바로 작전에 투입하기 어렵지. 합리적인 방법은 우리 심고부에서 직접 징집해 보내는 것이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언 족장의 제안이 뭔가?”
중원은 남강만큼 독충과 맹수가 도처에 널려 있지 않았다. 성에는 온통 고양이와 개뿐이었다. 산에 짐승이 적잖게 있긴 하나, 전쟁터 가장자리의 그 풍부한 짐승 무리를 지배할 수 있다고 보장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보통 짐승은 역할이 크지 않았다. 남강의 기이한 짐승과 비교했을 때 전투력은 같은 차원이 아니었다.
순언이 말했다.
“심고부에는 이수(異獸) 기마병과 비수군 2대 병종이 있다. 난 개인적으로 허 은라가 비수군을 택하길 제안한다. 이수 기마병은 행군 속도가 느려서 무리를 이루어 청주로 간다면 최소 한 달이 걸릴 것이다.
가는 길에 사람은 먹고 짐승은 씹어야 하니 음식이 큰 문제지. 청주에 도착한 이후에도 음식은 여전히 큰 문제다. 대봉에 한재가 닥쳐 본래도 식량이 부족한데 이수 기마병은 고기만 먹고 곡물은 먹지 않거든.
비수군도 고기만 먹긴 하지만, 행군 속도가 빨라 최대 6일이면 청주에 도착할 수 있다. 가는 길에는 족인더러 알아서 음식을 찾게 하면 되고. 이건 우리 심고사한테 식은 죽 먹기거든. 작전 능력으로 봤을 때, 대봉은 기마병이 부족하지 않지만 비수군은 그 수가 아주 적지. 산해관전역에서 빛을 발한 적미열응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국력이 나날이 쇠약해지면서 적미열응을 키울 수 없게 됐지. 조정은 이미 그것들을 뇌주 현지의 상회와 명문 호족에 팔아넘겼고, 극소수의 비수군만 남겨뒀다고…….’
허칠안은 속으로 탄식을 했다.
“심고부에서 얼마나 줄 수 있지?”
“부족에 비수 1,200마리뿐이라 대봉에 줄 수 있는 건 최대 500마리다.”
“거래 성사!”
순언은 허칠안에게 일이 더 남았다는 걸 알았기에 더는 만류하지 않고 그를 각루 밖까지 배웅하였다.
* * *
허칠안의 다음 목적지는 시고부였다.
고족 일곱 부족 중, 천고는 전투에 능하지 않으니 배제하고, 독고 족인과 대봉은 원한이 너무 깊어 배제해야 했다. 또한 정고부의 발정 기체는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을뿐더러 대봉에 원한도 깊으니 배제하는 게 옳았다.
그러므로 남는 건 역고, 암고, 심고, 시고 4대 부족이었다.
이중 시고부 역할이 가장 컸다. 물론 시고부가 시체를 조종하려면 자고가 필요한데, 주술사의 공시술처럼 대량으로 시체를 조종해 대군을 이루진 못해도 시고부의 행시는 질이 높고 전투력도 강했다.
무엇보다 전투력이 뛰어난 결사대가 전쟁터에서 발휘할 수 있는 역할은 상당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시고부의 상황은 허칠안이 예상한 것과 좀 차이가 있었다. 그는 시고부 본거지가 전설 속 유령 도시와 유사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시고부 본거지는 부족들 가운데 가장 기풍이 있었고, 천고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충분했다.
이건 그야말로 작은 도시였다.
돌로 높이 쌓은 성벽은 네모난 형태를 하고 있었고, 성의 건축 양식은 대봉과 비슷하게 벽돌과 목재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성에는 사람이 끊임없이 왕래하여 무역이 크게 발달했다.
다만 유일하게 이상한 점은 가마를 든 가마꾼의 눈이 너무 획일적인 흰 눈동자라는 것이었다. 산 사람 곁에는 반드시 행시 한 구 혹은 두 구가 따르고 있었는데 수행원과 노동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사람이 끊임없이 왕래하는 장에 2/3가 산송장이란 소리였다.
너무 섬뜩한 광경이지 않은가.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멍청하고 우둔한 역고부가 고족 화풍이 가장 정상적일 줄이야. 천고부에 버금가네…….’
허칠안은 소리 없이 개탄했다.
그는 인위적으로 기운을 드러내어 즉각 우시의 관심을 끌었다.
그렇게 허칠안은 성 중앙에 내부 가옥이 3채 딸린 대원으로 초대받았다.
* * *
안에는 노예들이 오가며 각자 일을 하고 있었다. 순찰하는 호위병 역시 획일적인 흰 눈동자였다.
말하자면 행시와 산 사람이 참 조화롭게 지내는 곳이었다.
안뜰에 들어선 뒤, 허칠안은 옷차림이 헐거운 여자 하인들을 많이 보았다. 그녀들도 습관이 된 것인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곧이어 허칠안이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리니, 우시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아니, 그는 직접 오지 않고 행시를 조종해 다가와선 담담하게 말했다.
“바로 조건을 얘기하지.”
허칠안은 그를 자세히 살핀 후, 웃으며 말했다.
“귀하의 고상한 취미를 방해했습니까?”
지금 그의 수련 경지로, 안에서 우시의 본체가 여자 하인과 움직이는 소리가 똑똑하게 들렸다.
‘우시’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는 시고의 부작용을 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매번 네가 시체와 무언가 일을 벌이고 싶다는 마음을 참지 못할 때, 곁에 옷차림이 헐거운 하인 몇몇이 있으면 주의를 아주 잘 돌릴 수 있지. 네가 욕망을 하인들에게 발설하면 아주 오랜 시간 행시에 흥미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현자 타임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시고의 부작용에 저항한다라…….’
허칠안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시고부는 상대적으로 풍요로웠다. 그렇기에 암고부처럼 값을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우시가 한 가지 조건을 추가했다. 허칠안이 남강에 있는 동안 반드시 그 옛 시체를 시고부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족을 떠나는 그때, 다시 옛 시체를 가져가는 것이다.
애써 침착한 척하지만, 우시는 사실 더할 나위 없이 갈망하는 어조였다.
허칠안은 잠시 침음하다가 응답했다.
“가능하다. 하지만 나 역시 조건이 있다.”
우시가 즉시 말했다.
“말해도 무방하다.”
“내가 일찍이 상주를 떠돌았는데 그곳에 시가가 있다. 시고부의 비술을 습득하여 철시를 정련할 수 있는…….”
허칠안은 시가의 상황을 말한 후, 우시에게 물었다.
“기억하는가?”
지금으로부터 이미 백여 년이나 지난 이야기였다.
우시는 잠시 회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런 노예가 있었다. 그건 우리 아버지가 수령을 맡을 때의 일이다. 잘못 기억하는 게 아니라면 아버지는 아마 지도 절반으로 자유의 몸을 되찾았지.”
‘허평봉이 애써 수집한 지도, 절대 단순하지 않지…….’
허칠안이 말했다.
“나는 그 지도 절반이 필요하다.”
우시는 또 잠시 침음하다가 말했다.
“좋다, 하지만 요청이 있다.”
‘무한 반복이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도 무방하다.”
“네가 장차 지도의 비밀을 푼다면 내게도 알려주길 바란다.”
허칠안이 다시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우시가 말했다.
“잠시만!”
십여 분 후, 흰 눈동자의 행시가 응접실에 들어왔다.
손에는 검은색 나무 상자를 받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