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troke RAW novel - Chapter 984
981화. 지원병 (1)
이튿날, 비수군은 다시 습격했다.
그러나 성벽 위에 가득 놓인 구리거울이 햇빛을 굴절시킨 덕에, 하마터면 기마병과 비수는 눈이 멀 뻔했다.
수비군은 이 기회에 화살을 발사해 비수 12마리를 공격해 떨어트리고 비수군을 물리쳤다. 성적이 만족스러우니 수비군의 사기도 크게 올라갔다.
하지만 허신년은 이 수가 일시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실제로 해가 진 후, 구리거울은 더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적군이 철수한 뒤, 허신년은 수비군더러 성벽 위에서 탁호연에게 욕설을 퍼부으라고 시켰다.
수비군들은 충실히 상대 집안의 삼대를 욕하며 한 시진 동안 큰 소리로 욕했다. 이에 자극받은 탁호연은 군사를 이끌고 성을 공격했다.
양측은 다시 서로 손해뿐인 전투를 치렀다.
결국 탁호연은 패하고 돌아갔고, 비수군은 어쨌든 적군 보병이 막심한 손해를 입었으니 대충 한 차례 폭격한 뒤 군사를 철수했다.
밤이 되자 허신년은 민병을 강제로 징용해 1천여 명을 그러모았다. 죽균과 묘재방에게는 군대를 이끌고 적진에 쳐들어가라고 명했고, 이내 삼백여 명만이 도망쳐 돌아왔다.
이로써 양측은 정예병을 거의 다 잃었다.
“제가 이미 청주에 사람을 보내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이제 누구의 지원병이 한발 먼저 도착하는지에 달렸어요.”
허신년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곁에 있는 묘재방은 사흘간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활을 등에 멘 그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눈살을 찌푸렸다.
“탁호연의 군대가 거의 다 손해를 입어 고작 수백 명뿐이 남지 않았으나 비수군의 진용은 온전합니다. 만약 밤마다 습격하면 저희는 지금처럼 얻어맞을 수밖에 없어요. 아마 지원병에 올 때까지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는 무언가 깨달은 듯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허신년이 웃으며 말했다.
“만약 저희 지원병이 먼저 도착하면 탁호연이 송산현을 공격한다 해도 일손이 모자라 별수 없이 철수할 겁니다. 송산현은 여전히 저희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 수비군과 성의 백성이 희생자가 되잖아…….’
묘재방이 입술을 움직였다.
“정말 그 지경이 되면 제가 허 대인을 데리고 먼저 철수하겠습니다.”
허신년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얼마나 창피합니까. 형님은 혼자서 옥양관을 지켰는데 저는 꼬리를 물고 도망칠 수밖에 없다니요.”
묘재방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네 마음대로 할 수 없어. 그때가 돼서 네가 가지 않으면 내가 너를 아예 기절시킬 거거든.’
뒤이어 허신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그저 감탄했을 뿐입니다. 고집부리지 않을 겁니다. 승패는 병법가의 당연한 일이지요. 고조 황제께서 그해 거사하셨을 때도 연전연패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만약 정말 고집을 부렸다면 지금의 대봉은 없겠지요. 대장부는 주어진 상황에 융통성 있게 순응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 역시 사서에 나오는 죽을지언정 물러나지 않았던 그 호걸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를 따라 분투한 장병들 모두 이곳에 남는데 제가 무슨 낯짝으로 삶을 영위하겠습니까.”
한창 얘기하던 그때, 저 멀리 하늘에서 새 떼가 나타났다.
빠른 속도의 새 떼는 묵직하고 우렁찬 포효 소리까지 동반했다.
묘재방과 허신년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성벽 위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던 부상자들도 하늘가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곤 두려움에 몸을 일으켰다. 하늘을 뒤덮은 새까만 비수군을 보며, 모두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또 왔다, 또 왔어…….”
“수가 이렇게 많은데, 이, 이거 우리가 어떻게 지키지?”
절망적인 감정이 수비군 사이에 널리 퍼졌다.
“허 대인, 비수군 무리가 또 왔습니다! 송산현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희 이만 철수하시지요!”
백부장 한 명이 황급히 달려왔다.
그는 허신년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눈빛에 서린 감정은 복잡했다. 애원, 절망 그리고 살길을 찾고자 하는 희망도 있었다.
허신년은 한동안 두 눈이 핑 돌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알고 보면 이게 당연한 결과였다. 사실 지원병을 논하자면 어떤 병종의 행진 속도가 비수군에 비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허신년은 운주군과 속도를 겨룰 생각을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쿵!
허신년은 주먹으로 성벽을 세차게 내리치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비수군을 제거하지 않으면 청주를 지킬 수 없다.”
그는 천둥처럼 빠른 이 비수군들이 청주 전역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임을 깨달았다.
묘재방은 등에 멘 활을 벗더니 활시위를 당겼다.
단숨에 일을 처리한 그가 비수군을 겨누면서 말했다.
“허 대인을 데리고 먼저 가시오. 이 몸이 우선 몇 마리를 쏠 테니 본전을 뽑고 난 뒤에 얘기하지.”
마침 이때, 비수군은 이미 그의 사정거리 범위에 진입했다. 그대로 묘재방의 동공이 수축하면서 시력이 극대화됐다.
곧이어 선두에 있는 그 비수를 조준하려는데, 갑자기 묘재방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이 비수군은 전에 습격했던 비수군과 달랐다.
운주 반란군의 비수는 붉은색 거대한 새로, 몸 표면이 화려한 불 깃털에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이 비수군에 앉은 괴물은 몸에 검은 비늘이 뒤덮여 있었다. 긴 목과 가느다랗고 긴 체형이 마치 도마뱀 같았고 흔드는 것 역시 깃털 날개가 아니라 얇은 막 날개였다.
또한, 비수군에 탄 병사는 몸에 갑옷을 입은 군인이 아닌, 기괴한 복장에 짐승 가죽옷까지 입은 자들이었다.
필두로 하는 그 비수군 등 위에 청색, 남색이 뒤섞인 의복에 피부색이 까무잡잡하며 머리카락이 곱슬곱슬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는 웃는 얼굴로 성벽 위의 사람들을 향해 팔을 흔들고 있었다. 정말로 반갑게 인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
묘재방이 바로 활시위를 풀었다.
“무슨 일입니까?”
허신년은 시력이 무사만큼 좋지 않아 눈살을 찌푸린 채 물었다.
묘재방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저 사람들, 좀 이상합니다.”
묘재방이 활을 내려놓은 건 단순한 느낌 때문이 아니었다.
저들을 보고도 무사의 위기 예감이 반응하지 않았다. 그것은 즉, 저 비수군 무리가 아무런 적의도 없음을 의미했다.
“이상하다고요?”
허신년은 손을 들어 그를 데려가려던 백부장을 막고, 묘재방을 돌아봤다.
묘재방은 저들의 특징을 한 차례 설명했다.
“저들에게 적의가 없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허신년은 즉각 판단을 내렸다.
“남강 사람?”
곱슬머리에 피부색이 까무잡잡하고, 청색과 남색이 뒤섞인 의복과 장신구, 짐승 가죽옷을 입을 사람들. 사서에 기재된 것 이외에 리나를 직접 보기도 했던 허신년은 저들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챘다.
‘남강인, 설마……!’
묘재방은 머리를 툭 치더니 미친 듯 기뻐했다.
“알겠다!”
그는 설명도 없이 활을 내던진 뒤 성가퀴 위에 서서 점점 가까워지는 비수군을 향해 두 팔을 흔들며 흥분했다.
선두에 있는 비기(飛騎)가 그 모습을 보고, 비수를 몰고 대오에서 벗어나 성벽 위로 급강하하며 떨어졌다. 나머지 비기는 경계를 풀지 않고, 성벽 위 상공을 선회하면서 거리를 유지했다.
후~ 후~
얇은 막 날개가 젖혀지며 광풍이 자갈과 모래를 날려버렸다.
검은 비늘의 거대한 짐승은 마도 위에 착지해 천천히 날개를 거뒀다.
묘재방이 빠르게 달려가 맞이하며 급히 물었다.
“고족 사람입니까?”
검은 비늘의 거대한 짐승 등 위에서, 중년 사내가 입을 뗐다.
“저는 탑막(塔莫)이라고 합니다. 심고부 비수군 총사령관입니다. 순언 족장의 명을 받들어 청주를 지원하러 왔습니다. 심고부는 이미 허 은라와 협의를 이뤘습니다.”
중원어가 표준적이진 않아 묘재방은 3번쯤 들은 뒤에야 이해했다.
‘역시, 허 은라가 청해서 온 것이군…….’
묘재방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허칠안이 고족으로 가는 길에 헤어졌다. 그리고 지금, 고족의 군대가 나타났다. 대봉 수비군에게 적의도 없었다. 이건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허칠안이 보낸 지원병임을 알 수 있었다.
묘재방은 허신년에게 안전하단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손짓했다.
허신년은 백부장의 호송하에 묘재방 곁에 이르렀다.
“제가 말했잖습니까. 저와 허 은라는 고족으로 가는 길에 헤어졌다고요. 저들은 허 은라가 찾아온 지원병입니다!”
묘재방이 흥분해서 설명했다.
‘허 은라가 찾아온 지원병이라…….’
백부장은 그대로 멍해졌다.
묘재방이 외친 소리가 아주 커서 먼 곳에 있는 수비군도 그의 말을 들었다. 적의를 가득 품고 경계하던 그들 모두가 순간 멍해졌다.
허신년은 거대한 짐승 등 위에 탄 남강인을 자세히 살폈다. 그의 피부색은 까무잡잡했고, 입술은 두꺼운 편이었으며 몸은 말랐으나 허약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 탱탱한 근육에는 폭발력이 있었다.
허신년은 눈을 반짝이다가 침착하고 냉정하게 물었다.
“저희 형님이 가라고 한 겁니까?”
묘재방이 한 마디 끼어들었다.
“이분은 허 은라의 사촌 동생입니다.”
순간 허신년은 눈빛이 달라졌고, 탑막은 공손한 태도에 아첨까지 곁들였다.
“그렇습니다.”
허신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여긴 어떻게 찾은 겁니까.”
정상적인 상황이면 허칠안은 분명 고족의 지원병에게 청주성에 가서 청주 고위층과 교섭하라고 했을 터였다. 절대 곧장 송산현으로 올 리는 없었다.
지금 허신년은 대수롭지 않게 묻는 척했으나 사실은 자칭 심고부라고 하는 이 탑막의 반응을 떠보고 있는 것이었다.
“허 은라께서 가라고 한 겁니다. 송산현 지도도 주었지요. 저도 여러 해 전, 대봉에 온 적이 있으나 도중에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본래는 어젯밤이면 도착했을 겁니다.”
탑막이 품에서 지도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성벽 위의 대봉 깃발을 쳐다본 후 한 마디 덧붙였다.
“다행히 늦게 오지는 않았군요.”
‘형님이 직접 송산현으로 가라고 한 것이구나……. 살았다. 송산현도 살고, 백성들도 살았어……!’
허신년은 눈을 감고 몸을 살짝 떨었다. 그는 힘껏 숨을 들이쉬고 모든 감정을 억누른 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형님은 제가 송산현에 있는지 어떻게 알았지요?”
이는 확실히 허칠안의 풍격에 부합했지만, 그가 어떻게 허신년이 송산현에 주둔하고 있음을 알았는지는 미지수였다.
탑막은 곧 고개를 저었다. 그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뒤이어 그가 물었다.
“그럼 저희 착지해도 될까요?”
허신년이 고개를 끄덕이자, 탑막은 고개를 들어 휘파람을 힘껏 불었다.
하늘을 선회하던 비수군은 명령을 받고 질서정연하게 고도를 낮춰 성벽 위에 안전하게 착지했다. 하지만 수가 너무 많아 검은 비늘의 거대한 짐승 대부분은 성벽 아래쪽에 착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먼 곳의 병사 한 명이 무기를 든 채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허 대인, 방금 묘 장군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들이 허 은라가 청해 온 지원병이라고요? 형, 형제들 모두 정말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허신년은 그를 바라보다가, 먼 곳에 한데 모여 이쪽을 간절하게 보고 있는 부상 당한 병사들 몇몇을 쳐다보았다.
다시 시선을 거둔 허신년은 젊은 병사를 보며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들은 심고부 비수군으로 허 은라가 청해온 지원군이다.”
젊은 병사는 격한 감정에 갑자기 온몸을 떨었다. 눈에선 눈물이 떨어졌다.
묘재방은 성가퀴로 뛰어올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성벽 위의 검은 비늘 짐승, 뒤이어 아래쪽에 더 많은 검은 비늘 짐승이 있었다.
묘재방의 눈에도 물빛이 반짝이듯 스쳤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쉬어 시큰거리는 목을 억지로 진정시킨 뒤 포효했다.
“형제들이여! 우리의 지원군이 도착했다. 허 은라께서 우리를 위해 지원군을 청했다. 우리에게도 비수군이 생겼다!”
묘재방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수비군과 민병들 사이에서 단숨에 격앙된 환호가 터져 나왔고, 뒤이어 뭇 사람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넘실댔다.
누군가는 눈물 범벅된 얼굴을 하고 중얼거렸다.
“살았다!”
누군가는 흥분해 빨개진 얼굴로 소리쳤고, 누군가는 기뻐 어찌할 바를 몰라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끊임없이 환호했다.
성 아래 민병들은 상황을 살핀 뒤, 흥분한 나머지 거리와 골목을 따라 뛰어다니며 희보를 알렸다. 지원군이 왔다고, 허 은라가 데려온 지원군이 왔다며 성의 모든 백성에게 소리쳤다.
순간, 현성 곳곳에서 환호성이 메아리쳤다.
허신년은 깊이 심호흡하며 격앙된 감정을 진정시킨 후에 말했다.
“탑막 대인, 심고부 비수군이 먼 길을 오셨으니 본래는 여러분에게 거처를 마련해 드려야 하지만, 군사는 신속성이 첫째입니다. 전투에 유리한 시기는 순식간에 사라질 겁니다.”
탑막은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허 대인, 무슨 분부이십니까.”